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힘이 없다는 것은─ 내가 이 길의 끝이라는 것, 그리고 이 나라의 끝을 살아 있는 채로 바라본다는 것 그 것은 악몽일 것이다.
나는 이 나라의 끝이요 마지막 일지어니 그 끝을 기다리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누구 하나 나를 기다려 주는 이 하나 없을 것이다.
(서국 왕족실록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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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잣거리는 언제나 그래왔다는 듯 시끄러웠다 왁작거리는 소리가 경쾌하니 짝이 없었다. 중천의 해는 따사로이 떠있고, 겨울의 계절 치고는 따사하기 짝이 없었다. 겨울이 존재하지 않다고 할 정도로 따뜻한, 혹은 포근한 온도를 자랑하는 서국의 날씨는 좋았다. 푸르른 나뭇잎을 자랑하는 나무 밑에 굽실거리는 긴머리를 아무렇게나 묶어낸 짝을 한 어린 소년은 남빛을 띄는 눈을 이리저리 굴려댔다. 입안에 가득 음식물을 쑤셔넣고 으쌰, 제법 귀여운 효과임으로 일어나 엉덩이를 털어냈다. 다먹은 음식 찌꺼기를 아무렇게나 던져 놓고 흰 장포에 하늘빛 자수를 넣은 옷이 살랑거리는 바람에 팔락이였다
"재미없어"
콧방귀를 크게 킁. 하니 뀌고는 저 멀리 보이는 화려한 궁으로 걸어갔다. 여기 저기 시장어귀마다 보이는 음식을 잔뜩 사대며 입안에 다시 털어 넣는다. 발길이 끊기지 않고 사뿐 사뿐, 가벼운 발걸음이 큰 궁의 입구에 떡하니 서있더랬다. 손 끝을 가볍게 움직이니 문이 열리고, 그 곳을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간다.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이 바라는 것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 갔고 그 걸어가는 사이 사람은 한명은 커녕, 개미새끼 하나 보이지 않는다 마음에 든 듯 생글거리며 손가락을 뱅글 뱅글 돌려댔다. 장지문이 굳게 닫힌 문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 문이 도르륵, 열리고 긴 복도를 지나 또다시 도로록, 문이 열린다. 푸른 장포를 곱게 입고 남푸른 검은 머리칼을 곱게 틀어 묶어 올린 인영을 바라보았다. 그는 서국의 왕. 새벽의 왕─
자신이 올 줄 알았다는 듯이 푸른 방석에 아무렇게나 털석 앉은 소년은 새벽의 왕을 바라보았다.
"너, 죽어가구나?"
새벽의 왕은 그 물음에 대답하 듯 웃었다. 왕은 죽어가고 있었다. 몸체 자체가 죽어가는 것이 아닌 '힘'이 죽어가는 것일 뿐 왕족의 서적과 이 세상의 존재한다는 모든 서적을 찾아 내었다. 자신은, 이 나라는 죽어가고 있었다. 소년의 말이 옳었다. 자신은 죽어가고 있었다. 이 나라를 지챙하고 있던 힘이 사라지기 시작한다는 것은 내가, 이 나라가 끝을 향해 바라보고 있다는 것 뿐이다. 새벽의 왕은 소년을 곧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물어보기도 채 전에, 소년이 말을 잘라내었다
"아무 도움도 안될꺼야. 쉽게 말하자면 너는 가-득 담은 물독이 오래되서 깨지는 거니까.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마지막을 회수하러 온거고"
"마지막을 지켜보아주러 오신겝니까"
"음, 그렇다면 그렇다는 거고 아니면 아니지,"
새벽의 왕은 평온하게 웃었다. 그리고 되물었다. 자신의 힘이 끝나면 이 나라는 어찌 되며 어떻게 끝나냐고. 새벽의 왕은 소년을 향해 물었다. 하지만 그 물음에 대하여 소년은 답하지 못했다. 마지막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지만 너의 끝도 어찌 끝나는지 모른다 했다. 그런가- 라고 짧게 주억거린 새벽의 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년의 앞에 큰 절을 올리었다.
