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띠리리링―
띠리링―
띠리리링―

―달칵

"여보세요."
"지금 시간이 몇시인데 아직까지 자고 있는거야, 대체?!"
"...이제 나가"
"하이고, 내가 너를 모를까. 네 목소리 나 방금 일었났소― 거든!"
"...미안."

휴대폰 넘어 상대방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는 소리가 들린다. 그럴만도 하다. 잔소리를 들으며 이불속에 벗어나 화장실쪽으로 간다. 삼일 안 감은 머리는 기름이 흐르다 못해 왁스를 잔뜩 바른것 같이 머리가 뻣뻣하고 갈라져있다. 순간적으로 가려워 머리를 긁는다. 그녀는 아직도 잔소리를 하고 있다. 반박도 못할 상황이라 죄진듯이 아무말도 못하고 듣고 있지만 이젠 그만 그 잔소리에서 벗어나 이 더럽다 못해 남들이 보면 혀를 찰것 같은 얼굴과 몸을 씻고 싶다. 열심히 잔소리를 하던 그녀가 큰소리를 내는 것을 멈추고는 이내 한숨을 쉰다. 아마 그녀는 현재 나의 꼴을 아주 잘 알 것이다. 어쩌겠는가. 이게 나의 일인데.

"이보세요. 윤수현 작가님. 듣고 계셔?!"
"듣고 있어."
"하아. 28년 동안 너를 봐왔지만 여전히 모르겠어.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건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그중 제일 궁금한건 네가 무슨 생각으로 소설을 쓰고 있냐는 거야."
"그 말 일주일 전에도 한것 같은데."
"그래서 문제라는 거야 넌!!"

여태 그녀가 한말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대꾸하는 나의 태도에 드디어 그녀가 폭발해 외친다. 귀와 어깨를 사용해 휴대폰을 들고 칫솔에 치약을 짠다. 어제 이를 안닦았기 때문에 넘칠듯이 짜버린 탓에 입에 무는 순간 덩어리가 느껴져 잠시 미간을 찌푸리지만 이내 이를 닦는다. 이 닦는 소리가 휴대폰 넘어 들리는 것인지 나참 사람이 말하고 있는데 이를 닦냐― 라며 또다시 혀를 찬다. 입안을 헹굴때까지 그녀는 내가 멈추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알기에 말을 아끼고 입주변에 묻은 물기를 수건에 닦고 나서야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수현아. 네가 그토록 바라던 작가가 되고 이렇게 어느정도 이름 알려진 작가가 된것을 나는 정말로 기쁘게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이건 아니야. 적어도 네 몸은 챙겨야지. 아무리 마감이 밀렸다지만 삼일 동안 굶으면 어쩌자는 거야."

틀렸다. 이번에는 어느정도 챙겨 먹었기에 이틀밖에 안 굶었다. 도중에 꾸준히 초콜릿과 사탕을 먹고 설탕과 시럽이 잔뜩 들어간 커피도 마셨다. 그리고 나는 현재 나의 상태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더러운것 빼고는. 작업실로 들어서자 침대위에서 곤히 있던 가나가 내려와 다리에 얼굴을 부빈다. 인간답게 살라고 누나가 선물해준 가나는 올해로 5살이 되어가고 있다. 참고로 고양이다. 처음 가나의 이름을 들은 누나는 너답다―라며 한숨을 쉬었지만 어쩔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보였다. 물론 그 가나를 선물해준 누나는 지금 통화하고 있는 사람과 동일인물이다.

"어제 마감 끝났다며 그럼 몇시간을 잔거야... 덕분에 약속도 깨고 잘하는 짓이다. 이번에 벌써 몇번째인거야."
"10번."
"하, 그래. 10번이나 됐니? 이번에는 마감도 겹쳐서 별 기대 안했다지만 정말 이렇게 될줄 이야.."
"그러니깐 선 안 본다니깐. 내 나이가 몇인데 벌써 선이야.."
"곁에 누군가가 있어야 니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지."
"가나가 있잖아."
"가나가 너 죽었다고 통화해서 알릴 수 있대니?! 그럴 수만 있다면 내가 뭣하러 이짓을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사실 이 대화는 저번에 선약속을 깼을 때 나눴던 대화와 매우 흡사하다. 그녀도 그렇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렇다고 포기하지 않을 거다. 가나를 품에 안고 침대에 눕는다. 14시간 넘게 자서 허리가 뻐근하지만 익숙해서 그런지 상관없다. 그녀가 왜그렇게 까지 나를 선을 못보게 해 안달이 났는지 매우 잘 알고 있다. 글을 쓸 때 화장실 가는 거 빼고는 아무것도 먹지도 제대로 자지도 않기에 이주 동안 그러다가 쓰러져 병원에 일주일동안 입원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래왔기 때문에 그녀는 결국 고양이를 선물해 주었고 그나마 어느정도 나아졌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하지만 마감을 끝내고 자면 10시간 넘게 자기때문에 자기 전에는 항상 사료와 물을 잔뜩 준비해 놓고 잤다). 시계를 보니 1시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입이 심심해 부엌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작업실 안에는 사탕과 초콜릿이 가득했지만 역시 입을 가득 채울수 있는 것을 먹고 싶었다.

