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지금 내가 나쁘다고 하는거야?

츤데레 여친과 헤어진 뒤에는?

11화.지금 내가 나쁘다고 하는거야?

"어머, 즐거워보이는걸? 천하고 더러운 노예주제에 말이야~"

무심한듯 차갑게 내려다보는 시선은 날카로운 바늘처럼 내 눈에 꽂혔다. 방금전까지 눈에 들어왔던 놀이공원의 배경이 순식간에 어두워짐을 느꼈다.
뭔지 모를 불안감에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온몸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숨이 거칠어진다. 답답한 가슴 때문에 당장이라도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은 충동에 다리까지 떨리기 시작했다.

'고미나'

그녀가 내 앞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옆에 있는건 새로운 여자친구니?"

미나의 시선이 나에게서 다혜에게로 넘어갔다. 미나와 다혜는 학교 밖에서는 분명 초면일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내가 있더라도 다혜가 옆에 있으면 어느정도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분위기로 봐서는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간 모양이다. 초면인 다혜조차 귀찮게 알짱거리는 날벌래를 보는듯 쏘아보는 걸 보면 그렇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혜의 안색을 살폈다.
다행히도 조금 놀란듯하나 그렇게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는 않고, 오히려 약간 즐거워 보이는 표정을 짓고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다혜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누가 이런 녀석의 여자친구라는거야? 설마 나를 두고 한 말은 아니겠지? 고미나."
"내 이름을 알고있는걸 보니 같은 학교인가보네? 그런데.. 미안, 너 같이 흔하게 생긴 사람은 잘 기억하지못하는 편이라서 말이야~"
"뭐, 넌 우리학교에서 유명인이니까, 그 정도는 이해못하는 것도 아니야~ 워낙 신경써야할 눈이 많다보니 나 같은건 안중에도 없는게 당연하겠지. 그런데 유감이지만 나는
널 알고있어서 말이야~ 너에 대한 소문도.. 조금은 알고있다구?"

보통사람이라면 위축되는게 당연한 미나의 분위기와 말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혜는 미나의 의도적인 시비에도 태연하게 반응했다.

"너, 이 녀석한테 차였다지 아마? 뭐~ 단순한 소문이니까 네가 신경쓸건 없겠지만~"

다혜의 비웃는 듯한 말투에 미나는 살짝 기분이 나빠진듯 미간을 찌뿌렸다. 그리고 갑자기 시선을 내 쪽으로 돌리더니 위협적인 말투로 내게 말했다.

"..오현민. 당장 이리로와.."

말 한마디 한마디에 무게가 담겨있다. 그리고 사뭇 전해져오는 그 말의 뜻. 말로 안해도 표정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안오면 죽이겠어'

다리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몸은 생존본능에 의해 말이 떨어지자마자 미나에게 가려고 했지만 나는 그것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다혜는 그것을 눈치채고 재빨리 말을 이었다.

"어이, 고미나. 쓸데없이 딴소리 하지마. 일단 이 녀석은 재쳐두고 나랑 얘기하자구."
"내가 왜 너 같은 거랑 얘기해야되는지 이유를 모르겠는데? 애시당초 넌 뭐야? 미안하지만 내가 볼일있는건 니 옆에서 찌질하게 서있는 내 노예거든? 관련없으면 제발 꺼져주지 않을래?"
"아니, 그건 안되겠는걸? 미안하지만 내가 이 녀석하고 나름 알고지내온 사이라서 말이야~ 친구라고나 할까.. 아무튼 아무래도 종인지 노예인지 뭔지 모롤 것 때문에 이 녀석이 조금 곤란해 하는 것 같아서 그런데. 너야말로 헤어졌으면 곱게 끝낼 것이지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물고 늘어지는거야? 너야말로 찌질하다고 생각하지않아?"
"너랑 상관없는 이야기야. 대체 뭐야? 야, 오현민. 이 여자 네가 부른거야?"
"지금 얘기해야 할건 너하고 나야. 괜히 쓸데없이 현민이한테 말걸지마. 너야 말로 상관없는 주제에."

다혜의 이 말을 이후로 미나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걸 느꼈다. 단순히 차갑기만 했던 그녀의 시선이 점점 경멸로 바뀌어갔다.

