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화 - 좀 노력이라도 해보고 그렇게 말해보라니까?

아침부터 들려오는 노크소리에 클레아는 얼굴을 베개에 파묻었다.

'-리스 아가씨.'

"으응... 일어났어. 내 이름 클레아리스 맞으니까..."

잠이 덜깨기도 했고, 목이 잠겨서 소리가 잘 안나오자 인상을 찡그린 채로 대답하고 나서 문을 힐끗 쳐다본 클레아는 생각했다.

일어나야 되나. 졸린데.

평소에는 나긋나긋해서 듣기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졸릴 때에는 수면제라도 되는 것인지 눈이 자꾸만 감겨왔다.

'아가씨.'

'오늘 어디 가야된다고 했던 것 같지만, 정말 급해지면 알아서 깨우겠지.'라는 생각으로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어버리고 다시 꿈나라로 떠난 클레아였다.

그렇게 클레아가 다시 잠에 빠져든 사이, 클레아의 방문 앞에서는 시녀가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벌써 40여 분이 다 되가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2분마다 방문을 두드리고 클레아의 이름을 불렀지만, 클레아의 대답은 처음에 두드렸을 때 말고는 돌아오지 않았다.

"클레아리스 아가씨."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소리도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문에도 불구하고 시녀는 자세에 조금의 미동도 없었고, 그런 시녀를 보면서 문앞에 서
있던 기사는 생각했다.

'아가씨 주무시는 것 같은데.'

이런 기사의 생각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시녀는 고민에 빠져있었다.

이러면 안되는 것은 알고는 있지만,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깨닫고 무례를 무릎 쓰고라도 문을 열려는 그 때였다.

"잠깐만."

"...마님?"

"클레아가 잠이 많아서 아마 대답만 하고 다시 잘 것 같은데. 이러면 내가 깨우는게 더 나을껄? 할 일도 많을텐데 빨리 하러 가봐요."

"감사합니다."

똑똑-
"클레아, 들어간다?"

"클레아, 오늘 후작가에 가기로 한 거 잊어버렸니? 지금부터 준비해도 늦는다고? 클레아만 놓고 가도 되나봐?"

"...에... 너무해... 싫어."

"클레아?"

"......나도 데려가요."

"그럼 빨리 준비해야지. 꾸며볼까?"

"싫은데, 싫어요."

"진짜?"

"응. 싫어...귀찮으니까 더 싫어..."

자신의 의견 만큼은 확실하게 표현하는 클레아에 클레아의 엄마, 일리아는 좋다 싫다의 호불호가 뚜렷하지만 가족 앞에서는 어느정도 무용지물이 되는 클레아의 단호함이 어디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만 해도 정말 싫다는 듯이 눈을 찡그리며 말하는 클레아를 보던 일리아는 그런 모습도 너무 사랑스러워서 어느정도 타협하는 걸로 그치기로 했다.

아이인데. 벌써부터 굳이 완벽하게 꾸밀 필요는 없었다. 예의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했다.

"일단 예의는 지켜야지. 제일 간단한 원피스로 골라서 입자."

"...응."
차려입는 것 자체가 귀찮기만 했지만, 이거라도 안 하면 절대 물러서지 않을 일리아를 알고 있어서 클레아는 그냥 받아들였다. 어차피 이 정도의 타협은 받아들여야 했다.

"메리."

"네. 부르셨습니까."

"활동하기 좋은 원피스하고, 망토 좀 가져와요."

"알겠습니다."

부르기 무섭게 노크소리가 들리고, 들어오라는 말이 끝나자 바로 들어와 일리아의 말을 듣고 주변 시녀들에게 눈짓을 하는 시녀장인 메리는 빠르게 옷이 준비되자, 클레아의 준비를 빠르게 마쳤다.

그렇게 준비가 먼저 끝난 클레아는 일리아를 기다리면서 기사에게 받은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 의자에 앉아서 다리를 흔들며 기다렸지만, 사탕을 다 먹고 나서부터는 지루한 기색을 감추지 못해서인지 일리아에게서 먼저 나가도 좋다는 말을 듣고 활짝 웃고는 문까지는 천천히 걸어서 갔지만, 문을 닫자마자 눈빛이 달라지고는 땅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문 밖에서 대기하던 카이엘은 클레아의 눈빛이 달라지자, 왜인지 모를 불길함을 느꼈고, 그 불길함은 현실로 나타났다.

