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화 - 정신 나갔어요?

쾅-!!

마물의 다리가 땅에 부딪히며 흙먼지가 주변에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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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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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렸다.

미친듯이 달렸다. 생각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하급마물에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 생각 하나로 어떻게든 버티며 달렸다. 가까운 거리에서 쫓아오는 마물에 기겁하면서도 계속 달렸다. 카이엘은 대체 언제 오는 걸까. 이대로 죽는 걸까. 이 상황에서도 생각을 할 여유는 있는 건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뒤를 돌아봤다가 조금이라도 뒤쳐지면 닿을 거리에 있는 마물을 보고는 계속 달렸고,

주저앉아버렸다.

이미 체력은 고갈될 대로 고갈되었고, 그 고갈된 상태로 미친듯이. 그저 살고싶다는 의지 하나로, 악으로 버티다가 한계치를 넘겨버린 상태였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숨을 가까스로 쉬면서도 부들부들 경련하는 다리를 보며 포기하고 싶었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마물을 보며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너무 힘들었으니까.

'아파... 이대로 죽는거야...? 여기까지 어떻게 버틴거야...'

포기하고 싶은게 분명했을텐데. 생각은 이렇게 하면서도 모순적이게도. 입은 생각과는 다른 말을 내뱉었다.

"...살고 싶어...죽기 싫어."

살고싶었다.

그러나, 마물에게 쫓기다보니 숲 깊은 곳까지 들어와버린 이상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리가 없었다. 눈 앞에 보이는 마물이 자신을 향해 다리를 휘두르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이대로 끝나는 건가...?'

["아니, 아직 끝나지 않았어."]

마물이 클레아와 닿으려는 찰나, 머릿 속으로 이명이 들려왔다.

"끝나지 않았다고."

파앗-

그리고 그 이명이 뜻하는 바를 무의식중으로 중얼거린 클레아의 주위로 퍼져나가는 푸른색이 섞인 은빛마력. 마력은 클레아를 중심으로 배리어 형태를 만들다가 곧, 폭발적으로 퍼졌나갔다.

쿵-! 콰아아앙-!!

폭발적으로 퍼져나간 마력은 마물을 밀쳐냈고, 튕겨나간 마물은 허공에 붕 떴다가 곧 땅에 처박혔다.

귀에 들려오는 굉음에 눈을 뜬 클레아는 눈 앞에 보이는 반짝거리는 마력을 보고는 눈을 빛냈다. 그리고 일어나서 손을 뻗었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마력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어느새 잊혀진 마물이 충격을 회복하고 돌아와선 클레아를 향해 더러운 다리를 휘두르려 하는 기색을 보이자, 클레아는 뒷걸음쳤고, 마물은 계속 다가왔다.

그렇게 공격당하기 직전에,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누군가의 발에 차여 멀리 날아가서 다시 처박히는 마물을 보며, 측은하다고 해야할지 통쾌하다고 해야할지. 애매한 표정을 짓던 클레아는 좋은게 좋은거라고 생각하기로 하고. 직접 차서 처박아 놓은 마물에게 친히 다가가 푹푹- 밟아대는 시크를 보며, 눈을 데록데록 굴렸다.

'이미 죽은 것 같은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물의 울음소리인지, 비명소리인지 모를 소리가 들려왔는데. 이젠 그냥 시크가 밟는 소리밖에 안 들려오자, 클레아는 그대로 주저 앉았다. 하마터면 지금과 상황이 반대였을 뻔했다.

그걸 생각하니, 마물이 하나도 불쌍해보이지 않는 마법이 펼쳐졌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클레아를 발견한 시크는 마물을 한번 걷어차고는 클레아의 앞으로 빠르게 걸어왔다.

"왜 네가. 여기. 있는거지?"

위협적인 기세로 다가온 시크는 클레아를 알아봤다. 제국에서는 보기 힘든 흑발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원래도 이런 사소한 것에는 신경 쓰지 않는 시크였지만, 지금은 이런 사소한 거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내가 어떻게 알아!'

시크의 물음에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던 클레아는 그저 입을 닫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입을 꾹 다물고 있는 클레아의 모습에 짜증스럽게 머리를 헤집었다.

"재미있는 녀석이 나타난 줄 알았더니. 쯧."

