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라이칼 드 로렌(6)

Chapter 2. 던전 위 피의 그림자

11. 라이칼 드 로렌(6)



“뭐……”

‘마물인가……?’

방금 전 거대하게 나타난 존재에 나에게 달려오던 검은 하핏은 행동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벌어진 또 다른 상황에 혼란스러웠다.

저 거대한 형상의 존재를 보고 할 말을 잃은 나를 비롯한 인제니드와 이든은 멍한 표정으로 저 위를 쳐다보았다.

우리들 중 태연자약하게 그 존재를 바라보고 있던 자는 오직 라이칼 뿐이었다.

그는 마치 그 존재의 여부를 알고 있었기라도 한 듯, 아무 말 없이 침묵을 고수하며 자리에 서 있었다.

그보다,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툭.

“어……어……?”

저 존재를 보자마자, 정확히 말하자면 검은 날개와 나를 빤히 바라보는 것만 같은 한 쌍의 금빛 눈동자를 보자 물불 듯 터져 나오는 눈물은 주체 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카르델? 왜 그래?”

“이……카르델?”

갑자기 자리에 서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나를 보고 인제니드와 이든이 의아하고 의문을 품은 채 나의 이름을 불렀다.

“내가…내가 왜 이러지……?”

멈출 줄 모르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당하지 못한 나는 후두둑 떨어지는 눈물에 손을 떨며 나를 바라보는 그 존재에게 마치 이끌리듯 다가섰다.

“나……왜…….”

“…….”

빤히 바라보고 있는 노란 눈동자는 내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나의 움직임을 따라 더욱 진해졌다.

나는 나 스스로가 믿겨지지 않았지만 주체 없이 생기는 이 슬픈 감정에 어찌할 줄 몰라, 그저 내 몸이 나를 이끄는 대로 그 곁으로 가 손을 들었다.

“왜……왜 이렇게 슬프지……”

“…….”

손을 들어 조심스럽게 얼굴로 보이는 검은 머리통에 가져다대었다. 눈물은 그 와중에도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분명히……나는……당……신…….”

이미 초점이 풀려버린 나의 눈이 그를 바라보았다. 아주 잠깐 동안 몸이 이상해졌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미 정신이 반쯤 놓인 나는 그 변화조차 신경 쓰지 못했을 만큼 제정신이 아니었다.

-촤악!

“……지금 구경할 때가 아닐 텐데.”

“……안 그래도 마침 손을 쓰려고 했어.”

내 뒤에서 피가 한 번에 분출되는 소리가 들리고 검기가 깃들더니 마물이 썰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 소리에 고개를 돌리려고 하였지만 어떤 힘에 이끌려 고개가 돌아가지 않았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왔다.

“아……아흐흑……!”

머리가 깨질 듯 아파올 때, 내 머릿속에 몇몇 장면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며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데 동조했다. 생각이 날 듯 말 듯 하는 장면들 속에 기억을 상기시키려 애쓰고 있을 때마다, 나의 머리는 옥죄어오듯 거세게 나를 압박했다.

“아아아…!”

-펄럭.

내가 울려대는 머리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때, 다시 한 번 거대한 펄럭임을 내며 날개가 상하로 흔들렸다.

아직도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는 내 눈에 거대한 몸집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이 맺혔다.

“아…안 돼……가지……마…….”

나의 바람과는 달리, 거대한 존재는 점점 멀어져갔다. 날개를 펴고 하늘 높이 날아올라, 천천히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야!! 정신 차려!”

“……이카르델? 이카르델!!”

몸이 휘청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머리는 핑핑 돌고, 미친 듯이 어지러웠다. 더 이상 서있을 수 없는 것을 몸이 먼저 느끼고 앞으로 무기력하게 쓰러졌다.

……마물을 잡을 때도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정말, 나……왜……이러……

그 생각을 끝으로 나는 정신의 끈을 놓아버리고 무의식의 세계로 몸을 던졌다.


*

*

*


짧은 꿈을 꿨다. 꿈에 나온 여자아이는 분명 나의 어릴 적 모습임에 틀림없었다.

어린 소녀는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에, 금색의 눈동자……

“윽!!”

또다시 생각을 할수록 머리는 깨지듯이 아파왔다. 더 이상의 생각을 포기하고 다시 어릴 적의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때, 어린 나와 함께 있던 소년의 등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저건?”

날개. 날개가 틀림없었다. 놀라움과 동시에 두려움이 몸을 타고 내려왔다. 뭐지? 어떻게, 저게, 어째서……?

하지만 시간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점점 장면은 흐릿하게 바뀌고, 공간에 균열이 가며 서서히 조각나기 시작했다.

“…안 돼!”

나는 조금이라도 더 보기 위해 풀 한 가닥이라도 잡아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소리쳤다. 장면은 빠르게 깨졌고, 나는 그대로 검은 공간으로 떨어졌다.


*

*

*


“…으윽.”

얼마정도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움켜쥐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나를 부담스러울 정도로 극진히 간호하고 빤히 보고 있으며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세 남자와 직면했다.

“이카르델!! 괜찮아? 갑자기 쓰러져서 놀랐잖아!!”

“갑자기 눈물을 흘린 것부터 이상했는데, 정신을 잃어서 더 걱정했어.”

“어? …컥!”

그리고 그들 중 두 명은 내가 머리를 든 순간 달려들었기 때문에 나는 일어나자마자 다시 질식사로 쓰러질 판국이었다.

“……다행이군. 별 이상은 없는 것으로 보이니.”

나는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니 모닥불을 툭툭 건드리고 있는 라이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심한 듯 하지만 걱정을 했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그 말에 나는 의아하여 어리둥절해했다.

“뭔데? 왜 다 나를 걱정한 거야?”

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변 공기의 온도가 2도는 낮아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내가 불길한 느낌에 인상을 찡그리고 있을 때, 인제니드와 이든은 놀라하며 라이칼을 쳐다보았다.

“……라이칼의 말이 맞았네.”

“……그러네요. 역시 야생의 감인……”

인제니드는 감탄에 가까운 탄성을 내질렀고, 이든은 멋대로 튀어나온 라이칼의 비밀에 말을 하다가 입을 다물어 버렸다.

“……어디까지 기억나는가.”

“…나?”

결국 이든의 말끝으로 침묵이 유지되자 침묵 유지에 말은 하지 않았지만 직접적 원인이 된 장본인이 입을 열었다.

“검은 무리의 활동 형 종족이 설치고 다닌 것 까지 밖에 기억이 안나.”

“……예상대로군.”

“뭐?”

뭔 소리지?

저들 반응을 보니 무슨 일이 있긴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것도 매우 중요한.

애석하게도 내가 쓰러진 것도,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구도를 보니 쓰러지긴 한 것 같았다.

결국 내 편할 대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후 넘겨버린 나는 한껏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이미 어두울대로 어두워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벌써 저녁인가.”

나를 따라 나온 건지 어느새 내 옆에 있는 라이칼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하루가 엄청 길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에요. 진이 다 빠져요.”

같이 따라와 결국 모두 어두워진 하늘을 보며 이든이 말을 이었다. 이든의 푸념 섞인 말에 인제니드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격한 동조의 의미를 표현했다.

“그러네. 무슨 하루가 일주일 같냐. 일주일치 마물을 다 잡은 것 같네.”

“……넌 일주일동안 마물 잡아본 적도 없는 애가 그런 말을 어떻게 하냐.”

인제니드의 황당한 발언에 어이가 없어진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인제니드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뭐, 대충 그렇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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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7-14 21:06 | 조회 : 1,749 목록
작가의 말
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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