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 축복의 결혼식

서른둘, 중소기업 신입사원.
A의 결혼식 날이 되었다.

상대는 주제에 맞지 않을 정도로 상냥하고 현숙한 여자였다. 숙취로 길거리에 토하다 울며 쓸어진 A를 돌봐주며 만난 인연이었다.

사람구실 할 것 같지 않았던 아들놈이 이렇게 좋은 아내를 만나다니, 하고 어머니는 감개무량하셨고 아버지도 현명한 며느리를 보며 그저 기뻐하실 뿐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웃었다.
모두가 축복하는 결혼식이었다.
아아, 신랑 신부는 모두에게 축복받으세요.

신랑 들러리는 능글맞은 형인 B였다. 형제 나이 순대로 B가 가장 먼저 가야하는데 말이지. 아버지가 아주 작은 아쉬운 소리를 하셨고, 또 어머니는 그러다간 A는 영원히 결혼 못한다며 농을 던졌다.

신랑 입장! 이라는 소리와 함께 A의 곁에서 걸음을 떼는 B가 작게 물었다. A에게나 겨우 들리는 그 목소리엔 여전히 웃음기가 배어있었다.


"그래서? 기분이 어때?"

"이제와서 죄책감이라도 느낄거라고 생각해?"

"나는 즐거운데."

"개새끼."


우애좋은 형제네요, 두 사람이 작게 속삭이는 것을 보는 어느 하객이 웃었다. A는 스스로의 입술을 짓씹었다.

자신은 비겁자였다. 자신에게 쏟아질 비난과 시선이 무서워서 도망쳤다.

후텁지근해서 서로의 숨결마저 끈적거린다고 느껴졌던 어느 날의 한 여름에, 서로 런닝과 팬티만 입고 빤히 바라보다 무어라 말 없이 시선을 주고 받고 그 볼에 입술을 눌렀다. 누가 먼저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만큼 오래 된 기억이었다. 스스로 하면서도 어렸을 때 장난스럽게 하던 뽀뽀와는 다른걸 알았다. 자끔 서로의 것을 잡고 자위를 도와주던 행위와도 묘하게 달랐다. 어른이라기엔 미숙한 두 아이는 순전한 호기심으로 콤콤한 땀내를 맡으며 몸을 섞었다.

잘게 떨리는 몸, 헐떡이며 튀어나오는 숨결. 몰래 본 빨간 비디오의 여자는 허리를 흔들며 더 해달라고, 좋다고 울었지만 A는 그저 눈에 눈물만 가득 담고 아프다고 엉엉 울었다. 미안, 미안해. 자신 위에서 사과하며 허리를 흔들던 B는 얼마 지나지 않아 A도 아프게 하지않는 법을 찾았고, A도 B가 민망한 표정을 해써 숨기며 같은 방에서 자자고 조를 때 도리질을 하지 않게 되었다.

두어번, 세번. 두 손에 달린 손가락으로 셀 수 없게 되었을 때가 언제였더라. 자위를 처음 배운 원숭이처럼 그들은 서로에게 매달렸다.

중학생이 된 후로는 그런 관계에 거북함을 느끼게 된 A와는 달리 B는 여전히 비싯 웃으며 다른 사람들 몰래 A의 팬티 속으로 손을 집어넣기 일수였고 A도 딱히 거부는 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젖병을 물고다니는게 이상한 것임을 알면서도 그것이 너무 좋아 내려놓지 못하는 다 큰 어른 같았다. 친구들끼리 약간의 자학을 담아 우리 동정 언제 떼냐고 농담을 해댈 때마다 B와 A는 그저 애매하게 웃을 뿐이었다. 어떻게 말하나 그걸.

어떻게든 관계가 단절된건 어른도 애도 아닐 무렵이었다.


'이런거 우리 이제 그만하자.'


먼저 말을 꺼낸건 A였다.


'왜?'

'왜냐니...? 결혼도 못하고, 형제끼리 이러는거 역시 이상하잖아.'


B는 여전히 나른한 목소리로 여상히 되물었다. 당황할만한 말을 한거도 A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당연한 사실을 되묻는 B의 행동에 당황한 것도 A였다.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아아, 그래. 너는 도망치는 것 조차 무서워서 못하는 겁쟁이었으니까.'


고등학생이 되고나선 이런 관계가 정상이 아니라는걸 확연히 느꼈다. 원래도 느끼고 있었지만 이젠 이 관계가 왜 정상이 아닌지 명확했다. 어렸을 때야 그럴수도 있다 쳐도, 이 관계를 유지하며 어른이 될 수는 없었다. A는 현실이 두려웠다.

어른이 되고, 졸업을 하고, 다시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여, 손자를 낳는다. 당연히 그리 되어야할 터였다. 그 평범하다면 평범할 행복에 자신과 형과 같은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남자끼리에 심지어 형제다. 처음부터 말도 안되는 짓이었다.

지금 자신을 어떤 눈으로 보고있을까. A는 굳이 돌아보려하지 않았다. 지금 B가 상처받은 표정을 하고있건, 상처받지 않은 덤덤한 표정을 하고있건 둘 다 버틸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있잖아, 그럼 A는 형아랑 결혼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거야?'

'미쳤어? 우리 둘 다 남자잖아.'

'에? 그런 편협한 사고방식을 동생이 가지다니 형님은 섭섭해! 그럼 내가 여자거나 네가 여자였다면?'

'애초에 근친이잖아! 결혼식장 이전에 예쁜 사랑하세요같은 입발린 소리 듣는거도 불가능하다고?!'


하아―. 다시금 돌아오는 B 특유의 장난스러운 어조에 장탄식이 절로 나왔다. A는 셔츠를 툭툭 털고 옷매무새를 고친 뒤 고개만 살짝 돌려 B의 뒷통수에 대고 말했다.


'형도 그만 정신차리고 구직하고 혼처나 알아봐.'

'네이네이, 네 주제에 얼마나 가려고. 얼마만에 형아 품으로 쫑쫑 달려와서 이잉이잉하고 팡팡 울까로 내기할래? 형아는 한달에 신사임당 건다.'

'형.'


A의 목소리에 다시금 힘이 들어갔다.


'형이 아무리 그래도 우린 축복받을 수 있는 커플도 아니고, 결혼식장은 더더욱 못 들어가.'


멋대가리없는 추억에서 눈을 돌리니 눈 앞엔 펼쳐진 버진 로드가 보인다. 면사포 아래 수줍은지 가볍게 눈을 감고 볼을 붉인 아름다운 신부도 보인다.


"그때 네가 그렇게 말했지."


자신의 곁에 선 B의 속삭임도 들린다. 자신의 곁으로 다가오는 현실과 어린 시절의 사랑이었는지 호르몬이 만들어낸 반응이었는지도 확실치 않은 반짝임이 파도에 무너지는 모래성처럼 멀어져가고 허물어져가고 있었다.

신부가 곁에 섰을 때, 모두가 그들을 축복하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우리, 지금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장에 들어왔어."


A는 순간 참지 못하고 울어버렸다. 하객들은 신랑이 참 좋은가봐! 라는 소리를 속살거리며 까르르 웃었고, 부끄러움에 볼을 사과처럼 붉히고 눈을 감은 신부는 그런 남편 될 사람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A 또한 끝까지 B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끝까지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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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12-31 04:37 | 조회 : 728 목록
작가의 말
퍼플헤이즈

예전에 썼던 글은 한 일년 뒤에 보면 놀랍도록 취향에 딱 맞는 글인 경우가 많더군요. 근데 하나도 완결이 안 나있으면 과거의 게으름에 눈물만 날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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