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1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목 주변 단추도 몇 개 푼 뒤, 소매도 적당히 걷어 올리고 가방을 팔 사이에 끼운다. 무엇인가 초조한 듯 숫자가 줄어들어 가는 LED 전광판만 쳐다보고 있다가 엘리베이터가 1층임을 알리고 문이 열리자마자 급하게 뛰어나가는 한 청년이 있다. 그리고 그런 청년이 스쳐 지나갈 때 간간히 손을 흔들어주며 대화를 나누는 이들도 있다.

"여, 카게야마! 어딜 그리 급하게 가냐?"
"잠시 일 좀 보고 오겠습니다!"
"여친 만나러 가세요?"
"아닙니다!!"

뛰어 다니면서도 대답을 잊지 않는 카게야마는 시간에 쫓기듯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다가 유리문을 밀고 나온다. 숨이 차올라 뛰는 것은 그만두고 빠르게 걸으며 주변을 여러 차례 두리번거리더니 어느 순간 원하던걸 찾은 듯 오른쪽으로 뛰어갔다. 그가 향하는 방향에는 오렌지 빛의 풍성한 머리칼을 가진 소년이 서있었다. 아니, 정정하겠다. 정확히는 주민등록증도 있는 어엿한 성인이지만, 그의 행동과 외모, 무엇보다 신장이.. 그의 나이를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카게야마는 소년 티를 벗지 못한 성인, 히나타에게 달려갔다.

"멍청아!!"
"에, 에엣?"

멀쩡히 산책하던 사람들마저 돌아보게 만들 정도의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는 카게야마. 가만히 벽에 기대어 서서 바닥의 돌을 툭툭 차던 히나타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히나타 앞에는 카게야마가 숨이 차 붉어진 얼굴로 씩씩대며 인상을 잔뜩 쓰고 있었다. 목소리에 놀라고 표정에 두 번 놀라버린 히나타는 뒤로 주춤 물러서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그는 이미 벽에 밀착하고 있었다.

"뭐,뭐야, 놀래라... 왜 그렇게 급해?"
"너야말로..! 헉..헉.. 무슨 일 있어? 무슨 일 났던 거야?"
"어?? 무슨 소리야?"
"아니..... 문자에 급하다며!!"

거친 숨을 몰아 쉬면서 주머니의 휴대폰을 꺼내 히나타의 눈 바로 앞에 꺼내 드는 카게야마. 히나타는 카게야마가 꺼낸 휴대폰을 집어 들고 문자 함에서 자신이 보낸 문자 메시지를 다시 천천히 확인했다.
반짝이는 메시지 화면에는 이렇게 써 있다.
[오늘 11시 시간 된다고 했지? 시간 비어놔!! 급하니까 빨리!!]
순간 멍해져 버린 히나타는 휴대폰을 살며시 끄고 아직도 열이 올라있는 카게야마의 손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쥐어줬다.

".......미안해, 내 탓이야.."
"어?"
"아니.., 그냥 카게야마보고 빨리 보자고 말하고 싶었던 것 뿐인데..."
"어?"

무슨 소린지 잘 알아듣지 못한 듯 카게야마는 표정을 굳힌 채 몇 번이나 되물었다. 그리고 잠깐의 정적 후, 카게야마는 상황을 완전히 이해한 듯 고개를 숙이고는 한참이나 들지 못했다. 히나타는 그런 카게야마를 보며 순간적으로 빵 터진 나머지 숨도 참아가며 웃다가 기어코 한대 맞고 난 뒤, 얼굴을 들지 못하는 카게야마의 손목을 잡아 끌면서 본사 입구를 빠져 나왔다. 그 와중에도 입술을 비집고 나오는 웃음보를 참지 못해 카게야마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말았다.
카게야마는 히나타에 이끌려 본사의 정문을 빠져 나왔다. 앞서 가는 히나타의 뒷통수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그와 만난 지 꽤나 오랜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입사 후 CCG는 신입이라는 명목으로 대학시절 항상 같이 다니던 히나타를 만날 조금의 여유도 주지 않았다. 몇 번이고 약속을 잡았음에도 회사는 번번히 약속들을 취소시켜 버렸다. 그때마다 전화로 들려오는, 약간 씁쓸하고도 시무룩한 목소리는 아직까지도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실제로는 꽤나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히나타를 보고, 카게야마는 무의식적으로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오늘은 오랜만에 만난 기념 삼아 조금은 적극적으로 어울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정문을 빠져나가 계속 어디론가 걸어가는 히나타에게 손목을 잡힌 채 끌려가다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히 히나타는 본사에 처음 와봤을 터인데, 어떻게 이쪽 지리를 알고 가는 거지? 순간적으로 뇌리에 불안한 느낌이 스쳐 지나갔다.

"너 어디가 어디인지는 알고 가는 거냐?"

대답은 허무할 만큼 간단했다.

"응? 아-니, 모르는데?"
"근데 지금 어디 가는 건데?"
"몰라! 으음.. 끌리는 데로?"

멍청한 대답에 바보같이 해맑은 웃음은 덤이었다. 대학시절, 어쩌면 그 전부터 변하지 않는 레파토리에 카게야마는 인상을 구기고 몸에 잔뜩 힘을 줘 히나타가 자신을 끌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강제로 급정지 하게 된 히나타는 몸이 뒤로 쏠리는 바람에 엉덩방아를 찧을 뻔하다가 겨우 중심을 잡고 제대로 섰다. 그리고 갑자기 멈춰선 카게야마에게 불평하듯이 입을 삐죽 내밀고서 돌아보았다.

