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났다

안 그래도 덜 나가는 체중이 더 빠져 버렸다. 하루 더 입원하게 된 날이 금요일이었던 지라 주말은 집에 꼭 박혀서 끙끙 앓는 걸로 시간을 다 보냈다.

할아버지로부터 주말도 마저 입원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금요일 저녁에는 열도 다 내렸고 아프다고 해도 허벅지가 찌릿찌릿한 정도니 입원할 것까지는 없을 것 같아 나는 고집을 부려 결국 토요일 아침에 퇴원했다. 그리고 아까 말한 것처럼 내내 방콕.

토요일은 하루 종일 나무늘보처럼 늘어져 잠을 자는데 다 쓰고 일요일은 그나마 밀린 빨래도 하고 집도 치우고 했다지만 그것만으로 피곤해져서 계속 늘어져 있었다.

스가와라군이나 위원장에게 몇 개의 메일이 왔지만 제대로 답장해주지 못했다. 어쩐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지금도 축 늘어져서 침대에 너부러져 있고.

‘도시락… 어떡하지?’

도시락통을 사와무라군이 가지고 있으니 만들 수가 없다. 자연스럽게 매점을 이용해야 할 것 같았다. 아니면 아침 등굣길에 어디서 사서 가던가. 하지만 미야기는 워낙 시골이라 편의점이 워낙 없으니.

‘도쿄에 다닐 때는 이런 걸로 고민한 적은 없었던 것 같네….’

전에 다녔던 학교도 배구부가 있었던 것 같다. 거기도 나름 강호교였나? 그것까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같은 반이었던 남학생이 배구부 주장이었던 것 같은데 그것도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때는 지금보다 더 사람을 피해 다녔으니까….’

어렸을 때는 다른 사람의 마음의 소리와 진짜 목소리를 구분하지 못했다. 나는 어렸고 또 바보였다. 아무렇지 않게 다른 사람들의 비밀을 말하고 다녔던 것이다. 누구나 감추고 싶은 것을 있었을 텐데, 나는 그런 타인의 마음을 짓밟아 버렸다. 그건 집안에서도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런 생활이 반복되어 나의 가정은 파탄 나 버렸다. 처음에는 내가 허언증이 있는 걸로 생각한 어머니가 여기저기 병원을 데리고 다녔지만 어떤 병원도 오래가지 못했다.

나는 아픈 곳이 전혀 없었고 늘 그랬던 것처럼 의사 선생님의 마음도 읽어버렸고 그걸 말로 표현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병원, 저 병원을 옮기다 결국 어머니는 교회나 절까지 가 나에게 나쁜 뭔가가 붙였다고 생각하기까지 이르렀다.

이 세상에 영능력자라는 건 흔하지 않다. 자신의 영능력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절반 넘게는 사기꾼이 가능성이 컸다.
어느 곳도 나를 고쳐주지 못했다. 사기꾼에게 당하기도 했다. 내가 어머니에게 저 사람은 사기꾼이라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어머니의 마음을 너덜너덜해지고 말았다. 나 때문에. 거기다 집안일에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던 아버지는 바람을 피웠고 우리를 내버려둔 채 다른 가정을 꾸려, 종래는 이혼을 요구했다. 이혼까지 하고 난 뒤 어머니는 나를 두고 집을 나가셨다. 그 뒤로 나는 외할아버지에게 맡겨져 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가정이 그렇게 되었으니 조심해 보려고 했다. 학교도 몇 번이나 전학을 다녔다. 하지만 끝까지 숨길 수가 없었다. 어느 곳이든 탄로나 버렸다. 내 정체가 밝혀지면 나는 또 전학을 갔다.

전에 다니던 학교와 가까운 곳으로 가는 건 전학 가는 의미가 없다. 나는 도쿄뿐만 아니라 훗카이도, 오사카, 여러 지역을 다녔다. 그리고 그 때마다 상처를 입었다. 상처 받지 않으려 애써봤지만 소용없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도쿄의 한 고등학교로 전학 갔을 때는 최대한 주변에 쌀쌀 맞게 굴려고 했다. 하지만 내 성격과 맞지 않았고 어설픈 연기는 금방 들통이 났다. 연기가 들통 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비밀도 들켰다. 그리고 나는 미야기로 전학을 왔다.

사실 미야기는 중학교 때 반 년 정도 산 적이 있는 곳이다. 즉, 여기에 오게 된 건 이번이 두 번째. 불안했다. 또 들킬까봐. 그래서 최대한 앞머리를 길게 내리고 고개를 숙이고 얌전하게 지냈다.

수업 시간에는 수업에만 집중하고 쉬는 시간에는 책을 읽었다. 그리고 방과 후가 되면 식재료를 사는 것 외에는 어디에도 들리지 않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조용히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메이트가 나타나버렸다. 메이트가 나타난 것을 시작으로 어쩌다보니 여러 사람들과 엮여 버렸다.
지금 생활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나는 즐겁다, 라고 대답할 수 있다. 확실히 지금 나는 즐겁다. 하지만 그것과 마찬가지로 두렵다. 내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걸 그들이 알았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게 너무나도 무섭다.

‘지금 이 생활을 잃고 싶지 않아….’

어쩌면 처음으로 나에게 친구가 생길 지도 모르는데 잃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조금 뒤에 다가올 내일이 걱정된다.

*

‘결국 한숨도 못 잤어.’

걱정을 미리 해봐야 좋을 게 없다고 옛 어른들이 말했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때문에 나는 그래도 밤을 새고 말았다.

잠을 자지 않은 탓에 시간이 넘쳐흘렀고 새벽부터 탕에 들어가고 아침식사를 호화롭게 차려먹고 설거지까지 다 하는 등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랬는데도 평소보다 일찍 등교를 하게 되었다.

좀 피곤하긴 하지만 아직 해가 완전히 뜨기 전의 새벽 공기는 좋다. 표현하자면 맛있다. 미야기로 와서 좋아하는 점이 공기가 맑고 조용하다는 거다.

사람이 거의 없는 거리를 걸어간다. 안개가 살짝 끼어 평소와 똑같은 거리인데도 다르게 보였다. 그리고 그 사람과 처음 만났던 횡단보도 앞에 도착했다. 여기서 처음 만났고 그 만남을 계기로 나는 배구부 매니저가 되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걸까?’

잘 모르겠다. 감사의 마음을 느끼고도 있고 생각도 그렇게 하고는 있는데 뭔가가 걸린다. 그 뭔가가 뭔지도 모르겠다. 신호가 깜빡였지만 건너지 않았다. 조금 더 생각이 정리가 되면 발을 움직일 생각이었다. 그 때.

누가 내 어깨를 덥석 붙잡았다.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잡힌 어깨는 빠지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일부러 짜 맞춰진 것처럼 오이카와 토오루가 서 있었다.

그는 땀에 젖은 얼굴로 생긋 웃으면서 말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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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10-29 11:56 | 조회 : 1,281 목록
작가의 말
nic SU

진도 빼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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