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라이칼 드 로렌(1)

Chapter 1. 유이시아 이샤 르데 루브스카

6. 라이칼 드 로렌(1)


입학생 경연 대회가 끝나고 하루 뒤, 배정된 반을 찾으러 중앙 홀에 나가보니 이미 나는 누구나 내 이름을 알고 있는, 황태자보다 더 유명해 진 것 같은 유명인사가 되어있었다.

내가 앞으로 걸어 나가자 모세의 기적이라도 열리는 듯 아이들이 양쪽으로 갈라지고, 홀 중앙에 있는 게시판까지 가는 앞에 넓은 통로가 생겼다.

나를 보며 쑥덕이는 아이들이 태반인 까닭에 무슨 소리를 하는지 조용히 들어봤더니, 역시나 어제 있었던 경합 대회에서 내가 보여준 실력에 대한 얘기들이 태반이었다.

“……쟤가 걔지? 그……”

“황태자 전하를 이긴……”

“특이한 검술을 사용하던……”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나에 대한 소리에 한숨이 절로 새어나왔다.

아, 정녕 나에게는 보통 아이들처럼의 조용한 학원 라이프는 없는 것인가? 행복한 유랑생활을 즐기려 하던 나의 소박한 소망이 이렇게 아름답게 깨지는구나.

평온한 일상을 얻는 것이 뭐 이리 힘든지,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 속에서 생각을 고쳐먹은 나는 검을 제대로 넣고 게시판 앞으로 걸어갔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에라, 나도 이제 몰라!!

신경질적으로 게시판에 적힌 내 이름을 찾아 뒤적이던 중, 나는 무엇인가 이질적인 이름에 종이를 넘기던 손을 멈추고 그 이름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라이칼 드 로렌]

“이 이름은…….”

분명히……, 내가 아는 지식이 맞다 면……이 이름은…….

“뭘 그렇게 뒤적거려? 아직도 이름이 안 나왔어?”

“…으악!!”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갑작스럽게 등장한 황태자 인제니드가 갑자기 등 뒤에서 툭 튀어나온 터라 들추고 있던 종이를 잡은 손을 놓치는 바람에 종이들은 팔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다시 커다란 장부처럼 덮여버리고 말았다.

“…이런, 미안. 나는 상급반 확정인 네가 아직도 네 이름을 못 찾은 줄 알고 찾아주려고 했지.”

지금 그걸 변명이라고 지껄이는 거냐, 이 타국 황태자 자식아.

짜증나는 눈으로 쏘아보자 그래도 제 잘못은 아는 듯 손을 들어 보이며 황급히 변명 같은 사과를 하는 그였다.

도전장을 신청해서 대판으로 한판 싸우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잠재우고 심호흡을 한 나는 결국 이 많은 이름들 사이에서 다시 그 이름 찾는 것을 포기하고 게시판에서 손을 떼었다.

“후우, 어쩔 수 없지. 야, 인제니드. 너 때문에 보던 이름 제대로 못보고 넘겼으니까 반까지 네가 안내해.”

“……역시 뻔뻔한 것도 대륙 최강……”

“아하하, 아직 네가 나한테 덜 잘렸구나. 어디서부터 잘라줄까?”

“절 조심해서 따라오세요.”

역시, 얘는 아직까지도 나를 무서워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내가 아는 그 제드가 맞았다.

흐뭇한 마음으로 로이드 제국의 황태자 전하를 조련한 나는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라이칼 드 로렌……’

내가 [대륙의 역사]라는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너무나 재밌어서 종족 전체의 이름을 외워버렸던, ‘그들’의 후손의 이름들 중 하나.

이 이름은, 내가 생각하는 그자들의 후손에게 주어진 이름일까, 아니면 그냥 그에게 주어진 이름뿐일까.

“……뭔가, 이 학원에 오기를 잘한 것 같아.”

씨익 웃으며 중얼거린 나는 인제니드가 향하는 곳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

*

*


“야, 저기 온다, 와.”

“저 분이 로이드 제국 황태자 전하고, 그 옆에가 그……?”

“그래, 어제 그 여자애!! 검 한번 휘둘렀더니 막 태풍 일고, 대륙의 소드 마스터랑 대등하게 싸웠던!!”

