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 后院的金沙之子

눈을 비추는 햇살이 조금 따가워지는 계절이 오고, 아버지의 하렘에 사람이 늘었다.

청년의 과도기에 서있는 햇살 아래에선 옅게 갈색이 도는 검은 머리칼과 건강하게 그을린 피부를 가진 소년은 그리 생각하며 책을 덮었다. 검푸른 바다같은 눈의 소년이 입은 옷깃에 금사로 한땀한땀 문양이 수놓여진 흰색의 옷은 한눈에 봐도 귀한 재질이었다.

소년은 감흥없는 표정으로 소란스러운 창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승전보가 울리고 전쟁이 끝나는 해에는 가임기의 아름다운 여성 너댓명이 하렘에 추가되곤 했다. 전쟁광인 자신의 아버지는 의례라도 되는 것 마냥 정복한 국가에서 공주 몇을 데려다 하렘에 가둬두고 몇일에 걸쳐 만찬을 즐긴 뒤 다시 수도를 떠나 정복에만 열중했다. 일생 하렘에서 한발자국 나가지도 못할 불쌍한 이국의 여인들은 아버지의 반짝이는 트로피였다.

삼왕자인 키림은 그런 그녀들에게 무관심했다. 심약한 첫째형님은 그녀들을 불쌍히 여겼고, 오만한 둘째형님은 그것이 당연하다 여겼다. 위의 두 형님들과는 달리 하렘 바로 옆의 궁에서 기거하는 키림은 그녀들 사이의 서열다툼과 괴롭힘을 보며 자연스럽게 그녀들에 대한 동정심을 잃었다.


왜 하렘의 노예들에게 그렇게 모질게 구냐는 첫째형의 질문에 그는 무감한 어조로 답했었다.

'나보다 성질이 더 더럽던데.'


키림은 그곳에서 바닥을 보았다. 하렘에 속한 이라면 어차피 전부 속국의 포로 주제에 그녀들은 와중에도 서열을 만들었고, 가장 밑의 카스트가 된 자는 화풀이용 장난감이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었다. 시녀가 없으니 소국의 공주에게서 장신구를 빼앗고 궂은 일을 시킨다. 반항하면 머리를 밀어 보잘 것 없게 만들거나 무리를 지어 구타하거나 팔다리를 분지르고 변소에 밀어넣는 등 온갖 린치를 가하는 것을 보았다.

자신보다 약자인 것을 만들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추악함, 게으름, 오만함. 더불어 한번 밉게 보이자 그녀들이 어린 키림의 시선을 눈치채면 애써 아닌척 유혹하는 것 마저 조악해보였다.

그 모든 것을 창문 너머로 보며 키림은 인간에 대한 혐오감만 무럭무럭 키웠다. 더불어 원래도 그닥 좋다고는 할 수 없던 성격이 더욱 삐뚤어졌다. 장성해가는 어린 셋째 아들이 슬슬 여인에 관심을 가지길 바라며 하렘의 바로 옆에 위치한 궁을 내린 황제로서는 의도치못한 최악의 결과였지만 말이다.


마지막 전쟁이 끝나고, 그곳에 유독 눈에 띄는 아이가 들어왔다. 오랜만에 돌아온 둘째 형과 함께 간식을 나눠먹던 첫째의 눈이 둥그레졌다.


"아버지가 어린애 취향도 있었어?"

"형님, 나이가 문제가 아니잖아 저건."


첫째형님은 놀란 목소리로 물었고, 그에 퉁명스러운 둘째형님의 답이 돌아온다. 말 없는 키림도 모두의 시선이 향한 더러운 꼴을 한 꼬마를 쳐다보고 있었다.

살면서 처음보는 금발이었다. 물론 서쪽 저 너머 이국의 나라 사람들은 그 용모가 아름답고 햇살아래 쏟아놓은 황금같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 전해지고 있지만...


'과장이 심하네.'


