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

최하제
[지금 어디야? 혹시 내가 말해주는 곳으로 와줄 수 있어?]
최하제
[어딘데?]
[5층에 체육창고 있는데 그쪽으로 좀 와줄래?]
최하제
[알았어.]

하석진은 도망치 듯 조퇴했다. 안색이 좋지 않은 하석진을 보고 담임은 별 의심 없이 조퇴시켰다. 하석진은 미친 듯 쉬지 않고 달렸다.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듯 뛰고 옆구리가 찢어질듯 한 아픔이 느껴졌지만 멈추지 않았다. 본래 걸어서 10분정도 가야 할 거리를 4분 만에 도착한 하석준은 옷도 갈아입지 않고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전학 첫 날 처음보는 자신을 위해서 유일하게 김명훈에게 화를 내준 유일한 그 아이를 배신했다.

내일 그 아이는 나오지 못할 것이다. 김명훈은 피곤에 찌든 얼굴로 학교에 나와 어떻게 할까. 김명훈은 과연 나와의 약속을 지킬까? 지키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나는...?


아니, 아직 모르는 일이야. 그 애한텐 미안하지만 내가 살기 위해서라면 당연한 거잖아?

맞아, 이건 당연한 일이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어도 분명...

그 애도! 최하제도 그랬을 거야! 김명훈이 더 이상 건들지 않겠다는 말을 한다면...


[너 같은 쓰레기새끼한테 빌빌 거릴 것 같냐?]

[사람이 사람을 돕는데 이유가 꼭 있어야해? 있어야한다면 그건 너무 삭막하네.]


김명훈의 협박에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말하던 그 모습, 왜 자신을 도와줬느냐 하는 물음에 배시시 어린아이 같은 웃음을 짓던 모습. 처음으로 사람에게 빛이 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던 그 날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설픈 자기 위안을 할수록 죄책감이 목을 조여 온다.

아니야, 아무 일도 없을 수도 있어.

아니...그 애를 볼 수 없을 거야. 그리고 영원히 나를 미워하겠지.

나란 놈은 진짜... 쓰레기야.


나락으로 끝없이 추락하는 그의 정신을 돌아오게 한 것은 아침을 알리는 알람 소리였다. 하석준은 일어나기 싫은 몸을 억지로 일으키며 멍한 정신으로 학교로 향했다. 이른 시간에 학교에 도착한 하석준은 책상에 엎드렸다.

“하석진, 어젠 고마웠다. 덕분에 재미 좀 봤네.”

어느 새 온 김명훈이 하석진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고개를 들어 본 그는 웃는 얼굴이었다. 탐욕스러운 욕구를 채운 만족스러운 그 모습에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아, 맞다. 너도 같이 즐길 걸 그랬나? 진짜 끝내줬어. 이게 다 네 덕분이니까, ”

두 손을 모으며 미안하다는 듯 말하는 그 모습에 하석준은 고개를 숙이며 주먹을 꽉 쥐었다. 김명훈은 비웃음을 지으며 그의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이제 그만 괴롭힐게. 자기를 위해 친구도 버린 넌데,,, 이정도는 해줘야지? 쓰레기새끼야. ”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반박할 수도 할 생각도 없는 상황에 들려오는 목소리가 점점 아득해지고 그의 비웃음이 더 짙어지는 게 느껴졌다.

“새...웃기는...어나!”

퍽-강하게 무언가 머리를 강타하는 아픔이 느껴지자 하석준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자 앞에 있던 김명훈은 사라지고 담임이 출석부를 든 채 서있었다. 당황하며 두리번거리다가 비어있는 김명훈의 자리를 보고 아까는 꿈이었음을 깨달았다.

“밤에 뭐하고 아침부터 퍼질러 자냐? 어, 너 이 새끼 얼굴이 왜 그렇게 창백해? 어디 아파?”

“아, 아니요...”

“너 어제 아프다고 조퇴했었지? 미안하다. 그냥 엎드려있어.”

담임이 미안 한 듯 말하며 어깨를 두드리며 교탁으로 돌아갔다. 하석준은 다시 엎드리며 쿵쾅거리는 왼쪽 가슴을 진정시키듯 손으로 지그시 눌렀다. 토 할 것 같은 기분, 교탁으로 돌아간 담임은 빈자리를 보며 출석부를 폈다.

“근데 빈자리 누구냐? 저긴 김명훈, 이진석이고 저기가 유린, 그 뒤쪽이 최하제? 유린이야 뭐 그렇다 치고... 이 것들 오면 바로 나한테 오라고 해라.”

담임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하석준은 흠칫했다. 역시 나오지 않았다.

“-해서 야자가 없으니 오늘은 학교 끝나면 바로 집으로 돌아가라. 아, 그리고 김명... ”

담임이 무언가 생각났단 듯 교탁을 가볍게 치며 말하려는 때 뒷문이 열렸다. 담임은 기막힌 타이밍에 들어온 지각생들에게 말했다.

“하이고, 너 이새끼들 환상에 타이밍이다. 그대로 따라와. 나머지는 종례 때 말 할 테니까 튀지 말고.”

담임이 지각생들을 데리고 나가자 반이 조금 어수선해졌고 하석준은 곧바로 화장실로 튀어나갔다. 칸 안으로 들어가 변기를 붙잡고 빈속을 게워냈다. 먹은 것이 없어 그저 위액만 뱉어내던 하석준은 켁켁 거리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냈다.

“하아,,,”

한참을 멍하니 있던 하석준은 수업종이 울리고 나자 그제야 일어나 입을 헹구고 고개를 들어 거울 속에 비친 비겁한 자신을 보며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꿈 속에서 김명훈에게 들은 말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전혀 반박할 수 없는 그 사실이. 자신을 김명훈보다 더 한 쓰레기로 만든다.

하석준은 대충 물기를 닦아내고 걸음을 옮겼다. 교실에 가면 아까 그 지각생들이 와있을 것이다. 아마 김명훈과 이진석?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걷는 그의 등 뒤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 진짜! 너 때문에 지각했잖아!”

“그게 왜 내 탓이야?”

우뚝, 그 자리에 멈춘 하석준은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가만히 땅을 쳐다 보다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에 가슴이 뛰었다.

“그러게 누가 늦잠을 자랬니? 너도 참 답이 없구나?”

“늦잠을 잔 건 너잖아!!”

차분하고 나긋하게 울리는 목소리 그리고 이제는 듣지 못 할 거라고 생각했던...그 목소리. 하석준은 가슴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체육창고라니 너무 진부하다. 그치?”

그 평온한 목소리가 소름끼쳤다. 자신이 한 행동에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는 듯 옷에 뭍은 먼지를 털어내며 조금 눈가를 찡그리는 태연한 모습. 방금 8명이 있었다. 지금도 8명, 정확히는 살아 움직이는 1명과 7명의 사람이었던 이젠 움직이지 않는 고깃덩이들.

그 애가 나를 보고 있다. 피비린내가 진득하게 풍기는 그 곳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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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4-26 23:49 | 조회 : 1,050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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