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 1. 황녀를 그만두다

Chapter 1. 유이시아 이샤 르데 루브스카

1. 황녀를 그만두다



“황녀님, 황녀님!! 아이참, 또 어딜 가신 거야?!”

“황녀님이 사라지셨어!! 빨리 황녀님을 찾아라!!”

“유이시아 황녀님!! 아, 이런.”

모두가 나를 황녀라 칭한다.

모두가 나를 찾는다.

단지, 제국의 제 1황녀, 유이시아 이샤 르데 루브스카 이기 때문에.

“황녀님, 여기 계시면 어떡해요!! 오늘은 동생 분이신 황태자 폐하의 15번째 탄신일이잖아요!!”

나에게 한 번도 재촉을 해 본적이 없던 루나가 저렇게 다급하게 날 찾는 것을 보니, 오늘이 황태자 폐하의 15번짼지 16번짼지 하는 탄신일이 맞긴 맞는가 보구나.

“쳇.”

황태자 탄신일? 그딴거, 알게 뭐야.

“내 생일도 아닌데, 내 뒤꽁무니나 졸졸 따라다니는 모자란 동생 탄신일을 내가 왜 축하……으악!!”

“어이구, 말버릇 하고는.”

어느 샌가 시녀장과 함께 나타나 나의 포획 현장을 여유롭게 감상하고 계시던 어머니이자 제국의 황후, 로아첼 이샤 루데 루브스카가 나의 등짝을 거세게 후려쳤다.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등장에 조금은 놀란 지라 자꾸만 빠져나오려는 눈물을 삼키며 아린 등을 살살 쓰다듬으며 어머니의 등장에 의문을 품었다.

“어머니, 여긴 어쩐 일로……”

“어머, 왜긴요. 제국의 빛나는 제 1황녀, 유이시아 이샤 르데 루브스카를 데려가려고 왔지요.”

갑작스러운 등장과 마찬가지로 갑작스러운 존대어는 물론, 평소에 하지 않던 생글생글 웃기 스킬을 시전하고 계시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든 나의 생각은, 단 하나였다.

아, 어머니가 드디어, 나를 잡으러 오시는구나.

저 표정, 저 말투.

저런 행동은 극비리에 알려진 ‘제국 황후의 황녀 잡기’에 사용되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나에게 전하려는 말, 말 안 해도 알겠다.

‘동생의 생일이니 제발 조용히 따라와라.’

하아.

저절로 한숨이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사실, 어머니가 이렇게 사정사정을 해서 나를 데려가려고 하는 데에도 사정이 있긴 있었다.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난 제국 내를 통틀어 가장 골칫덩어리 황녀였으니까.


*

*

*


유이시아 이샤 르데 루브스카.

문(文)의 나라, 루브스카 제국의 제 1황녀.

나에게 달린 수식어는 다양했다.

골칫덩어리, 천방지축, 그 밖의 모든 안 좋은 수식어란 수식어는 다 나의 것이었다.

궁 안에서 책을 껴안고 공부하는 것보다 밖에 나가서 뛰어 놀기를 좋아하는 나는 어릴 적 나의 학문을 책임지는 제국의 대신들에게 비난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학문을 중요시하는 제국의 황녀가, 공부는 하지 않고 망나니처럼 뛰어놀기만 한다고.

그 말을 들은 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수치스럽고 부끄럽고 여아가 지켜야 할 도리인 얌전하고 조숙하게 지내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어이가 없어서.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대신들에게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

진짜, 어이가 없어서.

내가 황녀로 태어나고 싶어서 황녀로 태어났냐??

속에서는 부글부글 용암이 끓어올랐지만, 꾹 참고 그 에너지를 내가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하던 검술에 바쳤다.

나의 천방지축 행동을 어떻게든 저지해보려던 아버지인 황제 아델리스 이샤 르데 루브스카는 모범 대신 30명을 투입시켜도 도저히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 나의 행동에 두 손 두 발을 들고 대신 검술 선생을 붙여주었다.

