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라이칼 드 로렌(4)

Chapter 2. 던전 위 피의 그림자

9. 라이칼 드 로렌(4)



-까앙! -까앙!

거센 금속과 마물의 마찰음이 어둠속 공간을 가득 메웠다. 이제는 아무 생각이 없다는 듯한 텅 빈 눈으로 하늘을 보며 팔이 가는 대로 무작정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거의 반 포기 상태였다.

“아, 정말……!”

이게 다 망할 교수라는 펠리아드와 상황 판단력 제로인 인제니드 때문이다. 나는 짜증이 솟구치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계속해서 나에게 맞아 피를 쏟으며 헐떡이는 하핏에게 마지막으로 세게 검을 휘둘렀다.

[유이시아식 검술 제 1식, 일도(一刀)]

“키에엑!!”

“……후우, 일단 두 놈은 완료.”

한 번의 일격에 두 마리를 잡은 나는 초록색 피를 꿀렁이며 바닥에 늘어진 하핏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은둔 형 종족.”

감긴 눈을 손으로 벌려 살펴보니 흐리멍텅한 검은 눈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눈을 의아하게 바라보며 나는 깊은 의문에 빠졌다.

“…은둔 형 종족의 하핏이 왜 여기까지…….”

분명 내가 알기론, 이런 유형의 은둔 형은 던전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것들인데.

“…뭔가 이상한데.”

지금 이 던전의 상태는 이상해도 한참은 이상했다. 아무리 금지된 던전 이라고 해도, 옛날에 딱 한번 비슷한 유형의 던전에 가 본적이 있는 경력이 있던 나는 이런 던전의 상황에 의문이 들었다.

의심이 스멀스멀 피어나는 기분 나쁜 던전의 상태를 알리기 위해 열심히 다른 하핏들의 무리와 싸우고 있을 인제니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인제니드! 인제니……드?”

인제니드를 돌아보니, 그는 하핏들에게 그야말로 완벽하게 깨지고 있었다.

뭣도 아니고 은둔형 종족에게 저렇게 쩔쩔 맬 줄이야. …설마, 한 번도 상대해 본 적이 없는 건가?

의구심이 사실로 바뀌고 있을 때, 인제니드가 얼굴을 잔뜩 구긴 채 나를 쳐다보며 소리쳤다.

“야, 이카르델, 아니 유이시아!! 다 죽였으면 나 좀 도와줘!!”

“……명색이 소드 마스터인데, 이런 하핏 한 마리한테 쩔쩔 매면 어떡하냐.”

내가 한심하다는 투로 혀를 차자 인제니드는 하핏의 힘으로부터 버티고 서있었기 때문에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야 난 너와 달리, 황궁에서만 검술을 습득했으니까.”

아, 맞다. 그렇지. 넌 황궁파 소드 마스터니까.

로이드 제국 황제는 루브스카 제국에서도 유명했다. 우리 제국과 같이 황태자가 한명 뿐 이었지만, 루브스카 제국은 나를 포함하여 황위 계승자가 2명이었고, 로이드 제국은 오직 인제니드 1명 뿐 이었기 때문에, 로이드 제국 황제의 황태자 사랑은 극진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그 과잉보호가 너무 지나쳤기 때문에 인제니드는 한 번도 던전에서 마물을 죽여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했지만 결국 실전 경험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인 결과를 불러 일으켰기 때문에, 그가 마물을 온전한 제 힘만으로는 죽일 수 없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쯧쯧. 새장 속에 갇힌 허울뿐인 소드 마스터였군.”

“야, 그런 말 할 때 나 좀 도와주지?!”

인제니드가 자신을 향해 부릅뜨고 있는 검은 눈깔을 밟으며 끙끙대자 나는 검을 손에서 한 바퀴 돌린 후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제드, 난 너를 정말 믿어. 너라면 이 시련을 충분히 견뎌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뭐? 야, 너 설마…”

확실히 설마는 사람을 잡는다. 이 말은 정말 확실하다. 나는 내가 웃을 수 있는 그 어떤 상황들보다 더 활짝 웃으며, 인제니드를 향해 사랑의 검(?)을 휘두르며 씨익 웃었다.

“고로, 나는 옆에서 다른 하핏들이 오는지 둘러보고 올게.”

“이런, 이카르델! 널 믿은 내가 잘못이다.”

인제니드가 하핏에게 꽂혀있던 자신의 칼을 뽑아내며 나를 향해 살의에 가득 찬 소리를 질렀다. 나는 마력을 한 번에 방출하며 칼을 빼들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약점은, ‘일격’이야.”

“……진작 알려줄 것이지.”

내 말에 그는 씨익 웃으며 검에 강화마법을 걸어 눈에서 피가 나는 하핏의 목을 단칼에 잘랐다.
“오, 역시 학습 능력은 빠르네.”

