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달빛이 부서져 내리는 밤(1)

달빛이 부서져 내리는 밤(1)

“하아아-.”

연은 모두의 눈을 피해 도망쳐 나온 풀숲에서 으스러지듯이 쓰러졌다.

호위무사 경연대회가 끝난 지 어느덧 1주일.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륜이 연을 자신의 호위무사로 지정하고, 그 다음날에 바로 호위무사 취임식이 있었고, 호위무사가 지녀야 할 실력을 검증받기 위해 청룡국 최고 무사인, 흑무(黑武)들을 만났다.

“열댓밖에 안되어 보이는 이 작은 소년이, 폐하의 호위무사로 선정된 것입니까?”

처음 흑무들의 수장인 창이 그녀를 보았을 때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

곧이어 그 표정은 연을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하하하!! 농담도 심하십니다, 전하. 검도 못 쥐게 생긴 이 소년이 폐하를 호위한다니요?”

“그럼 당장 싸워보든가.”

그의 말에 반응조차 없이 시큰둥하게 서 있던 연은 자신의 검 집에서 검을 꺼내 손가락으로 강하게 튕겼다.

검은 그녀의 손끝을 떠나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고, 일정 높이에서 멈춰 창을 향해 고속으로 회전하며 내려오기 시작했다.

핑그르르-

콱!!

“허억……!”

창을 향한 날카로운 칼 촉은, 정확히 그의 발 앞에 떨어졌다. 심지어 그 마저도 그가 마지막 순간에 피하지 않았다면, 치명상을 입었을 수도 있는 자리였다.

한 사람의 목숨 줄이 왔다 갔다 했던 상황에서도, 정작 장본인인 연은 대수롭지 않게 자신의 검을 다시 뽑아 검 집에 넣으며 늘어져라 하품을 했다.

“흐암. 뭐, 싸울까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마냥 태연한 그녀의 태도에 흑무들은 물론이고 같이 있던 황제 륜까지 황당한 눈빛으로 연을 쳐다보았다.

‘흐음…….’

자신의 실력에 대해 굉장히 자신감을 가지고 있고, 특유의 무덤덤한 모습은 상대로 하여금 황당하지만 그로인해 잠재된 무서움을 만들어낸다.

륜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자, 이만하면 나의 호위무사에 대한 결정의 반박은 끝난 것 같은데, 어떻게들 생각하시오?”

“……굉장한 기술입니다. 검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흑무들 중 누군가가 중얼거린 말로 시작해, 창의 곁에 있던 다른 흑무들까지 합세하여 그녀의 검술 실력을 찬양했다.

“대단해요. 어떻게 손가락만으로 검을 회전시킬 수 있는 것이죠?”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능력인데……, 어떻게 이런 자가 흑무에 들어오지 않았지?”

“……순간 목숨의 위험이 느껴질 만큼 대단한 능력이었습니다.”

이에 더불어 창까지 그녀의 능력을 인정했다. 하지만 흑무들의 찬양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연은 정작 ‘너희들이 뭐라하든 난 아무런 관심이 없다’라는 신념을 내보이며 뚱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창이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악수의 의미로 자신의 오른 손을 내밀었다.

“내가 경솔했군. 자네는 정말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어. 폐하의 호위무사로 인정하지.”

“……당신이 인정하던 인정하지 않던,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연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창은 호탕하게 웃으며 자신의 손을 내렸다.

“과연, 실력만큼 성격도 대단하군. 하지만 말해두자면, 나는 자네의 실력에 감탄했다. 자네의 검은 검기에 실린 능력이 자유로웠어. 어린 나이에 대단하군.”

“그리 어리지도 않아.”

그녀는 대수롭지도 않다는 식으로 흘려보내듯 자신이 어리지 않다는 것을 말했다.

물론, 모두가 자신보다 ‘외모 상으로는’ 위인 시점에서, 그 말은 웃음만 유발했지만.

“어쨌든, 자네는 이제부터 황제폐하의 호위무사로서, 가져야 할 행동 가짐과, 이행해야 할 임무에 대해 배우게 될 거야.”

창의 그 말을 끝으로, 연은 그 시간부터 장장 5일에 걸쳐 지루한 이론 수업만 주구장창 듣고 앉아 있었다.

“하아아-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

하루 종일 연설만 듣고 앉아 있자니 귀가 빠질 것만 같고, 몸을 쓰지 않아 너무나도 지루했다.

그때, 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검은 그림자가 연을 향해 다가왔다.

“아마도 연 님의 인내심을 파악하기 위한 일종의 시험인 것 같습니다만…….”

“……호!!”

지루함의 극치에서 벗어나기라도 한 마냥 호의 등장에 연은 얼굴을 밝히며 방긋 웃었다.

“마침 잘됐다!! 나 어디 좀 갔다 올게!!”

“……네?!? 연 님!! 또 어딜 가시게요?!”

“설산!!”

연은 호의 비명소리를 들은 체 만 체 하며 간만의 자유를 만끽하듯 자신의 술식을 외우며 호에게서 도망쳤다.

[설 연식 검술, 회오리 진(進)]

“으아아아아아--!! 연님!!!”

호의 경악에 가까운 비명소리를 들으며 기분 좋게 설산을 향해 회오리를 만든 연은 회오리 덕에 단숨에 설산까지 다다랐다.

설산에 걸어놓은 결계를 깨뜨리며, 연은 오랜만에 느끼는 자신의 고향의 공기에 저절로 머리 색과 눈동자 색이 변하는 것을 느꼈다.

“하아……, 살 것 같아…….”

자신의 흰 머리칼이 설산의 바람에 부드럽게 흩날리는 것을 느끼고 있던 연은, 이내 숲 속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무언가’로 인해 눈을 돌렸다.

부스럭-.

숲의 길이 끝나는 곳에서, 자신이 잘 아는 얼굴을 한 사내가 여기저기를 긁힌 채 나왔다.

“넌……”

“당신은……”

청룡국의 황제였어?

그때 만났던…… 묘령의 여인.

각자가 느끼는 재회의 감상은 다른 채,

밤하늘에서 흘러내린 달빛은 다시 만난 그들의 재회를 축하하기라도 하는 듯, 그들에게로 부서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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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5-15 15:59 | 조회 : 1,599 목록
작가의 말
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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