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뒤처리는 나의 몫

Chapter 1. 유이시아 이샤 르데 루브스카

2. 뒤처리는 나의 몫



“나, 유이시아 이샤 르데 루브스카, 황녀를 그만 두겠습니다!”

“……!”

나의 발언에, 황제 곁에 있던 유이시스가 눈에 띄게 움찔하며 조금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표정 관리가 저리도 안 되다니. 아직, 많이 어리군.

그런 그를 코웃음을 치며 바라본 나는 다시 황제에게로 눈을 돌렸다.

“제국의 아버지이신 황제폐하, 황태자 전하의 호위무사의 자격을 주신 점, 매우 감읍하옵니다. 하지만, 저는 황녀가 아닌, 한 사람의 ‘기사’로서, 영광스럽지만 한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만 하는 호위무사가 아닌, 온 대륙을 둘러다니며 폭 넓은 여행을 하는 진정한 기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황녀가 아닌, ‘기사’로 머물고 싶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어차피, 제국의 골칫덩이이자 무(武)의 길을 걷는 자는, 제국의 건국이념과는 훨씬 동떨어진 이야기일 테니까요.”

나는 일부러 ‘제국의 골칫덩이’와 ‘무(武)의 길을 걷는 자’를 강조하여 말했다. 역시나, 황태자의 얼굴이 점차 구겨지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흐음, 조금 더 자극 좀 해볼까.

“……그리고, 아시다 시피 제 머리칼 색과 눈동자 색은, 황위계승권과 관련되어 있어 황태자 전하께서 못마땅해 하시잖습니까.”

이것이, 마지막 한방.

황태자의 얼굴이 보기 민망해지도록 시뻘게졌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속으로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황태자. 아무리 네가 나보다 우위라고 생각할 지라도, 넌 나보단 아직 어려.’

상대방이 자신의 감정과 마음을 알지 못하게 하려면, 항상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은 기본.

‘제국의 황태자가 저래가지고, 나라가 잘 돌아가기나 하려나 모르겠네.’

제국에 대한 진심어린 걱정이 들어 혀를 끌끌 차던 도중, 제 분에 못 이겨 씩씩거리는 황태자가 나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소리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황제폐하!! 이건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어느 제국의 황녀가 자신의 황녀 자리를 포기하고 기사의 길로 접어든다고 합니까!!”

“그만.”

“폐……!”

“그만하거라. 이것은 유이시아의 결정. 짐은 황녀의 결정을 존중하겠다.”

“……! 그런……!!”

“감사합니다, 폐하.”

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유이시스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였고, 나는 승리의 미소를 내지으며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지었다.

“이 시간부터, 제국의 1황녀였던 유이시아 이샤 르데 루브스카는 제국의 황녀 자리를 버리고, 철저한 기사 ‘이카르델’로서 살아갈 것을 모든 기사들을 심판하는 신, 신의 검(劍) 앞에서 맹세 합니다.”

언젠가, 모두의 앞에서 외우고 싶었던, 너무나 외우고 싶어 하루에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마물을 잡으며 수백 번도 외었던 ‘기사의 전언’.

그 말을, 가장 먼저 앞에서 외우고 싶었던 아버지의 앞에서, 외어봅니다.

벅차오르는 가슴을 부여잡고 천천히 시작된 기사의 전언은, 시작한지 2분이 채 되지 않아 평생 기사로서의 삶을 약속하는 것으로 끝났다.

문득, 옛날에 내가 진짜 아바마마의 앞에서 이 전언을 외우게 된다면, 그 후에는 어떻게 될까? 라는 소녀다운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19살, 전언을 끝마치고 평생을 기사로 살아가야 하는 지금, 나는 그야말로 아무 생각이 없다.

연회장 내는 내가 외운 전언의 여파로 매우 조용했다.

모든 귀족들의 시선은 나에게로 쏠려 있었다.

나는 그 시선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여유롭게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부터, 저를 황녀가 아닌 한 사람의 기사로서 대해 주십시오, 폐하.”

저 멀리서 어머니의 통곡 소리와, 두 여동생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지만, 그것은 이제 더 이상 내 알바가 아니다.

“그래……, 결국, 뜻대로 기사가 되었구나.”

“…….”

“1년.”

“……네?”

갑작스러운 1년이라는 소리에 멍청한 대답을 하고 만 나는 그 다음 이어질 말이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는지 설마, 하는 심정으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단, 1년만이다. 황녀인 네가, 오로지 완전한 기사로서 생활할 수 있는 시간 말이다.”

“하지만, 폐하, 그건!!”

“유이시아. 내가, 골칫덩이라는 이유로 제국의 제 1황녀를 폐위할 정도로 모진 황제는 아니다. 어차피 네가 이 나라를 떠나려고 하는 이유는 단 하나가 아니더냐?”

“…….”

내가 이 나라를 떠나려고 하는 이유…….

자유. 자유였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염원, 검으로 시작한 나의 인생의 도착점.

그리고, 또 다른 인생의 시작.

그리고, 황위계승권을 포기하기 위해서.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황위계승권을 상징하는 머리칼 색과 눈동자 색으로 인해 여러 대신들로부터 무언의 압박이 들어 왔었다.

또한, 아직도 제 분을 이겨내지 못하고 씩씩대고 있는 지랄 맞은 황태자도 나에게 별 미친 짓을 해대기 시작했다.

검술 수련을 하고 있으면, 거기를 또 따라와서 나를 따라한답시고 검을 몇 번 휘두르다가 제 검에 제가 맞고는 내 탓이라며 울먹거리지를 않나.

내가 공부를 한다고 의자에 앉아 책을 보고 있으면 갑자기 물을 들고 와서 얼쩡거리다가 책에다가 물을 끼얹지를 않나.

