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_용서해주세요

비릿한 피 냄새가 방 안을 가득 매웠다. 이미 익숙해진 그 냄새가 다시금 풍겨오자, 놀란 태호는 소스라치며 깬다.
"웬, 피 비린내가...."
이불을 들추자, 아래에서 자고있던 준의 바지가 피에 쩔어 있다.
"준! 준! 일어나봐, 준!"
"하암, 왜여..."
크게 하품하며 깬 준 역시 자신의 바지를 보고는 놀란다.
"아직, 발정까지는 많이 남았는데,어째서..."
다급한 눈길로 향한 달력에는 내일 모레의 날짜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다.
"이상해... 이런 일은 단 한번도 없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찌릿한 통증이 아래에서부터 올라온다. 찢어진 아래를 뒤늦게 느낀 탓이다.
"아악.... "
"일단, 침대로 가자."
조심스럽게 준을 안아올린 태호는 서둘러 침대로 향했다.

"아니, 아니, 일단 화장실로요. 생리대 차야 해서"
"풋- "
"웃지마요!, 아이 씨.... 하루종일 피가 나오기 때문에 첫째날은 차고 있어야 한다고요."
"알았어, 그렇게 크게 안 웃었는데. 갈아입을 바지 문 앞에 둘게. 찝찝할텐데 씻고 갈아입고 나와"
"네, 얼음주머니도 부탁해요"
"완전 시종인데? 이게, 너 하산하기만 해봐. 이 값 톡톡히 받아낼거야."
"해줬다면 또 얼마나 해줬다고. 웃기십니다"
"밥해주고 얼음 얼려주고 옷 갖다주고,다 해줬구만"
티격태격대면서도 화장실 욕조에 준을 살포시 내려놓은 태호는 부탁한 것들을 준비하기 위해 얼른 나갔다.

"정말, 미워할수가 없다니까."
푸스스 웃으며 준은 그렇게 말했다.
느릿한 손짓으로 옷을 벗어냈다. 쏴아-하는 소리와 함께 핏물이 씻겨나갔다. 깨끗해진 몸과 마음으로 침대에 앓아누운 준은 태호를 불렀다.

"태호 형~"
"뭐. 왜"
"얼음!"
"니 옆에"
"아 뭐야, 왜 말이 짧아요"
"어이고? 그럼 일 시키는 사람이 참으로 곱게도 보이겠다?"
"에이, 나 환자잖아요"
"아주 그냥 잘 나셨네요"
꿍얼거리면서도 태호는 주방에서 나올 생각을 안 했다.

"우와"
"아프면 죽. 근데 리액션이 시원치 않다?"
"우-와-"
영혼은 팔아드셨나보지? 아픈 애한테 뭘 바라냐...
죽을 준 앞에 놓아둔 태호가 발걸음을 돌리려하자, 준은 태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먹여줘요"
"손 없어?"
"환자잖아요"
배시시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데 안 넘어갈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하여튼 지 얼굴 잘난줄은 아는건지. 입으로 또 웅얼거리자 준은 푸핫- 하고 웃었다.
"싫으면 말아요"
"누가 싫대?"
"그럼 웅얼거리지를 말던가"
"가만히 입이나 벌리세요"
"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호호 불어 죽을 떠먹여주는 태호가 고맙기만 한 준. 이제 자신의 감정이 너무 확실해서 퍼져나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태호는 준의 마음에 스며 들었다. 아무도 모르게 다가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점점 잠식해서 잠겨 죽을 만큼.

다 먹고, 침대에 누운 준 옆으로 털썩 걸터앉은 태호. 침대 한번 크게 요동쳤다. 그 반동으로 아픈지 인상을 찡그리는 준.

"형, 아파요"
"어쩌라고."
"치, 딱딱해"
부루퉁해서 입이 삐죽 나온 준을 내려다보던 태호는 준의 머리를 매만지며 얼른 자라고 속삭인다.
"그럼 형도 같이 자요"
"난 됐어"
"에이, 같이 자요."
옷자락을 끌어 자신의 옆에 눕힌 준. 준의 눈동자가 점점 흐려지더니, 이내 잠들락 말락 한다.

"혀엉.."
"왜"
"좋아해요"
"응?"
"좋아한다고요. 제가 형을"
"..."

한동안 침묵하자, 실눈을 떠 태호를 바라보는 준. 태호의 눈에서 혼란을 읽어내자, 준은 웃는다.
"그냥 알고 계시라고요. 사귀는 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그냥 알아주라고요. 제 마음"
".....모르겠어"
"뭐가요?"
"단 며칠인데도, 내가 좋아질 수 있어? 우리는 경찰과 피의자인데도 그 사이에서 사랑이 피어날 수 있어?"
"네, 사랑이니까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는 모든 게 가능하죠. 그게 며칠이든, 현재 신분이든, 종족이든 모든게 가능한게 사랑이니까요"
"그래도 모르겠어."
"이해 못했으면 말고요"
"아니, 이번엔 내 마음을."
깊고 짙은 눈동자가 맑은 눈동자와 얽힌다. 허공에 얽힌 두 시선은 멀어질 줄 모른다. 맑은 눈동자가 수줍다는 듯 웃는다.
"그 말, 제가 좋다는 소리로 해석해도 되는거죠?"
"나도 아직 모르겠다니까"
"흐음, 그렇다면 이제부터 빠져들면 되는 거고요"
"... 근데 너 아프다고 하지 않았어? 아니, 그것보다 원래 이런 성격이었냐?"
"아픈 틈 타서. 오늘 하루만이예요. 아파서 헛소리하는 거라고 치부해도 되지만, 고통에 흘러나온 진심이라고 믿어도 되고요"
"..."
"정말 딱 오늘 하루만. 하루만, 아프다는 핑계로 용서해주세요."

준의 입술이 다가와 태호의 입술과 맞닿았다. 그 순간, 태호는 알았다. 아, 나는 이 사랑스러운 아이를 좋아하는구나. 아, 나는 단 며칠만에 이 아이를 사랑해버렸구나. 이윽고, 입술이 떼어졌다. 준에게 태호는 멋들어지게 웃어보였다.
"...딱히 오늘 하루만이 아니어도 될 것 같아."
"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 같아."
두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낮은 목소리로 태호는 그렇게 속삭였다.
내가, 너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고. 바보같이 별 같잖은 이유로 너를 밀어냈다고.

"사랑해, 준"
두 사람의 짙은 키스가 어두운 저녁 하늘을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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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1-03 13:55 | 조회 : 1,785 목록
작가의 말
월하 :달빛 아래

매일 이 시간에 찾아뵐것 같네요! 여러분, 평일이라 바쁘신 건가요... 올려도 댓글이 없어 속상한 작가ㅠㅠㅠ 그래도 오늘은 태준커플이 이루어진 역사적인 날이니까!!!! 준이 들이댄것은 발정이 가까워오면서 수인들의 유혹기술이 배로 증가하기 때문입니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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