마력이 분명 폭발하듯이... 퍼지는게 느껴져서 영감탱이도 버리고 온 건데. 왜 얘가 여기 있나. 계속 생각하다가 문득, 든 생각에 눈을 크게 떴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마력,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여자애. 이 깊은 숲까지 누가 들어올까...

그렇게 되면, 이 마력들은...

"......"

"이런 상황에서는 괜찮냐고 물어보는게 어떠신지? 그게 정상이라고요."

"......"

"그렇게 보고 있지만 말고 좀 일으켜주세요."

'얘다.'

'재미있는 녀석'을 찾아내, 눈을 빛낸 시크는 아직도 주저 앉아서 뭐라고 궁시렁거리고 있는 클레아를 훑어보곤 말했다.

"싸우자."

"......정신 나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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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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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난 아무것도 안했는데?"

"아니, 아무것도 안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저한테는 구해준거니까요."

"고마우면, 싸우자."

이건 대체 무슨 미친 발언인가. 구해줘놓고 싸우자니, 지금 땅바닥에 앉아있는 것도 보이지 않나 싶어서,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고 시크를 가리키니 끄덕거리는 시크의 반응에 정말 어이가 없고 황당해 헛웃음을 터트리던 순간이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시크. 여기는 왜 온거야. 대체..."

"협회에만 들어가면 내 맘대로 해도 된다고 한건 당신이잖아?"

"시크, 그래도 이건 정도가 있잖아? 벌써 몇번째야."

"..."
시크는 그대로 인상을 찡그리더니 입을 다물었고, 시크를 조용히 하게 한 남자는 클레아를 보고는 물었다.

"이런 곳에 아이 혼자 있다니, 놀러 온 건 아닌 것 같고... 네 이름은?"

"클레아예요."

"왜 여기있니?"

"저거."
클레아의 옆에 있던 시크는 클레아가 대답을 하지 않자, 대신 대답해주며, 뒤에있는 마물을 향해 눈길을 잠시 주고는 돌렸다.

남자는 마물을 보고서는 알겠다는 듯 클레아를 보고는 묻기 시작했다.

"성까지 말해줄래? 성은 안 말해줬잖니?"

"클레아 아르웬."

클레아는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자신의 이름이 아닌, 이름을 밝히며 당황스러웠다. 분명 처음 듣는 것일텐데도. 왜 '아르웬'이라는 성을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지는지... 짜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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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웬의 성은 너희들만 받을 수 있는 거란다. 경쟁을 뚫고 올라온 너희들이기에 거는 기대가 크고 열심히 임무를 잘 수행해줄 거라고 믿고 있다. 앞으로 너희들은 얀으로서 다른 이들에게 모범적으로 행동해주길 바란다.]

'믿고 있다.'라는 말이 부담스러웠다. 지금까지도 버거웠는데... 오늘따라 버겁게 느껴졌다.

'더 무거운 책임을 달고 일을 해야하는 것에 대한 버거움일지는 모르겠지만...'

[특권이라기에는-!]

[겨우 3명한테만 주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군.]

우리가 아르웬의 성을 부여받기 일보직전에, 들려온 외침에 씁쓸한 웃음이 자조적으로 나왔다.

'이미 선택되어 버렸으니까. 막기에는 너무 벅차고, 그만두기에는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니까. 살아남았지만 살아있는게 아닌 것만 같은 우리들에게 말하던 그 모습이 뇌리에 박혔는데. 늦어도 너무 늦게 오셨어요. 이미 모든게 끝난 후에 와밨자... 이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처음부터 나서서 그를 말려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저희의 선택에 후회는 없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게 아니라, 모르는 척 하는겁니다.

"이미 끝난 일을 말해서 무엇하고, 이미 지나간 일을 비난해서 제가 얻을 수 있는게 뭐가 있어서 제가 말할까요."

난생 처음으로 날카롭게 나온 말이 이런 말이란 것도, 정말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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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속에 자신이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떠오르는 건 굉장히 기분이 더러웠다.

이름을 말하고는 표정을 살짝 구기는 것을 본 라노스테는 모른 척, 웃고는 입을 열었다.

"갈 곳이 없다면 우리와 같이 가는 것은 어떠니?"

"...그래주시면 감사합니다."

잠깐 고민하는 듯 하던 클레아는 이내 결정을 내린 듯, 떨떠름한 어조로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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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11-20 21:55 | 조회 : 1,282 목록
작가의 말
조그마한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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