"..정말이지 짜증나는 여자네.. 니가 뭘 알아 우리 관계에 대해서.."
"뭘 알든 상관없이, 지금 네가 현민이한테 하는 태도는 확실히 잘못됬다고 생각하는데? 사람을 그렇게까지 매도해도 되는거야? 천하고 더러운 노예라니.. 지금이 조선시댄줄 알아? 모르는것 같아서 말해두는데 사람이 사람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어. 그러니까 더 이상 그런 건 그만둬. 애인한테 차였다는건 확실히 힘들고 아픈일이지만, 지금 네가 하는 짓은 도를 넘어섰다구."
"..지금 내가 나쁘다고 하는거야? 야, 오현민 뭐라고 말 좀 해보지그래?"
"얘가 무슨 할 말이 있을거라고 생각해? 적어도 자신에 대해서 노예라고 부르는 여자에겐 할 말 없다는 것 같은데? 흠.. 내 생각엔 헤어진 것도 그 태도 때문인것 같은데? 아닐까?"
"..!!!"

아, 위험하다. 위험해!! 다혜도 그렇지 왜 이렇게 말을 심하게 하는 거야.. 이건 상담이 아니라 그냥 대놓고 시비거는거나 마찬가지잖아? 이걸 말려야하나? 하지만 나는 다혜를 믿기로했다. 단순히 타인으로 부터 해결을 바라는 바보같은 남자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섣불리 나섰다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

입안에 고인 침도 함부로 못넘길 만큼의 분위기에서 나는 미나의 쪽을 어정쩡한 표정으로 바라만 볼뿐 아무 말도 하지않고 미나와 직접적으로 눈이 마주치는걸 피했다. 지금쯤 미나는.. 무슨 얼굴을 하고 있을까? 모욕감에 일그러진 얼굴? 사무치는 분노에 붉어져버린 얼굴? 아니면..

"..그러니까 뭐냐고. 넌 뭔데 오현민 옆에 있는거야.."
"말했잖아? 단순한 친구야. 친구가 친구 옆에 있는게 그렇게 이상한가?"

미나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숙였다. 이 상황을 이해못하겠다는 것과 동시에 다혜의 기세좋은 어조에 상당히 기분이 나빠진 모양이였다.

"..뭐, 아무래도 좋아. 너 같은게 하는 소리 들어봤자 말그대로 시간낭비지. 야, 거기 있는 노예자식아.. 계속 그런 얼굴로 있을거야? 지금 주인님의 기분이 어때보여..?"

미나가 다시 내 쪽을 돌아보았다. 지금의 나로써는 절대적으로 미나의 얼굴을 보고 평상심을 유지 할 수 있을리가 없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고, 행여나 실수로라도 돌아볼까봐 눈을 감았다.

"크윽..."
"걱정마.. 이제 거의 다됐어. 조금만 참아 현민아."

괴로워하는 나에게 다혜의 작으면서도 상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다혜라면.. 아니, 다혜니까 믿을 수 있어..

"아직도 그런 소리하는거야? 적당히 좀 하지그래? 자신을 찬 남자에게 그런 종인지 노옌지 같은 걸 달아놓고 복수라도 할 생각이야? 부탁이니까 제발 그만해! 같은 여자로써 완전 꼴불견이라구!"

.................
갑작스럽게 침묵이 흘렀다. 다혜의 큰 목소리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쪽으로 시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신경쓸 우리들이 아니였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는 그보다 더 중요한 상황이 눈앞에 있었다.
사람들이 소곤대면서 가던 길을 다시 가기 시작했다. 다혜가 말한 이후로 당분간 아무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였다.

.
.
.


그 뒤로 얼마나 지났을까.. 천천히 미나의 입이 먼저 열리기 시작했다.

"..꼴불견..인가.. 그래, 꼴불견 일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이 전혀 잘못됬다고는 생각하지않아."