나는 그의 대단한 학습 능력에 박수를 보내며, 다른 하핏들을 탐색한다는 허울뿐인 표면상의 의미를 가지고 실질적인 의미인 라이칼을 찾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

*

*


-카앙! -챙!

라이칼이 무심하게 손에 쥔 검을 휘두를 때마다 하핏의 피가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그 모습을 겁에 질린 채로 바라보던 이든은 녹색 피가 흘러 넘쳐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그것을 보며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주춤거렸다.

“흐, 흐이익……!”

칼을 두 손으로 꼭 붙들고 동앗줄인 마냥 그것을 놓지 않고 굳어버린 이든의 비명소리를 들은 라이칼은 하핏에게 막 자신의 검을 꽂다가 고개를 돌려 이든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든은 자신에게 굴러온 하핏 무리들에게 포위된 채 점점 긍지에 몰렸다.

그의 투명한 맑은 눈동자가 사정없이 떨렸다. 아무리 상급반이라고 해도, 한 번도 던전과 같은 마물들의 집에 와 본적이 없었던지라 몸은 그대로 굳어버리고,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사고가 정지해버린 이든은 선택을 해야만 했다.

이 자리에서 하핏들을 모두 물리친 라이칼이 자신에게 올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을 것인가.

“으아아아아!! 저, 저리 가!!”

이성이 마비됨과 동시에 그는 두 손으로 꼭 움켜쥐고 있었던 검을 어설프게 내려쳤다. 그와 동시에, 하핏들의 무리들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런…! 이든!!”

이든의 쪽을 주시하던 라이칼이 이든의 돌발 행동에 자신이 싸우고 있던 하핏의 목에서 칼을 빼내어 하핏들에게 둘러싸인 이든을 향해 달려갔다.

이든에게 달려 나가며 그는 생각했다. 이대로라면, 지금 그의 상태라면, 아무리 열심히 그에게 가도 그가 가기 전에 하핏들이 이든의 몸을 갈기갈기 찢을 것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치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방법밖에 없는 건가……!’

라이칼의 주황빛 눈동자가 위험하게 빛났다.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휘날렸던 그의 긴 은회색 머리카락은, 점점 ‘털’의 형태로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고, 사람의 얼굴 형태를 유지하던 그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크르르…… 멈춰라!!”

인간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린 그의 모습에 이든에게로 달려들던 하핏들이 행동을 멈추고 라이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하핏들이 길을 터준 바람에 조금의 틈이 생겨 그 틈으로 라이칼을 보고 있던 이든은 변한 그의 모습에 눈을 크게 뜨고 놀라하며 검을 쥐고 있던 손을 떨었다.

“라……라이칼?”

“크르륵……피해라, 이든!”

인간과 비슷한 모습이었지만 또 다르기도 한 모습. 달의 기운이 부족해 완벽한 모습으로 변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라이칼의 모습은 분명 ‘늑대 인간’의 모습이었다.

본모습을 개방한 것과 마찬가지의 모습에 라이칼의 정체를 대충 짐작하게 된 이든은 벌벌 떨며 그대로 주저앉았고, 라이칼은 그런 이든의 모습을 예상했다는 담담하게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그르릉 거리며 원래 목적이었던 하핏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살기를 내뿜었다.

“키…키익……!”

“……귀찮군. 내가 이것들 때문에 모습을 드러내게 될 줄이야.”

정말로 화가 나 보이는 라이칼의 모습에 하핏들이 주춤거렸다. 그런 하핏들을 뒤로하고 라이칼은 어느새 뾰족하게 변한 이빨을 드러내며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이성을 잃은 라이칼은 거침없이 하핏들의 목을 물어뜯었다. 생기가 돌던 검은색 눈동자에서 점차 녹색 핏물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장면은, 그의 뒤를 열심히 캐고 있던 미친(?) 여검사의 눈에 담기게 된다.


*

*

*


‘……라이칼.’

라이칼의 모습이 변하고, 그가 분노하여 주변에 있던 하핏들의 목을 물어뜯는 것을 검에 의해 단걸음에 그들이 있는 곳으로 도착하게 된 유이시아는 사건의 전말을 대충 파악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일찍 정체를 드러낼 줄은 몰랐는데.”

본래 ‘늑대인간’이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한정되어있다.

대충 요약을 해 보자면 인간의 모습으로 싸우고 싶지 않거나, 아니면 지키고 싶은 것이 있거나. 둘 중 하나이다.

저 상황에서 예측해 볼 수 있는 사건의 전말은 두 가지 밖에 없었다.

이든이 약하거나, 아니면 하핏의 무리가 너무 많았거나.

어느새 두고 온 인제니드가 나를 애타게 찾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버린 채 흥미롭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나는 그들의 모습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숨어 광기에 서린 라이칼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흐음. 한번, 구경이나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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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7-09 08:06 | 조회 : 1,735 목록
작가의 말
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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