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휴...
역시나 부장님한테 잔뜩 깨졌다.
덕분에 일거리만 더욱 늘어 기분이 매우 바닥을 치는 중이다.
그 남자만 아니였더라면...하고 괜히 핑계를 대보지만,
내 잘못도 있으니 할 말이 없다.

연신 컴퓨터를 들여다보며 문서를 작성하고,복사해서 붙여넣고,또 작성해서 복사하고 붙여넣고.
이런 쳇바퀴 같은 노가다 일이라 슬슬 지겨워질 때 쯤.

"한 대리님!뭐 하나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
나름 가깝게 지내던 여대리가 말을 걸어 왔다.

"뭔데요?"

"이것 좀,사장님 자리에 갖다 놓아 주실수 있을까요?"
그리고는 내미는 서류 뭉치.

"당연하죠!"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또 어찌 알고!
나는 흔쾌히 수락하고는 뭉치를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아 그리고 사장님이 계신 곳은 '7층'이에요!바로 왼쪽으로 꺽으면 문이 있답니다!그럼 수고하세요~"
자기 할 말만 하고는 다시 자리로 가버리는 여대리.
7층에 왼쪽 문이라...?
왠지 익숙한듯 했지만 기분 탓이겠지라고 치부해버리고는 엘레베이터 앞에 섯는데
아까 전에 난장판이었던 바닥이 깨끗해져 있어 괜히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어디 보자...7층..."

엘레베이터 안에 들어서자마자
꾸욱-
7층을 누르자 점점 되살아나는 기억.
생각해보니 그 남자가 있던 곳이 7층이었잖아?!

속으로 경악하며 다시금 그 검은 문 앞에 서게 되었다.
다시는 올 일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이렇게 벌써 다시 오게 되다니...으으
잠시 망설였지만 업무 차 온거니 어쩔 수 없었다.

"저기,사장님?"
소심하게 문을 두드리며 사장이란 사람을 불렀다.
애초에 이 회사에 입사했을 때부터 사장을 본 적이 없으니 누군지 알 턱이 없었다.

"저기요오~?누구 안 계세요?"
그리고 몇 번 더 두드리며 말했지만 안에서는 어떠한 기척도 나지 않았다.
뭐야,,,아무도 없는건가?
한 번 더 두드려도 없으면 다시 내려야가야 겠다.
이리 맘 먹고는 주먹이 다시금 문에 닿으려는 찰나.

찰칵-
"...누구십니까."
안에서 다소 냉철한 외모를 가진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되게 사무적인 말투와 차가운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쫄았다.

"아..그게..이 서류를 가져오라고..."
그 남자의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리게 됐다.

"서류 말씀이십니까."
그와 반대로 담담하게 내가 내민 서류를 받아들인 남자가 찬찬히 안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내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매우 중요한 서류라.그러고보니..."
남자의 시선이 내 목에 걸려있는 직원카드에 닿았다.

"당신이 한 태윤씨 군요."
어쩐지 날 알고있는 듯한 말투.

"그런데요?"
모르는 사람이 날 알고있는 게 왠지 기분 나빠 살짝 말이 거칠게 나갔다.
그러자 남자가 코에 걸쳐져 있는 안경을 밀어 올리며 말했다.

"제 이름은 윤 설하입니다.사장님을 모시고 있으니 그냥 윤 비서라고 부르셔도 됩니다.그리고 기분 나빠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저는 경계대상에서는 제외되어 있기 때문에 마음 놓으셔도..."

"윤 비서,거기까지.그리고 당신은 여기 왜 온거지?이번엔 발목 키스만으로는 안 끝날텐데?"
어느 새 윤 비서님의 말을 자르고 그 남자가 나타났다.

뭐야,이 사람이 사장이였어?
의아함을 품은 것도 잠시,
코 앞까지 다가온 그 남자.
금방이라도 키스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느껴지는 그의 숨결에 묘한 느낌이 들었다.

"아직은 내 앞에 나타나지 마.아직...끝나지 않았다고.이만 돌아가.지금 상대해주기엔 너무 일러."
그러나 알 수 없는 말을 하고는 괴롭게 일그러지는 그의 표정이 퍽 안쓰러워 보였다.
그치만 어떤 모습이 진짜인거지?
처음에는 다정했지만,차가워졌다가,지금 다시 안쓰러워지는데 뭐가 진짜인지 구별이 안 갔다.
게다가 뭐가 끝나지 않았고,뭘 상대해주기엔 너무 이르다는건지.
이 남자의 말은 하나도 이해가지 않았다.
그러나 갑자기 남자가 내 입술을 한 번 핥는 순간,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지금 뭘....

"미안.못 참겠다."
말로는 미안하다 했지만 전혀 미안해 하지 않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탐욕에 젖어 있었고,그 탐욕이 날 향해 있음에 놀랐다.
다시 한 번 할짝-
혀가 입술에 닿을 때 등골에 소름이 쫙 돋았다.
우리는 남자가 아니였던가.

"이게 뭐하는 짓...흡!"
정신줄을 붙잡고 민망함,화남,당황스러움 등 여러가지 감정을 담아 소리치려 했지만,
어느 새 목과 허리에 둘러진 단단한 팔이 그와 내 사이의 거리를 단숨에 없애 버렸다.
그리고 끝내 입술에 닿아버린 또 다른 입술.
그 틈에서 나온 혀가 집요하게도 입술을 물고 빨며 놓아주질 않았다.

"흡흡!"
발버둥을 치고 때리며 떨어지길 요구했지만,
그럴수록 더욱 잘근잘근 씹어댔다.
아픔에 온 몸을 비틀자,
이번에는 입 안으로 혀가 침범했다.

미미하게 퍼지는 알싸한 담배맛 혀가 유린하듯이 구석구석 헤엄쳐 다녔다.
그러다 요리조리 도망다니던 나의 혀를 감아올린 혀가 혀뿌리를 뽑아 버릴 기세로 격하게 빨아들였다.
너무 아파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흐으..."

미처 삼켜지지 못한 고통이 입술사이를 비집고 튀어나왔다.
혼미해지는 의식속에서 다시 한 번 미친듯이 남자를 밀어내려 애썻지만,그럴수록 더 격렬하고 난폭하게 안으로 침입해 들어왔다.

결국 저항을 포기한 나는 끝내 입속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비릿한 피맛의 감촉에 미간을 찌푸리며 그렇게 속속무책 당하기만 했다.
츕♥하는 물기어린 소리를 끝으로 남자의 입술이 멀어져 갔을 때는 숨이 벅차왔다.

"하아..하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입가를 손등으로 닦자 피가 묻어나왔다.
도데체 왜...

".........가라."
그는 이번에도 나를 두고 먼저 들어가버렸다.
복도 위에는 나만이 홀로 서 있었다.

"흐엉..."
괜시리 눈물이 나왔다.
이 자식 도데체 뭔데 나한테 이러는건데..
사장이면 다야?
내가 만만해?
도데체 내가 뭘 잘못했다구 이러는건데!

"허어어엉....엉엉..나쁜 자식..."
어쩐지 온 몸이 불에 타오르는 듯 열이 올랐지만 이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내 첫 키스를 가져간 이 나쁜 자식!

또 보면 흠씬 때려줘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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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1-26 14:30 | 조회 : 1,114 목록
작가의 말
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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