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화 - 아무리 노력해도 안된다면, 포기하는 것도 실력이거든

오피온의 많고 많은 휴게실 중 스페셜리스트만이 쉬도록 마련한 휴게실에서.

"루드."

"...왜."

"왜 하겠다고 한거야? 안한다고 하지 않았어?"

"나도 몰라... 하아."
의문이 담긴 표정으로 묻는 나를 잠시 보다가 손으로 이마를 짚고 한숨을 쉬며 대답하는 루드에 그냥 이렇게 된 김에 재대로 해보기로 했다.

"뭐, 그래도 재밌을 것 같은데~ 즐기는게 어떨까. 상황만 된다면 사고도 잔뜩 치고~?"

"그게 뭐야... 하기 싫은 거 아니었어?"

"에~ 그건 마스터가 3개월 치 간식비 대신 내준다고 했으니까. 괜찮아졌달까?"

".........불쌍하네."

3개월 동안 클레아의 간식비를 대신 내줄 마스터를 생각하니, 아니. 지금 의미심장하게 웃으면서 과자를 열심히 입에 오물거리고 있는 클레아를 보며 예상했다. 지금까지 클레아가 먹던 양이 그것들로도 모자라, 2배 정도 늘어날 것을 예상해버린 루드는 그냥 마스터의 일이니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설마 믿는 거야~? 사실은 원래도 재밌어보여서 할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까 귀찮아질 것 같아서 안 하려고 했는데. 네가 하길래 그냥 하는거지."

루드는 클레아의 말에 더 확신해버렸다. 클레아가 3달에 먹는 가격만 해도 일반 마법사가 거의 5년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었다. 그래서 가끔씩 자신이 먹는 과자의 가격을 충당하지 못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 이상하게 어디서 돈이 계속 나왔다.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언제 한번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루드는 아까부터 진동하는 마법석을 쳐다봤다.

"안 받을거야?"

"응. 귀찮거든."

시끄럽지는 않지만, 거슬릴 정도로 울리는 마법석을 멍하니 쳐다보던 클레아는 루드의 물음에 짧게 대답하고는 마법석의 연결을 끊어버렸다.

"누구한테 왔는데?"

"... 보호소."

손목에 찬 검은색 팔찌에 박혀있는 작은 보석을 계속 보던 클레아는 문득 생각이 난 것처럼 말했다.

"루드, 근데 우리 짐 언제 보내지."

아...

클레아의 말에 잊고 있었다는 듯한 루드의 외마디 소리만이 휴게실에 울렸다.

그렇게 이미 싸두었던 짐을 미리 보내려 우체국 문을 여는 순간 들리는 벤의 목소리에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 가까이 가려는 루드를 향해 고개를 돌린 클레아의 말에 루드는 끄덕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상황파악 하나조차도 정말 잘하는 클레아의 능력을 믿었다.

"저번에 그 헬리오스, 우리가 앞으로 다니게 될 마법특수학교에 입학했다는 그 벤 누나 있잖아. 누나한테 우편 보내려고 하는데. 인증서가 없어서 못 보낸다나봐."

"그래? 그럼 도와줘야지."

"벤, 무슨일이야? 혹시 저번에 그 위에 한명 있다는 그 누나한테 보낸다는 거야?"

"응... 근데... 안된다고..."

루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벤에게 다가가 말을 걸다가, 사정을 설명하는 벤의 시무룩한 얼굴에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장난기가 돌려는 클레아와 눈이 마주친 루드는 그런 클레아의 낌새를 눈치채고는 저지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입학 인증서를 카운터에 탁 내밀었다.

"여기 인증서 있어요."

"제 짐이랑 이 편지들, 같이 보내 주세요. 벤, 네 편지는.. 내가 전할 수 있을 것 같네."

"루드형!!"

엄청 감동한 눈으로 루드를 바라보는 벤을 보며 중얼거렸다.

"칫, 내가 할려고 했는데."

"장난치고 싶어하던 눈을 내 두 눈으로 똑바로 봤는데. 무슨 그런 농담을... 그리고... 누가 하든지 상관은 없잖아?"

벤과 루드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클레아는 말했다.

"루드는 너무 착해서 문제라니까~"

"이 정도는 너도 하잖아."

"과연 그럴까~"

"근데 형이랑 누나도 헬리오스 가는 거였어??"

"어."
짤막하게 대답하는 루드.

"근데 왜 지금 가? 우리 누나는 몇 달 전에 들어갔는데?"

"그거야 당연히..."

우린 모르고 있었으니까. 그렇지.

그렇긴 하지. 가는 거였는데 우리는 입학시험은 직접 안치고 마스터가 대신 쳐준 그런 거 말이지... 아니, 사실 오늘 헬리오스 입학 허가 서류 있는 것도 처음 알았고 이런 거 정말 싫다고. 평소에 마스터가 처리하는 서류들만 보는게 아니었어.

서랍속에 분명 숨겨놨었을 텐데... 그걸 꺼내서 하나하나 확인해 보는건데...

