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책은 참으로 좋은 것이다. 음악처럼 시끄럽지도 않고 어떤 책이든 많은것이 담겨져 있으며 무언가를 상상하게 만들어주고 책을 읽는 시간 만큼은 그 어떤것에도 구애 받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책을 사랑하는 이유고 내 삶의 이유였다. 서준연을 만나기 전까지는.

"..."
"..."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다. 아주머니 한분께서 무슨 사인데 그러냐고 계속 물어보자 그제서야 이러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정신을 차렸다. 서준연은 여전히 아무말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인사도 없이 그러고 있다가 내가 여기에 온 이유를 생각해내고 반찬들이 있는 쪽으로 서준연을 지나쳐 갔다. 뒤에서 그의 시선이 느껴지지만 무시하고 반찬을 샀다. 딱히 그에게서의 어떠한 말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아무런 행동도 말도 하지 않는다. 역시 그는 나에게 화가 나있을까. 그럴만도 하겠지. 아무런 말도 없이 서울로 가버린건 나니깐. 반찬을 구입하고 뒤를 돌아봤을 때 서준연은 반찬가게 문앞에 서있었다. 애써 무시하며 문쪽으로 다가가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고 나가자 서준연도 같이 나왔다.

"여기에 사는구나."
"...으응."
"너는 무엇하나 변하지를 않았네. ...마른것 빼고는."

가게 문 앞에서 이렇게 대화하고 있을 이유가 없기에 나는 대충 인사를 하고 이 상황에서 빠져나올려 했지만 그는 나의 팔을 잡고 이야기 좀 하자면서 갈길을 멈춰 세웠다. 당연히 거절하고 싶었지만 그의 얼굴과 눈을 보니 그럴수 없었다. 무언가 다급해보였다. 이대로 내가 가버리면 영영 볼수 없을것 같은 표정이 곧장 집으로 달려가고 싶은 나의 마음을 멈춰 세웠다. 들린곳은 반찬가게에서 멀지 않은 한 카페였다. 브랜드 카페가 아닌 소소히 꾸민 작은 카페였다. 서준연은 에스프레소를 시키고 나는 초코라떼를 시켰다. 내가 단걸 좋아한다는 것을 아직도 기억하는 건지 모르겠다.

"잘 지냈어?"
"...보다 싶이."
"아까도 말했지만 역시 말랐네. 고등학교 때도 저체중과 근접해서 걱정했었는데. 밥은 제대로 챙겨 먹고 있는거야? 설마 반찬가게만 의지 하는 것은 아니겠지?"

서준연은 항상 나의 몸을 보며 이게 정상적인 인간의 몸이냐며 급식을 먹자마자 매점으로 끌고가 빵이라든지 항상 무언가를 사주었다. 배는 불렀고 이렇게 먹어봤자 살이 찌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있었지만 그래도 웃으면서 건네주는 것을 거절할수 없었다. 그는 잘 빼어입은 정장을 입고 있다. 분명 어디 좋은 곳으로 취직해 잘사고 있다는 증거다. ...결혼은 했을까. 28살이면 결혼을 안했다고 말할수 없는 나이다. 물론 이르고 요즘같은 시대에 28살이란 나이로 결혼은 빠르다고 생각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지 않는가. 힐끔 그의 손을 살펴보았다. 결혼 반지나 그런것과 관련된 반지는 없어 보였다.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안심? 그에게 연인이 없다는 것이 나에게 안심이 되어서 무엇하나. 그럴 이유는 없었다.

"너야말로 잘 지내는 것 같네."
"...윤수현. 너 아까부터 내 눈을 피하는 것 같네. 나와 있는게 달갑지 않아?"
"..."

달가울리가. 평생 안보겠지 하고 생각하던 사람이 이렇게 만나 내앞에 딱 앉아 있는데 그 누가 편히 있을 수 있을까. 보통 카페처럼 진동벨이 울려 셀프로 가져오는 것이 아닌 종업원이 가져와 우리 앞에 놓아준다. 맛있게 드세요―하며 여자 종업원이 힐끗 서준연을 쳐다보고 간다. 그는 무섭울리만큼 카페 인테리어와 잘 어울렸다. 커피를 들어 마시는 순간이 화보의 한 컷인것 같다. 앞에 놓여있는 초코라떼는 휘핑크림이 올려져 초코시럽까지 뿌려져 있는 것이 달고 맛있어 보이지만 마시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마시지 그래. 단거 좋아했잖아. 입맛이 바뀐건 아닐테고."
"..."
"하아. 내가 지금 돌과 대화하는 건지. ...지금 뭐하고 있어?"

