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돌아가다

Chapter 2. 던전 위 피의 그림자

14. 돌아가다



니가 일격이 답이라며! 라고 속마음으로 말하는 것이 귀로 재생되는 것은 착각일까, 표정으로 모든 말을 전하는 그를 보며 심드렁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야 당연히 이 던전의 최종 보스니까 그런 거지. 원래 맨 나중에 나오는 애는 급이 다른 법이야. 그러니까 당연히 싸우는 방식도 달라지는 거야.”

내가 뭘 그런 당연한 말을 하냐는 듯이 한심한 눈으로 그를 보자 인제니드는 펄쩍 뛰어올라 마물의 머리 꼭대기에 안착했다.

“그럼 알려주든가.”

“아니, 그냥 내가 할게.”

내가 눈을 빛내며 검을 들어 기를 불어넣었다.

인제니드가 의아해하며 나를 바라보자 나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런 정도의 마물을 퇴치하는 방법을 딱 하나 아는데, 그게 내 검술로밖에 할 수 없거든.”

“그래, 네가 해라.”

‘내 검술’이라고 하는 순간 깨끗이 싸우기를 포기한 인제니드가 얼굴을 구기며 나에게 답했다.

내 검술이라면 치를 떨 정도로 싫어하는 인제니드를 바라보고 있자니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감추기 어려울 정도로 재미있었다.

그를 보며 킥킥 웃은 나는 이내 웃음을 거두고 잠재마력을 한꺼번에 방출시켰다.

“-유이시아식 검술, 1장 16절.”

[절단(切斷)]

촤아악.

이 검술은 검을 한 번에 많은 방향으로 동시에 베어야 했기 때문에, 마력 운용이 원활해야지만 할 수 있는 스킬이다.

이 검술, 내가 만들었지만, 참 당하는 사람(마물) 불쌍한 기술이다.

인제니드가 처음부터 내 기술을 싫어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내 기술을 싫어하는 데에도 이유가 있긴 있었다.

……7년 전, 처음 만났을 때 내 기술에 엄청나게 까인 후부터 나의 검술이라면 치를 떨 정도로 싫어하게 된 거지.

아이고, 쯧쯧. 과거에 그렇게 얽매이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 텐데……가 아니라 나는 저 마물이나 잡아야 하지!!

내 머릿속 생각이 급기야 산으로 가기 시작할 때, 가까스로 탈출하려던 이성을 간신히 붙잡은 나는 나에게로 크와와! 하며 소리치는 못생긴 마물을 향해 거대한 마력이 담겨 검술보다는 마법에 가까운 검술을 시전 했다.

“……死.”

촤아아아아악-!!!

내 말을 끝으로 거대한 피 분수가 솟구쳐 뿜어져 나왔다. 그 와중에 심장은 터지지 않고 그대로 보존한 나는 내심 내 검술(실제로는 마법에 가까웠지만)에 대한 뿌듯한 마음이 들어 저 어딘가에 있을 인제니드를 향해 고개를 올렸다.

마물의 얼굴 꼭대기에 있던 인제니드는 내가 검술을 시전하자마자 솟구친 거대한 핏줄기에 정통으로 맞고 온 몸에 끈적한 녹색 피를 뒤집어쓰고 있는 상태였다.

“으어…… 솔직히 말해봐, 이카르델. 너 일부로 그런 거지?”

“…그러게 내려와 있지 그랬어, 황태자님아.”

내가 뻔뻔하다 못해 내 스스로 생각해도 재수 없을 말을 내뱉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용암처럼 화를 삭이던 그는 이내 풀쩍 뛰어내려 마물의 가슴 부근으로 가 온전한 심장을 꺼내들었다.

“자, 마물 심장.”

인제니드가 단숨에 달려와 나에게 옛 다, 먹어라 라는 식으로 구역질나는 녹색 피에 뒤덮인 끈적끈적한 심장을 던졌다.

최강 보스의 빛나는 갈색 심장을 넘겨받은 나는 왠지 모르게 반짝반짝한 느낌이 드는 심장에 착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잠깐.

“…뭔가 이상한데.”

원래 심장을 뽑으면 이렇게 빛났었나?

“엥? 야, 야! 저거 왜 저래?!”

“…?!”

“…??!? 저, 저건 뭐…으아악!!”

다시금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는 빛에 이든이 놀라 비명을 질렀다.

난데없이 마물 심장에서 튀어나온 빛에 인제니드도 놀라고 라이칼도 놀라고 이든도 놀라고 심지어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 나조차 놀랐다. 물론 이 놀랐다는 것은 다른 의미의 놀람이었지만.

“…소환마법인가.”

이런 고급 진 짓거리를 할 작자로는 단 한명밖에 없는 것으로 보였다.

펠리아드의 짓이로군. 근데 하필이면 왜 이런 고급마법을 마물 심장에다가 걸어놓고 난리야. 한 번 더 걸어놨다간 모두 그 심장보고 심장마비 걸리게 하겠네.

대충 상황 파악을 완료한 나는 빛나는 심장 주위로 모두를 불러 모았다.

“이건 우리가 마물 심장을 뽑는 즉시 피에라로 되돌아올 수 있도록 펠리아드 교수가 걸어놓은 소환마법 같은데.”

