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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 살아오면서 제일 많이 들었던 소리가 '너는 같이 지내다보면 굉장히 좋은 녀석인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솔직히 답답해.'다. 틀리지 않는 말이고 반박할 생각도 없다. 어머니가 도서관 관리자이셨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는 책을 접하게 되었고 축구,게임 보다는 책이 좋았다. 그렇다고 인간관계를 멀리하지는 않았다. 사람을 멀리할 만큼 나는 혼자있는게 좋았었던 것은 아니니깐. 점심시간은 물론 시간이 날때마다 학교 도서관을 찾았고 그게 당연하다는 듯 일상이 되어버렸다. 서준연을 알게된것은 고등학교 입학 날. 아버지는 전근이 매우 잦았기 때문에 2~3년 주기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버지만 따로 집을 옮겼지만 어머니가 외롭다고 하셨기 때문에 여러가지 여건을 무릅스고 따라 이사를 하게 된것이었다. 아무튼, 학교 가는 길은 이사온 후에 봐왔지만 순간 길을 잘못 들어 엉뚱한 곳에 빙빙 돌고 있었다. 나와 같은 교복을 입은 사람을 발견하면 되겠지―하고 맘편히 발걸음을 옮겼는데 아니나 다를까 발견했다. 나와 똑같은 교복을 입고 있는 한 녀석을. 녀석은 길고양이로 보이는― 담위에 누워있는, 점박이 고양이를 만지고 있었다. 고양이는 싫어하지 않았지만 길고양이는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언제 누나가 길고양이를 데리고 왔는데 그만 내 다리를 긁어 피가 철철 나 몇바늘 뀄기 때문에 그닥 반기는 편은 아니었다(가나는 다행히 매우 순하다). 그때 시간은 8시. 등교시간을 10분이나 오버한 시간이었다. 그런건 상관없다는 듯이 그녀석은 여전히 고양이를 만지고 있었다. 고양이는 그의 손길이 좋은 것인지 갸르릉 거리며 그 기분 좋음을 녀석에게 맡기고 있었다. 녀석이 이 이상 지각하던 말던 상관은 없지만 나는 빨리 가야하는 상황이었다(사실 그렇게 빨리 가야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차피 지각은 해버렸기 때문이다).

"저기..."
"응?"
"송한남고등학교 학생이시죠? 죄송한데 제가 길을 잃어버려서... 어느쪽인지 좀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일단 상급생일지도 모르니 존댓말을 썼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자주봐왔다고 아까 말했듯이, 소설 주인공이 말할법한 말투가 이미 내가 말하는 일상투가 되어버렸다. 다른 녀석들은 처음에 나의 말하는 법을 듣고 '교과서에 나오는 철수같아!' 라고 많이들 놀렸다. 나는 이게 사람하고 대화하는 기본적인 말투인데 녀석들은 아니었던 것이다. 뭐가 잘못됬나 싶어 바꾸려고도 했지만 이미 입에 베어버렸고 딱히 이게 잘못되었다 생각은 들지 않아 그냥 뒀었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내 말투가 이상한건지 대답은 하지 않고 뚫어져라 나를 쳐다본다. 남들이 내 말투를 처음들었을 때와 똑같다.

"..저기."
"...아, 미안. 미안해. 아, 그렇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음, 그래. 어차피 나도 가야 되니깐 같이 가자."
"어,어어..."