"왜 그러는 거야?"
"어디 가는데?"
"대충 걷다 보면.. 좋은데 나오겠지!"
"멍청아! 시내를 간다고 쳐도 여기서는 버스 타고 20분이나 걸린다고."

도대체 여기까지 혼자서 어떻게 온 건지 궁금하진 카게야마였지만 그건 나중에 다시 물어보기로 했다. 그리고는 손목을 잡고 있던 히나타의 손을 때어내 자신이 손목을 쥐고는 앞서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왠지 자신이 잡고 있지 않으면 히나타가 혼자서 돌아다니다가 미아가 될 것만 같았다. 자신도 잘 모르는 이쪽 지리에서 그가 미아가 된다면 귀찮고 짜증나는 건 필시 카게야마였다. 물론 그는 자각하고 있지 않지만 귀찮고 짜증난다는 감정만 있는 건 아니었다.
얼떨결에 손목이 잡혀서 끌려가게 된 히나타는 앞서가는 카게야마의 걸음 속도를 따라잡느라 여유롭게 걷지 못했다. 신장 차이가 있어 히나타는 평소 걸음보다 더 빨리 걸어야 했다. 심지어 자신보다 힘도 쌘 사람에게 질질 끌려가니, 잠깐이라도 정신을 놓는다면 엎어질 것만 같았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앞서 가는 카게야마는 그저 앞만 보고 걸을 뿐이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카게야마는 그때야 비로소 히나타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약간 빨갛게 자국이 진 손목을 살살 문지르던 히나타는 빨라진 호흡을 고르기 위해 정류장의 벤치에 털썩- 걸터앉았다. 히나타의 빨개진 손목을 바라보던 카게야마는 괜히 무안해져서 뒷머리를 헤집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선이 자꾸만 그쪽으로 고정되고 있다.
기다리던 버스가 오자 카게야마는 바로 버스에 탑승했고, 앉아있던 히나타도 서둘러 같이 탑승했다. 히나타가 요금을 지불하기 위해 교통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먼저 탑승한 카게야마가 2인으로 계산을 마친 상태였다. 무안해진 히나타는 그저 카게야마의 뒤를 쫓았고, 카게야마는 한적한 버스 안에서 빈 의자 하나를 골라 그 앞에 서서 히나타를 쳐다보았다.

"응? 나 앉아?"
"어."
"카게야마는?"
"난 서는 게 편해."

히나타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우선 그의 성의에 응하기로 했다. 그 대신에 카게야마의 가방을 받아 자신의 무릎 위에 얹었다. 카게야마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주변 어딘가에 앉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을 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생각하면 좀 기묘한 장면이긴 하다. 중고딩같이 보이는 남학생 옆에 한 청년이 서 있는 장면이라니, 남이 보면 요상한 눈길을 보낼 법도 하다.
정작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평온하기만 했다.



사람이 하나 둘씩 내리기 시작하고, 어느덧 버스 안에는 그들만이 남아있었다. 창문 밖의 풍경이 휙휙 빠르게 지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히나타는 아직도 옆에서 가만히 서있는 카게야마를 올려다 보았다. 휴대폰을 쳐다보고 있던 카게야마는 히나타의 시선을 느꼈는지 휴대폰을 내리고 히나타를 마주보았다.

"왜?"
".. 음... 아니야!"
"..."

그의 반응에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지 다시 휴대폰을 든 카게야마. 잠시간의 침묵이 감돌고 그들만 있는 버스에는 밖에서 나는 여러 소리들만이 살며시 자리잡았다. 가만히 창문 밖을 바라보던 히나타는 갑작스럽게 떠오른 게 있어 휴대폰을 들고 있던 카게야마의 손을 잡고 아래로 끌어내렸다.

"카게야마, 잠깐만!"
"아, 왜?"
"우리 지금 어디가?"
"일찍도 물어본다. 시내."
"시내? 왜?"
"점심시간이잖아?"

카게야마는 가려진 화면을 다시 보기 위해 히나타의 손을 잡아 때내었다. 히나타는 카게야마를 잠시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추궁을 포기했다. 오늘 무슨 날인가, 묘하게 카게야마가 이상해.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지나가는 창 밖의 간판들을 둘러보던 히나타는 조용하고 한적한 버스 안에서 노곤해짐을 느꼈다. 따스한 햇볕이 창문을 통해 히나타를 비추고, 눈꺼풀이 점점 내려앉았다. 그는 점점 감겨오는 눈꺼풀을 힘겹게 걷어내다가 결국 져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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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또 까먹고 있었습니다. 놀러왔다가 알림보고 상기했습니다.
역시 저는 여러분들의 도움이 없이는 연재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염치없지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알림 없으면 언제 잠수탈지 모르니 잘 감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연재된 소설을 따오는거라 분량조절 못합니다. 짧을수도, 길수도 있으니 더보고 싶으시면 연재독촉 부탁드립니다.
내가 원채 이래서 뭘 어쩔수가 없어. 정말 죄송한데 안 고쳐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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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12-14 22:07 | 조회 : 2,976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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