내가 난생 처음 검을 잡아본 그날, 나는 나를 가르치려 궁에 찾아온 검술 선생 10명의 검을 모두 부러뜨려 버렸다.

나도 어떻게 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때의 나는 아버지의 마지막 압박인 이 사람들을 이겨야한다는 압박감에 검과 내가 하나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뿐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검술 선생들은 이런 나를 몹시 칭찬하며, 제국뿐만 아니라 전 대륙을 통틀어 20명 채 되지 않는 소드 마스터의 길을 걸어도 되겠다고 권유했다.

당시 소드 마스터가 되기까지 그리 힘들다고 느껴지지 않았던 나는 소드 마스터의 길을 걷기 위해 그날부터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오로지 수련에만 집중했다.

그때 수련을 한답시고 허리 끝까지 내려오던 분홍색 머리카락을 가슴께까지로 잘라버려 어머니의 통곡소리를 들었었지, 아마. 뭐, 지금은 어머니의 협박으로 다시 길렀지만.

그리고 그 수련이 내가 검을 처음 잡았던 11살 때부터 시작하여 4년 후. 나는 제국과 대륙을 통틀어 최단시간에 최연소로 소드 마스터가 되었다.

소드 마스터로서, 나의 이름은 이카르델 로더 렌.

답답하고 무겁기만 한 제국의 제 1황녀의 이름인, 유이시아 이샤 르데 루브스카보다 훨씬 멋지고, 근사하고, ‘소드 마스터’로서의 자격이 주어진, ‘렌(제국 언어로 ’칼‘이라는 뜻)’이라는 부명.

검은 나의 친구, 검은 나의 인생.

내가 검을 처음 잡았을 때부터 시작된, 나의 운명.

검을 잡기 시작하면서 생긴 나의 소박한 꿈은,

언젠가, 모든 것을 내던지고 나의 길을 찾아 다른 제국으로 떠난다는 것.

“유아, 다 왔구나.”

“…….”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황궁 내 위치한 거대한 연회장이었다. 나는 보기만 해도 숨 막히는 화려한 샹들리에와 번쩍거리는 우아한 드레스와 연회복을 입고 있는 대 귀족들을 바라보며 짜증스럽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국의 어머니, 황후 로아첼 이샤 르데 루브스카님이 드십니다.”

“황후마마,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오랜만에 뵈니 미모가 더욱 빛나 보입니다.”

“황후마마와 제국에 영광을!”

어머니의 등장을 알리는 소리에 여기저기서 인사의 말이 터져 나왔다. 귀족들만 있다가 황족이 등장하니 조용하던 연회장 안도 금세 시끄러워졌다.

“제국의 딸, 제 1황녀 유이시아 이샤 로데 루브스카님이 드십니다.”

“……유이시아? 아아, 제국 제 1황녀가, 저분이신가?”

“……제국 1황녀? 그간 연회에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더니, 그래도 동생인 황태자 전하의 탄신 파티에는 얼굴을 보이는군.”

“흐음, 황후님을 닮아서 그런가, 얼굴은 제법 반반하군. 하지만 전체적인 것은 여자라는 것만 빼면 황제폐하를 쏙 빼다 박았군.”

어머니의 등장과 사뭇 다른, 안 좋은 쪽의 웅성거림이 나의 귀를 세게 후려쳤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 웅성거림과 반응이 정상적이었다.

그들의 말대로, 나는 연회란 연회는 한 번도 참석해 본 적이 없으니까.

또한, 내가 솔선수범하여 열심히 퍼뜨려 놓은 ‘제국의 최대 골칫거리 황녀’라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을 테니까.

사실, 그간 아바마마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또 나의 학문을 넓히기 위해 검술을 시작했던 11살 때부터 또한 학문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에, 나의 지식은 웬만한 대신들의 학문실력을 능가하면 능가했지, 결코 뒤처지지 않는 실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4년의 세월은 내 성격만큼은 바꾸어 주지 않았는데, 그리하여 나의 궁에 머무르는 시녀들은 모두 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 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다소 무례할 수도 있는 발언에 화가 나지는 않았지만, 나를 모욕하는 말이 나올 때에는 가차 없이 베어버리기 위해 숨 막히게 조여 놓은 드레스 아래 다리에 다소 작은 검을 묶어놓았다.

