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
















조용하다. 어쩐지 많이 조용하다 했더니 화선이 좋지 않는 몸상태로 앓아 누워있단다. 아플 것이면 이 새벽에 아프지 말것이지. 새벽은 왕의 침소로 거침없이 걸어나갔다. 자신을 본 시비들은 고개를 숙여 문을 열었다. 흰 옷, 그리고 어지럽게 방안을 가득 채운 약향, 새벽은 화선의 옆에 앉아 이마에 손을 대었다. 뜨거운 온도인거 같기도 하고 아닌거 같기도 하고, 어의를 향해 고개를 들어 상태는?하는 물음에 노인은 건강하십니다. 단지 무엇 때문에 아픈 것인지 - 말끝을 흐트린 노인의 말에 혀를 찼다. 건강했다. 아픈 곳이 어딘지 모를 만큼. 맥은 뚫려 있고 아픈 곳은 인간이 짚지 못한 곳에 있으니까. 힘이 과다하게 빠지는 것이다.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새벽의 힘이 검푸른 빛을 띄며 흩어지는 것. 마지막이 곧일 지도 모르겠구나. 남푸른 빛을 띈 머리칼은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고, 알 수 없는 고열로 끙끙 앓기나 한다. 콧잔등을 손가락으로 튕겨 화선을 깨웠다.




"아프면, 아프다 말할 것이지. 미련한 것"




흐릿한 눈을 뜨고 제 옆을 지키는 새벽을 향해 바라보았다. 아, 새벽의 귀에 안들어가게 조심하라 일러 두었는데 ─ 이럴줄 알았다는 듯 새벽은 화선의 코를 콱하니 잡았다. 미련하고 미련하기 짝이 없었다. 새벽을 관할하는 자신이였다. 새벽의 자체였고 새벽의 이름을 가진 자신이였다. 왕의 이마에 자신의 손을 얹혀 뜨거운 고열을 잠재운다. 색색거리던 숨소리는 이제 잦아 들기 시작했다. 새어버려 몸상태를 어지러히 하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일시적으로 채워줄 수 있다. 하지만 밑빠진 독이라고. 깨어진 독이라고, 또다시 흩어지는 새벽의 힘에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이렇게 된지 언제부터야"

"근, 오년됬습니다. 즉위하고 십여년 지나고 나서요."




언제 고열을 앓았냐는 듯, 괜찮아진 모습으로 이마를 힘있게 내리 누른 새벽의 손을 뿌리치지 못한 채 누워 있는 화선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펑펑 써대던 힘이 오년 전에 힘을 쓰면 고열을 앓았다. 일이주일 앓고 나면 또다시 괜찮아져, 처음엔 너무 많이 사용해서 그런가- 무심하게 넘겼다. 이 힘은 언제나 넘쳐났고 다시 몸 가득 찬 새벽의 힘에 그러려니 넘겼다. 그렇게 사년을 보내다, 갑자기 끊기는 듯이. 아니 새벽의 힘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이질감이 느껴진건 작년 이맘때 쯤이였다. 그 후로 필요하지 않으면 사용하지 않았고. 사용한 날은 자리를 오랫동안 보전해야만 했다. 새벽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미련해. 미련한 것, 산짐승도 혹은 저 백성들도 네만큼 미련하지 않을 꺼야라며 꾸짖었다. 화선은 그저 하하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새벽- 말끝을 흐린 화선은 새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근데, 새벽의 모습이-"




평소 자신이 보았던 장난꾸러기같은 소년의 모습은 어데가고 건장한 청년이 제 옆에 앉았다. 고열에 흐릿한 정신이 맑아지자 새벽의 모습이 다른 것을 눈치채었다. 여전히 검은 머리는 굽실거리고 있었고. 남빛 눈동자였다. 늘 자신이 어리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던 손과 제 이마를 짚던 손의 크기 차이도 가다왔다. 화선은 새벽을 올려다보고, 새벽은 이제야 알았냐면서 킬킬 거렸다. 새벽이다. 새벽이 관할하는 새벽 본인 그 자체인 새벽인 지금.




