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유

“스가와라군이 저를 추천해요?”

왜? 어째서? WHY?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납득도 가지 않는다. 2학년 2학기에 전학 와서 친구라고는 한 명도 없는 비사교적인 나를 배구부 매니저로 추천한 이유가 대체 뭐란 말인가. 생각의 표면만 읽을 수 밖에 없는 나로서는 그 속내를 알 수 없었다. 이거 진짜 필요할 때는 쓸모가 없구나.

“너무 의외라는 표정을 한다.”
“그치만, 의외기 보다는 이해가 가지 않는 달까….”

최대한 기분이 상하지 않게끔 말하고는 있지만 내 언어표현이 잘 닿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렇게 말해도 괜찮은 걸까? 스가와라군은 아직 웃고 있지만 시미즈양은 내내 무표정이고. 지금 나 괜찮은 건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긴 할 거야. 우리 지금 수험생이기도 하고.”
“그럼 왜?”
“배구부에는 지금 시미즈 혼자 매니저를 하고 있어서, 물론 잘 해주고 있지만 혼자서는 힘든 부분도 있으니까 말야. 전부터 매니저도 모집하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신입생 중에 지원자가 없었어.”
“하…, 네.”
“그랬는데 학기 초에 있었던 체육 수업에서 카미야가 서브하는 걸 봤는데 상당히 폼이 깔끔했거든, 배구가 어떤 건지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 되서 말이야.”

그거야 이론 수업도 있었으니까 시험 내용이기도 해서 다 외워둔 것뿐이었다. 그런데 이런 오해를 받다니. 그나저나 나를 계속 주시하는 시미즈양의 시선 엄청나.

“나도 같은 진학반이니까 카미야양이 곤란할 거라는 건 예상했어. 하지만 부탁하고 싶어. 1년도 남지 않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같이 해줬으면 해. 분명 잘할거라고 생각해!”
“…그, 저기, 그것만의 문제가 아니라.”
“?”

진학반이라서 곤란해요. 라는 것은 사실 핑계에 가까웠다. 일단은 진학이라고 하지만 사실 어디로 가면 좋을지 생각해 둔 것도 없고, 못 가면 못 가는 데로 상관없다고 생각하기도 했으니까.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사실 나는.

“사실, 저, 부활동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음?”
“에?”

그랬다. 나는 부활동에 참가해 본 적이 없다. 전학도 엄청 많이 다녔고, 문제가 생긴다 싶으면 또 전학을 다녔다보니 부활동 같은 건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게 맞겠지만.

매니저나 배구의 문제를 넘어서서 아예 단체 활동에 참석하는 일이 서툰 (경험 제로) 나에게 있어서 이건 너무 버거운 문제다. 해보고 싶은 적도 있었지만 역시 무리라고 판단을 내려 지금까지, 고등학교 3학년까지 미뤄져 있던 일이다. 지금은 아예 포기이고 생각도 하지 않았던 일이다. 그랬는데 어쩌다….

“…….”
“…….”
“……….”

스가와라군도 시미즈양도 침묵했다. 역시 이런 건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본 전국에 따져서 청춘 시절을 단 한 번도 부활동 없이 산 인간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 중의 한 명이 나라는 게 참 눈물 난다. 아, 이렇게 생각하니 나 엄청 불쌍한, 안쓰러운 아이가 된 것 같아. 네거티브 모드에 빠질 것 같은 기분이다.

「그 정도는… 괜찮은데.」

“에?”
“응?”

갑자기 귀에 확 꽂히듯이 들린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대답해버렸다. 대답이라 하기에 애매한 소리지만. 내 대답에 시미즈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엄청나게 순간 귀여웠어. 나와 시미즈양의 시선이 서로 맞닿았고 시선을 피하지도 못한 채로 머뭇거리고 있으니 시미지양이 먼저 말해주었다.

“난 괜찮아.”
“그, 치만-.”
“같이 했으면 해.”