물론, 부모님이신 황제, 황후폐하와 동생들을 제외하고, 대신들 중에서도 나의 검술을 맡았던 지도 선생을 제외하고는 그 어느 누구도 내가 제국의 6번째 소드 마스터라는 것을 몰랐다.

아버지인 황제폐하의 명으로 황녀가 소드 마스터라는 사실을 극비로 숨겨놓았기 때문이다.

그래, 계속 그렇게 나대봐라. 제국의 황녀가 아닌, 제국의 소드 마스터로서 너희들 목을 죄다 따 줄 테니.

그런 생각으로 ‘본격 접대용 웃음’을 억지로 지어내며 속으로는 이를 갈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내 쪽으로 인사를 건넸다.

“황녀님,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하르텐 공작가의 장남, 루이스 하르텐 이라고 합니다.”

“아…뭐……, 네. 반가워요, 루이스 경.”

“그간 제국 제 1황녀께서 어떤 분이신지 궁금하여 궁중 연회에는 계속 참석했지만, 도통 보이시지 않던데, 동생 분이신 유이시스 황태자 전하의 탄신일에는 오셨군요. 직접 뵈니 그 미모에 눈이 안 뜨일 지경입니다.”

뭐야. 눈이 안 뜨여? 나 못생겼다고 지금 간접적으로 비꼬는 거냐?

그리고, 왜 계속 내키지도 않는 아첨을 하고 있어?

왜 나한테 말 걸고 난리야? 라는 표정으로 째려보며 떨떠름한 목소리로 간신히 대꾸하는 것을 못 알아들을 정도로 하르텐 가문이 멍청한 가문이었나.

하르텐 가문은 7대에 걸쳐 재상을 배출하던 명문가 집안인데, 어쩌면 이번 대에서 그 막이 내릴지도 모르겠군.

오직 제국의 건국이념답게 문(文)만을 습득하며 철저히 무(武)를 배제한 것으로 유명한 가문, 하르텐 가(家).

철저한 문(文)인인 그와 달리 철저한 무(武)인인 나는 나에게 그 어떤 ‘정치’에 관련된 사교계식 아첨과 말, 행동들이 오가는 것을 치가 떨리게 싫어했다.

속으로만 분노를 삼키며 그의 말을 흘려듣고 있을 때 쯤, 이 자리를 벗어날 수 있도록 만들어준, 하지만 나로 하여금 이 자리에 오게 만든 장본인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제국의 아버지, 황제폐하 아델리스 이샤 르데 루브스카님이 드십니다. 제국의 아들, 제 1황자, 황태자 유이시스 이샤 르데 루브스카님이 드십니다.”

“황제 폐하와 황태자 전하께 영광을!! 제국에 영광을!!”

“황태자 전하, 탄신을 축하드리옵니다!!”

“아……고맙소, 다들.”

귀족들의 환호를 받으며 여유 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던 동생이자 황태자인 유이시스는 구석에서 나를 향해 계속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는 하르텐 가문의 장남과 나를 발견하자 내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다가왔다.

‘안돼. 저리 가!! 니가 오면 내가 더 골치 아파진단 말이야!!’

속으로 절규하는 나를 가볍게 무시하고 유이시스가 나와 근접한 거리로 다가서는 순간, 연회장 문을 지키고 있던 시종이 또 다른 황족의 등장을 알렸다.

“제국의 딸, 제 2 황녀 유이시넬 이샤 르데 루브스카님이 드십니다. 제국의 딸, 제 3 황녀 유이시라 이샤 르데 루브스카님이 드십니다.”

화려한 미모를 뽐내는 나의 두 여동생들이 도착하자, 유이시스의 발걸음이 잠시 멈추어 두 황녀들이 있는 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아버지를 닮아 분홍색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를 가진 나와 달리, 두 여동생들은 제국의 여신이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웠던 경국지색 어머니의 탐스러운 벌꿀색 풍성한 머리칼과 에메랄드 빛 눈동자를 지녔다.

