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빛나는 심장

Chapter 2. 던전 위 피의 그림자

13. 빛나는 심장



다음날, 나는 자면서도 잔 것 같지 않은 느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던전에서 아침을 맞이한 재수 없는 상황에 아침부터 기분 좋은 깊은 빡침을 느끼며 검을 뽑아들고 화려한 기술을 뽐내며 날카롭게 허공을 갈랐다.

[유이시아식 검술 제 1식, 일도(一刀)]

쐐애애애액!

개인적으로 다수의 적을 한 번에 뒤질 수 있게 하는 이 검술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검술이다.

던전 내부의 돌들이 두두두두 소리를 내며 일렬로 부서지자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듯한 이든이 희한한 소리를 내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아악! 뭐, 뭐야?”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요란을 떠는 것이 가관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치켜들었던 검을 아래로 떨구었다.

“하이고, 남자가 깡이 이렇게 없어서야.”

나는 남자비하발언을 하려고 한건 단연코 아니다. 그냥 내 앞에서 벌벌 떠는 이 소년이 한심했을 뿐이다.

내 말에 이든의 얼굴이 살짝 구겨지는 것이 보였지만, 이내 그 표정은 다시 사라졌다.

그 와중에 내 친우인 로이드 제국 황태자님께서는 열렬하게 취침중이시다.

세상에. 이 굉장한 소음에도 굴복하지 않다니……

인제니드, 역시 너는……

옆에서 그 모습을 같이 관람하던 라이칼이 한숨을 내쉬며 내게 말했다.

“…저 녀석을 일어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나.”

“……아니.”

너도 모르는데, 내가 알 리가 없잖니?

뭐 그런 한심한 소리를 하냐고 생각하고 있을 때, 이제는 아예 대자로 뻗어서 자는 인제니드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슬슬 열이 뻗치기 시작했다.

그때, 엄청나게 굉장히 좋은 생각이 난 나는 눈을 빛내며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라이칼. 쟤를 깨울 아주 좋은 방법이 떠올랐어.”

“……?”

의아해하는 그를 보며 마력을 한 번에 쏟아내어 검에 실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상쾌(?)한 기분에 미소를 지으며 내가 사용하는 기술 중 하나를 사용했다.

마력 소모는 크지만, 뭐 하나 부수는 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그런 기술.

“인제니드, 기상 시간이다.”

[유이시아식 8장 - 붕괴(崩壞)]

카드드득- 쿠와아아앙!

“좋아, 이로써 던전 최 아래층까지 가는 수고는 덜었군.”

참고로 내가 쓴 이 기술은 아무리 단단한(?) 대륙이라도 한번 시전하면 단숨에 두 대륙으로 나눌 수 있는 극강의 스킬이다.

흡족하게 웃으며 인제니드가 깨어났는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자, 내 앞에 펼쳐진 블랙홀 같은 구멍에 멍하니 굳어있는 두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왜.”

“…….”

“…아, 아니! 그…”

내 심드렁한 말에 역시나 라이칼은 무반응이었고 이든은 횡설수설하는 중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여전히 드러누워 있는 인제니드를 보아하니 깰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어쩔 수 없지. 얘를 생태실험에 쓰고 싶지는 않았는데…….”

한숨을 내쉬고 축 늘어나 있는 인제니드를 어깨에 들쳐 메었다.

흡사 짐 덩이와 같은 인제니드를 들고 내가 방금 전 인제니드를 깨우기 위해 뚫어 놨던(결국 인제니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구멍을 향해 뛰어들었다.

떨어지는 내 뒤로 무슨 외침이 들린 것 같지만, 그 정도는 가볍게 무시할 만한 성격을 가진 나는 그냥 내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저기, 이카르델…? 허어억!”

“……가버린 건가.”

인제니드를 데리고 아름답게 사라진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라이칼이 이내 이든을 향해 다가갔다.

“으아악! 무…무슨 짓이야!”

