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 (2)

“음…, 아직 열도 좀 있고 맥박도 약간 빠르고, 통증이 심한가요?”
“아뇨. 지금은 많이 아프지는 않아요.”
“그건 다행이지만 아무래도 오늘 하루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내일 학교는 쉬시고 상태를 봐서 오후쯤에 퇴원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주섬주섬 청진기와 검사표를 정리하던 간호사가 내 말에 고개를 돌렸다.

“뭔가 불편하신 거라도?”
“아뇨, 그건 아닌데, 저 대금은?”
“아, 그거라면 보호자분이랑 연락해서 이미 결제가 끝났습니다. 오늘 하루 입원하라는 것도 보호자분께서 하신 말이구요. 일어나시면 연락 달라고 하시네요.”
“그런가요….”

역시나. 그렇지 않고는 수중에 있는 내 지갑의 현금으로 1인실에 입원한다는 건 무리다. 누워 있는 곳이 1인실이 길래 혹시나 싶어서 물어본 거 였는데 역시나 였다.

간호사분이 나가고 나서 나는 내 가방을 뒤적거렸다. 핸드폰을 사실 책상 밑에 뒀었는데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친절하게도 가방에 잘 챙겨서 넣어주었다. 필통에 노트까지 전부 다. 누군지는 몰라도 고맙네.

발신 이력에 내가 걸지 않은 이력이 있었다. 아마도 병원에 와서 누군가가 걸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내 물건을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건 좋아하지 않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경우니까.
미야기까지 와서 혼자 살고 있는 내 사정을 담임 선생님과 또 누가 알게 됐을까? 나는 「할아버지」 라고 적혀 있는 번호를 눌렀다. 착신음이 세 번쯤 울리고 전화가 걸렸다.

“토오루냐?”

예상과는 다르게 침착한 목소리가 들렸다. 웬일이지?

“네, 할아버지.”
“몸은 좀 어떠냐?”
“조금 열이 있고 나른하긴 하지만 괜찮은 것 같아요.”
“응, 응. 그래. 그런데 말이다.”
“네.”

수화기 넘어, 크게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는 들렸다. 나는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핸드폰에서 한 뼘 쯤 귀를 떨어트렸다.

“이름이!! 나타!!났다는 걸 왜 말은 안 했니?!!!!!!”

아, 역시나.

혼잣말인지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저 너머에서 할아버지가 ‘어디서 굴려 들어온 말 뼈다귀 같은 자식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손녀는 못 준다!’, ‘감히 손녀를 건드려 대대손손 두고 3대 독자까지 감시할 테다!’와 같은 음산한 말이 들려왔다.

나는 일단 진정해주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을 꺼냈다.

“저도 며칠 밖에 안 된 일이라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리고 얼굴을 보기는 했는데 정확하게 그 사람인지 확실한 것도 아니고, 신체 접촉을 한 것도 아니고요.”
“뭐?! 신체 접촉!!”
“한. 게. 아니라구요!”
“뭘, 해?!!”
“안 했다니까요!!”

손녀를 귀여워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할아버지, 너무 가셨어요. 안 그래도 피곤한데 소리까지 지르니 몸에 힘이 쭉 빠졌다. 나는 수화기에는 들리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할아버지는 걱정이 된다고 그 사람의 이름을 알려달라고 하셨지만 알려드렸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온갖 신상정보를 다 털어서 집까지 찾아가서 훈계 내지는 협박을 할 것 같아서) 몰라, 이건 내 문제니 스스로 하겠다고 설득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 것 같았지만 일단은 허락해 주셨다.

“일단은 오늘 병원에서 잘게요.”
“음, 음, 그래. 불편한 점이 있으면 너스콜 하고.”
“괜찮아요. 불편한 건 없어요.”
“아, 일단 꽃 배달은 시켜 놨다.”
“…고맙습니다.”

하루 묶는 건데 꽃 배달이라니. 귀여워하시는 게 지나치시다. 통화가 끝나자마자 타이밍 좋게 꽃집 배달원이 큼지막한 꽃다발을 들고 왔다. 분홍색 장미를 중심으로 색색의 스타티스가 나열되어 있는 게 아기자기했다. 요즘 꽃은 계절과 상관이 없이 피는 모양이다. 보라색 꽃도 있었다.