그 둘의 등장과 동시에 거의 모든 귀족들의 자식들 중 공자들의 은밀한 시선이 동생들에게 닿았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나는 재빨리 소드 마스터답게 기척을 숨기며 은밀한 곳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 꼬리는 얼마 안가 동생들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목덜미가 붙잡히고 말았다.

“유이시아 언니, 오랜만이에요.”

“흐윽……, 그래.”

‘젠장……잘 숨을 수 있었는데…….’

꿀을 바른 듯한, 완벽한 소녀의 목소리에 모든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작은 신음소리를 내며 슬픔을 삼키는 나를 향해 함박웃음을 짓고 다가온 제국 2황녀이자 나의 동생인 유이시넬은 나를 향해 가까이 오자마자 나를 덥석 안고 매달려 떨어지지 않았다.

“꺄아, 언니!! 언니는 같은 궁에 있어도 당최 볼 수가 없네요.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요.”

으아,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어릴 때부터 나를 너무나 좋아해 떨어지려 하지 않던 유이시넬은 아직도 나만 보면 꼭 껴안고 떨어지려 하지를 않았다.

그 모습을 딱하게 쳐다보고 있던 작은 동생 3황녀 유이시라는 자신의 작은 언니를 가까스로 나에게서 떼어내고 마찬가지로 나를 포근하게 껴안았다.

“유이시아 언니, 보고 싶었어요. 제발 숲에만 있지 말고 우리 얼굴 좀 보러 와요.”

“음……어……, 시간 나면?”

“에이, 언니!! 나랑 유라는 물론이고 황태자도 언니 보고 싶어 한단 말이야!!”

나의 ‘시간이 나지 않으니 영원히 보러 가지 않겠다’라는 속뜻을 간파라도 한 것인지 나에게서 떨어져서 시무룩해져 있던 유이시넬이 번쩍 고개를 들어 그녀의 막내 동생이자 나의 막내 동생인 ‘황태자’를 내세웠다.

그렇게 말하자 모든 시선이 나에게서 오늘의 진짜 주인공인 황태자에게로 몰려갔다. 나와 같은, 루브스카 제국의 황제를 상징하는 분홍색 머리칼과, 푸른 눈동자를 가진 사람. 제국의 단 하나뿐인 아들.

몸이 허약해서 검술을 배우지는 못하지만, 머리는 지나치게 총명하여 제국 내 모든 도서관의 서적을 머리에 담고 있다는 것이 사실일 정도로 똑똑한 나의 막내 동생. 그리고 나의 두 여동생들과 달리 유난히 나를 어렵게 대하는 황태자.

유이시스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마치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하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

그때, 연회의 시작을 알리는 황제폐하의 황태자 탄신 축하 선언이 들려왔다.

“모두들 들어라. 제국 제 1 황태자 유이시스 이샤 르데 루브스카의 15번째 탄신을 맞아, 제국의 아버지인 나, 아델리스 이샤 르데 루브스카가 황태자의 생일을 축하하려고 한다. 유스, 앞으로 나오거라.”

나에게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하다가 실패한 황태자인 유이시스가 비척비척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나는 계속되는 연회의 열기에 속이 뒤틀리는 것을 간신히 참고 이 선언이 끝나면 나가자, 라는 생각으로 꿋꿋하게 서 있었다.

“나, 황제 아델리스 이샤 르데 루브스카는 황태자의 생일을 맞아 앞으로 황태자의 성장에 복을 빌고, 제국의 후계자에게 내려지는 신성력을 부여하도록 하겠다.”

그래, 그래. 정말 감동적이구나.

그래봤자,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

신성력이니 뭐니, 다 쓸모 짝이 없는 것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신성력’은 말 그대로 신성한 힘으로서, 제국의 후계자에게만 부여되는 특별하다고 전해지는 힘.

