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

“안녕?”

흘리는 땀마저도 반짝반짝해 보이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줄 몰랐다. 실로 상큼한 모습이었다. 인사를 건넸는데도 멍하니 서 있기만 하는 나를 보고 그는 눈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어-이? 들려?”
“어? 에? 아!”
“어이쿠, 위험해!”

멍하니 있다가 그가 가까이 다가왔다는 걸 깨달은 나는 몸을 뒤로 젖히다 넘어질 뻔 했다. 넘어질 뻔 했다는 건 넘어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휘청거리는 내 몸을 그가 붙잡아주었다. 신체와 신체가 접촉한 그 순간, 이름이 찌릿, 거리며 아파왔다.

갑작스런 통증에 나는 어깨를 움찔거렸다. 그는 나의 행동에 전혀 놀라거나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도 나와 똑같이 통증을 느껴 몸을 떨었기 때문이다.

“…읏.”
“이거 생각보다 아프네.”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들어 얼굴을 쳐다보았다. 통증에 얼굴을 조금 찡그리긴 했지만 여전히 그는 반짝거렸다. 유치한 비유를 들자면 내 입장에서는 꼭 동화 속에서 나오는 왕자님처럼 보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 저기, 감사합니다.”
“아니, 감사할 필요는 없어.”
“저, 저는 그만 학교에 가야해서-.”
“응. 나도 가야해. 하지만 그 전에.”

어떻게든 벗어나보려고 했지만 이번에 아예 손목을 꽉 움켜잡고 놔주지 않았다. 조금 있으면 슬슬 등교하는 학생들이 나타날 시간이다. 이런 모습을 남들에게 보일 수는 없었다. 무슨 소리가 들릴지 생각만 해도 무서웠다.

“이거, 놔주세요.”
“응. 그럴 예정이야. 그 전에.”

얼굴이 가까이 다가온다. 피부에 숨결이 닿았다. 나는 이런 일에는 전혀 면역이 없는 사람인지라 잘 익은 사과처럼 얼굴을 붉혔다. 귓가에서 쿡쿡, 웃는 소리가 들렸다.

“전화번호랑 메일 주소, 교환할까?”
“에?”
“먼저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것부터-, 그게 좋겠지?”
“아…!”

손목을 잡고 있던 힘이 풀어졌다. 천천히 그는 손가락을 하나하나 펴서 내 손목을 놓아주었다. 아까 까지만 해도 이런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막상 떨어지니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생글생글 웃으며 그는 저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나는 내 휴대전화의 잠금장치를 풀고 그에게 내밀었다. 그걸 받은 그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전화번호와 메일번호를 입력하고 전화를 걸었다. 의외로 그의 벨소리는 기본 멜로디였다.

“자. 고마워.”
“아뇨.”

휴대전화를 돌려받은 나는 새로 입력된 이름을 확인했다. 오이카와 토오루, 라고 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좀 더 이야기하고는 싶은데 슬슬 집에 돌아가서 등교하지 않으면 곤란하네.”
“그렇네요.”
“존댓말을 안 썼으면 좋겠는데-?”
“…응.”
“좋아.”

단순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뿐인데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오이카와의 얼굴을 제대로 보는 게 힘들어져 나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오이카와가 말했다.

“고개 좀 들어줘. 얼굴이 영 안 보인다고?”
“으응.”

빨개진 얼굴은 별로 보여주고 싶지 않은데 그의 말을 거절하기가 힘들다.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치자 오이카와는 흐뭇하다는 얼굴을 했다.

“얼굴 빨개.”
“그거야, 그-.”
“슬슬 시간이 없네. 다음에 봐-.”
“에?”
“연락 할게!”

커다란 손으로 내 머리를 가볍게 퐁, 치고는 그는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뭐야, 이거. 양 손을 볼에 가져대니 아니나 다를까 뜨끈뜨끈하게 열이 올라와 있었다. 열이 식으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다.

