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의 이야기

검은 장막이 걷히기 시작하자 환해진 무대 위엔 한 남성이 서 있었다. 남성은 슬며시 웃었다. 그러고서는 책을 집어들며 입을 열어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보시다시피 책을 집어든 저는 이야기꾼이랍니다."
남성은 웃음을 지우지 않고 들고 있던 책의 표지를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그 모습은 약간 간절해 보이기도 했다.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차가운 하늘길' 이라는 이야기랍니다."
새까만 천이라도 덮인 것 같이 어두운 관객석을 보던 이야기꾼은 당황하듯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설교하는 책이냐고요? 아니에요, 아닙니다. 물론 이 이야기의 내용에 교리나 그런 것이 나오더라도, 이야기의 목적은 그런 게 아니랍니다."
이야기꾼은 잠시 후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다. 그리고 책의 줄거리를 짤막하게 설명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사제가 되길 원해 이제 곧 순례길에 오를 소년이죠. 소년은 순례길에 오를 이들에 비하면 매우 평범했어요. 하지만 소년은 대단히 빛나는 존재였어요. 얼마나 빛나는 존재였나면."
이야기꾼은 갑자기 말을 끊고 천장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빛이 시작되는 중심으로 손을 뻗은 다음, 그 손으로 천천히 얼굴을 덮으며 말했습니다.
"너무 눈이 부셔 손으로 눈을 가리고 싶을 정도랍니다."
이야기꾼은 그 말을 끝으로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시간이 지나서야 이야기꾼은 손을 스르륵 내려 무미건조한 눈으로 책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럼,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이야기꾼의 목소리는 무대를 가득 메웠다.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지금 당신의 곁에 닿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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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9-06 01:23 | 조회 : 789 목록
작가의 말
nic2596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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