미나야..?
갑자기 오만하고 내려다보는 듯한 차가운 목소리는 온데간데 없이 가냘프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다 이럴리가 없다. 저곳엔 미나가 있다. 분명 미나가.. 나는 순간적인 이질감에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알아차려버렸다.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하얀 손을.. 그리고 불안한 시선을.. 그리고 그 목소리의 주인이 틀림없이 미나임을.. 정체모를 끔찍한 괴로움이 가슴을 뭉개기 시작했다. 가슴을 억누르다 못해 완전히 부스러뜨려 질 것만 같은 아픔.. 그리고 괴로워하며 뛰어가는 심장.. 나는 어째서..

"그건.. 무슨 말이야? 그럼 네가 옳다는거야? 지금 현민이한테 취하는 태도가 정당하다는거야? 웃기지마! 너야말로 뭔데..!!"

그에 비해 다혜는 살짝 흥분한듯 더욱 언성을 높혀가며 미나에게 윽박지르 듯이 말했다. 미나는 괴로운듯이 자신을 보고 있는 나를 보며 살짝 미소짓고는 몸을 돌려 뒤돌아섰다.

"나도 몰라.. 모른단 말야.. 모르는걸..!! 지금 아직도 왜 내가 오현민한테 이러는건지 모르는겠는걸 어떻게하라는거야..? 분명 헤어졌는데.. 이제 아무 사이도 아닌데.."
"....뭐라는거야."
"그래도 단 한가지 알고있는게 있어.. 그건말야.. 내가 아직은 이 관계를 끝낼 생각이 없다는거야. 그야.. 이건 약속인걸.."
"..그러니까 의미 모르겠다고!"
"그럼.. 오늘은 어떻게해도 여기까지니까.. 내일 또 봐. 오현민."

그렇게 속삭이듯이 말하고는 빠르게 멀어져가는 그림자에게 나는 아무것도 바랄 수가 없었다. 멈춰주는 것도.. 다시 돌아봐주는 것도.. 그리고 다시 미소지어주는 것도.. 그렇다. 내 눈 앞에서 그녀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 때 처럼.. 내가 그녀에게 이별을 고한 그 날처럼..

"아.."

멀어져가는 미나를 몇번 크게 부르고는 부르기를 포기한 다혜는 내 앞에서서 내 안색을 살폈다. 그러면서도 다혜는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분명 부끄러운 탓이리라. 나한테 그런 모습을 보여준건 아마도 처음이였을태니까..

"..멋대로 가버리다니.. 반칙이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렇네."
"우응.. 혹시 나한테 실망했어..? 화내는 여자는 역시 싫어?"

다혜는 불안한 듯이 물어봤다. 아무튼 이 녀석은 일부로 이러는 건지 가끔씩 의심스러울 때가 있단 말이야..

"하하.. 분명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싫은건 아니야? 특히 나를 위해 화내주는 여자라고 한다면 매력지수 꽤 높다고?"
"그, 그래?"

다혜는 부끄러운 듯이 한손으로 머리카락을 배배꼬며 내 시선을 피했다. 아무튼 이렇게 보면 알기쉬운 녀석이라니까!

"응, 물론! 대신 이름의 끝에 '혜'가 들어가는 여자는 제외야~"
"너, 너어~!! 지금 놀렸지?!"
"푸하하하!! 뭐야~ 설마 기대했어?"
"아, 아니지만! 그.. 뭐냐.. 으앙~! 그냥 죽어어어어엇!!!"

미나가 사라진 놀이공원은 다시 푸른 하늘 밑에서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멋진 배경을 되찾았지만.. 뭘까 이 상실감은.. 이 허망하고 되돌릴 수 없는 짓을 해버린 것 같은 기분은.. 그렇게 미나가 있었던 자리를 지나치면서도.. 나는 아직까지 끔찍한 괴로움에 사무쳐있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던 것이였다. 오히려 더 악화됬음을 느꼈던 것이다. 어째서 나는..

.
.
.

그리고 그 뒤로 놀이공원이 끝날 때까지 나는 다혜와 함께했다. 분명 즐거웠다. 많이 웃었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다혜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와서 침대에 누웠을 때 갑작스럽게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이 모든게 거짓임을 주장하는 듯이 나를 적셔가는 것이였다..

[11화 END]

0
이번 화 신고 2016-04-04 22:54 | 조회 : 931 목록
작가의 말
nic68615048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