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호위무사 경연대회(6)

툭-

연의 손이 허공에서 바닥을 향해 힘없이 떨어졌다. 호는 그녀의 떨어지는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녀가 힘을 거두고, 어느 정도 공기의 흐름이 안정되자 그는 자신의 차가운 입김을 불어 경기장 전체에 흘러 퍼지도록 능력을 발현시켰다.

[백호 고유 능력, 유(流)]

그가 불어 넣은 입김은 대련장을 포함해 객석 내 전체로 흘러들어갔다.

“……이제 된 것 같군.”

호의 중얼거림에 퍼뜩 정신을 차린 연이 그녀에게는 다소 생소한 호의 분장 모습을 쳐다보았다.

그 부담스러운 시선을 느끼고 있던 호는 한숨을 내쉬며 본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네, 네. 이제 됐지요?”

“……뭘 한 거야?”

그의 입김이 경기장 골고루 퍼진 후, 경기장 전체에 머무르던 사람들이 행동을 멈추고 허공을 멍 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호는 별 것 아니라는 투로 어깨를 으쓱 하며 말을 이었다.

“설산에 사는 백호족의 고유능력이에요. ‘시간의 정지.’ 입김 속에 들어있는 능력들 중 하나죠.”

“아아……그랬구나. 맞아. 그랬지.”

연이 수긍했다는 표시로 고개를 주억거리자, 그녀를 바라보는 호의 눈에서 안타까움과, 뭔지 모를 그리움이 서렸다.

‘역시…….’

호는 잠시 동안의 안타까움은 접어두기로 했다. 일단, 능력의 지속에도 한계가 있으니까.

호의 능력으로 현재 경기장 내에 ‘숨을 쉬고 있는’ 존재는 호과 연, 단 둘 뿐이었다.

“이제 내가 이들의 기억을 조작하면 되는 것인가.”

그 말을 끝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단숨에 청룡국 황제의 앞에 선 연은 그녀의 차디찬 손가락을 그의 이마에 얹으며 말했다.

“…그대의 기억을 나에게 보여라.”

[설 연식 기억 조작술, 기억의 붕괴]

“……이렇게, 기존 기억을 소멸시키고, 새로운 기억을 집어넣으면 되겠지.”

파징-!!

그녀의 손끝에서 부터 서서히 기억의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의 기억이 완전히 소멸되는 모습을 무표정으로 바라보는 연을 바라보던 호는 ‘역시-’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800년이라는 세월 속에서도,

연은, 변하지 않았다.


*

*

*


“으윽…….”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륜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 채 눈을 떴다.

아픈 듯한 신음소리가, 그의 발밑에서 들려왔다.

“으읏……”

“……?”

흔들리는 그의 머리를 간신히 유지하던 자신의 눈앞에는, 믿기 힘든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으으윽…….”

“……?!”

연이 어깨에 피를 흘리며, 인상을 찡그리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한참을 신음하던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그에게 입을 떼었다.

“……당신의 승리입니다, 황제. 당신은, 정말 강하네요.”

“…….”

뭔가, 이상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가 이겼다고?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상황에 절로 인상이 찌뿌려지고 반박의 말을 걸려는 찰나, 객석에서 백성들의 환호소리가 들려왔다.

“만세--!! 황제폐하 만세!!”

“황제께서 승리하셨다!! 역시 폐하야!!”

“와아아아!!”

한순간에 말이 함성 속으로 사라지고, 출혈로 인해 창백해진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던 륜은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라. 그대는 정말 상상 이상의 실력자로군.”

“…….”

“경합은 끝났다. 나는 그대를 나의 호위무사로 삼겠다.”

“……!!”

그의 발언에 연의 눈은 일순간 커졌고, 륜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싱긋 웃었다.

“아마, 이 대회의 진정한 승자는 그대인 것 같군.”

그의 손을 따라 일으켜진 연은 얼떨떨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륜은 그녀와 맞잡은 손을 들어올리며 객석의 관중들과, 대회에 있는 참가자들에게 대회의 결과를 선언했다.

“호위무사 경연대회의 승자는, 이 자이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마어마한 함성이 뒤를 따랐고, 호는 륜을 따라 손을 들어 올린 채 출혈로 비틀거리는 연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연의 입 꼬리는, 보일 듯 말 듯 올라가 있었다.


*

*

*


-륜이 정신을 차리기 전.

기억의 붕괴를 끝낸 연이 그의 신경을 자극해 왜곡된 기억을 주입 시키려는 찰나.

호가 본격적으로 조작을 시작하려는 연의 손을 막았다.

“연님, 기억을 조작하고 다음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무엇을……?”

“그러니까, 그 다음을 어떻게 수습하시려고……”

“……아아, 잠시만.”

기억의 조작을 봉합하고, 마무리를 지었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이 마지막으로 그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 친 그녀는 빨려 들어가는 조작한 기억을 만족스럽게 쳐다보았다.

그리곤 아까 전 맨손으로 상대하기 위해 과감히 내버린 자신의 검을 들어올렸다.

그 모습을 본 호는 연의 행동을 의뭉스럽게 쳐다보았다.

“무슨……?”

“음, 이거? ……이러려고?”

쐐액-!

촤악!

“!!!”

붉은 피가 칼이 지나간 연의 가녀린 어깨를 따라 솟구쳐 올라왔다. 그것을 지켜보던 호의 눈에는 경악이 서렸다.

반면, 자기 자신의 어깨에 칼집을 내어 피를 흐르게 한 장본인은 피가 잘 흐르는지 확인한 후 무덤덤하게 칼을 다시 바닥으로 던져버렸다.

“어때? 난 이런 기억을 집어넣었는데.”

“설마 그 기억이라는 것이……”

“응, 맞아. 황제가 내 어깨를 다치게 한 것이지. 나는 그와 열심히 싸우다 칼을 놓쳤고, 그 칼을 놓쳐 황제의 칼이 내 어깨로 들어와 상처가 생긴 거야. 그래서 내가 어깨에 피를 낸 것이고.”

“허어…….”

연의 완벽(?)하다 못해 소름끼치는 설명과 가차 없는 행동개시에 저절로 감탄 아닌 한숨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설산의 백호인 자신은, 일개 설녀인 그녀를 모시는 설국의 백성일 뿐.

생글생글 화사하게 웃고 있는 자신의 주인, 제 2대 설녀 연을 쳐다보던 호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그런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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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5-15 00:44 | 조회 : 1,084 목록
작가의 말
레빛

chapter2. 호위무사 경연대회 finish. 다음챕터 st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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