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라이칼 드 로렌(5)

Chapter 2. 던전 위 피의 그림자

10. 라이칼 드 로렌(5)



“…늑대 인간이어서 그런가. 잘 싸우네.”

나는 하핏들의 무리에서 흡사 날아다니고 있는 라이칼의 모습에 흥분한 얼굴로 그 장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라이칼의 일격에 하핏의 목에서는 녹색의 피가 확 솟구치더니 사방에 그 흔적을 흩뿌리고 쓰러졌다.

“……녹색 피. 은둔형 종족.”

라이칼에 의해 후두둑 뜯겨 나가는 하핏의 살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나는 또다시 발견된 ‘은둔 형 종족’에 의해 현재 이 던전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확실히, 지금 이 곳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야.”

원래 은둔 형 종족 같은 움직임이 활성화 되지 않은 마물은 던전의 가장자리에 존재한다. 던전 가장 깊숙한 곳에서 침입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이 하핏들은 대부분이 자신들의 조용한 생활을 방해하는 침입자들에게 공격적이었다.

하지만, 이 말을 다르게 말하자면, 결국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자신들도 상대를 공격하지 않는, 온순한 종족. 이것이 바로 은둔형 종족의 특징이자 외향적 종족과 구별되는, 그들의 ‘장점’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던전의 들어가는 입구나 마찬가지인 이곳에서 분개한 듯 활개를 치다니. 그들이 나온 이유가 단순한 사정 때문인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왜? 무슨 이유 때문에? 이것들이, 입구에 있는 것이지?

-콰아앙!!

“……아.”

깊은 생각 속에 잠겨 내 앞에서 일어나고 있던 일을 잠시 망각하고 있던 터라 갑작스럽게 던전 내를 울려 퍼지는 굉음에 나는 나의 생각 속에서 빠져나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뭔가 하핏들이 더 불쌍해지는 것은 기분 탓이겠지.’

물어뜯긴 하핏들의 목은 여기저기 널브러져 나뒹굴었고, 던전 바닥에는 녹색의 피가 마치 강처럼 흘러내리고 있었으며, 입가에 끈적끈적한 녹색 피를 묻힌 채 그르렁 거리던 라이칼은 이내 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든은 그가 천천히 자신을 향해 다가오자 눈에 보일 정도로 심하게 흠칫 떨며 몸을 수그렸다. 하핏들에게 몰려있을 때 발목을 접질리기라도 한 것이었는지 이든은 절뚝거리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괜찮나.”

“…으, 응! 괘, 괜찮아!!”

하이고, 이든이라고 했었나, 어쨌든 녹색머리야. 저 상황에서 제 3자인 내가 봐도 전혀 안 괜찮아 보인다.

인제니드가 봤으면 뒷목 잡고 쓰러질 수고 있을 법한 상황 연출에 나는 나갈 타이밍을 놓치고 어정쩡한 자세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사실, 괜찮지는 않아.”

이든의 우물쭈물 내뱉은 말에 라이칼은 날카로운 주황빛 눈동자로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고는, 이내 묵묵히 고수하던 침묵을 깨고 천천히 입을 떼었다.

“……널 위협하기 위해 본 모습을 보인 것은 아니다. 그러니 안심해라.”

“…….”

그 말을 듣고 나니 더욱더 크나큰 정적이 그들 사이의 공기를 갈랐다. 나는 그 둘의 상황을 보며 어색해 미칠 것 같았다.

“허억, 헉……이카르델, 거기 서서 뭐해?”

내가 그 뒤에 숨어 묵묵히 침묵에 동참하고 있을 때, 어느새 하핏들을 다 처리 했는지 가쁜 숨을 내쉬며 달려온 인제니드는 멍하게 허공만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소리쳤다.

그 소리에 이든과 라이칼 모두 인제니드의 목소리를 따라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마침내 나는 내가 그토록 만나고 싶어 했던 라이칼과 그 옆에서 어색한 침묵을 고수하던 이든을 만나게 되었다.

“어……나도 막 도착해서 합류하려고 했지.”

“……그래?”

나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훑어보고 있는 인제니드를 가볍게 무시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라이칼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라이칼은 나를 향해 게슴츠레 뜬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 난 이카르델. 이카르델 이라고 해.”

“…….”

나의 산뜻한(?) 인사에 아무 말 없이 물끄러미 바라만 보는 라이칼로 인해 위가 뒤틀리려고 할 때, 마침 두려움을 딛고 우리가 서있던 쪽으로 다가온 이든이 나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저기…아, 안녕. 난 이든이야. 네가……이카르델?”

자신을 이든이라고 소개한 녹색머리 소년은 인제니드 옆에 서있던 나를 보며 나와 내 이름을 번갈아 되뇌며 어정쩡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해해. 몸뚱아리는 멀쩡한, 아니 멀쩡하지는 않은 것 같은 겉떼기인 이름은 남자의 것이니까.

하지만 내가 짓고 싶어서 지은 내 남성적인 이름에 후회 따윈 없었다.

내가 아직도 날 보며 혼란스러워할 이든을 향해 돌아보며 단호하게 한마디를 하기 위해 막 입을 떼었을 때, 내 이름에 대한 감상평은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곳에서 들려왔다.

“……잘 어울리는군.”

