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만남(3)

호는 연의 무지막지한 발언에 잠깐 동안 자신이 환청을 들은 것은 아닐까 라고 의심했다. 하지만 아직도 자신을 보고 생글생글 웃는 연의 모습에 황당한 듯 무엇인가에 홀린 듯 재차 물어보았다.

“……연 님, 그거, 진심이세요……??”

“…아닌 것 같아?”

연이 속눈썹을 내리깔며 답하자 호는 자신의 고유 능력인 ‘통찰’로 그녀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그런 그의 눈을 정면으로 받아치며 응시하였다. 그리고 호는 연의 눈에서 그녀의 진실을 꿰뚫었다.

진심.

호의 눈에 비친 연의 마음은 오로지 단 하나, 진심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것을 깨닫고 놀라는 호를 보고 연은 푸스스하게 웃으며 낮게 읊조렸다.

“내가 거짓말까지 할 위인은 아니야.”

“…….”

연은 조용히 미소를 지은 채 호를 바라보았다. 호도 그런 연을 묵묵히 바라보다 이내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호위무사가 되어, 그를 지킬 거야.”

“……네??”

그는 연의 발언에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말아 뜨고는 그녀를 의문에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를, 죽이고 싶어 하였던 것, 아니었나??

그가 알기론 그녀는 지난 10년간 단 하나의 목표, ‘황제 사살’로 인해 살아갈 의미를 두고 있었다. 그렇게 까지가 아니었으면, 연은 진작 무너져 버렸을 테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그 목표를 포기 한다는 것일까?

호의 그 시선을 감지한 연은 얼굴에 미소를 띄우곤 발을 떼어 빙그르르 한 바퀴를 돌며 말을 이었다.

“내가, 지난 10년 동안, 그냥 청룡국에만 머문 것이 아니야, 호. 난 청룡국을 내 삶의 피난처로 생각하기만 했을 뿐, 사실상 몸뚱이는 5방신의 나라들을 방랑하며 각국의 황제들의 실상을 파악해보고 있었어.”

“……그런!!”

“미안해, 네가 알면 분명 위험하다고 난리를 칠까봐 말하지 못했어. 어쨌거나, 내가 모든 황국들을 돌아 본 바로는, 청룡국의 현 황제 청 륜을 죽이기가 가장 어려운 것 같아.”

“그래서, 청룡국 황제의 측근으로 들어간다는 것인가요?”

“응, 나는 아마 그곳에서 황제를 칠 기회를 보고 있겠지. 뭐, 들켜도 그만이지만.”

연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인간의 하찮은 목숨쯤이야-라는 식으로 코웃음을 지으며 피식 웃었다.

호는 그런 연을 보고 생각했다.

연은 무서웠다.

겉으로는 웃고 있는 듯 했지만, 2대 설녀인 그녀가 가지고 태어난 천성은 ‘차가움’이었다.

원래 설녀들은 태어날 때 그 성격이 결정되는 법.

1대 설녀, 설화가 하늘에서 가지고 내려온 ‘온화함’과는 정 반대되는, 건들면 너무 단단해 금방 깨져버릴 것 같은 그런 감정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의 가족과 모든 설국의 거주자들, 즉 설족을 제외한 모든 인간들에게 냉대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어디 청룡국의 황제를 호위하겠는가?

‘차라리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죽이지 않으면 다행이지.’

호는 얼굴은 모르지만 새삼 모르게 측은해지도록 불쌍해지는 청룡국의 황제를 생각하며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러다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에 그는 고개를 들어 작은 눈꽃들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는 연을 향해 시선을 두었다.

“그런데, 왜 그를 지킨다는 것이죠?”

그는 불안감에 잠겨 연을 초조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연은 잠시 동안 그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닫았다 계속 말하려다가 하지 않는 듯 하다 이내 입술을 열어 그의 물음에 응답했다.

“……면 안되니까.”

“……네??”

그녀의 대답에 그는 멍하게 듣다 깜짝 놀란 듯 반문하자 연은 눈꽃들을 가볍게 쓸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황제가 내가 죽이기도 전에 먼저 죽으면 안되잖아. 그러니 내가 옆에서 지켜보며 다른 인간들이 죽이지 않게 잘 보살펴야지.”

‘헐…….’

얼굴도 모르는 이름 모를 황제야, 내가 너를 잘 알진 못하지만, 이제부터 네가 불쌍해질 것은 알겠다.

그녀에게서 충격적인 말을 전해들은 호는 새삼 이제 곧 있으면 불쌍한 인생을 살아갈 이름 모를 황제에게 불쌍한 마음으로 고개를 저었다.




*

*

*




“호, 난 이제 그만 갈게. 여기서, 남은 설산의 잔재들을 보살펴 줘.”

“네, 연 님. 몸조심 하세요.”

호는 결계를 향해 다가가는 연의 등 뒤에서 그녀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 이내 백호로 변신 하고는 숲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호가 눈에서 흐려질 때까지 그를 바라보던 연은 그가 종적을 감추자 이내 등을 돌려 설국과 청룡국의 경계를 이루는 결계를 향해 손을 뻗었다.

파지직-


그녀가 결계를 통과하자 다시 그녀의 머리칼과 눈의 색이 검은 색으로 변하였다. 그 머리칼을 조심스레 만지작거리다 이내 피식 웃은 연은 다시 그녀가 머물고 있는 거처를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호위 무사 경연 대회까지 남은 기간……일주일.”

낮게 읊조린 연의 얼굴에는 차가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기대되네. 황제가 어떤 인간일 지.”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는 투로 말하던 연은 이내 피식 웃고는 정색하며 낮게 중얼거렸다.

“황제……넌 죽어야만 해.”

터벅, 터벅, 뚝.

자신의 거처로 다 온 연의 발소리가 멈춘 채, 연은 자신의 집 문고리를 잡아 올리며 중얼거렸다.

홀린 듯 문고리를 바라보는 그 눈빛은 모두를 얼려버릴 듯이 차갑고, 그 누구도 가까이 가지 못할 만큼 살기가 짙었다.

“나를 위해, 그리고 너를 위해.”

그 말을 끝으로 쿵- 소리가 나는 동시에 문이 굳게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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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5-04 20:02 | 조회 : 1,260 목록
작가의 말
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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