"본체- 까진 아니지만 본체에 가까운 모습이라 치자."

"그럼 어린 모습은?"

"내 관할도 아니고 내 힘이 미치지 않는 시간이니까. 약할 수 밖에, 특히 낮에는"




순간 불경한 생각을 할뻔 했다- 라는 화선의 표정에 새벽은 어이 없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저주따위 걸리지 않는다고. 저주는 그냥 말로 이어지는 필연같은거니까. 그딴게 걸릴 것도 없고. 재수 없는 '그 녀석'이 아니라면 할 사람도 없고, 그녀석도 할 필요성도 없을 꺼고. 새벽, 그 혼자서 화선이 알 수 없는 말을 주절대었다. 아- 넌 모르겠구나 어른 스러운 아니, 청년인 새벽의 모습은 소년의 모습과 다를 것 없지만 무엇인가 달랐다. 중성적이였던 소년의 모습에서 건장하고, 알 수 없는 미묘한 분위기가- 아. 화선은 생각하는 것을 그만 우었다. 이건 불경죄야. 새벽을 향한 불경죄. 이마에 올려진 차가운 손이 치워졌다. 어느 정도 몸은 회복된거 같고- 일하러 가야하나 싶다가 귀찮아서 화선의 옆에 발라당 누워버렸다. 화선은 새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낮에 늘 보았던 하얀 옷이 아닌 금가루가 뿌려진 듯 신비로운 검은 장포를 보고 참 새벽답다- 해야하나 새벽 본인같다 해야하나, 조금 미묘한 느낌에 화선은 새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 그러고보니 새벽은 제 마지막을 왜 보러온겁니까?"

"심심해서. 근데 너때문에 귀찮아졌어, 근데 꼴뵈기 싫은데 약조한 것이 있고 또 다른 이유도 있어서 왔지"

"선대과 함께한 약좁니까?"

"아니 나 혼자 스스로의 약조."




괜찮은거 같으니 난 슬, 움직이러 간다. 아무렇게나 누워 있던 새벽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선을 내려다 보았다. 넌 좀 누워 있고 일어날 필요도 없고. 필요성도 못느끼겠으니까 좀 쉬다 일해. 부드럽게 웃은 새벽은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너 무리해서 일어났다 소리 들리기만 해봐 - 다음에 몸져 눌을땐 국물도 없어 화선. 예- 새벽의 말이니 명 받들겠습니다. 뒤에서 장난 스러운 목소리가 들리자 새벽은 문밖을 향해 나섰다. 이제, 화선 혼자 남은 방은 고요하기 짝이 없다. 시끄러운 새벽녘도 끝이라는 듯 지평선 넘어로 해가 떠오른다. 자신은. 무엇을 바랬는가- 무엇을 위해 이리도 살아야 하나 마지막- 이라는 단어가 쓰게 제 혀끝을 맴돌고 있었다










-







화선을 쏙 빼단 어린 남자아이. 화선의 아들인가.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세자- 세자라는 애가 왜이리 활달- 생각을 마지치 못하고 자신을 향해 부디쳐 오는 남자아이를 내려다 보았다. 그러니까- 이 놈이 세자 맞나- 아닌가 음 서자인가 아니면 - 누구지 새벽은 자신의 밑에 있는 아이를 두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생각이 더더욱 밑으로 빠지기 직전에 남자아이는 새벽입니까?(정확히는 혀가 다자라지 못해 새벼이라고 했지만) 라는 물음에 새벽은 무릎을 접어 아이와 비슷한 키를 이루었다. 그리고 머리를 쓰담쓰담




"새벽. 이지 그 전에 자기소개는?"