고양이에게서 손을 때자 고양이는 아쉬운듯 울음소리를 낸다. 사실 상급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학교는 명찰이 상급생마다 다른데 아직 우리는 명찰을 안 받았기 때문이고 교복에는 명찰이 없었으며 이제 막 고등학교 신입생이라는 티가 났기 때문이다. 키는 나와 비슷했다. 당시 내 키는 172cm 였고 녀석의 키는 174cm였는데 1년 후 녀석은 180cm를 훌쩍 넘겼다. 음, 사실 이건 중요하지 않다. 아무튼 그렇게 녀석과 나는 통성명을 하며 학교에 도착했고 학교 게시판에 붙어있는 반편성표를 보니 아니나 다를까 같은 반이었다. 반에 들어서자마자 녀석과 나는 지각이라며 담임선생님께 혼이 났고 5분 후 강당으로 갔다. 그게 그녀석과 나의 첫만남이었다. 녀석은 친구들이 매우 많았다. 계속 이 지역에서 살았던것인지 올라오는 초,중학생 친구들 뿐만 아니라 사교성도 좋아서 금방 같은반 친구들과도 어울렸다. 나야 이사 다니는것에 익숙해져서 처음에는 적당히 2~3명 정도 말을 텄지만 그녀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면 녀석과 나는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 사실 길고양이를 발견한 그 쪽과 아파트 거리는 꽤나 멀었다. 하지만 학교와는 가까웠지만 어디까지나 그 쪽과 학교가 가까운것이지 아파트에서 학교까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한마디로 아파트에서 학교까지 가는 가까운 길이 있음매도 불구하고 녀석은 매일 그쪽으로 가 길고양이와 놀아주고 등교한다는 것이었다. 귀찮지 않냐는 나의 질문에 녀석은 귀여우니깐 괜찮아. 라는 답을 해주었다. 녀석의 성적실력은 매우 우수했다. 나는 국어만큼은 모든 과목에서 제일 자신있었는데 항상 국어 포함 모의,중간,기말고사 1등은 녀석이었다. 솔직히 녀석의 성적은 일반고가 아닌 다른 특수고를 가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에 대답은 평범한게 좋아. 였다. 딱히 좋은 고등학교를 가는것이 평범과 먼일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성적,체육,사교성,키,외모 등등 모든것이 뛰어난 녀석이었다. 옆에 여고가 있어서 그런지 소수여학생들은 그녀석을 보기위해 교문앞에 서있는 것을 자주 볼수 있었다. 남들이 보면 부러워 할수 있어 보였지만 나는 아니었다. 키 빼고는. 그냥 귀찮아 보였다. 그에 대한 녀석의 대답은 그렇기도 하지만 그렇지도 않아 였다. 한마디로 녀석은 어느정도 즐기고 있었다는 거다. 5살때부터 쭉 경기도에 살았었고 다른 지방으로 갈생각은 없다고 말한 건 그녀석이었다. 그런데 현재 나는 서울에 있고 녀석도 서울에 있다. 누구를 보러온건가..? 아니면 여기서 사는 것인가.. 어느쪽이든 이쪽에 있다면 마주칠 확률이 없는 건 아니다. 다행히 나는 소설을 쓰기 때문에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건 일상이 되었고 필요 이상 제외하고는 밖에 나갈일이 거의 없었다. 가나도 밖보다는 집안이 편해보이고 편집자 형도 집에만 오기 때문이다. 딱히 밖에 나가는것이 두려워서 그런것은 아니다. 그냥 소설은 집에서만 충분히 쓸수 있고 집이 편하기 때문이었다. 안타깝게도 오늘은 밖을 나가야 한다. 먹을게 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달에 한번 어머니가 반찬을 챙겨주시고 가시긴 하지만 현재 먹지 못해 상한것과 다 먹어 비어버린 통이 대부분 이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나는 요리하는 재주가 없어 인스턴트 식품이나 반찬파는 가게를 자주 찾는다. 다행히 밥하는 법은 어머니가 참다 못해 알려줘서 쉽게 할수 있다지만 요리는 계란후라이 빼고는 꽝이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녀석은 요리 또한 잘했다. 집에 왔을 때 부모님은 여행가고 누나는 고3이어서 집에 아무도 없었고 먹을만한 반찬 또한 없었다(시켜먹으라고 돈만 주시고 가셨다). 그래서 녀석은 집안에 있는 재료들로 대충 볶음밥을 해주었는데 솔직히 어머니가 해주셨던 볶음밥보다 맛있었다. 그냥 만능재주꾼이었던 것이다 녀석은. ...아, 한가지 녀석에게는 못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노래. 음치는 아니었지만 잘한다고는 못하는 노래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나도 노래를 못한다. 2시가 다 되어가는 아직 한 낮인 시간이었기 때문에 아직 태양이 뜨겁게 비추고 있는다. 오랜만에 밖에 나가서 그런지 더욱더 강렬하게 느껴진다. 불행하게도 인스턴트 식품은 아직 어느정도 있고, 나는 밥을 먹고 싶기 때문에 반찬가게를 찾아가야 하는데 반찬가게는 20분이나 걸어서 가야되는 곳에있었다. 차를 타고 가면 편하겠지만 아쉽게도 차가 없다. 택시를 타면 되지만 돈이 아깝다. 버스는.. 방금 놓쳤다. 지금 기다리면 아마 20분은 기달려야 할것이다.

"아직 여름될려면 멀었는데..."

그래. 아직 5월이기에 여름이 될려면 두달이나 남았다. 그런데도 덥다. 지금 더우면 여름은 얼마나 더울까. 그래서 여름과 겨울은 밖에 잘 안나간다. 집에 빵빵하게 나오는 에어컨이 있는데 뭣하러 밖에 나올까. 어차피 일도 집에서 하는데. 어느정도 걷다보니 멀리서 항상 가던 반찬가게가 보인다. 이주에 한번은 가기 때문에 아주머니들은 나를 단골로 찜해둬 항상 반기신다. 수현총각왔어~? 오늘도 다크써클이 장난이 아니네! 작업은 잘되어가? 내 아들이 수현총각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하며 여러모로 반기신다. 반찬가게에 들어스자 아주머니들이 보인다. 맛있는 냄새들이 코에 풍기고 시리얼로 대충 채웠던 배가 꼬르륵 거린다. 가게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다. 한명 빼고는. 그것도 반찬가게와 매우 안어울리는 정장차림의 남자가. 아주머니들 중 한명이 나를 발견한것인지 손을 흔들며 어서와 수현총각! 하며 인사한다. 평소와 다름없이 나도 인사를 한다.

"...수현?"

앞에 서있던 정장차림의 남자가 중얼거리듯 내이름을 부른다. 뭐지...? 왠지 목소리가 낯이 익는것처럼 느껴지지만 처음들어보는 목소리였다. 정장차림의 남자가 뒤를 돌아봤다.

"...윤수현?"
"..."

10년전 기억이 되살아난다. 기억속 안 변한 듯 변한 남자가 있다. 젓살은 빠져 고등학생이 아닌 완전한 성인이 되어버린 그가 나의 이름을 부르며 서있는다.

"서준연."

다신 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남자가 나의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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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4-03 17:59 | 조회 : 787 목록
작가의 말
오나

안녕하세요 오나 입니다! 올리시는 시간은 정확히 말해드릴수는 없겠네요.. 들쑥날쑥 찾아뵐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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