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_ 모래성

"수술이 엄청 잘 되었습니다. 신기할 정도예요."
"다행이네요..."
"어, 그런데... "
"무슨 문제라도..?"
"등 뒤에서 큰 상처를 발견 했습니다. 많이 아프셨을 것 같은데... 치료가 늦게 이루어 진 모양인지 후유증이 크겠더군요"
"아, 그래요?"
"뭐, 말씀만 드리는 거니까요. 너무 걱정하시지는 마시구요. 아, 3인실로 안내해드렸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총상 환자 치고는 굉장히 빠른 회복입니다. "
"저..저는 이만.."
"아- 제가 너무 오래 잡았나요?"


병실
"태호 형.."

아직 자고 있는 태호의 손을 준이 꼭 잡았다. 3인실이긴 하지만 다른 침대에는 환자가 없는 모양인지 1인실 같았다. 준이 병실을 두리번 거리다가 배시시 웃었다. 이거 꼭, 처음 날 만났다던 그날의 상황과 반대 아니야?

"으음.."
"형, 깼어요?"
"아니, 안 깼어.."
"뭐예요, 다 대답하면서.."
"아직 꿈인거야, 아직은..."
"형?"
"드디어 너를 지켰는데... 드디어 진실을 알았는데... 왜 하나도 행복하지 않은거지... 모래성을 열심히 쌓았는데, 진실이라는 파도 하나에 무너진 것만 같다."
"치, 나는?"
"같이 모래성을 쌓아올린 연인?"
"그게 뭐야, 형 지금 죽다 살아난 것을 알기나 해요?"
"응, 알지. 그래도 다행이잖아."
"형, 진짜로.."
"나랑 약속하나만 해"
"갑자기 웬 약속이요?"
"나를 떠나지 마.."

그 말을 하는 태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어쩌면 그는 세번째 약속 일지도 모른다. 첫번째 준도, 두번째 준도 모두 이 약속을 했지만 떠나가 버렸다.

"떠나라 해도 안 떠날 건데요"
"맨날 떠났잖아, 나를. 쫓아갈수도 없게 멀리. 차라리 외국으로 도망갔으면 잡을 수 라도 있지. 아니, 희망이라도 있지. 근데 희망도 갖지 못한 채 떠나버렸잖아.너"
"그건 다른 준들이구요"
"그래서 총을 맞는 그 순간에는 참 다행이다 싶었어"
"왜요?"
"지긋지긋한 이 악순환에서는 벗어날 수 있겠구나,하고"
"그럼 남겨질 나는 생각 안 해봤어요?"
"얼핏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내가 2번 시간 여행했으니, 이제 너도 두번 하면 되겠다 싶은."
"이기적이야, 형."
"인간은 다 이기적이야."
"아 참, 형"

길어지는 만담에 준은 발꼬리를 돌렸다.

"한 재호, 교도소로 옮겨졌대. 원하면 면담 가능하다고 강형사님이.."
"한 재호, 개 쓰레기 새끼..."
"앗, 형 일어나면 안 돼!"
"갈거야!!!"
"아이, 다 나으면 가세요. 형사님"
"준이 여기 뽀뽀해주면 안 가야겠다"
"여기 병원이야!"
"뭐 어때, 우리 밖에 없는데. 아님 나 지금 당장이라도 링거 끊고 나갈거야"
"자기 몸 가지고 협박을 하는 건 형 밖에 없을 거야"

한창 투덜거리던 준은 쪽- 소리나게 뽀뽀를 해왔다. 떨어지려는 준을 태호는 허리를 감싸 안고 그대로 키스했다. 혀로 입술을 간질거리자 아힛, 하며 입을 열어준 준. 태호를 더 깊숙히 키스를 하며 자꾸만 허리를 지분거렸다. 준이 더 이상 숨을 못 쉬겠는지 가슴을 탕탕 치고서야 키스가 끝났다. 긴 은색 실이 두 입술 사이에 늘려뜨려 졌다. 하악- 거리며 숨을 몰아쉬던 준은 태호를 째려보았다.

"뭐예요!!!"
"연인 사이에, 키스도 안 돼?"
"키스 한다는 말은 없었잖아요!"
"그니까 작작 섹시해, 내 아들래미 벌써 섰어,"

불룩한 바지를 가르키자, 준은 얼굴이 빨개진 채로 "저 물좀요!!" 하고는 병실을 빠져 나갔다. 도망가버린 준이 귀여운지 키득거리던 태호는 속으로 혀를 찼다.

"물, 여기 있는데."


-

일주일 뒤, 놀라운 속도로 회복한 태호는 교도소로 향했다. 준과 함께였다. 준과 함께 가는 것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준이 하도 졸라대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다.

"신 재호, 가족입니다."
"죄수번호 148157, 나와"

"형, 이군요"
"왜 가인을 죽였어"
"..."
"왜 준을 죽이려고 했어"
"..."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대체 왜?!!"
"..."
"후, 내가 흥분했군. 말이나 좀 듣자. 그래서 넌 누구야?"
"... 할머니는 혼자 키우기 버거워서 나를 고아원에 보낸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나는 묘족 이었습니다. 완벽한 묘족, 형과 달리"
"..."
"미국은 커녕, 서울을 떠나본 적이 없었습니다. 늘 형 주변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난..."
"네, 절 본 적 없으시겠죠. 인간인 줄로만 알고 학교를 다닌 당신과 달리 저는 묘족마을 에 들어가 묘족의 능력에 대해 배우고 묘족에게서 교육을 받았으니까요"
"가인은 왜 죽인거야"
"묵비권 행사하겠습니다."
"지금 널 추궁하는 게 아니야. 질문일 뿐이지"
"그게 추궁입니다"

형제 간의 미묘한 긴장감이 방을 맴돌았다. 씩씩거리던 태호는 의자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안절부절 못하던 준이 막 일어나려고 할때, 재호는 웃었다.

"앉으세요, 당신께 전해드릴 말이 있으니까요"
"저, 저요?"
"네."

엉거주춤하던 준이 앉자, 재호는 태호를 대할 때와는 반대인 목소리로 준에게 담담히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저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묘족입니다. 가인이라는 그분 역시도 저와 딱 한번 만난적 있지요"
"그, 그런데요?"
초반에 저는 사람의 마음을 색으로 보았습니다. 성인이 되었을때는 조금 진화되어 문장과 색으로 보였지요. 가인과 처음 만났을때 가인의 마음의 색은 온통 검은색이었습니다."
"거,,검은색이요?"
"보통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면 핑크색, 빨간색, 그리고 진하기에 따라서 갈색으로까지 보일수 있습니다. 검은색은 주로 범죄자들이나 사기 같은 마음을 숨기고 싶을 때 나타나는 색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녀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경찰이 되었을때야, 그녀의 문장이 보였지요."
"그녀의 문장이 뭐였습니까?"
"'죽이고 싶다', 단 한 문장이었어요."
"죽여요...? 누굴요?"
"누구긴 누구예요, 우리 형이죠."
"도대체, 왜요?"
"저도 궁금하긴 했습니다만, 가인을 만날 수야 없으니까요. 그래서 매일 감시했죠"

재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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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1-24 14:01 | 조회 : 1,950 목록
작가의 말
월하 :달빛 아래

60초가 아니라 24시간이 되어야 나타난 작가를 용서해 주세요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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