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란 비정상적인 사회의 먹이사슬의 정점은 야만적이게도 ‘힘’이 강한 녀석이다. 학교 폭력이라는 일이 벌어져도 가해자는 가벼운 처벌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학교를 다니고 피해자는 언제까지나 고통 받는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이 뒤바뀌는 이상한 곳.
‘하지만 같은 약자 입장에 무슨 도움을 줄 수 있겠어...’
가온시에 있는 가람고등학교. 학교 수준은 중하정도로 수시로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간간히 학교 수준보다는 조금 높은 애들이 오긴 하지만 대부분 분위기에 물들어 버린다.
평범한 교실 뒷 창가 쪽에서 샌드백 마냥 맞고 있는 이가 있음에도 그것을 말리려고 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다들 숨죽이며 자신에게 불똥이 튀지 않기만을 바랄뿐, 아니면 이 ‘일상’이 빨리 끝나길 바랄지도.
“하아~ 석준아! 나는 정~말 너가 좋은데 말이야, 왜 약속을 안 지키냐고 이새끼야!”
“어이구 우리 명훈이 또 지랄하네. 하석준은 지가 제일 신나게 패면서.”
“뭔 개소리실까? 나는 눈물을 머금고 약속을 안 지키는 내 친구에게 사랑의 가르침을 주는거야, 그치, 학우 여러분?”
사물함에 몸을 기댄 채로 핸드폰을 하고 있던 그의 친구가 빈정거리자 김명훈은 때리는 것을 멈추고 반 아이들쪽을 시선을 돌리며 웃었다. 가뜩이나 조용한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고 김명훈은 비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발밑에 있는 하석준의 등을 걷어 찬 후 잠시 쉬는 시간이라도 갖는 듯 의자를 끌어 앉았다.
드르륵-
조용한 그 분위기 속에 뒷문이 열리자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쏠렸다. 길거리에서 본다면 다 시 한 번 뒤돌아볼 조금은 차가운 인상의 미인. 그러나 반 아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유 린, 그 애가 왔다.
‘일상’의 끝이다.
자신에게 쏠린 시선을 느끼며 조금은 어색하게 웃는 그 아이 모르게 김명훈이 일어나 바닥에 웅크리고있는 하석준을 가리며 발뒷꿈치로 툭 건드리며 눈짓했다. 빨리 꺼지라는 뜻이었다. 하석준이 비틀거리며 일어나자 김명훈은 일 언제 그랬냐는 듯 밝게 웃으며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
“린아! 퇴원한거야?”
“응. 어...근데 반이 조용하던데 무슨 일 있었어?”
생김새와 다르게 나긋하고 얌전한 목소리로 묻는 린에게 김명훈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 일도 없었는데~ 평소랑 같았어. 우리 반 원래 조용하잖아.”
김명훈은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아니, 어쩌면 그에게는 맞는 말 일 수도 있다. 그것은 평소와 같은 행동이었으니까. 김명훈은 열심히 말을 건냈지만 린은 조금 피곤한 얼굴로 대답했다. 평소에 몸이 약해 자주 입원하는 것을 생각해낸 김명훈은 미안하다는 얼굴로 린에게 자리로 갈 것을 권유했다.
“아~ 자리 어디였지? 자리로 가자!”
“응.”
그리고 공교롭게도 린의 옆자리는 하석준이었다. 린이 자신의 자리에 앉으며 하석준에게 인사를 건냈다. 교과서를 꺼내기 위해 잠깐 고개를 든 하석준은 고개를 돌리며 눈을 피했다.
“안녕? 잘지냈...너 얼굴이?”
린이 얼굴에 난 상처를 가리키자 하석준은 우물쭈물 거리다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을 보던 김명훈이 하석준의 앞자리에 앉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석준이 원래 잘 다치잖아~ 그치, 석준아? 근데 린이가 말하는데 무시하면... 안 되지않을까?”
“아...안녕. 이, 이건 넘어져서...”
“넘어졌다기엔...”
린이 의문을 표하려 할 때 김명훈이 손뼉을 쳤다.
“아~ 맞아! 린아 우리 반에 전학생 왔어!”
“정말? 누군데?”
금방 화제가 바뀌자 하석준은 김명훈의 눈치를 보며 엎드렸다. 김명훈은 열심히 이주 전에 온 전학생에 대해 얘기했고 린도 자신이 입원한 사이에 온 전학생의 얼굴이 무척 궁금한 듯 했다.
