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1)

그 다음에 어떻게 됐냐면 자신과 이름이 똑같다며 이상하게 기뻐하는 오이카와 토오루에게 어깨를 잡힐 뻔한 것을 스가와라군이 말려준 덕분에 빈틈이 생겼고, 나는 더 얽히기 전에 집에 세탁물을 걷어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달아났다.

완전 바보 같고 완전 얼빵 하기 짝이 없는 짓을 하고 말았다. 왜 거기서 이름을 말해버린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연결이 이상하잖아.

아, 정말이지 진짜로 나는 덜떨어진 인간인가보다.

다음 날 학교에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소수의 인물들 사이에 아주 약간이라도 사건이 일어난 상황에서 그 관계자가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건 소문이 크게 부풀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었기에 결국 나는 평소처럼 학교에 왔다.
아, 싫어라.

「오늘 쪽지 시험 어떡한다.」
「어제 남자친구랑 싸워서 그런다.」
「지금이라도 외워야 해. 공식이-」

다행이다. 뭔가 작게라도 말이 나돌지는 않은 것 같다. 어제의 일에 대해서 의문을 표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 방심은 금물이다. 어제 현장 (이렇게 말하니 왠지 범죄의 향기가 나는 것 같지만) 에 같이 있었던 스가와라군과 주장군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두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별 생각 없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냥 아무 생각도 안 했으면 좋겠다.

“아, 스가와라, 사와무라, 안녕.”
“응, 안녕.”
“어.”

왔다. 이상한 움직임은 하지 말자. 그냥 평소처럼 책을 읽으면서 시선을 내려 깔고 있자. 되도록 조용히 몸을 숨기듯이 있자.

「카미야양… 어제, 잘 들어갔구나.」

“…….”

걱정해 준건 고마운 일이다. 역시 스가와라군은 천사일지도. 주장군은 어떨까. 살짝 주장군의 자리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
“-!”

눈이 마주쳤다. 잽싸게 시선을 책으로 가렸다. 설마 날 쳐다보고 있을 줄은 몰랐어. 그치만 아무 소리도 안 들렸는데. 스가와라군의 소리를 듣는 것 때문에 못 들은 건가?

「역시 내가 무서운 건가? 거기다 아무래도 내 이름 기억 못하는 것 같지….」

무서운 건 아니지만 이름을 모른다는 걸 들켜버렸다. 스가와라군은 기억하고 있는데 주장군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 역시 너무한 일일지도.

아니면 내가 스가와라군에게 흑심이 있다는 오해를 사는 건 아닐까? 그건 아닌데! 그냥 스가와라군이 워낙 자주 말을 걸어주니까 (나에게 말 거는 사람이 너무 소수이기도 하고) 나에게 대하는 태도가 겉이나 속이 다르지 않으니까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이름을 기억한 건데. 아니, 이게 좋아하는 건가? 아, 모르겠어!

*

그 후에 머리가 뱅글뱅글 상태가 되어서 어떻게 쪽지 시험을 쳤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름이나 제대로 썼을까. 성적에 반영되는 시험이 아니라 다행이다. 하지만 선생님에게 찍힐 지도. 아, 전부 다 엉망진창이야. 이게 다.

‘그 맨들맨들한 얼굴의 남자 때문이야!’

아니다. 남을 탓하는 것은 좋지 않다. 다 내가 부족하고 못난 탓인데 그걸 그 사람의 탓으로 돌려버리다니.

‘역시 난 최악이구나.’

오늘은 도시락을 싸오지 않았고 (왠지 수면 부족이라 늦게 일어났다) 매점에서 간단히 빵이나 사 먹을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최소한은 영양원은 챙겨둬야 오후 수업에 지장이 가지 않을 것이다. 뭣보다 수업 중에 꼬르륵, 같은 소리가 나며 부끄러워서 숨어버리려 할지도 모르고.

다만 우리 학교 매점은 시골인 만큼 그렇게 종류가 다양하지 않은 관계로 좀 경쟁률이 치열하다. 사람 북적거리는 곳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도 해서 몇 번 가본 경험이 없다보니 이렇게까지 점심시간에 경쟁이 치열한 줄 몰랐다.

“아줌마! 야키소바빵 두 개요!!”
“여기 딸기 우유랑 메론빵!”
“거스름돈 주세여!”
“아, 밀지 마!”
“아줌마!”
“이거랑-!”

“………….”

인간의 3대 욕구 중 하나인 식욕. 먹을 것을 사기 위해 전쟁을 치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도무지 그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 들지 않는다. 것보다 무서워. 저기 들어갔다가는 찌푸라질지도.

포기하고 자판기에서 우유나 사 마실까? 일단은 꼬르륵 소리가 나지는 않을 지도. 그래, 포기하자.
그렇게 생각하고 몸을 돌렸을 때였다. 누군가와 부딪힌 바람에 나는 뒤로 넘어져 버렸다.

“아.”
"…아야.“
“츳키! 괜찮아?”
“시끄러워. 야마구치.”

내 몸이 가벼워서 다행이다. 큰 소리 없이 넘어진 덕에 그리고 다들 매점에 열을 올리고 있는 중인지라 넘어진 것에 시선을 받지 않았다.

나와 부딪힌 사람은 괜찮은 걸까? 고개를 들어서 보니 뭔가 엄청 키 큰 남학생이 두 명이나 있었다. 한 쪽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고 (예쁜 얼굴이기는 한데 표정이 좀 살벌? 한 느낌) 다른 한 명은 나와 친구 사이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괜찮으세요?”

까만 머리에 얼굴에 주근깨가 있는 남학생이 나를 부축해주었다. 이렇게까지 안 해줘도 되는데 일단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감사 인사를 했다.

“네, 고마워요.”

「이 사람, 어제 세죠의 주장이랑 있었던, 스가와라 선배랑 사와무라 선배의 동급생이랬나? 그 때도 그랬지만 지금 보니 진짜 작네.」

“…….”

어제 현장에 있었던 배구 부원인 모양이다.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이 안경잡이 멀대가. 나랑 부딪힌 건 너잖아. 옆의 친구가 더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츳키!!!! 사과해야 하는데!!!!! 선배님 화나신 건-.」

음, 화난 것 같아. 친구군. 웬만해서는 사람과 시선을 마주치려 하지 않지만 고개를 들어 츳키(?)군을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순간 움찔거린 것 같기도?

「사과해야 하는데, 타이밍 놓쳤다.」

사과할 생각은 있었구나. 그러면 됐다. 나는 치맛자락을 탁탁 털고는 그들을 지나 자판기를 찾아 나서려고 했다. 점심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으니까.

내가 그냥 지나가자 두 사람이 당황한 소리를 냈다. 알고는 있지만 그냥 지나치고 앞으로 걸어갔다. 너무 깊게 얽히면 서로에게 좋을 건 없다. 그러려고 했는데 덥석 손목을 붙잡혔다.

“저기, 그, 카미야 선배!”
“에? 으응?”
“점심 아직 이시면 제가, 빵 사올 테니까.”
“?”
“츳키랑! 기다려 주세요!”
“??!!!”

「어이! 야마구치!」
「미안, 츳키!」

그리고는 야마구치군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매점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와 츳키(?)군을 남겨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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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10-01 12:05 | 조회 : 1,401 목록
작가의 말
nic SU

내일 우시오이 온리전 다녀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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