나의 뚱한 말에 이제는 빛이 둥그렇게 모이는 빛의 원 안에 서있는 인제니드가 다급하게 물었다.

“그래서?! 그래서 우리더러 뭐 어쩌라는 건데!!”

“어이, 황태자님. 소환 한 번도 안 당해봤어? 하긴, 넌 귀한 황자님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 이해해.”

“끄아아아악!! 이거 뭐야!! 몸이 뜨잖아?!?”

“……아, 한명이 더 있는 걸 깜빡했네.”

나야 어렸을 때 하도 많이 당해봐서 그렇다 치고, 저기 평소대로 멀뚱히 서있는 라이칼은 지내온 시간이 있으니 알거라 치면, 나에게 시끄러운 소리를 제공하고 있는 이 두 놈들은 소환마법을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실제로 소환마법을 쓰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당하는 사람이 기분이 정말 더럽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쓰지 않는 마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청나게 많이 당한 마법이기도 했지만.

귀환 황태자가 소환마법을 당해봤을 리 없고, 평민인 이든이 이런 고급마법을 봤다는 확률은 내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확률보다 적었다.

결론은, 설명하기 귀찮다.

“야, 소리 지르지 말고 그냥 몸을 편하게 해. 귀 떨어지겠다.”

내가 중심을 못 잡고 버둥거리며 소리를 치고 있는 둘을 한심하다 못해 짜증나는 얼굴로 쳐다보며 소리치자 라이칼이 내 옆에서 둘을 조용히 진정시켰다. 정확히 말하자면 진정시키려 했다.

“……무서운 것이 아니다. 유이, 아니 이카르델의 말처럼 몸을……”

“으아아아아아아아악!!”

급기야 나대신 라이칼이 설명을 하러 나섰지만 그 마저도 이든이 질러대는 우렁찬 고함소리에 막혀들었다.

‘아, 내 귀청.’

분명 이든이 이런 미친 비명을 나에게 선사한 것은 다름 아닌 이동이 시작되고 있는 심장일 것이다. 빛나는 심장을 바라보고 있는 4명의 사람들이란. 아니, 하나는 사람이 아니었지.

사락-

“……응?”

바람소리 비슷한 스치는 소리가 귓가를 자극했다. 빛나는 심장을 두 손에 들고 고개만 틀어 소리가 나는 곳을 돌아보니,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착각인가?”

사람은 착각할 수도 있다. 그래. 그렇지. 내가 아무리 여자 최초 소드 마스터라고 쳐도, 나는 어쩔 수 없는 한낱 인간일 뿐이었던 거야.

스스로 자기 합리화를 시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이제는 이동이 완벽하게 시작되는 빛나는 심장을 향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사라락-

“…!! 분명……!!”

다시금 스치는 바람에 걸리는 소리에 강렬한 빛 사이로 고개를 비틀어 아까 그곳을 쳐다보았을 때, 내가 이동이 끝나기 전 마지막으로 본 것은, 금빛으로 빛나는 ‘무언가’였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파아앗-!!

이윽고, 새하얀 빛에 완전히 먹혀 들어간 나를 포함한 일행 4명은, 피에라로 가는 듯한 소환마법을 타고 이동했다.


*

*

*


“…….”

모두가 떠나고 조용한 끝.

유이시아가 박살낸(심장만 빼고) 검은 마물의 진득한 녹색 피를 밟으며 등장한 검은 머리의 사내가 발자국 소리를 내며 마물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피-.”

끈적끈적한 피를 손으로 슥 문지르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사내는 고개를 숙여 이미 죽어 듣지 못하는 마물에게로 중얼거렸다.

“…운이 좋은 줄 알아라. 그녀였기에 이렇게 죽였지, 나였다면-”

그는 녹색으로 물든 자신의 손을 대충 닦고, 그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이질적인 기운을 물씬 풍기는 금색 눈동자를 위험하게 빛냈다.

“…그 정도로, 고통 없이 죽이진 않았을 테니까.”


*

*

*


“으허어억!”

우당탕탕.

순서대로 차곡차곡 떨어진 나를 포함한 4명은 샌드위치가 된 것 마냥 서로가 뒤엉켜 정신이 혼미해질 대로 혼미해진 상태였다.

“아윽……이게 뭔 일인 거……”

머리를 탈출하려는 정신을 붙잡고 눈을 가만히 뜬 나는 경악에 물든 채 우리를 바라보는 학생 여러분과 마주했다. 그리고 덤으로 교탁 앞에서 책을 든 채 이쪽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펠리아드 교수까지.

“…….”

“…….”

당연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그리고 이 애들은 여기서 수업을 받고 있는데 왜 우리는 그냥 던전도 아니고 금지된 던전까지 가서 빛나는 심장을 획득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표현할 새도 없이, 그저 웃음만이 나오는 상황에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어……음……여기서 뭐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

여전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계시는 펠리아드 교수 쪽으로 고개를 돌린 나는 싱긋 웃으며 빛나는 심장을 내밀었다.

“빛나는 마물의 심장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1부 完 (정확히는 extra Chapter까지지만)

------------다음 편은 extra Chapter 1. 유이시아와 인제니드의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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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7-23 15:42 | 조회 : 1,484 목록
작가의 말
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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