어느 좀비의 이야기

1.
한 여성이 좀비가 되었다.


2.
그녀는 좀비가 되긴 했지만 이성은 남아있었다.
그녀는 일단 자신의 사망보험금을 수령하러갔다.

심장도 호흡도 진즉에 멎어있었기에 법적으로 아무 문제 없이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그녀는 꽤 운이 좋았다. 그녀는 매일 머릿속에서 어떻게 죽어야 덜 아플까를 공상하는 자살 예비자였고, 기왕 죽을 때 죽더라도 부모님께 효도는 하고 죽자는 마음으로 사망보험을 네개나 들었었다. 덕분에 그녀는 근 10년은 일하지 않아도 풍족하게 먹고 살 정도의 돈을 벌었다.



3.
사망보험금에 대해 듣지 못한 그녀의 연인이 이별을 통보했다. 아무리 사랑해도 좀비는 무리라는 이유였다. 그녀는 펑펑 울면서 어떻게든 그를 잡으려했지만, 좀비가 된 그녀의 몸은 너무너무 느렸다.

그녀는 옷깃 하나 제대로 잡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펑펑 울었다.
울다가 눈알이 빠져서 더 서러워져버렸다.

그래도 눈을 도로 구멍에 맞춰 끼워넣는 것 만으로 치료가 끝난건 다행이였다. 병원비를 따로 쓸 필요가 없었으니까.



4.
그녀는 이 큰 돈을 어떻게 써야할 지 알수 없었다. 돈도 써봤던 놈이 잘 쓴다고, 평생을 소시민으로 살아온 그녀는 어떻게 돈을 써야하는지도 몰랐다. 그녀가 가장 크게 생각할 수 있는 사치래봐야 명품백과 해외여행이었으니. 아마 아무렇지도 않게 명품 매장으로 들어와 10분도 안되는 시간 내에 스카프 여러장을 사가는 사람들로서는 실소가 나오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일단 좀비가 된 그녀는 해외여행을 결심했다!



5.
죽은 사람은 비자를 발급받을 수 없었다.
아이고 씨발...



6.
해외여행이 좌절된 그녀는 옷 쇼핑을 하기 위해 거리를 나섰다.

몸이 썩어가는 냄새에 거리의 사람들이 얼굴을 찌푸렸다. 아무리 비싼 향수를 뿌려도 가릴 수 없는 악취와 기괴한 걸음걸이 때문에 그녀는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했고 결국 원피스 한장 사는 것으로 쇼핑을 끝내야 했다.

ㄴ6-1.
심지어 그 쓸데없이 비싼 흰 원피스는 입은지 한시간도 채 되지 않아 옆구리로 흘러나온 내장 때문에 색을 다 버렸다.



7.
그녀는 집에서 인터넷 통신판매로 먹을것을 사기 시작했다.
아무리 죽었어도 멸시와 혐오의 시선은 싫었으니까. 인간일 때 먹었던 수많은 오각을 자극했던 음식물들은 이제 아무 맛이 나질 않았다.

그래도 열심히 이것저것 먹어본 결과, 그녀는 그녀 나름의 식도락을 즐기게 되었다.

ㄴ7-1.
발효식품을 생고기에 발라먹어보세요!



8.
그녀는 대화할 사람이 없었다.
부모님을 찾아가봤지만, 그 애쓴 억지 웃음을 보곤 역시 다시 찾아가는건 관두기로 했다.
세상에게서 버림받았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억지로 그러든지 말든지, 상관없다며 실컷 홈쇼핑 카탈로그를 구경했다.

그녀는 곧 아주 많이 외로워졌다.



9.
그녀는 자신의 무릎을 끌어안고 몸을 둥글게 말았다.
외로움은 통증이나 폭력과도 닮아있어서, 익숙해질 수는 있어도 느낄 수 없게 되는것은 아니었다.

문을 꼭꼭 닫아걸고 느끼는 거대하고 무해한 외로움과 무기력은 늪 같았다.
그녀는 하루하루 늪 속으로 가라앉았다.

