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남(1)

10년 후.

“흐으아아아아.....윽.”

청룡국에서의 늘 맞이하는 아침.

청룡국에 온 뒤 아침마다 가는 설국으로 향하기 위해 밖으로 나온 연은 설국의 남은 잔재인 설산을 향해 달리다 몸 전체에서 느껴지는 찌르는 듯한 통증에 나지막한 신음을 내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옆구리에서 새어나오는 거무스름한 기운에 비로소 정신을 추스르고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훔쳤다.

잠시 동안 그것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연은 이윽고 고개를 떨구며 나즈막히 중얼였다.

“......그렇구나. 이건…….”

느낄 수 있었다.

잊을 만 하면 찾아오는, 그러면서도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설국의 백성들의 원한. 절망. 고통.

자신을 살리기 위해 희생해야만 했던, 얼마 되지 않았던 설국의 백성들의, 5방위를 다스리는 나라들을 향한 분노.

그 고통들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연은 가만히 눈을 감은 채 두 손으로 양쪽 어깨를 꼭 붙잡았다.

“걱정 마. 내가, 내가……목숨을 걸어서라도.”

설국과 청룡국의 경계선에서 발을 디딘 연은 어느새 검은색 눈동자와 머리칼에서 변해버린 그녀의 푸른 눈동자와 흰 머리칼에 부딪히는 눈꽃바람을 부드럽게 맞이하였다.

그리고는 눈부신 얼굴로,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이 세계의 모두를, 내 손으로 죽여줄게.”


*

*

*


“폐하, 폐하!! 아, 대체 어디로 가신 거야?”

설국이 망하고 난 지 10년. 6국의 마지막 전투였던 적설화(赤雪花)에서 발생되었던 기이한 5국 황제들의 죽음으로 당시 5국에 자리하던 황태자들이 모두 황제 직위를 물려받았다.

당시 청룡국의 태자였던 청 륜은 청룡국 황제로서 처음으로 10살의 어린 나이에 즉위한 후, 초대 황제에 버금가는 놀라운 청룡의 능력으로 혼란스럽던 청룡국을 호화롭게 가꾼 놀라운 황제였다.

……다만, 늘 어디론가 제멋대로 사라지는 것이 문제지만.

륜의 제 1호위무사이자 낮에는 보좌관인 최영은 오늘도 어김없이 어디론가 증발한 륜을 찾아 궁궐의 모든 곳을 찾아 헤맸다.

“진짜, 이 황제님은 맨날 어디로 사라지는지 몰라. 아, 설마…….”

영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 날짜를 곱씹다가 오늘이 ‘그날’이라는 것을 깨닫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렇다면……어김없이 ‘그곳’으로 가셨겠지.

영은 알 수 없는 한숨만 푹푹 내쉰 채 결국 다른 곳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륜을 찾는 것을 포기했다.

“흐음……. 어차피 못 찾을 텐데...”

‘또다시’ 헛된 희망을 안고 설국으로 향한 륜을 향해 영은 의미 없는 말만 중얼거리며 또 설국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을 륜을 향해 안쓰러운 눈빛을 보냈다.


*

*

*


사박- 사박-

굳은 발자국 소리와 함께 눈이 짓밟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발소리의 주인공인 륜은 하얗게 내려앉은 눈꽃더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국경을 넘는 순간부터 차가워지는 전신에 물의 장막을 그려 넣고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꽃송이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곳은……여전히 변하지 않았군??????.”

하아-

하얗게 서리는 입김을 뒤로 한 채 10년 전 그날의 장소로 걸어가던 륜은 지금쯤이면 아침 댓바람부터 궁의 일을 뒤로 미루고 뛰쳐나간 자신을 애타게 찾고 있을 최영을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쯤이면 깨달았겠군. 오늘이 무슨 날인지를.’

사박-

투둑-

그때, 어디선가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륜의 머리 위로 새하얀 눈송이들이 한아름 쏟아져 내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륜은 미처 방어할 새도 없이 떨어지는 눈덩이들을 그대로 맞고 말았다.

퍼억-!

“윽!!”

청룡국의 사람 뿐 아니라 5방위 황국의 나라에서는 모두 차갑다 못해 얼 것 같은 온도의 눈송이를 정면으로 받은 륜은 눈송이들을 모두 날려버리고는 눈꽃들이 날아온 근원지를 찾아 고개를 돌렸다.

사박-

그때, 그의 뒤에서 다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륜이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그가 ‘그 날’이후로 매년 찾아갔을 때도 없었던, 머리칼은 연한 하늘색을 띄고 눈동자는 하늘을 품은 것과 같은, 한 여인이 눈꽃바람과 함께 나타나 있었다.

“겁도 없이 설산으로 발을 들인 낯선 ‘인간’이여.”

아리따운 외모와는 정 다른, 차가운 목소리를 지닌.

“흐음……,이제 보니 그냥 ‘인간’은 아니구나.”

왠지 모를, 두근거림도 함께 가지고 온, 눈꽃들의 지배자.

“그렇다면, 너는, 누구지?”

설산의 주인, 설 연.

0
이번 화 신고 2016-05-04 19:42 | 조회 : 1,334 목록
작가의 말
레빛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