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의 대화

"안녕? 나는 네 꿈이야."


퇴근길이었다. 불 켜진 가게 하나 없이 가로등 빛에만 의지해 느즈막히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길.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베시시 웃으며 인사를 건네오고 있었다.

무섭지는 않았다.

그저 오늘 아침 급하게 걸치고 나왔던 더러운 패딩과 추적추적한 눈으로 더러워진 신발을 신고있는 초라한 내 꿈을 보며 약간의 미안함과 부끄러움과 자괴감을 느꼈다.


"물어보고 싶은게 있어서 잠깐 와봤어. 너는 왜 나를 쫒았어?"


그녀가 뜬금없이 물어온 말은 정곡이었다. 그러게, 나는 너를 왜 쫒았을까?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자 꿈은 다시 내게 되물었다.


"너는 나를 기억하고는 있는거야?"
"응."


꿈은 자신의 차림새를 내려다보더니 울상을 지었다.


"원래 나는 구식 타이프라이터를 들고 글을 쓰고 있거나, 마이크를 잡고 녹음을 하는 성우의 모습이었어."

"미안해, 그렇지만 그 꿈들은 돈이 되질 않았어. 천재들 사이에서 나의 재능은 애매했어. 모두가 그렇게 말했고 나는 미래를 위해서 포기해야만했어."

"그래 그렇구나."


꿈은 어깨를 으쓱했다. 어깨 사이로 매어진 때 탄 푸른색 크로스백 끈이 얼핏 보였다.

그 가방 안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떠오르는 아이디어와 단문을 적어놓는 노트와 예쁜 시를 필사하는 수첩이 들어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매일 출퇴근할 때 무겁다고 노트와 수첩을 집에 놓고다니기 시작한 것이. 만약 꿈이 내게 그래서 나를 지운 지금은 행복하니? 미래는 밝고? 라고 물었다면 나는 돌로 내 머리를 찍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지 뭐."


꿈은 쓴웃음을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꿈은 다정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나의 꿈이었으니까. 나의 꿈은 언제나 다정했고 잡을 수 없는 신기루 같은 존재였다. 찬란하고 위풍당당했던 그것은 지금 엉망진창이 되어 바로 내 앞까지 끌려내려와있었다.

나는 참담함에 고개를 숙이고 엉엉 아이처럼 울었다. 따스했던 꿈이 사라지고 칼바람만 내 볼을 스쳤다.


그렇게 꿈과 나의 대화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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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12-31 04:15 | 조회 : 1,042 목록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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