나의 이런 태도에도 신경쓰지 않고 방긋방긋 웃으며 고맙다고 말하는 벤. 음... 신경을 쓰지 않는게 아니라 신경을 써도 미처 입학이 특별한 이유 없이 늦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건가?

그렇게 몇 일이 지나고 우리는 헬리오스에 도착했다. 대츅에서 가장 수준이 높다고 불리는 마법아카데미에.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흐응~ 분명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컨디션은 완벽했는데. 마력의 흐름이 너무 정돈되어 있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지만, 눈이 벌써부터 피곤해지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가방 안에 있는 팔찌를 꺼내 차고 싶었다.

아, 팔찌 가져올 걸...

딴 생각을 하며 이름 모를 안경 쓴 교수를 따라 걸어가고 있는 와중에 들려오는 교수의 말에 황당해졌다.

"너무 긴장할 것 없네."

"".........?""

"학생들은 모두 신분도 나이도 제각각이긴 하지만 자네들이라면 어울리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거야. ...이 곳에선 신분도, 나이도, 별로 중요하지 않거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재능]이지."

재능이라...

"보통 이곳에.. 발을 처음 딛는 신입생들은 후일 마법사가 되어 활약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쁨을 느끼곤 한다네. 마치 진짜 마법사가 된 것처럼."

그래봤자. 그건 환상일뿐인데. 왜 모를까. 어리석기도 하지... 아직 되지도 않았는데.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된 것처럼 좋아한다니, 이해가 안돼.

"하지만 그건 역시 환상에 불과하네. 헬리오스에 입학한다고 해서 모두가 정식 마법사가 되는건 아니거든. 오히려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신의 한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은 절망 속에 빠지고 말지.....자네들은 어떨 것 같나?"

글쎄.

"입학테스트 최초의 만점자들께서는? 루드 크리시 군. 클레아 아르웬 양."

"......노력해도 안 된다면...

때려 쳐야죠."

-아무리 노력해도 안된다면, 포기하는 것도 실력이거든.

"풋- ...하하하! 꽤나 유쾌한 친구들이군! 자네들."

"그러면 이번에는 아르웬 양은 어떤가?"

"별로? 아직까지는 별 느낌도 없고 한계를 이겨내고 싶지도 않아서 말이죠. 솔직히 지금도 피곤하고... 집에 가고 싶은 걸요.? 아, 근데 이런 말 했다고 해서 집에 보내진 않겠죠~? 그리고 내가 겨우 그런 한계에 굴복할 리가... 없잖아요?"

마지막 말을 하며 자신있게 웃어보이는 클레아를 보며 교수는 크게 웃었다.

"하하하! 아르웬 양은 융통성 있는 친구였군! 아무튼 잘 지내보자구! 우리 헬리오스는 자네들과 같은 재능 있는 자를 언제나 두 팔 벌려 환영하지. 특히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능력까지 받혀준다면 정말 역사에 길이 남을 마법사가 될지도 모르겠군. "

앞으로 더 두팔 벌려서 환영해주세요. 무려 검은 마법사를 입학생으로 받는 거니까. 그렇지. 아무렴...

"다른 학생들보다 늦긴 했지만.. 루드 크리시 군. 클레아 아르웬 양. 헬리오스에 입학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네."

""네.""

교수와 헤어지고 기숙사를 향해 가는 와중에, 앞서가는 루드에게 살짝 뒤쳐지게 걷던 클레아가 중얼거린 것은 클레아의 푸른 색 눈이 흐릿해진 순간이었다.

"재능은 가지고 있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요. 아무리 좋은 재능을 가졌어도 환경이 갖춰지지 않아서 재능이 그대로 묻혀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과연 그들이 재능만으로 이뤄낼 수 있었을까. 좋은 재능 따위 그럴 바에는 필요 없잖아."

"뭐라고 했어?"

"아무것도."

앞서 걸어가고 있던 루드가 클레아가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는지 뒤를 돌아봤지만. 아무일 없었다는 듯 웃어보이는 클레아에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재능이라는 건, 똑같은 재능을 가졌어도 직위가 높은 사람이 가지면 명성, 명예로 남길 수 있지만. 직위가 낮은 사람이 가지면 그건 나쁜 경우에는, 저주라고 취급된다고. 아니면 그저 그런 대단하다 정도의 실력이라고 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능력이 되는데. 그건 이상하잖아. 재능이 꽃을 피우는 건, 재능을 가진 자를 올바르게 이끌어줄 스승과 본인의 노력도인데. 왜 그렇게 재능으로만 따지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긴, 취지가 어떻든 간에 이런 마법특성학교가 있다는 것만으로 제국은 재능을 꽃피우기에는 좋긴 좋았다. 하여튼, 이렇게 한번 생각하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버릇을 못 고쳤네~

학생들이 조금은 불쌍했다. 본인들이 생각하는 장소는 절대 지금과는 같은 용도로 쓰이려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걸 모를테니까.

0
이번 화 신고 2017-07-24 02:05 | 조회 : 1,308 목록
작가의 말
조그마한 시계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