“……우리도 가야할 것 아닌가.”

버둥거리는 이든을 이카르델이 했던 것과 같이 들쳐 멘 라이칼은 곧장 그녀가 갔던 구멍으로 발을 내딛었다.


*

*

*


“던전 최하층 입성 완료.”

던전 맨 아래로 가니 금지된 던전답게 괴생물체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눈을 찡그리고 있었다.

나는 어제 라이칼이 말해준 사실이 떠올랐다.

‘던전의 마물들이 이상행동을 보이더군.’

‘…….’

‘그거, 네가 쓰러져 있을 때 나타났던 어떤 드래곤의 힘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그러니까 그 말은, 이제는 날뛰지 않는다는 말이네.”

나는 내가 쓰러졌을 때고 뭐고 상관없이 내 기분 내키는 대로 생각하며 방긋 웃었다.

“그렇다면, 미친 짓 좀 해볼까?”

싱긋 미소를 내짓고 곧바로 업고 있던 인제니드를 못생긴 마물의 얼굴을 향해 던졌다.

-퍽!

마물의 얼굴을 향해 광속으로 날려진 인제니드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정확히 마물의 눈에 명중했다.

“에……? 뭐……”

“…….”

인제니드를 던진 나는 조용히 그의 생각이 로딩 될 때까지 웃으며 기다렸다. 그의 뇌가 이성을 되찾을 때까지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았다.

잠시 후, 자신을 바라보는 한 쌍의 보라색 눈동자를 발견한 인제니드는 비명을 지르며 검을 뽑았다.

“으아아아악! 저거 뭐야!!”

“…푸하하하.”

아이고 재밌다. 인제니드가 당황하며 그 한 쌍의 눈에 정확히 검기를 쏘자 마물이 고통스러워하며 소리를 질렀다.

키에에엑!

“와 씨, 무슨 일어나자마자 마물 눈깔이 보여?!”

로이드 제국 황태자의 입에서 나에게 하는 듯한 육두문자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 소리에 이든을 들쳐 메고 사뿐히 내려앉은 라이칼이 무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던진 건가.”

“깔끔하지?”

내가 내 특기(?)인 던지기를 자랑스럽게 선보이자 그는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희미하게 내비쳤다.

“서…설마 저기 마물 얼굴에 던져진 것이 인제니드님 이신 것은 아니겠죠……?”

“…….”

“……하하. 이번 과제가 분명 저 초특급 마물의 ‘심장’을 가져가는 것이었지?”

나는 이든의 덜덜 떨리는 그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생각에 잠겼다.

마물의 모든 부위는 특별했다. 특히 그 중에서 던전 최하층에 사는 초초초특급 마물의 것은 더욱 빛났다.

신체 모든 부위가 돈이었으며, 그 신선함에 따라 값어치가 결정되었다. 특히 산 채로 잡아 회를 뜨면 더욱 고소한 맛이 난다는 말이 사실일 정도로, 신선도가 높을수록 더욱 유리하다는 이야기였다.

피로는 마법 약을 만들고, 뿔로는 가루를 내어 독으로 사용하며, 피부로는 가죽 제품을 만들고, 간은 해독제로 사용한다.

그중 그들의 활력의 중심부인 심장으로는,

“……살릴 사람이라도 있나?”

생명을 살린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치고 검을 뽑아 들어 가벼운 스텝으로 바닥을 규칙적으로 두드리던 나는 고개를 들었다.

“…심장만 도려낼까, 아니면 심장만 빼고 아작 낼까. 어때, 인제니드?”

내가 상큼하게 웃으며 아직도 마물의 얼굴에 붙어서 검을 휘두르는 인제니드를 향해 외쳤다.

그러자 그는 분노의 포효를 하는 짐승과 같은 소리를 내며 나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몰라!! 얘는 왜 일격으로 안 끝나는 건데에에에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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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7-23 15:41 | 조회 : 1,479 목록
작가의 말
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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