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라이칼 드 로렌(2)

Chapter 1. 유이시아 이샤 르데 루브스카

7. 라이칼 드 로렌(2)




조별 실습??

조별 실습이라는 말에 나는 내 인생에 몇 안 되는 뇌가 번쩍 뜨여지는 순간이 온 것을 느꼈다. 저 말은 즉, 내가 라이칼과 같은 조가 되어 그를 면밀하게 도촬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라는 것을 의미했다.

방금 전, 펠리아드가 라이칼을 부를 때 외형을 훑어보고 놀라며 말한 것과, 내가 고대 서적에서 찾은 정보들.

그리고 자리에 앉자마자 잠들어버린 저 모습을 보면, 그는 내가 생각하는 종족에 영락없이 맞아떨어진다.

단지 이름뿐만이 아니라 더욱더 확실한 증거가 나오는 바람에 나는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니, 떼지 못했다.

나에게는, 이 학원에 온 진짜 ‘이유’가 있으니까.

굳은 의지로 아예 몸의 방향을 틀어 그를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방향과 자세로 뒤통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자 그 모습을 약간 정신 나간 여자처럼 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 인제니드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나의 괴상행동을 저지하려 나섰다.

“저……저기……, 유이, 아니, 이카르델, 왜 그래?”

“왜?”

내가 뭐? 라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자 황태자 저하께서는 체념의 눈빛으로 한숨을 내쉬며 나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빠르게 중얼거렸다.

“왜냐니. 모두가 너를 바라보고 있는 와중에, 라이칼 드 로렐, 저 애만 거의 맹목적으로 쳐다보고 있잖아.”

“그게 뭐?”

물론, 나도 눈치는 있었던지라 ‘조별실습’이란 말이 펠리아드에게서 나오자마자 거의 동시에 나와 인제니드에게로 물밀 듯이 쏟아지는 시선들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뿐일 뿐이다. 무엇보다, 나는 검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것 같은 아이들과 같이 놀아줄 시간이 없다.

냉정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인제니드가 내 생각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너, 지금 자각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넌 지금 황태자이자 소드 마스터인 나를 이겨버린 유명인사라고.”

“헹.”

그래, 내가 유명해진 것이 다 너 때문이라는 것은 아주 잘 알고 있는 것 같구나.

입가가 저절로 씰룩거리며 분노와 짜증이 동시에 덮쳐오려던 순간, 한눈파느라 잠시 잊고 있었던 교수 펠리아드가 말을 이어서 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론만 말하지. 상급반인 너희들은 대륙의 온갖 잡것들이 모여 사는 숲이나, 던전, 레이드(던전의 한 종류로, 일반 숲이나 던전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 어둠의 종족들이 모여 사는 곳. 이곳에 들어간 모험자는 많았다고 전해지지만 살아 나온 생존자는 대륙의 소드 마스터들 중 1대와 5대밖에 없다고 전해진다.)에 가서 그것들을 퇴치하고 귀환하라는 것일거다, 아마.”

딴 짓 하다가 결론부터 듣게 되었는데, 만날 황궁에서 허구한 날 탈출해서 한 짓거리를 또 하라고 하시네. 흐억.

이럴 거면 괜히 온 건가? 라는 생각을 의심해보며 내가 학원으로 향했던, 단 하나의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자유. 그래, 바로 자유였다. 나도 내가 왜 이렇게 자유를 고집해 왔는지는 모른다. 다만, 나의 몸이, 나의 머리가 너의 길을 찾아 떠나라고, 너만이 할 수 있는 길을 걸으라고 자꾸만 되뇌어준다.

하지만, 이 학원은 내가 생각한 것만큼 그리 자유롭지는 않은 듯 했다. 나는 남몰래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기라도 한 건지 펠리아드가 하던 말을 멈추고 내 쪽을 돌아봐 낮고 큰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이카르델.”

“……네?”

나는 약간 말의 끄트머리를 올리며 우스꽝스러운 발음을 내뱉었다. 아차, 하는 순간 이미 말은 튀어나갔고, 그 뒤로 수습은 불가했으니, 결과는 말 안 해도 뻔했다.

“……후우, 이제 집중을 아예 포기한 것 같군.”

“에……?”

날벼락이 떨어질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하여 검을 생명의 동아줄인 마냥 꽉 움켜쥐고 언제라도 휘두를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놓은 나에게 펠리아드의 한숨 섞인 말이 떨어졌다.

멍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자 펠리아드는 나를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모두를 향해 다시 돌아서서 말했다.

“너희들도 집중을 하지 못하는 것 같으니 한번만 말하도록 하겠다. 지금부터 실습 시작이다. 모두 순간이동.”

“……엥?”

“……네? -우왁?!?”

“끄아악-!!”

“뭐라고요? 꺄악!!”