황금은 무슨. 굽이치는 칙칙한 금발은 생명력이 없는 누런 강 같기만 했고, 맥없이 쳐진 눈꼬리는 보는 사람마저 기분 나쁘게 만드는 것 같았다. 피부색은 마치 장례식 날 마지막으로 키스했던 관 속 어머니의 시체처럼 창백했다.

열셋은 되었을까?


"시체처럼 생겼네. 서방의 왕족들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더니, 상인놈들의 혓바닥은 믿을게 못 돼."


키림이 툭 던진 한마디에 둘째형은 가볍에 어깨를 으쓱거렸다.


"평가가 너무 박한데? 예쁘잖아. 나이야 뭐, 어차피 아버지께선 관심도 없으시고."

"그나저나 하렘에 어린애라니... 일디림, 네가 아버지의 망국 왕족콜렉션 버릇 좀 어떻게 해 봐. 넌 매번 아버지와 전쟁터에 같이 다니니까 우리보단 좀 사정이 낫잖아."

"...형님들 아까부터 제일 중요한 부분을 그냥 넘어가는 거 같은데. 저거 남자잖아?"


하렘의 여인들이 흔히 입는 흰 치마를 입혀놔도, 아무리 머리카락이 치렁거리도록 길어도 그 이목구비나 묘하게 뼈대가 굵은 몸은 남자의 것이었다. 첫째형도 둘째형도 피식 웃으며 어차피 수집용 인형인거 남자던 여자던 무슨 상관이냐 답했다.

그 순간 금발의 소년이 뒤를 돌아보았다.

키림은 순간, 자신이 책의 삽화로만 보았던 겨울날 서리 낀 창문 너머의 하늘이 저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검푸른 눈과는 다른, 선연한 하늘색의 눈. 시선은 오래가지 않았다. 소년은 놀라서 맨발로 타다닥 도망쳐버렸다.



"겁이 많네."

"이국의 하렘에 끌려왔으니 잔뜩 겁먹어 있을만도 하지. 서대륙 봉우리의 나라의 둘째왕자야. 서대륙에서 승리한건 처음이라 기념품은 가지고 싶으셨고, 막상 그 나라의 왕족 중 여식은 없고. 어떻게든 가져온게 저 녀석이지."

"흐응..."


키림은 턱을 괸 채 흥미가 가득한 눈으로 도망가는 소년을 끝까지 쫒고 있었다. 아직은 앳된 얼굴에 떠오른 장난기 가득한 미소는 아버지의 것을 닮아있었다.


-


하렘의 관리자는 소년이 열네살이라고 했다. 나이 맞지 않을 정도로 어려보이는 것도, 왕족이었다는 녀석이 뼈대가 보일 정도로 말랐다는 것도 신경쓰였다. 키림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남자였고, 서대륙에 관해서도 흥미가 많았다.

소년은 들어오자마자 놀림감이 된 것 같았다. 그 이질적인 생김새부터 시작해 덜 자란 몸이며 저들이 알지 못하는 막연한 약소국 출신이라는 것 까지, 하렘의 가시돋친 장미같은 여인들에겐 딱 맞은 화풀이 대상이었다.


"줏어먹지 그래? 개 답게."


까르르 웃는 소리와 함께 엉덩방아를 찧은 소년의 주변에 음식이 던져졌다. 소년은 울것같은 얼굴을 하면서도 애써 아랫입술을 깨물고 치마폭에 으깨진 밀가루 전병같은 것들을 주워담고 그 자리를 벗어나려했다.


"더럽네."

"...!"


그렇게 말하며 내려다보는 시선에 금발의 소년은 얼어붙었다. 키림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소년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그것을 조소라 받아들인 소년은 금새 얼굴이 붉어진 채 고개를 숙이고 뛰어가버렸다.

들린 치마단 사이로 보이는 새하얀 종아리에 키림은 작게 혀를 찼다. 거 말 좀 붙여보려 했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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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1-01 16:56 | 조회 : 856 목록
작가의 말
퍼플헤이즈

쓰다 드랍한 것. 폭스툰이 제발 임시저장과 웹소설 본문을 수정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해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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