웅성웅성, 나와 인제니드가 반에 들어가자 아이들이 저마다 하고 있던 말을 멈추고 우리 둘을 보며 하나같이 동일한 말만 되풀이 하고 있었다.

이런 현상이 꽤나 재밌기라도 했는지 인제니드는 나를 보며 낄낄 웃으며 놀리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재밌어서 그러는 건지 모를 말을 했다.

“야, 너 정말 황태자보다 유명해진 것 같다. 축하해.”

“……이 상황은 아까 중앙 홀에서의 연속전인가.”

아무래도 일주일간은 계속 지속될 것 같은 이 짜증나는 상황 속에서 하나같이 짜증나게 똑같은 말만 연속으로 하고 앉아있는 아이들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당장에라도 베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여 심한 내적갈등에 빠졌다.

어쨌든 상황을 전후해서 비싸게 주고 다니는 수업은 들어야 했기 때문에, 나는 대충 보이는 아무 자리나 골라잡고 그 위로 쓰러지듯이 엎어졌다.

그리고 그대로 잠들어버린 까닭에, 그 다음에 내가 생각나는 것은, 아마 교수님이 들어오고 첫날인 상황을 고려하여 자신을 소개하는 상황부터일 것이다.

“반갑다, 신입생들. 나는 너희들을 가르칠 대륙의 5번째 소드 마스터, 펠리아드 로더 렌, 본명은 일리아스 레인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너희의 교육만 담당할 뿐이지 안전을 담당하지는 않는다. 이 점은 꼭 기억해 두도록.”

그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의 반응은 저마다 제각각이었다. 대륙의 5번째 소드 마스터라는 것에 감탄하는 아이도 있었고, 대륙의 영웅을 실제로 본다는 것에 황홀해 감격하는 아이도 있었다.

안전을 담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에 뭔가 좀 이상이 있는 듯 했지만 별로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그것보다, 더 신경 쓰이는 말이 있었으니까.

‘대륙 제 5번째 소드 마스터가……저 사람 이었구나.’

펠리아드 로더 렌. 대륙의 다섯 번째 소드 마스터이자, 수년 전 타 대륙에서 넘어온 마귀 ‘카라드’를 홀로 처치한, 대륙의 영웅.

원래 나이는 80대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외모 나이를 바꾸기라도 한 것일까, 겉보기에는 30살 채 되어 보이지 않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소드 마스터가 되기 전부터 그를 존경하던 나로서는 그와 만난 지금 이 순간이 감격적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인제니드 역시 그를 보며 감동의 박수를 치고 있었다.

“자, 이렇게 내 소개는 여기서 끝내고. 최 상급반에 올라온 대단한 실력자들의 이름이나 불러보도록 하지.”

그렇게 모두가 감동을 하고 있을 때, 펠리아드는 밀려오는 감동을 뚝 자르고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다.

출석을 부르기 시작하고 아이들의 이름이 천천히 하나씩 호명되어 가기 시작하자 내가 궁금해 한 것은 오직 하나였다.

‘라이칼 드 로렌……’

이 자가 내가 생각하는 ‘그’종족이 맞는지, 역사 속으로만 보던 생명체를 실제로 본다는 것이 맞는지, 그것만이 궁금할 뿐이었다.

“라간 이츠라, 라이겐 아크릴드, 라이칼 드 로렌.”

-쾅!!

“!!”

내가 나오길 고대하던 이름이 펠리아드의 입에서 나오자마자 문을 부시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학생처럼 보이는 남자가 문 뒤에서 나타났다.

펠리아드는 문짝이 부서졌는데도 경악하고 있는 학생들을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는 듯이 무표정으로 바라보았다가 다시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네는 이름이……?”

“……칼.”

“음?”

“라이칼. 라이칼 드 로렌이라고 합니다.”

“……!!”

그 말에 놀란 것은 나뿐만 아니라, 교수인 펠리아드도 그의 이름과 모습을 보고 놀랍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리곤 무엇인가를 생각한다는 듯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군. 아직도 그 ……이 죽지 않고 살아있을 줄이야…….”

빠르게 중얼거린 말 뒤로 라이칼의 표정이 같은 속도로 굳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나의 생각을 확신으로 굳혔다.

