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영원한 족쇄를 끊다

Chapter 1. 유이시아 이샤 르데 루브스카

3. 영원한 족쇄를 끊다



자유여행이라는 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루나의 얼굴에서는 다양한 표정이 나왔는데, 짐 싸는데 정신이 팔려서 쳐다보지도 않고 있던 내가 흘끗 쳐다볼 정도로 재미있는 표정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있었다.

드디어 황녀님이 그토록 원하시던 황궁 탈출을 했다고 좋아하다가, 이제 황녀님을 못 뵈는 것이냐고 울기도 하다가, 기간이 1년 동안이라는 말에 황제폐하가 너무하신다는 투로 화를 냈다.

이제는 황녀님의 첫 여행을 기념해서 맛있는 간식거리를 먹자고 연회장으로 뛰쳐나가려고 준비하는 루나를 웃으며 바라보던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당장에라도 뛰어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그녀를 저지했다.

“아냐, 됐어. 안 먹어도 돼.”

“황녀님, 첫 여행이시잖아요!! 장거리 이동을 하면 고단하실 것이라 구요!! 이럴 때일수록 많이 먹어 두셔야 해요!!”

하하, 내가 숲속을 들짐승처럼 뛰어다닌 것이 어연 8년인데, 그 정도 장거리 이동 가지고 고단하겠니.

의미 없는 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한 나는 다시 짐을 싸기 위해 쌓아놓았던 거대한 기사로서 필요한 옷들을 쌓아놓은 더미들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옷들을 아무 생각 없이 던져 넣고 있을 때, 루나는 투덜투덜 거리면서도 나의 1년 동안의 자유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듯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내 옆으로 와 이불을 정리했다.

대충 필요한 필수품만 가방으로 쑤셔 넣고 나자 더 이상 할 것이 없어진 나는 여전히 이불을 정리하며 주절주절 말하고 있는 루나를 보며 하품을 하며 말했다.

“저, 루나, 지금은 좀 자고 싶은데. 비켜줄 수 있을까?”

“아, 당연하죠, 황녀님.”

“황녀님이 아니라 기사님.”

루나의 당연하다는 말 중에서 ‘황녀님’을 ‘기사님’으로 고쳐준 후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앞으로의 계획을 곰곰이 생각하던 나의 뇌를 가득 채운 생각은 단 한가지였다.

우선, 나와 1의 연관성도 없고, 인연도 없었던 것 같던, 루브스카 제국을 떠나는 것.

그리고, 떠난다면,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순간적으로 많은 목적지가 떠올랐지만, 그 많은 목적지들 중 한곳을 콕 집어 가기로 결정하기 전, 나는 하루 동안 숲속에서 마물을 때려잡다가 가기 싫었던 황태자의 탄신 연회에 억지로 끌려가서 뜻밖의 원하던 바를 이루어 냈다는 대단한 기록을 세워, 몸이 고단했던 지라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

*

*


“으아, 몸이 뻐근해.”

-콰앙!

“에……?”

다음날 아침, 어제 무리한 몸 때문에 쑤시는 온 몸을 떠안고 간신히 일어난 나는 물을 마시며 루나에게 먹을 것을 부탁하러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티타임 용 탁상을 향해 비척비척 걸어가던 도중, 갑작스럽게 걷어차진 나의 방문을 멍청한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화난 것 같기도 하고, 울먹거리는 것 같기도 한 유이시넬과 유이시라를 맞이했다.

일어나자마자 동생들과의 감격스러운 재회(?)라니. 너무 감동적인데.

아니나 다를까, 어벙하게 마시던 물을 도로 물 컵으로 토해내는 나를 보자마자 두 동생들은 반짝이는 아몬드 모양의 두 초록색 빛깔의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단 채 달려들었다.

“흐아앙. 언니, 너무해요. 가뜩이나 보기 힘들었는데, 어제 그런 말씀을 하실 줄이야…….”

응, 갑자기 황녀 그만둔다고 말해서 나 자신도 놀랐어.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한 거예요? 언니가 기사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황태자 탄신 연회에서 대형 사고를 칠 줄은……전혀 몰랐어요.”

엉, 나도 몰랐다. 유이시라, 네가 말하는 그 탄신 연회의 주인공 놈이 내 속을 긁어서 말이지.

어렸을 때부터 그랬지만, 나는 공과 사가 철저한 냉철인간이었다.

아무리 피가 섞인 동생이라도,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아닌 것은 아닌 것이었다.

고로, 이런 나는 누구든지 건드려봤자, 피만 보지 그보다 덜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행히, 나의 두 여동생들은 어머니와 같이 심성이 착하고 마음이 여려서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지만.