ㄴ9-1.
그거 알아? 외로움은 정말로 통증의 일종이라 진통제를 먹으면 가라앉는대!
진통제를 아무리 많이 먹어도 죽지 않는 몸이니까, 외로움도 극복할 수 있을거야!

ㄴㄴ9-2.
그러나 대량의 진통제는 처방전이 있어야 받을 수 있었다.
결국 그녀는 그 외로움을 통째로 감내해야했다.



10.
외로움에 질식할 것 같아도 어쨌거나 무언가를 먹다보면 쓰레기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녀는 방 안을 가득 채운 쓰레기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대부분 냉동 고기팩 껍질이나 요플레 통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요플레 껍데기를 핥지 않을 정도로 여유로웠지만 별 의미는 없었다.

그녀는 쓰레기 봉지 두개를 양 손에 들고 질질 끌고 나왔다.
옆집윗집아랫집 사람들은 그녀의 몸에서 나오는 시체 냄새와 추깃물에 이사를 가버린 지 오래였기에, 바깥은 꽤 고요했다.

역시 그냥 죽어버릴까.
노르스름한 가로등 등 아래에서 그녀는 그런 생각을 했다.
이미 죽어있긴 하지만, 불에 타버리면 진짜로 죽을 수 있지 않을까.
아무래도 못된 생각이었다.

여상히 쓰레기를 버리려던 그녀는 깜짝 놀랐다.

10-1.
ㄴ몸이 나무늘보만큼 둔해져서 별로 깜짝 놀라는 것 같은 반응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깜짝 놀랐다.



11.
처음엔 마네킹이 버려져 있는 줄 알았다.
그렇지만 쓰레기봉지 사이로 삐져나온 다리는 마네킹 치곤 너무 말랑했고, 뭣보다 마네킹의 다리에서 피는 안 난다.

관절이 신기하고 재미있는 방향으로 꺾인 것과, 팔다리가 따로노는 것 제외하면 평범하고 순박하게 생긴 청년이 쓰레기봉지 위에 던져져 있었다. 청년은 천천히 눈을 떠서 좀비인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치 처음으로 같은 존재를 만난 희열 비슷한 것이 둘 사이에 감돌았다.


12.
아!
아무래도 세상에게 버림받은게 그녀 혼자는 아닌 것 같았다.

다행히도 말이다.


13.
그 또한 좀비라고 했다.
지나가다 트럭에 치어서 안그래도 약해져있던 관절이 끊어지는 바람에 움직이지도 못하고 이 상태라고 멋적게 웃었다.

"신고같은거 할 생각 없는데, 정말 너무하지요?"

시체를 차로 치면 벌금이 얼마나 나올까?
쓸데없는 의문이었다.



14.
동질감을 느낀 두 죽은 사람은 가까이 있는 그녀의 집으로 가며, 나프탈렌과 소다석과 방부제를 샀다.

그녀는 비닐봉지에 팔다리를 들고, 등에는 팔다리 분의 몸무게가 가벼워진 남자를 업었다.
등에 업힌 그는 힘들게해서 미안하다며 그녀에게 어떻게 몸을 덜 썩게하는지에 대해 알려주겠다고 했다.
밤산책을 나왔던 아줌마가 비명을 지르며 혼비백산 도망간 것만 빼면 마치 데이트하는 것 같았다.



15.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답례로 그의 잘린 다리며 팔을 꿰메주었다.
그는 이렇게 바느질을 잘 하는 사람은 처음이라고 감탄했다.

그녀는 그에게 좀비의 몸으로 뭘 먹으면 맛있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그는 죽고나서 이렇게 맛있는건 처음 먹는다고 했다.

둘은 행복하게 방부제를 들이부은 욕조에 들어가 키득키득 웃었다.
굳은 핏덩어리와 살점이 떨어져서 수챗구멍을 막았지만 이번만큼은 별 불만없이 끄집어낼 수 있었다.



16.
두 좀비는 한낮의 번화가를 누비거나 놀이동산에서 츄러스를 먹으며 롤러코스터를 타는 데이트는 할 수 없었지만,
대신 옥상에 올라가서 함께 밤하늘을 감상할 수는 있었다.