「착한 아이인 것 같고 눈이 마음에 들고, 뭣보다….」

얼굴이 점점 뜨거워진다. 지금 만진다면 엄청 따끈따끈하지 않을까? 솔직한 시미즈양의 마음을 듣고 있으니 절로 열이 나는 것 같았다. 열이 나는 기분이라 그런가 허벅지의 글자가 조금 따끔거렸다.

점심 때 배구부 아이들도 그렇고, 같은 반인 스가와라군이나 주장군도 그렇고, 시미즈양도 다 좋은 사람들이다. 조금은 괜찮지 않을까? 이제 거의 어른이니까 만약 심한 말을 듣더라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금 심장이 두근거렸다. 처음으로 할 부활동이라는 것에 내 몸이 반응하고 있다.

“이, 이런 저라도 괜찮으시다면….”
“!”
“정말로?”

아, 잠깐잠깐잠깐! 스가와라군 스톱! 얼굴 가까워! 시미즈양! 갑자기 손을 붙잡으면 나 놀라!

“아, 네. 입부 할게요.”

목소리가 거의 기어들어가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내 말을 듣고 기뻐해주었다. 당장 오늘 방과 후부터 시작이라고 한다. 갑작스럽긴 하지만. 뭐, 괜찮겠지?

아마도.

*

“오늘부터 배구부 매니저를 하게 된 카미야 토오루입니다.”
“…….”
“…….”

뭔가 더 말하라는 것 같은 시선이다. 다들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아, 긴장한 탓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겨우 겨우 입을 다시 열었다.

“그, 반은 3학년 4반입니다.”
“…….”
“…….”
“…….”
“잘 부탁, 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순간 엄청나게 쩌렁쩌렁한 소리가 들려 나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왜 다들 사람을 둘러싸고 갑자기 고개까지 숙여가며 인사를 하는 거야? 원래 이런 건가?

당황한 나를 보고 시미즈양이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리고 귓가에서 작게 속삭였다.

“원래 이런 식으로 인사해.”
“아-.”

원래 그런 거구나. 그럼 뭐 내가 적응하는 수 밖에 없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연습을 위해 흩어졌고 시미즈양은 나에게 담당 고문 선생님과 코치님을 소개 시켜주었다. 타케다 선생님은 알고 있어서 괜찮았지만 솔직히 코치님은 좀 무섭게 생겨서 살짝 당황했다.

인사를 마치고 내가 건네받은 것은 배구부원들에 대한 명부와 기본적인 데이터였다. 생년월일이나 이름, 신체 사이즈와 포지션, 입부 희망서에 써져 있던 기타 등등들이 적혀 있었다.

“굉장히 세세히 적혀 있네요.”
“응. 조금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되도록 알아줬으면 해. 그리고 이건 내가 대체로 하는 일에 대해서 적어둔거야. 와서 해야 할 것들을 순서대로 적어뒀어.”
“뒤에 이건?”
“수시로 챙겨줘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면 돼.”
“아-!”

구급상자 정리, 스포츠 드링크 만들기, 팀 전용 수건과 조끼 빨아두고 챙기기, 필요 물품 구입 같은 일이 적혀 있었다. 작고 세심한 일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혼자 하기에는 확실히 힘들 일들.

‘시미즈양은 항상 이걸 혼자서 해왔구나.’

대단한 사람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제 이 일들을 앞으로 나도 같이 하게 된다. 눈을 돌려서 체육관을 둘러보았다. 한 명, 한 명 다 배구에 관련된 것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진지하기 그지없다. 다 진지한 마음으로 임하는 선수였다.

높게 뛰어 점프 플로어 서브를 날리는 한 아이를 보고 나는 손에 든 파일을 꽉 쥐었다. 어쩐지 다시 허벅지가 아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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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10-10 15:29 | 조회 : 1,582 목록
작가의 말
nic SU

본격적인 이야기 시작입니다.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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