"서국, 57대 왕 화선, 새벽을 뵙나이다"
소년은 이 나라를 지탱하는 실체였고. 힘이였다. 자신이 옛적에 만난 청년에게 쥐어준 힘은 이 나라를 통치했고 이 나라를 풍요롭게 만들었다. 그 모습이 괜찮아 그 후손들에게 끝없는 힘을 실어주었고 끝없이 아껴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쥐어준 힘은 그저 모래알 같은 것이다. 언젠가는 자신이 쥐어준 힘은 끝을 보일 것이고. 이 나라는 끝일 것이다. 자신은 알고 있었다. 이 나라는 그저 자신이 쥐어준 힘으로 이루어진 나라임을, 그래서 소년은 마지막을, 쥐고 있는 이 새벽의 왕앞에 서있는 것이라고. 새벽이라 불리워진 소년은 환하게 웃었다. 너의 마지막은 내가 보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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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화선이라 하는 새벽의 왕은 말이 많았다. 나이도 적지 않는 주제에, 주절주절 제 옆에서 떠들어댔다. 그 서글퍼 보였던, 깊은 끝을 보여주던 화선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떠들어댔다. 새벽은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휘 저었다. 귀찮아. 새벽은 그저 이 왕이 제 옆을 떠나주길 바랬다. 국정을 살피 보아야 한다는 놈은 제 옆을 지켜 말동무가 되어드리겠나이다. 라며 웃기지도 않는 말을 하며 제 옆을 지킨지 보름이 지났다.
"새벽께서는, 좋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 음 없다 치자. 그리고 너 안바빠?"
"바쁩니다. 엄청요 마지막을 대비 한다고 조금 바쁩니다"
눈가의 패인 주름이 세월을 자랑하듯 그의 웃음에 따라 짙게 패였다. 새벽은 자신보다 큰 새벽의 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고보니, 네 선조는 검은 머리칼이였는데 후손은 이렇게 남푸른 빛을 띄나, 자신의 힘때문인가. 싶어 갸웃이였다. 뭔들 어찌하랴 이제 마지막인데. 시끄럽게 울어대는 새지저귐이 제법 좋은 선율을 띄고 있구나. 화선이라 하는 이 왕은 제법 좋은 왕인갑다- 그때의 저잣거리에서도 흥미롭게 입을 오르고 내리는 것이였고, 또한 마지막을 대비 한다는 말은 제 신하들이 자신을 아직까지 지탱해주는 것인갑다- 싶다. 보통은 이런 때는 반역이라던가 시끄러운 전쟁을 터트리는데 말이야. 재미있네- 굽실거리는 검은머리를 제 손가락에 끼워 빙글빙글 돌려댔다.
"새벽, 힘이 사라지면 저도 사라집니까?"
"아니, 너는 그냥 '인간'이 되는 것뿐이야 힘이 없는 그저 나약한 인간. 기막힌 회복력도 엄청난 근력과 파워를 보여주지 못하겠지"
라기보단 - 이미 회복력도 떨어진 상태였고, 따라 오는 부수적인 힘들도 많이 나약해졌겠지. 점점 인간화. 라고해야하나 어감이 조금 이상하지만. 인간화가 되가고 있다고 해야겠지. 새벽은 길게 하품을 하였다 거친 해가 떠오르는 시기는 자신이 가장 힘든 시간이기에 아무렇게나 늘어져 누웠다. 새벽의 왕은 늘 있는 일이였지만 언제나 호들갑이였다. 이런데서 주무시면 큰 고뿔이 걸린다더니, 혹은 아랫것이 좋지 않게 바라본다더니 잔소리를 해댔다. 인간적인 왕이였고 괜찮은 왕인가봐- 호들갑은 떨던 왕앞에 새벽은 키득거리면서 웃어댔다
"바보냐, 시끄러워 그리고 화선 너는 가서 일해. 그리고 저 아랫것들도 다 치워 나는 그냥 마지막을 본 참관자야 이럴 필요 없어"
"머무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 모실 생각입니다만, 안됩니까?"
안돼. 간단명료하기 짝이 없게 말을 내뱉고 길게 하품을 내뱉었다. 낮은 싫어. '그녀석' 같아서 더 더욱. 귀찮다. 그냥 멀리서 바라볼껄 그랬나. 심심한차에 마지막이래서 왔더니 더 귀찮아진 듯한 기분이야. 그렇지? 환아. 너랑 쏙 빼닮은 아이가 마지막을 지키는 구나, 부럽네 그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