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_ 진실

그날도 어김없이 가인을 감시했다. 그날은 좀 독특했다. 그녀의 마음의 색깔이 검은색에서 노란색으로 바뀌었다. 기쁨. 희열, 그리고 엄청난 만족감. 마음의 문장은 줄곧, '죽이고 싶다' 에서 '죽일 수 있다' 로, 마지막에는 '죽인다' 로 끝나있었다. 등 뒤에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총을 조심스럽게 빼들었다. 형은 3살때 봤던 것이 다다. 그러나 형을 노리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우애고 뭐고 화부터 났다. 족장님은 그것이, 묘족에게만 있는 가족심이라고 했다. 묘족은 가족 단위로 생활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본능적으로 가족을 지키려는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오늘이야, 드디어."

가인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복수를 한다는 것이 기뻤다. 비록 복수 대상은 그의 아버지지만, 이미 실종되어버린 사람을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그 마저도 우연에 기연이 겹쳐 찾아낸 사람이다. 잘 봐두라고, 한 석호. 당신의 우리가족에 했던 일들이 어떻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지를.

"가인, 안 돼!!!"

멍청하게도, 그는 나를 대신해 스스로 칼을 받아내었다. 죽일 만큼의 상처가 아니어서, 서있던 사람에게 눈짓했다. 범인으로 위장한 그를 죽일 인물. 근데 내가 거기서 당할 줄은 몰랐지. 탕- 하는 호쾌한 소리가 공기를 가로질러 나의 가슴에 박혔다. 눈을 돌린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

"내가 그녀를 죽이지 않았더라면 형은 아마 죽은 목숨이었을 거야"
"형은 또 왜 쏜거죠?"
"일종의 드러내기 랄까. 죽지 않게 조절해두었어. 아마 다 빗나갔을껄?"
"하나는 어깨에 박혀 수술했습니다."
"이번엔 살았네"
"당신도 시간이동술을..?"
"나는, 주신의 배려라고 할까. 장치라고나 할까. 너와 태호가 또다시 만나려면 가인은 반드시 죽어야 해. 그 역할을 내가 한거고"
"어째서..?"
"너와 형은 운명이자 벌이니까."
"도대체 전생에 어떻게 살았길래.."
"어, 몰랐어? 너네, 마왕하고 계약한 왕과 왕비였대. 왕비가 남자였는데, 왕비가 자식을 갖고 싶어하니까 왕이 마족을 불러내었어. 근데 그 마족이 마왕이었고, 마침내 자식을 가지게 되어 기뻤던 왕비는 잔치를 벌이는데.."
"근데요?"
"여기까지만, 스포는 재미없잖아?"
"네?"
"나가봐, 시간 다되었어"

쫓겨나듯 교도소를 나왔다. 태호는 말 없이 준을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

"우와, 형 집 처음이다, 그죠?"
"..."
"형?"
"아, 미안..."
"아니예요. 밥은 제가...?"
"내가 할게"
"그렇게 정색하실 필요는... 하하..."
"얼른 부엌에서 나가"
"형 방 구경해야지!!"

방은 의외로 깔끔했다. 앨범을 넘겨 보았는데 옛날 사진은 개뿔, 하나도 없었다. 왜 앨범이 필요했을까 고민하는데 제목이 슬펐다. '세번째 준과의 추억'

"다른 앨범도 제목이 다 비슷비슷하네."

'첫번째 준과의 추억' 을 촤르르 넘겼다. 내 애기때 사진과 형의 애기때 사진으로 추정되는 사진이 나란히 붙여져 있다. 포스트잇에는 '애기 때도 잘생겻다, 우리 오빠'

"이거, 내 글씨인데...? 오빠?"
"어, 어?!! 준 그거 내려놔!!"
"앗 깜짝이야!"
"밥먹으러 와"

졸랑졸랑 그를 쫓아가는데 문득 칭호가 궁금했다.

"형, 첫번째 준은 형을 오빠라고 했어요? 왜요?"
"준,"

어, 형 귀 빨개졌다. 부끄러운가, 아님.. 우는 건가..

"그렇게 불러줄거야?"
"아니,, 아니요!"
"그럼 입 다물고 밥 먹자, 확 키스하고 싶게"
"앗, 키스는 안됩니다!!"

피식- 웃은 태호가 허겁지겁 먹는 준을 내려다 보았다. 행복하다- 비록 준이 아닌 준과 있지만.


-

"으... 윽... 허억.. 허억... 읏..."
"으음.... 형? 형, 어디 아파요?"

또 다시 등 뒤가 아렸다. 오늘도 자기는 글렀구나...

"괜찮아, 이리로... 와, 준"
"식은 땀을 이렇게 흘리면서...!"
"너만 있으면 돼.."
"기다려보세요, 물수건 챙겨 올게요"
"가지마..."

잡은 손목을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애처로운 그의 목소리에 슬그머니 발을 틀었다. 형을 바라보며 다시 눕자, 형은 평온한 미소를 그린다. 와, 잘생겼다...

"형, 왜 그렇게 아파요?"
"행복해서"
"행복한데 아프다는게 말이 돼요?"
"키스 해도 돼?"
"안 돼요!!!"
"오물거리지마, 사랑스럽잖아"
"안 오물 거리...흡..."

츄릅- 하는 야한 소리가 방안을 맴돌았다. 가슴을 탕탕 치고서야 또 빠져나왔다.

"아, 진짜 형!"
"너, 마약 같아"

몽롱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태호 때문에 또 찔끔했다.

"치...칭찬이죠?"

자신의 물음과는 관계없이 태호는 준을 끌어안고는 가슴에 구리르 대게 했다. 쿵-쿵- 태호의 심장소리가 준의 귓가를 때렸다.

"그럼, 준은 내 마약인걸, 도무지 끊을 수가 있어야지. 자꾸 중독 되잖아."
"...왜 이렇게 아픈 건데요"
"말 안할래."
"가인 때문인거죠?"

움찔- 그의 몸이 움찔했지만 준은 신경쓰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가인 때문인거 맞냐고요."
"울고 싶어서 그래, 오늘 같은 날은 그냥 울게 놔두면 되는거야."

태호가 기댄 어깨쪽이 축축히 젖어들어갔다. 준은 떨리는 손길로 태호를 쓰다듬었다. 신이여, 이 여린 남자가 대체 왜 아파야 하나요. 이 여리고 순한 남자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리도 우나요.

준은 눈을 감았다. 차라리 보고 싶지도 않다는 듯이.

-
"준, 사랑해. 너만을."

작은 버드키스가 잠든 준의 이마에 스쳐 지나갔다. 우웅, 거리며 뒤척이던 준이 다시 새근거린다. 태호는 울어서 빨간 눈을 벅벅 문질렀다. 바보 같이 또 울었다. 가인의 본 모습을 알게 된 오늘은 결코 쉽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0
이번 화 신고 2017-01-24 14:36 | 조회 : 1,954 목록
작가의 말
월하 :달빛 아래

떡밥 거의 다 풀리지 않았나요? 그니까 이제는 제발 꽃길만 걷자 ㅠㅠ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