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이야?


“카미야, 좋은 일이라도 있어?”
“네? 아뇨, 별일 없어요.”
“있는 것 같은데-?”
“스가, 여자 아이에게 짓궂게 구는 거 아니야.”
“네~.”

두 사람은 언제나 나와 동갑이지만 어른스러운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딱 또래 남자아이들 같아서 좀 귀여워.
그 모습을 보다보니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후훗.”
“!”
“역시 웃는 얼굴이 더 좋잖아.”

스가와라군이 나에게 말했다. 뭐가 좋은지를 알 수 없어서 나는 내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스가와라군은 내가 알아듣기 쉽게 다시 말해주었다.

“카미야는 웃는 얼굴이 더 보기 좋아. 그런 말이야.”
“아…!”
“다이치도 그렇게 생각하지?”
“뭐, 그렇지만 본인이 편안하다고 느끼는 얼굴이 제일 좋지 않겠어?”
“그럴 때는 응, 그래, 이렇게 말해줘야지-.”
“난 내가 생각한 걸 말한 것뿐이야.”
“다이치-.”

이런 문제로 투닥 거릴 필요는 없는데. 말릴까 생각하던 나는 두 사람에게 들리는 말을 듣고 그만두었다. 아, 친구 사이는 이런 식으로 장난을 치고 즐거워하는 거구나.

나는 몰랐어. 아니, 예전에는 알았는지도.

“카미야?”
“응? 아, 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아무것도 아니에요.”

응. 별거 아니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스가와라군이나 사와무라군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정말로 괜찮아? 아까보다 얼굴이 좀 창백해진 것 같은데?”
“혹시 어디 아프거나 힘들면 보건실에 가는 게 좋지 않아?”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고 있다. 고마움에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웃으면서 대답하려고 했다. 이건 딱히 아프거나 그런 게 아니니까 괜찮아.

“아니에요.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럼 다행이지만-.”

내 대답에 사와무라군은 더 이상 몸 상태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그는 스가와라군과는 다른 의미로 다정한 사람이다. 진중하고 엄격해 보이는 부분도 있지만 그만큼 든든한 존재기도 했다. 배구부에 며칠 있지도 않은 내가 이렇게 느낀다는 건 그의 존재가 크다는 의미겠지. 왜 전에는 몰랐던 걸까?

“카미야, 이 감자 크로켓도 먹어봐. 우리 집 요리도 맛있어.”
“네, 잘 먹을게요.”

왠지 감자 크로켓인데 좀 빨갛기는 했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그걸 입에 넣었다. 아, 바삭하다. 그 순간 사와무라군이 마음속으로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아, 스가아아아-----!!!!」

아, 나 실수했다.

“…….”
“어때? 맛있지?”

그러고 보니 스가와라군이 매운 맛을 좋아한다는 걸 잠시 잊었었다. 그리고 나는 맵거나 뜨거운 요리를 잘 못 먹는다는 것도.

입안에서 느껴지는 맛은 분명히 식은 크로켓인데도 불구하고 맵고 뜨겁고 아픈 맛이라서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입에 들어간 음식을 뱉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걸 꼭꼭 씹어서 삼킨 뒤에는 왠지 주변이 새하얗게 보였고 잠시 넋을 놓은 나에게 사와무라군이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딸기우유를 빨대까지 꼽아서 건네주어 그걸 마셨고, 다 마시고 나니 이미 점심시간이 끝나 있었다.

*

“으-. 아직도 아파-.”

수업도 다 끝났고 부활동도 다 끝났고 집에 와서 우유를 또 마셨는데도 입안이 얼얼했다. 스가와라가의 음식은 나에게 있어서는 천적과도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다음번에는 미안하지만 반드시 사양해야겠다.
안 그러면 내 몸이, 아니, 혀가 못 버텨. 아닌가, 몸인가?

혀를 식히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먹고 그것도 안 되서 결국 1리터짜리 우유팩을 다 비우고 나니 배불러져서 저녁도 먹지 않은 나는 후다닥 샤워를 끝내고 침대에 널브러졌다. 아, 푹신푹신한 감촉이 오늘따라 더 기분 좋아.