*

며칠 만에 등교하게 된 학교는 변함이 없었다. 나는 교무실로 가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위원장에서 그간 밀려 있던 프린트를 받았다. 생각보다 많은 양에 살짝 좌절하기 했지만.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이 번갈아가며 지나가고 드디어 점심시간이 되었다.

“카-미야-.”
“네?”
“같이 점심 먹자.”
“아, 네.”

스가와라군과 함께 사와무라군도 근처 책상을 가져와서 상을 폈다. 가방의 걸어둔 옆 고리를 만지던 나는 도시락 통이 없어 점심을 싸오지 못했다는 걸 떠올렸다.

“아, 저기.”
“응?”
“저, 오늘 점심을 싸오지 않아서-.”
“응. 그래서 내가 싸왔어. 저번에 먹어버렸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사와무라군이 내 도시락통을 꺼내는 것이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유부초밥과 어묵오이, 닭튀김에 작게 자른 레몬과 방울토마토가 두 개 들어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나는 물었다.

“이거 사와무라군이 만든 거에요?”
“응.”
“다이치, 보기보다 요리나 청소, 설거지 같은 걸 엄청 잘해.”
“굉장하네요-.”

감탄의 시선을 보내자 사와무라군은 쑥스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뭔가 엄청 레어한 것을 목격한 기분이다.

“먹어봐. 입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아, 네! 잘 먹겠습니다-.”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나는 먼저 유부초밥을 젓가락으로 집었다. 생각보다 커서 반으로 잘라 먹어야했다. 그리고 그 맛은.

“맛있어요!”

짭조름하고 단맛이 제대로 밥에 배여 있었다. 얇게 썰어 넣은 우엉도 괜찮았고 밥에 들어간 통깨도 좋은 악센트를 주는 맛이었다. 정말 가정적인 맛이라서 마음에 들었다.

“그거 다행이네.”
“그치? 다이치 요리 잘하지? 나도 하나 먹어도 돼?”
“네!”
“스가….”
“정말 맛있어요.”

겉치레가 아니라 정말로 맛있었다. 하지만 내가 먹기에는 양이 많았고 다 같이 먹으면 더 즐거울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스가와라군에게 권한 것이다. 유부초밥과 닭튀김을 먹은 스가와라군도 역시 맛있다며 사와무라군의 솜씨를 칭찬했다.

“어디에 시집보내도 손색이 없는 맛이야.”
“장가겠지.”

스가와라군의 말에 작게 츳코미를 거는 모습을 보니 나도 조금 놀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놀란 척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벌써 결혼하시는 거에요?”
“아니야!”
“농담이에요.”
“하하하, 카미야, 이제 거의 풀어졌네?”
“그런가요?”
“응.”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 덕분인 걸지도. 다시 떠올리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연락, 내가 먼저 보내도 괜찮을까?

딩동. 메일이 도착했다.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오이카와 토오루. 주변을 살짝 살피다 나는 메일을 열었다. 거기엔.

「지금쯤 카라스노도 점심시간이지? 오이카와씨는 오늘 배가 너무 고파서 도시락 말고도 우유빵을 먹었어 ^▽^/」
「뭐 먹고 있어? 든든하게 챙겨먹어야 해 ~ ^^」
「나중에 집에 가고 나서 또 연락할게 !」

웃는 얼굴이나 목소리가 문자에서 전해지는 것 같았다. 해맑고 상냥하고 좋은 사람. 나도 성심성의를 담아 답장을 보냈다.

「응. 사와무라군이 싸 준 도시락을 스가와라군이랑 나눠 먹고 있어. 맛있었어.」
「잘 먹는 것도 좋지만, 체하거나 하면 안 돼.」
「나중에 집에 가서 또 연락할게.」

이모티콘을 넣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지만. 그건 아직 부끄러워서 무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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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11-10 05:44 | 조회 : 1,471 목록
작가의 말
nic SU

공모전용 소설 쓴다고 늦었습니다. ^^;; 계속해서 좋아해주시는 분들께 늘 감사합니다. 두 녀석의 달달함이 꽤나 버겁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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