그러니까, 나랑은 상관이 없지 않은가?

좋아, 이대로만 끝나라. 아무런 말없이 이대로 신성력을 내리고 끝나면 나는 자유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다음 말에 이어진 나의 이름에 발목에 족쇄를 찬 듯이 심장이 내려앉았다.

“……이리하여 신성력을 부여했노라. 그리고, 처음으로 사교계에 데뷔한 제 1황녀, 유이시아 이샤 르데 루브스카, 앞으로 나오거라.”

나? 나는 왜?

이대로 끝낼 것이지, 여기서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설마, 황녀를 잘 부탁하네, 이런 말씀 하시려는 것은 아니겠지?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 심장을 부여잡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였다.

“제국 제 1황녀 유이시아 이샤 르데 루브스카, 제국의 아버지이신 황제폐하께 인사 올립니다.”

“짐은 이 자리를 빌려 이제껏 유이시아 황녀가 왜 연회에 나타나지 않았는지를 말하려고 하네.”

“네??”

나는 갑작스러운 황제폐하의 말씀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멍청하게 반문을 했다.

뭐? 잠깐만. 설마……!

“유이시아 황녀는 자신의 특기를 살리기 위해 검술을 배우고 있었다네. 기사는 물론 땄을 뿐더러, 그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 실력을 갖추었지.”

흐어어어억.

갑작스럽게 커밍아웃을 당해버린 나는 어버버하며 이도저도 하지 못한 채 고개만 숙이고 있어야 했다.

당장에라도 달려 나가 입을 틀어막고 싶지만, 드높으신 황제페하의 입을 막았다가는 그대로 사형 집행이니 어찌 할 방법이 없었다.

“그리하여, 짐은 유이시아 황녀를 황태자이자 황녀의 동생인 유이시스의 호위 무사로 임명하고자 하네.”

“……?!!!!”

뭐라고??

지금, 뭐라고 한 것이지??

나를, 제국의 소드 마스터를 한낱 황태자의 호위 무사로 앉혀놓겠다고?

황당한 아버지의 발언에 나는 고개를 치켜들며 눈동자를 굴려 황제폐하의 주위 인물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물론, 이것은 나를 견제하는, 막내 동생이라고 부르기도 싫은 황태자의 짓이겠지.

황제 폐하의 곁에서 조소를 머금으며 나를 내려 보고 있는, 나와 똑같은 푸른 눈동자를 가진 소년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부탁을 했을 거야. 생일 선물로 소드 마스터인 나를 자신의 호위무사로 임명해 달라고. 그래서 내가 황위를 넘보지 못하도록, 자신의 일개 ‘부하’로 삼아 부리려는 것일 테지.

아니, 이것은 핑계거리에 불과하다.

그냥 아버지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 것이다.

제국 제 1황녀는 천방지축 골칫덩이이다.

문(文)의 길로 접어들기 싫어 무(武)의 길로 접어들었다.

옛날부터 탐탁치 않아 하시더니, 이제는 저를 구속하려는 것입니까?

하지만, 늦었습니다, 아버지.

저를 구속하려 하셨으면, 저에게 검을 주셨으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이미, 저는…….

스릉-

조용히 드레스 밑에서 검을 뽑아 올렸다. 모든 사람들이 검을 꺼내드는 나를 보고 경악했다. 뜨겁게 타오르는 나의 푸른 눈을 보고 조용해졌다. 황태자도, 검을 꺼내 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버지인 황제는, 그런 나를 가만히 아래로 내려다보았다.

나는 조용히 검을 튕겨 윙윙 울리게 만들며 공명시켰다. 여차하면 모두를 베어낼 수 있도록.

모욕 받고, 멸시 당하며, 황녀로서의 기본예절을 갖추지 못했다고 비난당하는 삶.

이제,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

나는 검기를 모아 앞으로 가져가 대며, 검기로 인해 증폭된 목소리로 또렷히 말했다.

“나, 황녀 그만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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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5-28 22:40 | 조회 : 2,625 목록
작가의 말
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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