침대에서 굴러다니다가 나는 핸드폰을 잡았다. 집에 가서 연락하겠다고 했는데 아직 아무것도 보내지 못했다.
정신이 없었던 이유도 있지만 지금은 뭐랄까, 좀, 두근두근? 아무도 없는데도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서 아무것도 누르지 못하겠다는 기분이다.

어떡하지? 벌써 밤 10시인데. 지금 보내는 건 실례가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에 망설이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개구리가 전기 충격이라고 당한 것처럼 펄쩍 뛰어 놀란 나는 메일이 온 걸 확인하고 그걸 열었다. 보낸 사람은 오이카와 토오루.

집에 가서 연락하겠다고 했는데 그에게 먼저 연락이 와 버렸다. 아, 나 정말 느리구나.

「물론 집에 도착해서 씻고 침대에 누워 계시겠죠? 공주님?」

에? 뭐? 공주님? 할아버지께 종종 그런 호칭을 듣긴 하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불리니까 부끄럽고 오그라들어서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든다. 거기다가 이모티콘이 없어서 한편으로는 화내는 것 같아서 무서워.

나는 조심히 답장을 보냈다.

「응. 집에 도착해서 씻고 침대에 누워 있어요. 그런데 공주님이라니 ;;;;;」

이렇게 보내고는 하나 더 보냈다.

「혹시 내가 집에 와서 연락하겠다고 했는데 안 해서 화났어요? 그렇다면 정말로 미안해요 ㅠㅠ」

음. 이렇게 보내면 화난 게 조금은 풀어질지도 몰라. 아니, 풀어져야 할 텐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잠시 후 답장이 날아왔다.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야! 왜 오이카와씨가 화를 내? 절대 아니라구. 왠지 겁먹게 한 거야? 그렇다면 나야말로 미안해 ㅠㅠ」
「공주님은 공주님이니까 그렇게 정한거야 ☆」
「오이카와씨가 부르는 애칭! ^^」

엄청 빨리 답장한다.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안심했다. 그렇구나. 화난 게 아니었어. 멀리 떨어져서 글만으로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아야 하는 메일은 아무래도 감정표현이 어떤지 알 수 없어서 불편하다. 그렇다고 같이 있으면 내가 멋대로 읽어버리니까 그건 그것대로 좀 힘들다.
어느 쪽이든지 힘들다, 불편하다, 라고 투정부리는 내가 제멋대로인 것 같지만.

나는 메일을 보내기 위해 문자를 치다가 생각을 바꿔 그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무슨 용기가 나서 이런 행동을 갑자기 하게 된지는 모르겠다. 걸어놓고 나서 아차, 싶었으니까. 하지만 휴대전화 너머로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니 걸어서 다행이라고 한편으로는 생각했다.

“여보세요?”
“…아, 여보세요? 카미야입니다.”
“네~ 오이카와씨입니다~.”

일부러 내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장난스럽게 말하는 걸까? 그렇다면 그는 대단한 사람이다. 실제로 나는 그의 말에 마음이 편안해졌으니까.

“공주님께서 먼저 전화를 걸어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에, 아닌데-.”
“아뇨, 아뇨,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존댓말 하지 않기로, 약속….”
“응. 그렇네. 오이카와씨가 먼저 말해놓고 존댓말을 써버렸어. 미안해.”
“아니, 사과할 필요는 없…어.”

평범한, 별 내용도 없는 대화를 하면서도 심장이 너무 뛴다. 쿵쾅쿵쾅 거리고 있다. 다음에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가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 있어?”
“어? 음….”

사실 아무 일도 없었다. 메일로는 뭔가 전달이 잘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건, 전화일 뿐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무슨 용건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전화하는 건 실례이지 않나? 전화 넘어 있는 그가 뭔가 기대를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서 우왕좌왕하던 나는 그만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을 하고 말았다.

“이번 주말에 데이트 하자!”
“…에?”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한 걸까. 왠지 그가 당황한 것 같기도 한데?

“정말로? 정말로 오이카와씨랑 주말에 데이트 하는 거야?”
“아-.”
“공주님이 먼저 데이트신청을 해주다니 너무 기뻐!”
“그-.”
“그럼 주말, 일요일 10시에 센다이역에서 만나! 약속이야? 오이카와씨가 데이트 코스 잡아 놓을게-.”

뚜. 뚜. 뚜. 전화가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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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11-19 12:52 | 조회 : 1,228 목록
작가의 말
nic SU

아... 슬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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