"하다못해 애인이라도 만들던가."
"결혼 안 할 거야."
"그말도 10년 넘게 하면 안 질리니."
"안 할 거라니깐."
"그래. 결혼 안 하다 치자. 그럼 곁에 누군가를 만들라고!"
"가나가 있어."
"하이고오!"

돌림노래 하듯이 계속 되풀이 되는 말은 벌써 2년 째다. 나에게는 결혼할 이유가 없는데 그녀는 계속 선을 보라고 한다. 그럼 피해야지 어쩌야 겠는가. 결국 또다시 흐지부지 끝날 대화이다. 냉장고를 뒤져봤지만 전부다 유통기한이 지나 못먹을 것들 뿐이었다. 아직 3시간 남은 우유를 꺼내고 시리얼을 그릇에 담아 우유를 붓는다. 크게 한 입 떠먹을러 할때 그녀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아아, 그러고 보니! 라며 나의 행동을 멈추게 한다.

"걔 봤어!"
"걔?"
"그그, 왜~ 너 고등학생 때 집에 한두번 왔었던 녀석 있잖아. 이름이 뭐였더라.. 서...서... 음.. 서ㅈ.."
"...서준연."
"그래 서준연!"
"..."
"10년이 지나서 그런가 처음에 못알아 봤는데 자세히 보니 알겠더라. 솔직히 난 뭐 낯이 익다 생각하니깐 연예인쪽 사람인가 했는데 준연인거야. 아는 척 할려다가 그래봤자 못알아 볼것 같기도 하고 딱히 그럴 상황도 아니어서 그냥 지나쳤긴 했는데... 니네들 연락한지 꽤 오래됐지?"
"..."
"아버지 전근때문에 서울로 이사하게 되었으니... 그래도 연락처는 있었을 텐데 왜 그동안 연락안하고 지냈어?"
"..."

내가 오랫동안 대답이 없자 기다리다 못해 나를 부른다. 하지만 대답할 생각이 들지 않고 머리속에 내가 내뱉었던 이름이 맴돈다. 서준연. 서준연. 내가 너를 어떻게 잊을 수 있었을까. 계속해서 입에 맴도는 이름을 생각하다 적당히 넘겨짓듯 대화를 마무리 하고 우유 속에 담긴 시리얼을 바라본다. 이미 눅눅해져 바삭한 느낌이 안들고 특유의 색깔이 우유에 섞여 옅은 시리얼 색깔을 낸다.

"서준연..."

다시 내뱉은 이름이 새삼 떨린다. 벌써 10년이나 흘렀고 이제는 다신 연이 닿지 않을거라 생각해 접어둔 그이다. 잊지는 않았다. 다만 접어뒀을 뿐이다. 가장 행복했던 작은 추억속의 한편에. 그런 그의 소식을 들어버렸다.

쿵쿵쿵―

분명 멈췄을 거라 생각했던, 그를 향해 뛰었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아니, 이젠 안된다. 지나간 일이고 다신 되돌릴수도 없으며 그럴 마음도 없다. 그 이후에 나는 그를 향한 나의 마음을 내뱉지 않을 거라 결심했다.

'수현아.'

쿵쿵쿵―

환청처럼 그의 목소리가 기억속에서 빠져나와 마음을 어지럽힌다. 안돼. 다 끝났잖아. 그렇게 생각하고, 도망친건 너였잖아.

"그래, 다 끝났어."

어느새 다가온 가나가 다리를 부빗고는 나의 마음을 빗댄듯 울음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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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4-02 23:03 | 조회 : 719 목록
작가의 말
오나

안녕하세요 오나 입니다. 주말자유연재가 될것 같습니다. 앞으로 잘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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