화선, 이 미련한 왕은 제 자식 교욱도 안시켰나, 아니 시킬 시간도 없으려나. 세살- 혹은 네살 정도 보이는 아이는 남빛 눈동자에 호기심을 가득 담고 반짝이었다. 화선과 닮은 모습으로 어린 모습이라니. 참 아이러니 하다. 화선만큼 호기심도 많아 뵈고, 말도 많아 뵌다. 어린아이의 수다는 끊이 보이지 않는다던데─




"아- 권후입니다. 새벽님 아- 그리고 저는 어- "




어물쩡 하는 모습도 퍽이나 화선과 닮았다. 뭐가 그리 웃긴지 새벽은 킬킬 대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권후라는 어린아이는 우물쭈물 어린아이 답게 순수했고 제 말을 정리하지 못했다. 저 멀리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거 보니 도망나왔구나 새벽은 어린아이의 겨드랑이에 손을 끼워 들어 올렸다. 작은 체형에 맞게 가볍기 짝이 없었다. 엉덩이 밑에 제 팔을 끼워 지탱하고 제법 익숙한 폼세로 권후를 안았다. 시비들이구나. 도망쳐나왔구나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묻자 권후는 세차게 끄덕이였다 가까워진 그들은 새벽을 발견하자 고개를 깊게 숙이고 세자를 향해 바라보았다




"세자 저하- 새벽께 무례라뇨, 어서 이리 오세요 저하."




젊은 청년이 권후를 꾸짖는 목소리에 권후는 새벽의 품에 깊게 파고들었다. 어린아이였다. 아무것도 모르는-모른다기 보다는 모르게 큰 거 같지만. 청년이 더 큰 꾸짖음을 내뱉기 전에 새벽은 손을 휘저었다 됐다- 특별히 일정도 없었고(있다 하더라도 안하는게 맞다) 화선과 똑같은 용모르한 권후가 신기하기도 해서 놀아줄까- 싶지만 청년은 아무렴요 새벽의 말씀이신데요 , 라며 불평 스러운 모습을 띄었다. 권후는 이제 잔소리를 끝낸 청년을 빼꼼 바라보았다. 이제 그만해? 그만할꺼야? 라며 물었다 .




"예- 늦게 오시진 마시고 새벽을 귀찮게 하지 마세요 아시겠습니까 저하?"




크게 끄덕이는 권후의 모습에 귀엽다는 듯, 새벽은 웃었다 머리를 쓰담쓰담. 화선은 얌전히- 잘 안있겠지 지독하게 말안듣는 화선을 생각하며, 새벽은 발걸음을 옮겼다. 권후야, 새벽이 자신을 부르자 고개를 들어 새벽을 바라보았다. 네 아비를 보러 가볼까? 장난스럽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웃음기 가득 머금은 목소리로 물었다. 퍽이나 좋아하는 제 아비를 보러 간다니 신난 아이는 크게 끄덕이였다. 격한 끄덕임이였다










-







어수선해진 왕의 침소. 시끄러운 목소리. 그리고 약초냄새. 권후를 급하게 내려 왕의 침소를 거칠게 문열어 댔다. 자신이 분명히. 괜찮게끔 만들어둔 상태였다. 자신이 자리에 뜬지 한두시진도 지나지 않는 시간이였다. 새벽의 왕은 힘겨운지 엎드린 상태로 상체만 살짝 들어 침구를 구겨 쥐고 있었고 피를 토하고 있었다. 새벽의 머릿속은 하얗게 물들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어찌된 상황인지 모르겠다. 새벽은 발길을 재촉해 왕의 앞에 앉았다. 왕의 몸속엔. 자신이 억지로 심어둔 새벽의 힘도, 끝을 바라보던 새벽의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 마지막이 ,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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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7-03 23:04 | 조회 : 782 목록
작가의 말
nic69862193

이걸로 프롤로그는 끝입니당:-)! 완결같지만 이제 시작...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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