문제라면, 황태자 놈이랄까.

속으로 썩어가는 표정 관리를 철저히 하며 하하 웃고 있던 나는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두 동생을 가까스로 품속에서 떼어내며 단호하게 말했다.

“자, 두 아름다운 레이디들, 기사가 옷을 갈아입을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시겠습니까?”

내가 오랜만에 장난스럽게 유넬과 유라에게 장난을 치자 그들은 꺄르륵 거리며 마치 6살의 소녀라도 된 듯이 재미있어 하였다.

“알겠습니다, 유이시아, 아니, 이카르델 경.”

유이시넬의 만족스러운 대답이 들려오고, 나는 동생들이 나가는 모습을 끝까지 바라본 후에야 드레스 룸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평소에 궁에서 입어야 한다고 어머니인 황후폐하가 그리도 고집하시던 프릴과 레이스가 잔뜩 달린 드레스를 집어 던지고, 기사 제복을 집어든 나의 입가가 묘하게 꼬리를 올렸다.

아, 어떡해. 너무 좋아서 날아갈 것 같아.

묘한 들뜸과 행복감에 주체할 수 없는 기분을 간신히 가라앉힌 후 간단한 먹을거리로 아침을 생략한 나는 어제 잠들기 전 챙겨놓은 몇 되지 않는 짐을 들고 바로 아버지인 황제폐하를 찾아뵈러 중앙 황궁으로 달려갔다.

콰앙-!

의기양양하게 문을 젖히고 들어간 나의 시야에 누가 봐도 화기애애하게 단란한 가족식사를 하고 앉아계시는 황제폐하와 그 일동들이 보였다.

나는 놀란 그들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태연자약하게 말을 올렸다.

“황제폐하,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루브스카 제국 제 1황녀 유이시아 이샤 르데 루브스카, 이카르델 로더 렌으로서 인사드립니다.”

“……그래, 짐까지 다 들고 온 것을 보니, 정말 떠나는 것이로구나.”

“당연하지요. 저는 저에게 다가온 기회를 내칠 만큼 그리 멍청하지 않거든요. 그리고, 이 지긋지긋할 정도로 답답한 황궁을 떠나고 싶기도 하고요.”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비꼬듯이 황궁이 싫다는 뜻을 내포하여 말하였다. 아버지, 아니 황제폐하는 내가 하는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시고 묵묵하게 있으시더니, 곧 웃으며 나의 여행이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그렇구나. 그럼, 조심해서 다녀 오거라.”

“황공하옵니다, 폐하. 폐하의 은혜에 힘입어, 몸 조심히 다녀오겠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는 생긋 웃고 허리를 90도로 꺾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인사를 했다. 저 멀리서 황태자의 썩은 표정이 보였지만, 아름답게 무시하고 갈 길 바쁜 내 길을 따라 황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나가기 위해 들어왔던 문을 다시 열어젖혔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나는 항상 무겁기만 하던 발걸음을 한층 가벼워 진 것처럼 느끼며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모든 짐을 들고 차츰차츰 황궁에서 멀어졌다. 황궁에서 멀어질수록, 나의 뜨겁게 달구어진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뜨거운 심장이 나에게 물었다.

너는, 1년이 지나면 황제의 약속대로 황궁으로 돌아올 것인가?

나의 대답은 이러했다.

“……미쳤냐. 내가 이 지옥 같은 황궁에 다시 돌아오게.”

지옥과 같은 고통 속에서 보낸 19년의 세월을 떠올린 나는 진저리를 쳤다. 죽어도 돌아오고 싶지 않은 곳에 돌아오라고 하는 것은, 결국 나에게 죽으라는 소리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문득 나의 머리에 걸려있던 황녀를 상징하는 작은 티아라가 손에 잡혔다.

나는 애처롭게 대롱대롱 달려있던 그 티아라를 죽 빼냈다. 티아라 속에서 한 알 한 알 빛나고 있는, 값비싼 보석들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들을 아무 감정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이내 그것을 가까이 있던 연못에 빠뜨려 버렸다.

“미안해요, 아버지. 당신과의 약속, 안 지킬 것 같아.”

왜냐하면, 나는 이제 영원히 이곳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거든.

이제, 나도 다른 사람처럼, 나만을 위해 살아보고 싶어.

그럼, 영원히,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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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6-03 19:21 | 조회 : 1,732 목록
작가의 말
레빛

흐어어어 당분간은 못 올릴수도 있겠네요... 방금 수련회 갔다 와서 힘들어요, 무진장ㅠㅠ - 참고 : 4화는 네이버 소설란에 올라가는 대로 무료화 될 예정입니다. 쉽게 말해서 미리보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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