탁-
"아가씨! 같이 가셔야죠."

클레아의 행동에 빠르게 반응하며 같이 달리던 카이엘은 저 멀리에 대공이 보이자, 그제야 안심하고 속도를 낮췄다. '아가씨가 넘어지더라도 대공이 어떻게든 다 받아주겠지'라는 생각으로 천천히 걸었다.

"아빠!"

"레아!! 뛰면 안된단다. 다치면 어떻게 하려고. 다음부터는 차라리 이 아빠를 부르렴. 응? 어디갈 때도 꼭 말하고."

클레아의 앞에서만 팔불출이 되는 이 사람은 클레아의 부친인 다엠이었다.

클레아를 보기만 하면 평소 그 딱딱하던 인상은 다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질 만큼 그의 최측근되는 친우들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당황해서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저택으로 돌아가던 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그 절대 익숙해지지 않을 것만 같은 그 모습들이 익숙해졌지만, 볼 때마다 새로워지고 점점 발전하는 딸바보의 기운과 팔불출에 이제는 두손두발을 다 든 상태였다.

그게 어느 정도였냐면, 여전히 몇년이 지나도록 업그레이드 되는 그 모습들에 기가 차서 '허-'하고 자신들도 모르게 내뱉으면 무서운 눈초리를 보내는 대공에 몸을 움찔 떨면서도 그를 향해 짜게 식은 눈빛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적응된 상태였다.

"무슨 얘기 해요? 질투날 것 같은데."

"질투라니."

"질투?"

"됐네요. 빨리 출발하죠? 늦었어요."

일리아는 살짝 뾰루퉁한 표정을 짓다가, 자신을 향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두사람을 보고는 피식 웃고는, 두 사람을 재촉했다.

.
.
.

하델리오 후작저가 보이기 시작하자, 클레아는 마차 밖을 바라보았다.

"하델리오 후작저요?"

"클레아는 아직 잘 모르겠지? 이번이 처음 또래 친구를 만나는 건가?"

"또래? 카이엘이 있는데?"

순진무구하게 물어오는 클레아에 일리아는 다른 귀족가문의 아이를 말하는 것이었다며, 클레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어떤 애였으면 좋겠니?"

"특별하거나 특이한 성격이었으면 좋겠어! 나 정도 되는 사람이랑 어울리려면 당연히 특출난 부분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특이하다는 거는 세상에서 평범한 게 아니라 눈에 띈다는 거니까.!"

눈을 반짝이면서 말하는 클레아의 모습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는 다엠과 일리아가 탄 마차가 하델리오 후작저를 향해 계속 달렸다.

저 멀리로만 보이던 하델리오 후작저에 마차가 도착하자, 클레아는 뺨이 붉게 물들었다. 빨리 내려서 카이엘 말고는 처음 만나는 또래가 기대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귀족가의 저택에 처음 와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것이 느껴졌다.

마차 문이 열리고, 밖으로 먼저 다엠이 내리고 일리아가 내리고 자신의 차례가 오자, 마차 밖에는 두 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손을 벌린채로.

"......"
클레아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다시 마차 의자에 앉는 걸 선택했다. 저 둘 중 하나만 선택해도 문제였으니, 아예 선택하지 않는 것이 현명할 지도 몰랐다.

"클레아 이리 오렴. 이 아빠가 잡아줄게."

"아가씨. 이리 오세요. 잡아드리겠습니다."

"카이엘, 너는 키가 작아서 우리 클레아를 제대로 잡아주기나 할 수 있겠나."

"할 수 있습니다."

"...마차가 높아서 잘못 잡아주기만 해봐라. 가만 안 둘거다."

"...아, 정말 치사하시네요."

