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카와 토오루 (1)

내 이름은 오이카와 토오루. 아오바죠사이 고등학교 3학년. 신장 184.3cm. 체중 72.2kg. 생일 7월 20일. 좋아하는 음식은 우유빵. 글 쓰는 것에 재주는 없지만 나 자신에 대해 몇 자 적자면 이렇다. 물론 만약에 이걸 본다면 이와쨩은 “그냥 있는 데로 프로필 쓴 것뿐이잖아!” 라고 하겠지만.

우리 집은 들은 바로는 고조할아버지 때부터 다들 네임버스였다고 한다. 주변 어른들이 다 그렇다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그런 운명의 상대가 나타난다고 늘 생각했었다. 동화책에 나오는 만남처럼 보는 순간, 만지는 순간, 이 사람의 나의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사춘기 시절이 다 끝나갈 때가 되었는데도 이름이 나타나지 않았다. 모두에게 당연한 상대가 없어서일까? 여자 친구를 사귀어 본 경험은 있지만 다들 짧게 끝나는 인연이었다.

어째서인지 그것은 나에게 미묘한 콤플렉스처럼 늘 한 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빼내려고 해도 빠지지 않는 가시처럼 찜찜하고 신경 쓰이는 것이었다.

소꿉친구인 이와쨩은 네임버스가 아니었고 같은 배구부를 하고 있는 하나마키나 마츠카와도 네임버스가 아니었다. 네임버스가 그렇게 흔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우도 아니었지만) 주변의 사람들은 나의 고민을 진심으로 이해해주기 힘들었다. 이해해줄 수 있는 건 가족뿐이었지만 가족들은 모두 자신의 상대를 만난 상태였다.

해소하기 힘들고 하소연하기도 힘든 나날이 계속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간 뒤에도 이름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거의 포기한 상태 였다. 나는 일반인으로 태어난 거구나,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 편이 마음 편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와 만나게 되었다.

아침 러닝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평소와 똑같은 일과 였지만 조금 빨리 나섰다는 게 달랐다. 등교하기에는 이른 아침. 그런데 사거리의 신호등 앞에 여자 아이가 한 명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특별할 것은 없는 아이였다. 교복이 카라스노 고등학교라서 그걸 보고 얄밉도록 귀여운 후배가 한 명 떠오른 정도?

초록불이 켜졌고 그 아이는 길을 건너려고 했다. 나보다 앞서 가던 이와쨩이 건너려고 했는데 갑자기 그 여자 아이가 몸을 홱 돌려 이와쨩을 도보로 밀치는 것이 아닌가? 여자 아이라는 점을 두고서도 가벼운 체중이라 버티려고 한다면 버틸 수 있었겠지만 아마도 이와쨩이 당황한 탓인지 몸이 그대로 체중이 실리는 대로 뒤로 넘어갔다.

그리도 동시에 엄청난 속도로 크랙션을 울리며 트럭이 지나갔다. 왜 둘 다 저런 속도로 달려오는 차를 미처 보지 못한 것일까? (나도 못 보긴 했지만) 갑자기 이와쨩의 가슴에 뛰어들었던 여자아이가 고개를 퍼뜩 들면서 이렇게 소리쳤다.

“재수 없는 건 이 쪽이야-!!”
“…?”

응?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잘 알 수 없지만 새빨갛게 얼굴을 물들인 것으로 보아 이와쨩 자신을 위험에 빠트릴 뻔 (위험 정도가 아니라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 운전사에게 진심으로 화를 낸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요즘 같은 때에 꽤 성실하고 착한 아이구나, 라면서 나는 약간 노친네 같은 생각을 하며 둘에게 뛰어 갔다.

여자 아이를 소리를 지르고 나서는 자신이 무슨 추태라도 보였다고 생각 되었는지 안절부절 못하는 얼굴을 했다. 아니, 그것보다는 좀 더 중요한 뭔가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뭐지?

“너, 다리 피나는데?”
“에?”

눈치 못 챘던 건가? 꽤 아파 보이는데.

“괘, 괜찮아요. 이 정도는.”

아니, 안 괜찮아 보이는데?

“아니, 안 괜찮아. 적어도 반창고는 붙여야 할 거 아니야. 야, 오이카와.”
“응.”

혹시 몰라서 (주장이기도 하니까) 런닝 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법이니 간단한 외료용품 정도는 들고 다니는 편이었다. 쓸 때가 생기지 않는 게 제일 좋지만 그래도 있어서 다행이다.