나는 직원 분에게 죄송하지만 침대 옆 서랍위에 놓인 빈 꽃병에 꽂아주실 수 없냐고 부탁했다. 직원 분은 웃으시면서 나를 대신에 꽃을 꽃병에 꽂아주시고는 빨리 나으세요, 라는 인사까지 하고 가셨다. 좋은 사람이다.

식욕이 그다지 없어 나는 저녁식사를 받지 않고 매점으로 가 빵과 우유를 샀다. 링거를 꽂은 채 걷는 게 조금 힘들었다.

크림빵을 봉지를 뜯는 순간 나는 도시락이 가방에 없었다는 게 떠올랐다. 학교에 있는 걸까. 내일 갔을 때, 엄청난 상태가 되어 있는 건 아닐지 조금 걱정 된다.

빵을 꼭꼭 씹고 우유를 한 모금. 조금 뻑뻑한 빵의 감촉과 메이커만의 살짝 새콤한 크림맛이 입안에 착 감긴다. 그리고 입안의 수분이 적어질 때, 초콜릿맛 우유를 마신다.

‘음~. 맛있어!’

역시 식욕이 없을 땐 달달한 거지!

빵과 우유를 해치우고 양치질과 간단한 세안을 마쳤을 땐 이미 시간이 9시를 넘긴 뒤였다. 자리에 누워서 인터넷 서버나 확인할 생각으로 핸드폰을 들었는데 놀랍게도 메일이 여러 개 와 있었다.

하나는 위원장의 문자. 몸은 괜찮냐는 물음과 프린트 등의 챙겨두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두 개는 스가와라군에게서 였다. 마찬가지로 몸은 괜찮냐는 것과 필기는 자신이 해두었으니 내일 와서 확인하라는 내용, 오늘 부활동에 관한 것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사와무라군이 보낸 것이었다.

놀랍게도 도시락을 사와무라군이 가져가서 저녁 대신 먹었다고 한다. 부모님이 친척집에 가셔서 오늘 계시지 않았다보니,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맛있었다고 적은 솔직한 문장이 어쩐지 별로 대화해 본적 없는 사와무라군에 대한 이미지를 친숙하게 만들었다.

보내준 사람들에게 다 고맙다고 몸은 괜찮은 것 같으니 내일 학교에서 보자는 답을 보냈다. 누군가랑 메일을 주고받는 게 오랜만이라 조금 들뜬 기분이 들었다. 침대에 누워서 뒹굴 거리면서 친…구에게 메일을 보낸다는 게 기쁘다.

답장을 다 보내고 인터넷 서버에 들어갔다. 들어갔다고 해도 딱히 할 것은 없었기 때문에 그냥 위키를 읽으며 잠이 오기를 기다렸다. 들떠서 그런지 바로 잠이 오지 않는다. 낮에 (기절이긴 하지만) 자서 그런 걸지도.

톡톡톡. 화면을 두드리다가 지우기를 반복. 이름을 쓰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라는 고민에 잠겼다. 학교도 다르고 아는 건 얼굴이랑 이름 뿐. 배구를 한다는 것도 알겠지만 정말 그것뿐이다. 어느 포지션인지 뭐를 좋아하는지 나는 그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알아보려고 해도 누구한테 물어봐야 할지, 물어봐도 괜찮은 건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에 쳐보면 나올까? 망설이다가 오이카와 토오루라는 세 글자를 입력해보았다. 놀랍게도 그에 대한 기사가 있었다.

기사를 눌러 창을 펼치자 보기 좋은 미소를 하고 있는 오이카와 토오루의 사진이 있었다. 배구 중인 사진도 있었다. 기사에는 그에 대한 칭찬이 가득했다. 인터뷰를 한 내용도 있었다. 다음 기사를 읽어보았다. 더 환하게 웃는 얼굴이 있다.
그냥. 그냥 사진인데.

보고 있으니 가슴이 쿵쿵 튀었다. 허벅지가 쿡쿡 거렸고 화끈거렸다. 아프다. 열이 난다. 얼굴에 뜨거워졌다. 뭐지, 이거.

나도 모르게 환하게 웃는 오이카와 토오루의 사진을 캡쳐해 저장해버렸다. 그리고 그 날 밤 돌연 고열이 나버려 나는 결국 하루를 더 입원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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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10-22 20:17 | 조회 : 1,438 목록
작가의 말
nic SU

글쎄.. 그게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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