직업에 대해 묻는 것이다. 나야말로 그가 지금 무슨일을 하고 있는 건지 궁금하다. 주말에 정장을 입고 반찬가게에 있는것이 제일 궁금하긴 하지만 말이다.

"글을 쓰고 있는 건 아니지? 윤수현이란 작가는 어떤 노인분밖에 없던데..."

그럴만도 하다. 나는 본명이 아닌 예명을 쓰고 활동하기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있어."
"진짜?"

글을 쓴다는 말을 하자마자 그는 진심으로 기뻐하는 표정이다. 학창시절부터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말을 몇번 해왔다. 장래희망에도 소설작가라고 항상 써왔으니 당연히 그가 내 꿈이 무엇인지는 알고있을 법했다.

"본명이 아니라 예명을 쓰고 있고..."
"그렇군. 어쩐지 없더라니... 예명은?"
"...권 율."
"권 율?? 그 '초록 오렌지' 권 율?"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 그를 쳐다보았다. 놀란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내 첫 작품을 알고 있다. 딱히 유명한 책이 되었지는 않아서 팬들중 극소수만 알고 있다고 편집자 형이 전에 찔러주듯 말했었다. 근데 어떻게 그가 알고 있을까.

"세상에. 하하.. 네가 권 율이란 말이지?"

그의 표정은 아까보다 더 밝게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작가 권 율을 알고 있었나 보다.

"너를 찾으려고 윤수현을 검색해봤을 때 없어서 허탈한 기분으로 서점에서 나갈려고 했을 때 눈에 띄는 책이 하나 있었어. 깔끔하고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샀는데 내용이 무척이나 감동먹었었지. 그 이후부터 권 율에 관련된 신작은 다 샀지. 너도 알다 싶이 내가 그닥 책에 관심이 없는 거 잘 알잖아? ...근데 그게 너라니."
"...고마워."

떨리는 목소리로 답학 그가 눈치를 챌까봐 입을 재빨리 다물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비록 권 율이 윤수현이라는 것을 알지는 못했지만 그는 나를 알고 있었다. 손이 떨린다. 부드럽게 쌓여져 있던 휘핑크림은 녹아 없어진지 오래였다.

"그래... 네가 권 율이었구나. 하하. 존경하는 작가님이 앞에 계시는데 싸인은 받을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너는..."
"응?"
"무엇을 하며 지내?"
"...처음으로 나에 대해 물어봐주네."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그런 눈에 또다시 시선을 피해버렸다.

"검사야."
"아..."

검사라는 대답에 놀라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검사라니. 학창시절에 내가 알고 있던 그의 장래희망은 분명 의사가 아니었던가? 그의 좋은 성적과 머리로는 그가 원하는 직업이 될수 있을거라 의심치 않았다. 물론 검사가 나쁜 직업은 아니다. 당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의사와는 거리가 멀고도 아주 먼 직업이었다.

"되고 싶은 직업이 의사라고..."
"직업이야 항상 바뀌는 거지 뭐."

그렇긴 해도 그에겐 의사가 되고 싶은 이유가 있었지 않았나? 분명...

"그건 됐고. 이렇게 재회하게 될줄은 몰랐네."
"그러게. ...서울은 언제 온거야?"
"대학교 다닐려고. 작년에 로스쿨 졸업하고 올해부터 검사쪽 일을 하고 있지. 사건 관련되서 이쪽으로 오게 된건데. 집이랑 그리 멀지는 않아."
"아까 반찬가게에 온건 그럼 사건때문에..."
"응. 근처에 사고가 피해자와 관련된 것을 혹시나 아는 거 있나 해서 물어봤지."

검사도 되기 쉬운직업은 아니기에 괜히 관섭할 필요는 없다. 그저 옛친구인 내가 무얼 말할수 있겠는가. 그때 전화벨소리가 울리고 서준연은 휴대폰에서 걸려온 사람을 보고는 좋은 미소를 짓는다.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통화버튼을 누른다음 귀에 가져다 대자 밝게 외친다.

"응. 아들~"
"?!"

뭐지. 지금 내 앞에 있는 서준연의 입에서 대체 무슨 단어가 흘러나온것인가. 아들? 아들? 아들이라고 했나? 분명 내 귀가 잘못되지 않았다면 그는 아들이라고 했다. 세상에. 아들이라니. 그는 결혼반지를 끼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아들이라니. 이혼한건가? 하지만 손가락에 반지를 낀 흔적이 없었다. 머리가 하애져 서준연과 그 '아들'이라는 사람과 무슨 대화를 하는지 들리지가 않는다. 서준연이 대화를 종료하고 나서야 멍해진 머리를 정리식혔다.

"미안. 갑자기 통화를 해서. 꼭 받아야 되는 전화거든."
"...결혼... 한거야?"
"응? 아! 아아.. 미안해. 내가 아들이라고 했었지? 미안. 오해했겠네."
"..."