“자.”
“땡큐.”
“그런데 이와쨩은 괜찮은 거야?”
“어. 나는 상처 없어. 문제는 이 꼬마… 뭐라고 불러야 되지?”
“꼬마 아가씨?”

카라스노 고등학교 교복이지만 외견으로 봤을 때는 1학년인 것 같고, 작고 귀여운 소동물 같은 느낌이니까 어울리는 것 같아서 나온 말이었다.

“…그걸로 하던가.”

간단한 처치를 하는 이와쨩을 따라 나도 쭈그리고 앉아 있었는데 밑에서 올려다보니 상당히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안경을 끼고 앞머리를 길게 길러 얼굴을 가리고 있는 걸 봐서는 자신에게 꽤 자신이 없는 타입으로 보였다. 나름 괜찮은데.

“학교 가면 꼭 보건실부터 들려라.”
“…….”
“그리고-.”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신호등에 초록불이 켜졌다. 그 말을 끝으로 여자 아이는 쏜살같이 달려가 버렸다. 왠지 이대로 보내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제 꺼 아냐?”
“응?”

이와쨩의 손에 들린 것은 다름 아닌 이름표였다. ‘神谷 透’.

카미야 토오루.

“여자 아이치고는 잘 안 쓰는 이름이네.”
“그건 그런데 이거 돌려줘야 하는 거 아니야?”
“흠….”

조금 재밌는 일이 생각나버렸다. 얄밉도록 귀여운 후배에게 도움을 받는 건 좀 그렇지만 뭐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써 먹겠어? 라는 생각으로 나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

토비오쨩에서 연락해 카라스노 고등학교 교문에서 기다린 결과, 나와 이와쨩은 다시 그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쪼그만한데도 멀리서 잘 보였다. 눈이 마주친 것 같아 나는 명찰을 손에 들고 살살 흔들었다. 근데 왜 저렇게 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는 거지? 나 뭐 잘 못했나?

다행이도 꼬마 아가씨는 내가 보낸 제스처를 이해한 모양인지 바로 체육관으로 와주었다. 당연히 나랑 이와쨩이 타교 배구부로 갔으니 약간의 소란이야 있었지만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불러서 왔다고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게 어쩐지 귀여워서 나는 조금 과장스러운 제스처를 보이면서 오늘 여기로 온 이유를 설명했다.

“아니요. 오늘 처음 본 사이랍니다. 그런데 아침에 이 꼬마 아가씨가 바보같이 트럭이랑 부딪힐 뻔한 이와쨩을 구해줬거든. 구해주는 과정에 이걸 떨어트려서 돌려주러 온 것 뿐.”

“혹시 다리의 상처도 그것 때문에 생긴 거야?”
“아니, 이건 내가 넘어진 거니까, 요….”

쭈뼛쭈뼛.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는 것과 타인에게 강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 모습.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가?

“오이카와씨가 보기에는 영웅처럼 날아서 이와쨩을 구해준 것 같았는데? 그리고 그 때에 입은 영광의 상처지!”
“여자애한테 영광의 상처가 어딨냐?! 이 바보카와!”
“바보카와라니 너무 하잖아!”
“바보니까 그렇지!”

나름 분위기를 풀려고 한 소리인데 이와쨩은 너무 하기도 하지.

“그러니까! 자.”
“?”
“잃어버렸던 이름표랑 이건 감사의 표시로 이와쨩이랑 같이 산거야. 입에 맞으면 좋겠다.”

대중적인 메이커의 민트맛 초콜릿. 오기 전에 마트에서 들려서 산 거다. 미야기는 좀 시골이니까 은근히 들어오지 않아서 좀 아쉬운 물건이다. 이거 좋아하는데 말이지.

“좋아하는 거에요. 잘…먹겠습니다.”
“좋아하다니 다행이고, 이와쨩을 구해줘서 고마워.”
“…아뇨.”

뭐지?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리고.”
“?”
“꼬마 아가씨는 자제해주세요, 전 고등학교 3학년이고, 이미 생일도 지났고, 그러니까….”

고등학교 3학년인 줄은 몰랐다. 작아도 너무 작은 거 아니야?

“제 이름은 카미야 토오루 ‘神谷 透’ 입니다.”

뺨을 붉히고 나를 올려다보며 말하는 그 모습에 순간 머릿속에서 불꽃놀이가 터진 것 같다는 감각을 맛보게 되었다. 오이카와 토오루의 인생에 그런 것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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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12-10 16:12 | 조회 : 1,589 목록
작가의 말
nic SU

요즘 슬럼프가 너무 심해서 굉장히 늦게 올리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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