펠리아드의 말이 끝나자마자 내 곁에 있던 아이들이 이상한 효과음을 내며 하나둘씩 순간이동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신기하고 재미있게만 쳐다보던 나는 문득 이상한 생각으로 고개를 돌렸다.

잠깐만. 근데 왜 나는 순간이동이 안 돼?

인제니드도 사라지고, 내 옆에 앉아있던 라이칼도 모두 사라지고, 마침내 클래스 안에는 나 혼자만이 남아 펠리아드와 어색한 정적 사이에 서있었다.

이 상황이 썩 마음에는 들지 않았던 터라, 나는 잠시 동안의 무거운 정적을 먼저 깨는 방법을 선택했다.

“……당신의 짓인가요? 나를 시험하려고 하는 것 인가, 아니면……단순한 소드 마스터의 대면식인가.”

나는 고개를 까딱하며 다소 빈정거리게 들릴 수 있는 발언을 했다. 그가 내가 소드 마스터인 것을 알고 있다고 가정하면, 이것은 ‘소드 마스터 대 소드 마스터’끼리의 대화이기 때문에 빈정거리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발언이었으므로, 나는 그가 인상을 약간 찌뿌리는 모습을 보았음에도 무시해 버렸다.

“……네가, 여자, 그것도 황녀의 몸으로 최연소 소드 마스터가 된, 그 여자아이인가.”

……그렇네. 역시 내가 대륙의 마지막 소드 마스터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렇다면?”

“흐음, 내가 생각 했던 것 보다는 더 작고, 예쁘게 생겼군.”

음?? 지금 내가 예쁘다고 한 건가?

……잠깐. 그렇다면 예전에 나를 보지 않았을 때는 날 대체 어떻게 생각 한 거야??

문득 기분이 급속도로 나빠져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을 때, 펠리아드의 나직한 경고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제니드 세렌 드라 로이드를 믿는가? 경고하건대, 그를 맹목적으로 믿지는 않는 것이 좋을 거다. 그의 나라는, 언제나 피로 물든 적화(赤花)의 나라였으니까.”

“……그 정도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저는 대체적으로 사람을 믿지 않으니, 그런 점에서는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될 듯싶군요.”

고작 이 말 전하려고 나를 남기셨어? 라는 표정으로 할 말 다 했냐는 듯이 그를 쳐다보자 펠리아드는 나를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들릴 듯 말듯이 나를 뜻하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이상하군. 내가 이 반에 들어올 때 이질적인 느낌이 든 자는 두 명 이었다. 하나는 자네도 알다시피 라이칼 드 로렌.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로 자네였어.”

“……그 말의 뜻은, 제가 인간이 아니고 다른 종족이라는 말씀 이신 가요?”

푸핫, 하며 작게 웃은 나는 말도 안된다는 투로 그의 말에 자연스럽게 대꾸했다.

“이(異)종족은 절대 아니니 걱정 하지 마십시오. 당신을 해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어쨌든, 저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열심히 마물 때려잡고 있는데, 저 혼자 농땡이 부릴 수는 없지요.”

나는 얼른 그가 대꾸하지 못하게 막고 다른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합류하기 위해 순간이동 술식을 아는 만큼 열심히 생각해냈다.

“……됐다, 이동!!”

기쁜 마음으로 대충 술식을 완성시킨 나는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학생들이 있는 좌표평면을 찍어 이동을 시작했다.

나를 이동시키는 빛이 찬란하게 빛나며, 내 모습이 점차 흐려지고 있을 때, 펠리아드가 나를 향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너무나 밝은 빛에 먹혀버린 나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그대로 이동해 버렸다.


*

*

*


한편, 홀로 남은 펠리아드는 유이시아가 사라진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짙어지는 한숨을 푹푹 내뱉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한탄스러운 듯이 중얼거렸다.

“첫 번째 수업의 주제를 바꾸며 내가 다른 이들을 먼저 보낸 이유가 있거늘……. 역시 소문대로 제멋대로인 것이 확실하구나.”

뚜벅, 뚜벅. 천천히 유이시아가 있던 자리로 다가가 그녀가 남긴 분홍빛의 머리카락을 집어든 그는 그녀가 떠나기 전에 보았던 장면을 떠올리며 의문스럽게 중얼거렸다.

“……그것은 분명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유이시아 이샤 르데 루브스카, 너는, 도대체 뭐지?”








작가의 말에 다 담기지 못하여 전합니다.

*유료화중인 5화부터 7화는 시험기간 중에 매주 월요일 마다 풀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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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6-14 21:46 | 조회 : 1,684 목록
작가의 말
레빛

후우, 소설이라는 것은 쓰면 쓸수록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 같아요. 드디어 유이시아의 정체가 조금씩 들어나는 고비를 넘겼네요. 앞으로의 고비는 어떻게 될지...ㅠㅠ 어쨌든 예고대로 오늘부터 3주간 휴재입니다. 시험이 끝나는 7월 둘째주에 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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