“……에?”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이 진짜 라이칼의 입에서 나온 말이 확실한지 의심이 되어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이카르델. 네 이름의 뜻, ‘영원한 염원.’ 너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아……고마워.”

내 이름은 루브스카어로 하면 ‘자유’였고, 로이드어로 하면 ‘사슬로 이어진 운명’, 그리고 대륙 공통어로 하면 ‘영원한 염원’이라는 각기 다른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였다.

“어……고마워.”

그중 대륙 공통어로서의 뜻을 말한 라이칼에게 나는 어색한 웃음을 내지으며 고맙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내 이름은 조국 말인 루브스카어로 ‘자유’라는 뜻을 따서 지은 것이긴 하지만, 뭐 이건 패스해도 되겠지.

“저……이렇게 화기애애하고 즐거운 만남과 칭찬은 다 좋은데.”

어느 샌가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던 인제니드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던 우리를 바라보며 식은땀이 흐르는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저기 저 거대한 것은 안보여?”

인제니드가 어느 샌가 우리의 뒤편으로 가까이 다가온 거대한 검은 마물을 가리키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

“…허억! 저, 저건 뭐지?”

“……이런, 망해버릴 교수 새끼가아아아아!!”

라이칼은 한순간 거무튀튀한 색의 마물이 보통 마물이 아니라는 것을 감지하고 얼굴을 굳혔고, 이든은 예전에 그랬듯 또다시 발작을 일으키듯 몸을 떨었으며, 이 상황이 그저 짜증나고 귀찮기만 한 나는 모든 것의 원인인, 어디선가는 살아있을 펠리아드를 향해 육두문자를 소리치며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들었다.


*

*

*


-까앙! -챙! 퍼억!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라이칼과 인제니드와 함께 아무 생각 없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 상황, 어디서 많이 해본 상황이었는데. 내 착각이겠지.

이젠 정말 화낼 힘도 없던 나는 휘두를 때마다 쭉쭉 빠지는 기를 간신히 잡은 채 나를 보는 마물에게 멍하게 안녕? 이라는 상큼한 인사를 날릴 만큼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그렇게 계속 검만 휘두르고 있을 때, 옆에서 같이 검을 휘두르던 라이칼의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상하군.”

“…뭐가?”

라이칼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말을 마물을 썰면서도 그에게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터라 용케도 들은 나는 검을 크게 한번 휘두르며 반문했다.

라이칼이 검을 고쳐 쥐고 마력을 담아 곡선궤도를 그리며 검을 휘두르는 나를 흘끗 쳐다보고는 중얼거렸다.

“이런 형태의 마물은,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었다.”

“…….”

곧 그의 말에 숨어있는 왜곡된 뜻을 알아차린 나는 아, 하고 감탄하며 조용히 수긍했다.

한번도 ‘본 적이 없다’가 아닌 ‘나온 적이 없다’라는 뜻은, 이 곳에서 나온 적이 없었다는 것이고,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이 괴생물체를 본 적이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는 말이었다.

“……확실히, 지금 이 던전은 아무리 ‘금지된 던전’이라고 해도, 마물들의 행동이 이상하긴 하지.”

“…내가 느끼는 바도 그렇더군.”

“왜? 뭐가 문젠데?”

무표정하게 대화를 주고받던 나와 라이칼은 화려한 검 기술로 한 번에 마물 두 마리에 검을 꽂아 넣고 대화에 끼어든 인제니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던전 탐험이 처음인 얘가 이 말을 알아들을지나 모르겠네.

짧은 한숨을 내쉬고 마력을 방출시킨 나는 몸 안쪽에 피를 타고 흐르던 기가 심장 쪽으로 모여드는 것을 느꼈다.

“네가 방금 썰어버린 저 거무튀튀한 것들은 원래 여기에서 날뛰면 안 되는 것들이라고.”

“아아…. ……그런데 그게 중요한가?”

인제니드가 무심하게 녹색 피가 뚝뚝 떨어져 왠지 혐오감이 느껴지는 자신의 검을 뽑아들고 씨익 웃으며 덧붙였다.

“그냥 다 죽여 버리면 되지.”

“……속편한 바보는 좋겠군.”

얘한테 이런 말을 한 내가 멍청하다.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고 있을 때, 라이칼의 애매모호한 뜻이 담긴 말이 들려왔다.

“……누구의 작품인지 알 것 같군.”

“…뭐?”

“이카르델, 뒤에!”

“……!”

-콰아앙!

“…아.”

내 앞으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거대한 굉음이 던전 내부에 울려 퍼졌다.

뒤에, 한 마리가 더 있었구나.

서둘러 검을 고쳐 잡고 휘둘러도, 나를 향해 달려오는 마물은 상대할 수 없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콰아앙!

다가올 검은 그림자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던전 끝에 다시 한 번 커다란 굉음이 울려 퍼졌다.

“……저건, 뭐……”

“……!”

“으아악!! 괴……괴, 괴물이다!”

부서질 듯 울려 퍼진 굉음 사이로, 커다란 검은 날개를 펄럭이며 어두컴컴한 던전 안에서 한 쌍의 금빛 눈동자를 빛내는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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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7-12 22:15 | 조회 : 1,773 목록
작가의 말
레빛

아항항항항(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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