클레아의 의지는 전혀 반영하지 않은 둘의 싸움은 결국 다엠의 승리로 끝났고, 클레아는 저 뒤에서 다엠을 향해 몰래 이를 가는 카이엘을 보면서 쿡쿡 웃었다. 그러다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일리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가 일리아의 양손을 차지하고 있는 아이들을 발견했다.

"클레아, 하델리오 후작가의 자제분들이란다. 친하게 지내렴."

클레아가 둘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본 일리아는 클레아에게 단 한마디만을 남긴 채, 다엠이 있는 곳으로 가버렸고, 그대로 남겨진 아이들은 잠시 침묵에 휩싸였다. 분명 하델리오 후작의 뒤에 붙어있었을 아이들을 어떻게 일리아가 데려왔을까 생각하던 클레아는 말이 없었지만, 하델리오가의 아이들은 조용한 침묵이 불편했는지, 입을 열었다.

"안녕!"

침묵은 이브릴에 의해 깨졌지만, 반응해 주는 이가 없어서 허공에 외친 꼴이 되어버렸지만, 이브릴은 꿋꿋하게 다시 외쳤다.

"안녕! 나는 이브릴이라고 해! 너는 클레아리스지? 엄청 기대했다고! 또래 친구 만나는 거는 정말 거의 처음이란 말이야! 그래서 내가 아빠한테 공녀에 대해서 계속 물어봤었단 말이지~ 자, 오빠도 인사해!"

"...안녕, 나는 체블. 잘 부탁한다."

갑작스러운 인사에 클레아는 놀랐지만, 그렇게 기대하던 특별한 친구는 아닌 것 같지만 밝은 애여서 괜찮은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어떤 말을 할지 생각하던 중에, 여자아이가 인사를 다 하고 자신의 옆에 있는 여자애의 오빠로 추정되는 남자아이를 건드리자 남자아이가 불편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자기소개를 하는 것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그게... 뭐야!! 딱딱해! 어떻게 우리 아빠보다 더 딱딱할 수가 있지?"

"내가 뭐!"

"좀 부드럽게. 인사해 볼 수는 없어?"

"이게 내 최선이야."

"아아니!! 좀 노력이라도 해보고 그렇게 말해보라니까?"

"체블 폰 하델리오다. 잘 부탁한다."

체블의 인사가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인지, 오빠를 말로 타박하다가 퍽퍽 때리는 이브릴의 행동에 멍하니 그 둘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던 클레아는 자연스럽게 어른들 쪽에 눈이 갔는데. 저쪽은 우리랑 다르게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다.

"이브릴하고 체블이었지? 반가워!"

더 이상은 기다리고 싶지 않아서 그냥 말걸었는데. 저쪽에서 엄청난 반응이 돌아오자, 클레아는 볼을 긁적였다. 솔직히 기다리면서 체블의 인사를 너무 열 손가락에 셀 수 없을 만큼 받아버려서 더 이상 받고 싶지도 않아서 입을 연 것 뿐인데. 누가 좀 저 부담스러운 표정이라도 가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조금 긴장했던 것 같다.

그렇게 서로의 경계가 풀리고 한참을 떠들고 있을 쯤에 일리아가 다시 다가왔다.

"얘들아, 이제 밥 먹으러 들어가야 되는데. 얘기는 다 했니?"

"네에! 아, 클레아! 나 너한테 보여주고 싶은 거 있어!"

"응? 이브릴, 너 설마 그거 보여주려고?"

"클레아가 좋아할 만한 거라고 생각해!"

"그래... 맘대로 해라."

체블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브릴은 클레아의 손을 덥썩 잡고는 저택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던 체블은 한숨을 쉬고는 이브릴과 클레아가 갔을 장소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고, 그런 체블을 바라보는 일리아는 클레아가 좋은 친구를 사귄 것 같다며 자신의 남편이 있을 만찬장을 향해 걸어갔다.

같은 시각, 어디론가 사라지고는 한참을 나타나지 않는 이브릴에 클레아는 그냥 바닥에 앉고 싶은 욕구를 참고 있었다.

.
.
.

시간이 한참이나 지나서 나타난 이브릴은 다짜고짜 무언가를 클레아에게 내밀고는 외쳤다.