‘어쩌면, 정말 ‘그들’의 후예일지도…….’

신기한 눈으로 그를 쳐다본 나는 문득 나에게로 향하는 한 쌍의 맑은 붉은색 눈동자가 신경 쓰여 고개를 돌려 인제니드를 향해 돌아보았다.

“할 말이 있으면, 부담스럽게 쳐다보지 말고 말을 해, 말을.”

“음, 어……그게.”

그가 평소답지 않게 우물쭈물 거리며 말꼬리를 길게 늘였다. 뭐지?

“너……. 이카르델이란 이름, 괜찮겠어?”

“음??”

그야 당연하지. 아무렴, 유이시아 라는 이름보다는 낫잖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의 입에서 충격적인 사실이 튀어나왔다.

“물론 나도 네 생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교수님도 소드 마스터잖아. 이 얘기,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지?”

“……어? 헉……!”

끄아, 맞다. 지금 내 이름, 소드 마스터로서 부여받은 새로운 이름이었지……!!

그렇다면 교수님은 내가 소드 마스터인 동시에 루브스카 제국의 황녀라는 것도 알게 될텐데……!!

대륙에서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사람은 20명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소드 마스터가 된 자들은 다른 소드 마스터들의 이름을 외우고 있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 될 정도로 사이가 견고했다.

하지만 나는 좀 이례적인 경우로 내가 최연소 소드 마스터가 되었을 당시 아버지가 강제 감금을 시켜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이름만 간신히 종이로 돌리고 얼굴은 한 번도 보지 못한 꼴이 되었었다.

그런데, 그 만나지 못했던 소드 마스터를 학원 교수로 보게 되다니!

그렇게 되면 내가 우거지로 이 이름을 써서 이 학원에 들어온 이유가 없잖아!!

내가 이곳에 온 본래 목적이 화목하게 깨지는 소리가 마치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며, 나는 그야말로 초 절정 절규 상태에 빠졌다.

그 무렵, 내 이름을 포함한 E자로 시작하는 아이들의 이름이 불리기 시작했고, 상황은 더욱 치달려 기어이 나의 이름이 불려졌다.

“인제니드 세렌 드라 로이드. 흐음, 제국의 황태자……. 그리고, 이카르델. 음? ……이카르델?”

“여, 여기요.”

내가 자수를 하듯이 손을 바들바들 떨며 가만히 들자, 펠리아드의 두 노란 눈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 들고 있던 고개를 가만히 숙이자 펠리아드는 나를 쳐다보던 시선을 거두고 남은 이름들을 모두 불렀다.

“흐음……, 이제 끝났군. 라이칼, 자네는 저기 이카르델 양 옆에 앉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이름을 부르기 끝마친 펠리아드는 그때까지 그의 곁에 서있던 라이칼의 자리를 내 옆으로 선정해 주었다.

비척비척 걸어서 내 옆에 착석한 그를 빤히 쳐다보던 나는 뒤이어 들려오는 펠리아드 교수의 말에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첫 번째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당부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우선, 이 학원은 들어올 때부터 타 종족을 허용했기 때문에, 타 종족들 간의 싸움이 벌어질 수 있다. 그 점을 염두 해 두도록.”

저 말은, 이 학원에는 눈치만 못 챘을 뿐, 많은 이(異)종족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인가?

새삼 두근두근해 지고 있을 때, 그보다 더 내 눈을 반짝이게 만든 마지막 말이 들어왔다.

“첫 번째 수업을 시작하자면……, 하아, 나는 정말 싫어하는 활동이지만, 조별 실습이다.”

조별 실습??

*덧

유이시아 이샤 르데 루브스카(이카르델 로더 렌) / 19

루브스카 제국의 제 1황녀.

15살에 소드 마스터가 된 최연소 여자 소드마스터. 1화에서는 그녀가 검술을 시작한 계기가 아버지인 황제 때문이라고 나왔지만, 사실 그녀가 검을 잡고 소드 마스터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따로 있다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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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6-08 21:38 | 조회 : 1,910 목록
작가의 말
레빛

^^ 오늘 영어듣기평가 했는데 아름답게 망했어요ㅋㅋㅋ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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