두 좀비는 도시의 빛이 별을 가린 것에 대해 아쉬워하며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서로의 손을 포갰다.
사람이 좋고, 분위기도 깨고싶지 않았던 그는 옥상위로 올라온 길고양이가 그의 오른손 절반을 뜯어먹을 때까지 그냥 내버려 뒀다.



17.
우연히 두 사람이 좀비가 되었는데,
우연히 그 둘이 만나,
우연히 서로 사랑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냥 필연이라고 생각한 그 두 좀비는
결혼하기로 했다.



18.
구청은 사망자의 혼인신고서를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법이라는게 어쩔 수 없다면서 구청직원도 식은땀을 흘리며 도리질을 했다.
그녀는 처음으로 사망신고 이후 사망보험금을 탄 것을 후회했다.



19.
그 어느 결혼식장에서도 두 사람에게 드레스와 정장을 대여해주지 않았다.
남자는 우는 그녀를 한참 달래주었다.

"아무래도 우리끼리 사서 입고 약식으로 올려야할까봐."



20.
두 사람의 부모는 기겁하며 문을 걸어잠궈버렸다.
아마 자신의 자식은 믿을 수 있어도, 그 옆에 있는 이질적인 좀비가 두려웠기 때문이리라.

남자는 씁쓸하게 웃었고 여자는 조금 많이 분노했다.



21.
그녀는 화가 났다.
열받아서 이 엿같은 세상 가스 졸라 쳐먹고 콱 뒤져버릴란다를 외치며 가스밸브를 열고 잤는데도 바뀐건 하나도 없어서 더 화가 났다.
남자는 이래봐야 안 죽는건 알지만 애써 변덕쟁이인 그녀의 장단에 맞춰줬다.

그는 일어나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켰다.
그녀는 뾰로통하게 창문이며 대문을 다 열고 환기하는 그를 바라보다 고깃덩이에 마요네즈를 부었다.

그렇게 둘 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마 둘 중 한 좀비라도 흡연자였으면 그대로 구워져서 진짜 죽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22.
그들은 스트레스를 푸는 작은 취미를 가지게 되었다.
매일매일 다른 방법으로 자살해보기.



23.
반짝반짝 예쁜 알약을 구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종류를 구해서 한꺼번에 먹어버리는 건,
마치 보석을 씹는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의미없이 손목을 긋거나 얼음을 가득 채운 욕조에 들어가 잠을 청하거나 목을 졸라보거나...
결과적으론 연인의 가슴이 더 넓었고, 내려다보는 연인의 아직 부드러운 어깨의 능선이 더 예뻤다는 것만 확인할 뿐이었지만.
여튼 둘은 그렇게 계속 자살을 이어갔다.

둘은 세상을 버리는 일에 둔감해졌다.



24.
그날은 커다란 드라이 아이스에 누워있었다.
은은하게 퍼지는 연기가 예쁘다고 키득거렸다. 어쩌면 가장 신비롭고 예쁘게 죽은 것일거라고, 그런 이야기를 한 것도 같다.

분명히 홀로 있을 때 겪는 외로움은 사라졌는데,
두 사람이 같이 서 있어도 왜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을까?
남자는 자신은 그녀만 있으면 된다고 했지만, 그도 그저 그 미지의 괴로운 감각에 무뎌졌을 뿐이다.

어쩌면 그냥 검은 물감같은거라서, 아무리 흰색을 섞어도 회색이 될 뿐 흰색이 될 수 없는 그런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정체불명의 외로움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25.
두 사람은, 어 의도치 않았지만 한날 한시에 드디어! 죽었다.
드라이 아이스에 온몸이 언채로 깨져버린 것이다.

두 사람은 손을 꼭 마주잡은 채 파편이 되었다.
두 사람은 조금 외롭고 많이 사랑했고 정말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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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1-01 17:08 | 조회 : 966 목록
작가의 말
퍼플헤이즈

슬럼프가 왔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쭉쭉 썼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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