내앞에 있는 사람이 뭐라 말하는지 모르겠다. 결혼했냐는 나의 말에 대답은 없이 오해했다며 말한다. 아들이라고 했는데 무슨 오해라는 것인가. 오해? 무슨 오해?

"내 누나 아들이야. 이혼하고 ...교통사고로 5년전에 죽었는데 아직 1살밖에 안되었을 때였는데 맡아줄 사람이 없어서 그냥 입양했어."
"미안."
"아니야 아니야. 언제 한번 보여줄게. 굉장히 귀여워. 이름은 서윤후. 올해로 6살이지."

몰랐다. 그에게 나와 같이 누나가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아마 5살위라고 했었을 것이다. 이름은... 서은우. 그래 서은우 였다. 한두번 본적밖에 없지만 얼마나 상냥하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런데 5년전에 세상을 떠나 없는 사람이라니...

"내가 아빠라고 믿고 있긴 한데 엄마가 없는 이유를 돌려 말하고 있긴 하지만 어렴풋이 알고 있을거야... 어린애가 무엇을 걱정하는 건지 엄마와 관련된 것은 항상 무언가 눈치를 보면서 말하지..."
"..."
"음, 이런 분위기를 형성시킬려고 한건 아니었는데."
"은우누나의 아들이라면 분명 사랑스럽고 귀엽겠네."
"...응."

씁쓸한 표정을 다시 짓고는 웃는다. 내가 알기로는 분명 중학교때 서준연의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의 가족이 이젠 두명 없다는 것이다. 아마 동생이 한명 있었을 텐데...

"그러고보니.. 동생은 잘있어?"
"응? 아아. 현우 말하는거지? 현재 군대에 있어. 이제 전역이 4개월 남았을 거야."
"그래. 보고 싶겠네."
"물론이지. 군대가기 싫다고 어찌나 울고불고 했었는지... 솔직히 나도 보내기 싫었지만 그럴수 없는 노릇이니깐..."

내기억에 맞다면 현재 22살이니 만약 대학교입학을 했다면 입학하자마자 갔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 어느새 나는 그와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있다. 정말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있는가는 확신하지 못하겠지만 처음 만나던 그 순간보다는 풀어져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고보니 수연누나는 잘 계시지?"
"응."
"30 넘으셨을 텐데 결혼을 하셨어?"
"아직. 자기도 안했으면서 나한테 선 자리나 만들고... 아..."
"..."

실수다. 분명 그와 아무 상관없는 말이지만. ...아니, 아니다. 아니야. 그의 얼굴을 보기가 무섭다.

"...벌써 선을 보게 하시는거야? 빠르네."
"..."
"선을 보게 하려는 거면 애인은 없다는 거네?"
"..."
"수현아."
"!"
"난 아직 잊지 않았어."

두근두근―

"네가 무엇때문에 그랬는지는 몰라도. 나는 잊지 않았어."
"..."

나는 기억하고 있어. 그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안돼. 안돼. 이 이상은 안됀다. 무엇때문에 내가 포기한 것인데. 무엇때문에 내가...

"ㅇ,이만 가볼게."
"잠깐!"
"여기 음료수 값."
"윤수현!"

도망치듯 주머니에서 오천원을 꺼내 초코라떼 옆에 놓고 카페를 나섰다. 뒤에서 나를 부르며 쫒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한참을 뛰어도 나의 이름을 부른다. 숨이 막힌다. 달리던 손이 붙잡히고 막힌 숨을 토해내듯 헉헉 거리며 숨을 고른다. 나의 손목을 붙잡고 있는 그도 잠시 숨을 고르더니 몇년간 제대로 뛴적이 없어 아직도 헉헉 거리고 있는 나의 등을 어루만져 진정시키게 한다. 닿은 손바닥이 매우 따뜻하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따뜻해서...

"나줘."
"수현아."
"나는... 나는..."
"나는 여기에 있어."
"!"
"나는 서준연이이야."
"..."
"나를 외면하지마."

[나를 피하지마.]

기억속의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니야. 아니야. 나는 너를 피한것이 아니야. 나는 단지 너를 향한 내 마음을 알리고 싶지 않았었던것 뿐이야. 자라서 변한 얼굴이지만 똑같은 기억속의 그가 현재도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나는 단지 너를.

'사랑하고 있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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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4-10 00:19 | 조회 : 412 목록
작가의 말
오나

안녕하세요 오나 입니다. 굉장히 늦게 올리게 되었네요. 내일 올리수 있을 까 의문이긴 하지만 아무튼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둘의 관계는 차근차근 풀어나가게 될겁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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