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만남(2)

굉장한 힘이다.

그의 힘뿐만 아니라 어떤 황족의 힘도 통하지 않아 ‘고립의 산’이라고 통칭되던 설산이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공명 되어 울리고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작디 작은, 그것도 여인의 몸으로, 이런 거대한 힘을 뿜어낼 수 있단 말인가.

이런 거대한 산을 ‘울림’뿐 아니라 ‘공명’까지로 이끌어 내는 것에는 어마어마한 신성력이 필요로 되었다.

신성력.

황국이 기본적으로 유지되는 데 필요한 신성한 천계의 힘.

먼 옛날 5방신이 천상에서 계승받은, 각 나라의 황족만이 자아낼 수 있는, 거대한 원천.

하지만 그 마저도 황족에 따라 구현해내는 정도가 다를 정도로 다루기 까다로운 에너지였다. 또한, 계승받는 정도도 각 개인마다 달라 자아내는 힘의 농도가 판이하게 다를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들이 가지는 ‘신성력’이었다.

그런 힘을, 그나마 황족도 음기가 강해 신성력이 제대로 들어설 수 없는 여인의 몸으로, 구현해 낸다고?

그가 고개를 들어 거대한 신성력을 자아내는 여인을 향해 눈을 맞추자 무서운 기세로 몰아치는 눈꽃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서서 살벌하게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연과 눈이 마주쳤다.

륜은 흠칫 놀라며 엄청난 기에 눌리면서도 꿋꿋이 발을 디딘 채 낮은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이곳은 분명 출입이 불허한 곳. 출입 불허 장소에 발을 디딘 그대야 말로 누구지?”

그의 말에 간만에 재미있는 말을 듣는 다는 투로 피식 웃으며 가소로운 듯한 미소를 지은 연은 빈정거리는 말투로 륜의 말을 받아쳤다.

“설산은 내 기준으론 출입 허가 장소다, 어리석은 ‘인간이 아닌 자’여.”

그 말에 기분이 나빠진 륜은 그녀의 말에 평소에는 입에 달지도 않았던 황명을 당장이라도 내릴까, 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내 여인의 힘에 고개를 내젓고는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네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을 빨리 나가는 것을 추천하겠다. 이곳은 10년 전 ‘그날’이후로 저주받은 버려진 땅이니.”

‘호오.’

아까부터 그가 하는 행동과 말을 재미있게 지켜보던 연은 방금 전 그의 발언이 흥미로운 듯이 씨익 미소를 내지었다.

갑자기 내 땅에 나타난 인간인지 아닌지 아리송한, 어쨌든 인간이, 그녀가 상상해도 최악에 치달았던 10년 전 마지막 전투를 거론하니, 어찌 흥미롭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자신의 힘에 밀려 우물쭈물 거리는, 그녀의 나이론 한 800살 쯤 어린 소년 같은 그를 바라보고 있자니 귀여워 웃음이 나왔다.

‘응? 귀엽다고?’

그녀 자신이 느낀 감정에 갑자기 정신이 퍼뜩 든 연은 고개를 내저으며 웃기지 말라는 듯이 살벌한 기세로 정면을 응시했다.

‘정신 차려, 설 연. 넌 이곳의 유일한 꽃이야. 세세한 감정 따윈 용납할 수 없어.’

냉정하게 선을 그어 내린 연은 다시 전투 적설화(赤雪花)를 입에 담아 그녀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남자에게 고개를 돌려 이윽고 자신이 서있던 빙(氷)의 진에서 뛰어내려 가까이 다가갔다.

한편, 륜은 다시 한 번 생각에 빠져 미궁 속으로 빠져버린 그녀의 정체를 생각 해내기 위해 애썼다.

산과의 기본 동화인 ‘울림’뿐 아니라 ‘공명’까지로 이끌어 낼 수 있는 자는 5방위국 에서도 딱 5명 뿐 이었다.

황룡국의 황제, 황 의. 주작국의 황제, 주 환. 현무국의 황제, 현 우. 백호국의 황제, 백 아.

그리고 청룡국의 황제인 자신, 청 륜.

그들 중 여인의 몸으로 그런 거대한 힘을 담은 이는 누구도 없었다.

‘아, 황 의의 쌍둥이인 황 련도 신성력을 담은 채 태어나긴 했지.’

하지만 여인의 몸인지라 신성력만 담은 그릇 이었을 뿐 제대로 사용하기엔 그마저도 무리가 있었다.

그럼, 저 여자는 대체 뭐지?

“……봐.”

“……이봐, 내말 안 들려??”

“……!!”

그렇게 생각이 다시 시작됨과 동시에 다시 그것을 깨뜨린 장본인인 연이 가녀린 팔을 들어 손으로 턱을 매끄럽게 잡아 올린 채 그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다시 올렸다.

한 번도 여자와의 그런 접촉(?)을 해 본적이 없던 륜은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그 상태로 굳어버렸다.

“흐응, 이상하네. 왜 대답이 없지??”

그의 상태를 알 리 없는 연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뭐, 어쩔 수 없지. 대답을 안 하면 그냥 바로 죽……”

파스슷-!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설산으로 들어가는 입구 바로 근처에서 시작하는 설산의 숲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연은 그가 나타난 이후 처음으로 환하게 웃으며 그가 있는지도 잊은 채 숲속으로 달려 나가려고 하였다.