"이거 줄게!"

"이거 이렇게 나한테 나눠줘도 되는거야? 이브릴."

이브릴이 내민 것은 반짝거리는 돌이었다. 아름다운 파란색을 띄는 돌은, 돌이라기보다는 보석인 그것은 아마 베니토아이트인 것 같다고 클레아는 생각했다. 예상이 맞는다면, 특정조건이 충족되면 형광으로 빛난다는 희귀보석이었다.

그런 보석을 처음 만난 사이인 자신에게 준다는 것이 조금 성급한 판단이 아닌가하는 생각에 한번 거절도 해봤지만, 재차 주겠다고 하는 이브릴에 클레아는 거절하려 입을 열었지만, 이브릴의 말이 먼저였다.

"이거 클레아 눈 색이랑 정말 닮았는걸! 반짝반짝거려."

이브릴의 강요아닌, 강요에 결국 받게 된 클레아는 얼굴에 미소를 띄운채, 강제로 받게 되긴 했지만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하며, 부모님이 있을 만찬장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아이들끼리 정원에 나와서 뭐하고 놀 것인지 서로 의견을 내놓았다.

"뭐하고 놀까?"

"그러게... 뭐하고 놀지?"

"난... 나희들이나 보면서 쉬고 있을란다..."
자신의 말은 들리지 않는 것인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브릴과 클레아를 보면서 체블은 고개를 저었다.

"화관? 화관 만들까?"
화단에 있는 꽃을 보던 이브릴은 갑자기 생각났는지, 꽃들을 가리키면서 소리쳤다.

"응? 좋아~!"

그렇게 하델리오 후작가의 정원사가 열심히 가꾼 정원의 꽃은 화관을 만들기 위해 하나 둘 따졌다. 그렇게 두 손 가득히 꽃을 딴 클레아는 이브릴이 얼마나 땄나 보려다보니, 이브릴이 따고 있는 손을 향해 눈이 갔는데. 이브릴이 따고 있는 꽃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집에 있는 정원사에게 이 꽃의 이름을 알려줄 요량으로 이브릴에게 물었다.

"이브릴. 그거 무슨 꽃인지 알아?"

"이거? 이거는 아빠가 그랬는데... 뭐였지? 그, 시클라맨이랬어!"

그 대화를 끝으로, 체블은 화관을 만드느라 입을 다물고 집중하고 있는 둘을 바라보다가 누군가의 그림자가 자신을 가리자, 위를 올려다 보았다. 자신의 뒤에서 클레아의 어머니, 일리아 부인이 아마 이브릴과 클레아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절대 자신을 보면서 웃지는 않았을 거라고 믿는 체블이었다.

"믿음직하네. 귀찮은 것도 마다하지 않고 동생들을 지켜보는게 너무 기특해서 말이야. 그리고 이제 저택으로 돌아갈 시간이거든."

"아."
돌아갈 시간이라는 말에 하늘을 올려다 본 체블은 붉은 하늘을 보고서야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체블을 뒤로 한 채로 일리아는 클레아에게 다가가서 이제 저택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이브릴에게 많이 아쉽겠지만, 오늘은 이만 가야될 것 같다고 말했고, 이브릴과 클레아는 서로 더 놀고 싶어하는 기색이 만연했지만, 일리아의 단호한 면을 잘 아는 클레아는 일리아의 팔을 꼬옥 안고는 물었다.

"엄마, 다음에 여기 또 올 수 있어요?"

"있어요?"

클레아의 말을 따라하는 이브릴이 귀여웠던 건지 일리아는 이브릴과 클레아를 안고는 말했다.

"그럼~ 당연하지? 이브릴, 다음에도 우리 클레아랑 같이 놀아줄래?"

"당연하죠!"
씩씩하게 대답하는 이브릴이 마음에 들었는지. 머리를 톡톡 두드리고 이브릴을 품에서 놓아준 일리아는 클레아에게 좋은 친구가 생겨서 다행이라고 말하고 클레아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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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10-09 01:55 | 조회 : 1,549 목록
작가의 말
조그마한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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