그런 일을 겪고, 나는 황위계승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짜증나는 일인지 몸소 체험하며 느꼈다.

고로, 이 일은 저 동생새끼가 뭔 일을 또 하려고 할 때, 내가 먼저 이 자리를 포기해 버리면 끝난다!

그런데, 그 기간이, 고작 1년?

나의 자유가, 내가 인생을 바칠 각오로 시작한 검술에 대한 보상이, 고작 1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를 바라보는 귀족들이 너무 많았다.

지금은, 고개를 숙여야 한다.

“……알겠습니다. 폐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약속대로, 1년 후에는 황궁으로 돌아오도록 해라.”

“……그리 하겠습니다.”

“이제 되었구나. 이 연회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여, 연회를 즐기도록 해라!”

“황제폐하, 황태자 전하 만세!!”

“제국과 황실에 평화를!!”

“……후우.”

내가 겨우 끝났다는 듯한 한숨을 쉬며 속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계산하고 있을 때, 예상대로 언제 화를 냈냐는 듯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향해 다가오는 동생 놈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누님, 잠시만 저 좀 보시죠.”

“응, 그래. 지금 보고 있잖아.”

원래대로라면 황태자가 황녀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어 하대를 하지만, 나는 황위계승권을 가지고 있는데다 제국의 1황녀이기까지 했으니 황태자는 나에게 섣불리 하대를 할 수 없다.

더구나 아버지께서 나에게 황녀의 작위를 빼앗아 가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아직도 이 제국의 황위계승자 2순위였다.

하지만 1년이라는 적은 시간일 지라도 그때동안의 자유를 보장받은 나는 한껏 들뜬 마음으로 짜증나는 동생의 분풀이를 모조리 들어줄 심산으로 산뜻하게 대답했다.

“왜? 지금 보고 있으니, 말해.”

“후우……, 잠시만 조용한 곳으로 같이 가시죠.”

나는 그의 요구대로 선선히 연회장 밖으로 나와 가장 조용한 방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방문이 닫히자마자 생글생글 웃던 얼굴의 미소는 싸하게 걷히고, 차가운 얼굴의 시린 눈동자만이 나를 증오한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자유를 위해 떠난다는 나를 무작정 비웃기 시작했다.

“하, 자유를 위해 제국을 떠난다고? 정말 몰상식하기 짝이 없군. 제국의 1황녀라는 이름이 아깝다. 그렇게 이기적이어서야. 과연 제국의 황위계승자라고 할 수 있을까.”

“…….”

“그리고, 뭐? 검사?? 하!! 여자의 몸으로, 과연 어디까지 할 수 있으려나, 정말 기대가 되는군. 제 아무리 소드 마스터라고 하여도, 그 몸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 거라고 생각……!!”

“입 닥쳐.”

앞의 황녀 어쩌고는 들어줄 만 했다.

하지만 기사로서의 나를 모욕하는 것은, 들어줄 수 없지.

순식간에 근접한 거리로 다가선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칼을 빙그르르 돌려 그의 목에 가져다 대며 속삭였다.

“조심하렴, 짜증나는 동생아. 언제까지 내가 네 이런 어리광을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한심하기 짝이 없구나. 그 시간에, 네가 조금이라도 잘하는 학문이라도 더 해야 하지 않겠니?”

“……!!”

“자신의 황위 계승권을 빼앗을까봐 전전긍긍하여 누나를 자신의 호위무사로 삼을 생각을 하다니, 제국의 1황자라는 이름이 아깝구나.”

그에게 받은 말을 똑같이 곱씹어주며, 나는 살기를 띤 미소를 지었다.

“나와 똑같이 생긴 남동생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다만, 적당히 나대렴. 내가 한번 꼭지가 돌면, 다 쓸어버릴 수가 있어. 목숨 줄이 아까우면, 행동은 똑바로.”

“……이익!!”

“어머? 꿈틀거려?? 몇 군데 잘리고 싶니??”

나에게로부터 악담을 선사받은 황태자는 분한 듯 얼굴을 씰룩이며 반박하려고 했지만, 나의 싸늘한 마지막 말에 다시 얌전해졌다. 물론, 표정은 아직도 씩씩거리고 있었지만.

나는 생각을 고쳐먹고 얼른 1년 동안의 긴 여행 준비를 하기 위해 나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에이, 됐다. 어차피 1년 동안 보지도 않을 애 가지고 이게 뭔 난리냐.”

어차피 말로 해서 안 듣는 동생이 아니고 짐승 새끼인 것 같은 얘는 내버려 두고, 난 내 갈길 가련다!

들어올 때보다 더욱 상쾌하게 방을 빠져나온 나는 내가 지을 수 있는 최대 함박웃음을 지으며 연회장을 제치고 나의 방으로 돌아왔다.

연회 중간에 빠져나온 나를 보고 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루나가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다.

“유이시아 황녀님? 탄신 축하 연회는 어쩌시고……?”

“이카르델. 이제부터 1년 동안은, 난 황녀 유이시아가 아닌 기사 이카르델이야.”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발그레진 얼굴로 구석에 처박혀 있던 거대한 가방을 들어올렸다.

그 모습을 본 루나는 경악을 금치 못하며 나를 향해 의문 투성이라는 투로 소리를 질렀다.

“화, 황녀님?? 뭐하시는 거예요?!”

“보면 몰라? 짐 싸잖아.”

“짐이요? 어디 가세요??”

심드렁한 나의 반응에 더욱 고개를 갸우뚱하는 루나를 향해서, 나는 쐐기를 박았다.

“자·유·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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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5-29 14:54 | 조회 : 1,823 목록
작가의 말
레빛

하하 이제 시험이 한달남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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