"......!"

덥석!

빠르게 그의 옆을 지나치는 연의 팔을 덥석 붙잡은 륜은 멍하니 연을 바라보았고, 연은 그것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다 이내 피식 웃고는 붙잡히지 않은 다른쪽 손을 들어 보였다.

"아, 죽이지 않을 거야, 걱정 마."

"......!?!"

그 말이 아니잖아, 이 여자야!!

륜은 겉보기에도 황당한 발언을 내뱉는 연을 몸이 굳은 채 경악하며 쳐다보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연은 입 꼬리를 기분 좋게 말아 올리며 그가 힘주어 잡은 그녀의 팔을 가볍게 떨쳐내고는 그의 옆을 빠르게 지나갔다.

"나는 이제... ……에서 ……할 것이니."

연은 지나가는 투로 말을 중얼거리며 그의 시야에서 점차 흐려졌다. 졸지에 홀로 남게 된 륜은 그녀의 마지막 말을 듣고는 영문 모르는 중얼거림을 되뇌었다.

"청룡국의……호위무사??"



*


*


*



타다다닥-!

"……!!! 호!!"

"설 연님!!!"

와락-!

연은 저 멀리서 보이는 백호의 형상에 연은 활짝 웃으며 가속화된 상태로 달려가 백호를 껴안았다. 연이 너무나 세게 조이는 바람에 백호는 얼굴을 붉힌 채 버둥거리며 켁켁 거렸다.

"켁……목 졸려요..."

"아! 미안....! 괜찮아??"

연이 화들짝 놀라며 호의 목에 둘러진 자신의 팔을 황급히 빼내자 호는 한쪽 발로 자신의 목을 쓰다듬으며 인간형으로 변신했다.

한순간에 긴 흰색 머리칼에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진 미남으로 변한 호는 자신의 목덜미를 만지작거리며 작게 투덜대는 식으로 중얼거렸다.

"역시, 몇 번을 봐도 놀라워요, 그 '창조'로 만들어낸 힘."

"음? 아아, 이거."

연의 기본적 속성인, 태어나면서 부터 가진 고유 능력, 한마디로 5방위국 나라들의 방식으로 통칭되면 '신성력'은 바로 창조(創造).

어머니였던 초대 설녀인 설화(雪花)의 능력이었던 예언(豫言) 못지않은 놀랍고 경이로운 힘이었다.

“흐음, 호, 창조 능력 가지고 부른 거 아니잖아.”

“에? 아!!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연이 그녀를 감탄하는 어조로 부르는 호를 괜시리 투덜거리며 말하자 호는 얼굴을 붉히며 연에게 손사래를 쳤다. 그 모습에 연은 킥킥대며 손을 저었다.

“쿡. 아니야, 호. 오랜만에 너랑 도 만나고, 난 지금 정말 기분이 좋아.”

그렇게 말하며 연은 자신의 한쪽 손을 들어 올리며 자신이 어렸을 때 가장 먼저 생성해냈던, 창조(創造) 제 1장, 안개 눈꽃을 흩뿌리듯 자아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호는 멋쩍게 얼굴을 붉히고 있다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와아...!! 이거, 연 님 스스로 생성 해낸 거죠?? 정말 아름다워요.”

“……그래?? 어머니께서도 참 좋아하셨지.”

“…연 님…….”

손으로 안개 눈꽃을 다시 모으며 자연스레 자신이 보았을 때 가장 아름답고, 또한 가장 완벽했던 1대 설녀, 자신의 어머니, 설화를 생각한 연은 살짝 눈시울을 붉히며 시린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처음 이 안개눈꽃을 만들어내자 손뼉을 치며 기뻐하시던 어머니. 하늘로 올라가기 전까지,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예언(豫言)능력을 사용하여 섬뜩한 미래를 암시하고 떠난 자신의 어머니, 설화.

연은 그 그리움에 잠시 취하고는 이내 다시 평소처럼의 밝은 모습으로 호를 향해 돌아섰다.

“호, 왜 그래!! 이제 나한텐 너가 있잖아!!”

‘……연 님…….’

호는 최대한 밝게 웃음을 지어 보이는 연을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2대 설녀’라는 위치에 존재하였기에, 함부로 울지도, 슬퍼하지도 못하는, 감정을 철저히 배제당하는 그녀.

최후의 전투 적설화(赤雪花)때 잠시 설산에서 멀어져 있던 자신이 마지막에 시행되었던 율의 전언으로 인하여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되어버린 설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살아 숨 쉬는 자신을 보고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하고는 눈시울을 붉히며 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었다.

그렇기에 항상 자신의 차가운 이면을 숨기고 항상 밝은 모습으로 다녀야 하는 연을 보고 호는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연이 갑작스레 떠오른 자신의 말을 호에게 전달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아참, 호.”

“……? 왜요??”

호는 자신을 부르고 해맑게 웃는 연을 적응이 되지 않는다는 듯 쳐다보았다.

연은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당당히 다음 말을 이었다.

“나, 황제의 호위무사가 될 거야.”

“……네??”

호의 황당한 어투의 되물음에 연은 더욱더 짙은 미소를 자아내며 덧붙였다.

“청룡국의 호위무사가, 될 거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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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5-04 19:58 | 조회 : 1,222 목록
작가의 말
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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