“어, 최 하제라고 여자애인데~ 예쁘게 생겼어! 야 아무나 잠깐 출석부 좀 가져와봐.”
“아아- 그 애는 어딨는데?”
“몰라. 맨날 사라져. 근데 너가 더 예뻐!”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하던 김명훈은 린의 담담한 반응에 다급히 뒷말을 붙였다. 하지만 딴 생각을 하는 듯 한 린의 표정에 아차한 표정을 지으며 린에게는 안보이게 고개를 돌려 출석부를 들고 오는 애를 노려보며 빨리 오라는 눈짓을 했다. 누군가 출석부를 가져오자 반 아이들의 사진이 붙여있는 쪽을 펴며 김명훈이 처음보는 애의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얘가 최하제인데... 성격은 진짜 싸가지 없어!”
사진 속의 아이는 입을 꾹 다문 채 무표정이었지만 예쁜 얼굴을 가진 단정한 미인이었다. 무표정이라 해도 순해보이는 인상이 강아지 같다는 말이 어울릴 법한 얼굴. 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래?”
“응!”
“근데 그렇게 나쁠 것 같다는 생각은 안 들어.”
옅게 웃으며 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건실 좀 다녀올게, 라고 말하며 따라 나오려는 김명훈에게 괜찮다는 손짓을 하며 밖으로 향했다. 김명훈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손을 흔들다가 린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엎드려있는 하석준의 뒤통수를 때렸다.
“쳐 자냐? 병신새끼. 반 친구들아 씨발 잘 좀 하자.”
김명훈이 머리를 거칠게 긁으며 욕을 내뱉자 교실이 싸늘해졌다.
“후우, 착한 척 하기 존나 힘드네. 아, 맞다. 전학생 그 년은 어디갔냐? 맨날 없네.”
“우리도 잘 모르겠는데...”
“도대체 아는 건 뭐세요? 그 새끼는 무슨 지가 홍길동이야. 볼게 얼굴밖에 없어. 썅년.”
하석준의 머리를 툭툭 때리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은 김명훈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책상 다리를 발로 찼다. 하석준이 놀라 일어나자 그의 뺨을 꼬집으며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이제 이 짓도 그만 할 때 됐잖아? 그치 석준아? 내가 시키는 것만 잘하면 너랑 그만 놀게.”
하석준은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이 지옥같은 시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김명훈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5층 복도 끝에 이제 안 쓰는 창고 있잖아. 내가 연락하면 그쪽으로 최하제 좀 불러내.”
“무, 무슨 짓을 하려고...”
하석준은 덜덜 떨리는 손을 꾹 누르며 물었다. 그 창고는 새로 지어진 신축 교사 1층에 창고가 생겨 더 이상 쓰지 않는 곳으로 웬만한 학생 혹은 선생들은 잘 가지 않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학교에서 좀 나간다 싶은 무리들이 아지트로 쓰는 곳,
“뭐 새꺄. 내가 죽이기라도 할 까봐? 다음 놀이 상대 고르는 거 너한테 맡길게. 시키고 싶은 새끼나 골라놔.”
장난스레 웃는 김명훈을 보며 하석준은 눈을 꽉 감았다.
내가 무슨 정의의 사도도 아니고 남 생각을 해야하나?
내가 괴롭고 힘든데...그때 누군가 나를 도와주긴 했었나?
왜 나만 이렇게 괴로워야하지?
죽고싶다. 아니 죽이고 싶다, 김명훈도 반 녀석들도...
김명훈의 폭력도 자신을 싸늘하게 보는 그 방관자들의 시선이, 자신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안도 섞인 그 미소가 자신의 일이 아니란 이유만으로 외면하는 모습이 괴로웠다.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면 그저 벗어나고 싶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알았어...”
하석준은 주먹을 꽉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생각했어.”
김명훈은 웃으며 핸드폰을 꺼내어 꽤나 긴 글을 보냈다.
[굶주린 청소년기 친구들을 위해 맛있는 걸 준비했으니까 고마워해라.]
옆에 떠있던 7이라는 숫자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금방 답장이 왔다.
[편의점 간다. 필요한 새끼들은 빨리 말해라ㅋ]
김명훈은 씨익 웃으며 핸드폰을 집어 넣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어차피 이 나라는 청소년이란 신분과 술에 관대하니까. 혹시 정학이라도 먹으면 그동안 못해본 일이나 해야지, 라고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