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클레아리스 론 카일크루스

황성이 있는 곳으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거대한 저택.

그 저택에 있는 수많은 방 중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문 앞에 서 있는 방 안에서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방 안에는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를 안고 달래고 있는 중년의 여성과 여성의 품에 안긴 아기를 애틋하게 바라보던 여자와 남자가 있었다. 부부로 보이는 남녀는 서로 눈이 마주치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입을 열었다.

"이름은 어떻게 하죠?"

"미리 지었던 대로, 클레아리스로 하지."

그렇게 아기의 이름이 정해지고 아이는 자신의 이름이 정해졌다는 것을 아는지, 어느새 울음소리를 내던 것을 멈추었다.

"클레아리스 론 카일크루스. 예쁜 이름이네요."

아기를 달래던 중년여성은 조용히 웃으면서 말을 꺼냈고, 그 말을 들은 부부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웃었다. 그런 부부를 보는 하녀와 보좌관은 입가에 미소가 맴돌고 있었다.

"앞으로 잘부탁한다. 클레아."

"잘 부탁드려요. 아가씨."

"건강하게 크셔야 합니다? 건강만 하세요."

그리하여, 어느덧 카일크루스 가(家)가 애지중지하는 복덩이의 탄생으로부터 6년이 지날 무렵.

"클레아 아가씨, 뛰시면 안됩니다...!"

거대한 저택의 복도에서 벌써 몇 십분째 추격전을 벌이는 아이들.

그 아이들은 바로,

어느덧 건강하게 쑥쑥 자란 클레아와 클레아를 쫓아 계속 뭐라고 소리치고는 있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복도를 미친듯이 질주하는 클레아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어떻게 잘못 잡았다가 클레아가 다칠까봐 함부로 잡지 못해 계속 뛰어다니고 있는 불쌍한 호위기사인,

카이엘이었다.

카이엘은 비록 어렸지만, 자신과 몇 살 차이나지 않는 클레아의 호위를 할 정도로 강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는데. 클레아의 호위가 된지 1년 차가 된 지금, 호위기사인 왜 자신이 이러고 있는지. 지켜야 할 상대를 미친듯이 쫓아서 달리고 있는 상황에 익숙해져버린 자신에, 이제는 그냥 받아들이기로 한지 오래였다.

하지만, 몸은 받아들였지만, 마음은 받아들이지 못한 카이엘은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정식호위.

'그렇게 노력해서 이룬 결과인데. 지금 왜 이러고 있는거지.?'

10대에 누군가의, 그것도 대공가의 누군가를 지킨다는 것은 중요한 임무였다. 안 그래도 대공일가의 수는 다른 귀족가문의 수보다 훨씬 적어서 구성원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그것도 대공가에서 애지중지하는 아가씨의 호위기사 자리는 서로 하겠다고 난리인 그런 임무였다.

자원해서 한 건데도. 지금 이 상황을 즐겨야 할지. 아가씨가 다치기 전에 그만 아가씨를 멈춰야 할지. 고민하던 카이엘은 그냥 아가씨의 신체능력에 감탄하기로 했다.

'역시 아가씨...;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의문스러울 정도로 이건 절대 평범한 어린아이가 달릴 수 있는 속도의 범위를 넘어선 아가씨의 신체능력과, 지금까지 뛰어다닌 시간만 해도 충분히 체력이 좋은 아이라도 녹초가 되어 뻗어야 정상일텐데.

마지막은 결국 또, '아가씨의 신체능력은 평균을 웃도는 구나.' 생각하면서 멈출 생각이 없어보이는 아가씨에 이제는 점점 잡는 것조차도 포기하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아가씨가 뛰어다니다가, 넘어진다면 그때는 자괴감이 들 것 같아서 차마 포기는 못 하겠는 카이엘이었다.

처음에는 분명 이렇지 않았었는데.! 오늘은 가볍게 산책만 할거라며 환하게 웃던 아가씨가 눈에 잔상처럼 지나갔다. 너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시길래. 돌뿌리에 걸려 넘어질까봐.

"아가씨, 조금만 천천히 걷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던 것 뿐이었다.

정말 그것 뿐이었는데. 진짜로. 뛰면 안된다고 한, 그 한마디 했다고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그저 조금 빠른 속도로 걷고 있던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마자 눈을 반짝이고는 어디론가로 갑자기 달려가버렸고,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아가씨를 쫓아 달리기 시작한 것이, 불과 몇 분전에 추격전으로 변하였고, 이제는 술래잡기를 하러 나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코너를 지나쳐 왔지만 그럼에도 속도가 줄지 않은 주인님의 뒷모습을 그저 바라보고 있는 지금까지 이어졌다.

오늘따라 이렇게 넓은 저택이 원망스러워지기는 처음이었다.

"......"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아가씨가 걱정되어서 포기하지도 못하는 자신을 아는지 모르는지. 클레아는 오늘도 열심히 달렸다.

"아가씨! 넘어지시면 다치십니다!"

"안다쳐~ 그러지 말고 카이엘도 같이 놀자니까?"

"이미 충분히 노신 거 다 아는데요!"

"아니야! 아직 다 못 놀았어!"

고집스럽게 소리치는 클레아의 목소리에 카이엘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조금만, 정말 조금만 더 노셔야 합니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감기 걸리신다고요."

"알았어!"

카이엘은 매번 이런식으로 넘어가기만 해서 큰일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 카이엘도 아가씨를 아꼈다. 아가씨가 더 놀고 싶다는 데 어떻게 하겠는가. 서로 가족은 아니지만, 서로 같이 유년시절을 보내고 있는 친구이자, 동생이었고, 지켜야할 아가씨였다.

만난지는 5년 조차 넘지 않았지만, 대공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가씨의 부친인 다엠이 당시에 고아원에 있던 카이엘을 데려와 클레아와 붙여놓고 친하게 지내라고 웃던 그 얼굴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었다. 그렇게 클레아와 같이 지내게 된 카이엘은 언젠가부터 자신에게 발견되는 재능들에 한번 기사가 되보는게 어떻겠냐는 가문의 기사의 제안에 기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혹독한 2년간의 훈련 끝에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이렇게 누군가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생긴 카이엘은 기왕이면 클레아가 해달라고 하는데로 다 해주고 싶었다.

어렵게 대공가의 단 하나뿐인 후계자의 정식호위라는 자리를 받았는데. 솔직히 아직 자신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껴, 대공에게 따로 요청해서 아가씨의 정식 호위가 자신을 포함해 총 3명이지만, 앞으로도 계속 노력한다는 가정 하에 카이엘은 그들을 넘어설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기사들을 넘어설 자신은 있어도, 아가씨에게 넘어가지 않을 자신이 있냐고 물어본다면,

'...아니지만.'

자신의 짧디 짧은 인생을 나눈다면, 고아원에 있던 시절의 카이엘과 아가씨를 지키기 위한 기사 시절의 카이엘로 나눌 수 있을 만큼. 아가씨는 소중했다.

오늘 하루도, 카이엘만 빼면 오늘도 평소와 같은 평화로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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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10-02 17:21 | 조회 : 2,128 목록
작가의 말
조그마한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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