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화 - 헤레이스 전원이든 누구 한명이든 잡아서 물어봐주겠다고

"알겠습니다. 일단 피곤할 테니 쉬고 계십시오. 필요하면 부르겠습니다."

.
.
.

"그래서, 지나가던 사람 붙잡아 놓고 뭐하고 싶은거예요."

오늘 수업은 빠져도 된다는 말에 편하게 과자나 까먹으며 쉬려던 클레아는 레스에 의해 기숙사로 돌아가지 못한 상태였다.

"궁금하면 알-"

"아뇨."

레스의 말을 끊어먹고 말하는 클레아의 모습에 레스는 고개를 저었다.

"이럴 때는 궁금하다고 하는거야."

"딱히.. 궁금하진 않아서요."

"그래? 내 이름은 [키레아스 드 험프리]. 헤레이스지. 뭐, 교복 봐서 알겠지만. 나한테 관심이 없어도 나는 이미 생겨버렸거든."

궁금하지 않다는데도 알려주는 레스를 보며 클레아는 헛웃음을 지었다.

"관심이요?"

"그렇지."

"무려 험프리 소후작께서는 대체. 왜. 저한테 관심이 생긴 걸까요~?"

다른 가문도 아닌 험프리 후작가였다.

후작가의 일원인 이상, 그가 아무리 자신의 앞에서는 실 없는 인간처럼 굴어도 막상 까보고 나면 내로라 하는 귀족들 중에서도 영향력이 큰 귀족인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꽤나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귀족가문의 일원이자,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직접 이끌 예정이기도 한 소후작은 벌써부터 다른 귀족들이 눈치를 보고 있을 정도로 능력있고 냉정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왜. 어째서. 그런 인간이.!

자신의 앞에서 실실대고 있는 것인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사실 조금 짐작가는 게 있기는 했지만!

계속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에 클레아는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클레아 아르웬이예요. 이번년도에 들어와서 아직 이든이고... 더 궁금한 게 있으신가요? 있어도 묻지 말고, 없어도 말하지 마셨으면 하네요! 그럼 전 이름도 이제 알려드렸으니, 가보겠습니다~"

"...뭐, 하. 뭔가 익숙한데. 어디서 본거지?"
말을 마치고 빠르게 사라지는 클레아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던 키레아스는 앞으로 이든 클래스에 자주 가게 될 것 같다고 중얼거리며 몸을 돌렸다.

*

헤레이스와의 충돌이 있고, 이상하게 리더시스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애들까지도 피한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한 것은 몇 일 후부터였다. 그 작은 균열이 있는 상태로 일주일이 지난 날 일이 터졌다.

평소처럼 사라진 리더시스를 찾아 학교를 돌아다니다가, 리더시스를 찾으면 교실로 가자고 말하는 패턴의 일상이었어야 했는데. 교실로 가자고 말하려는 순간, 리더시스의 입이 먼저 움직였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는 루드의 눈은 리더시스의 멱살을 금방이라도 잡을 듯이 흉흉하게 빛나고 있었다.

"루드, 리더시스의 말부터 일단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뭘 들어보는데. 조금 전에 제대로 말했잖아."
루드의 팔을 잡으며 리더시스를 향해 시선을 주던 클레아는 귀에 작게 들려오는 말에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상관.. 없잖아. 내가 너희랑 어울리기 싫어진 것 뿐인걸. 그러니까 그냥 날 내버려둬. 나한테 상관하지도. 다가오지도 말고. 그냥, 관심 끄라고!"

얘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못 끄니까. 이러고 있지.."
리더시스에게 들리게끔 중얼거린 클레아의 말을 듣고 흠칫 떠는 리더시스를 본 루드는 이때다 싶었는지 앞으로도 계속 괴물이라는 소리나 들으면서 살고 싶냐고, 앞으로도 그렇게 지낼 거냐며 물었다.

"...그래, 난 어차피.. 진짜 괴물..이니까."
리더시스 본인이 스스로 괴물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 것을 아는데. 마음은 개미 더듬이 크기만큼이나 여린 것을 아는데. 새로 생긴 친구와의 관계를 스스로 끊겠다고 말하는 리더시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뒤에서 호들갑을 떠는 디오의 행동은 넘어가줄 만한 것이 못 되었다.

"!!!!!"
안색이 갑작스레 안 좋아진 디오가 표정이 좋지 않은 루드에게 흥분한 채로 계속 '괴물이래!'라는 뉘앙스를 담은 말을 소리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디오로 인해 참고 있던 루드가 터졌다.

"디오."

"어?"

"조.용.히.해."

"....."

"리더시스, 너가 나와의 관계를 끊는다면 나도 내 모든 교우 관계를 끊어버릴거야. 그걸 알고도 너가 과연 우리와의 관계를 끊을 수 있을까?"
다소, 협박성 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네가, 난 왜 애들이 널 괴물이라 부르면서 괴롭히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겠어. 이건 그냥 내가 궁금해서 그러는 거니까. 너랑은 상관 없는 일이야. 헤레이스 전원이든 누구 한명이든 잡아서 물어봐주겠다고."

환하게 웃으며 루드는 리더시스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 하나하나 짓씹듯이 내뱉었고, 루드가 디오의 팔목을 잡고 문 밖으로 나가는 것으로 이 기나긴 대치는 끝났고 그런 둘이 문 밖으로 가버리자 가만히 있던 클레아가 리더시스에게 말을 걸었다.

"저렇게 터질 때는 나보다 심하다니까? 많이 놀랐지~!"

"......아니."

"리더시스, 너는 너가 저주받았다고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우리랑 멀어지려고 그런 말을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너는 저주 받지 않았어.
내 눈에 저주 같은 거 전혀 보이지 않는 걸? 그리고 네가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 그건 절대 네 잘못이 아니야. 아이를 지키지 못한 어른들이 가져야 할 것을 네가 가지지는 마."

당황한 것인지 초점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리더시스를 내려다보던 클레아는 그냥 읊조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는 거지만, 언제든지... 네가 도와달라고만 말한다면 도와줄 테니까. 주저하지 말고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그게 언제든 도와줄테니까."

마치 이브릴의 일을 알고 있는 듯한 뉘앙스에 리더시스가 고개를 퍼뜩 올렸을 때는 이미 클레아 문고리를 잡고 있었다. 리더시스에게는 등만 보인 채로 클레아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어제 일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그렇게 말할 게 아니라. 도와달라고 하는거야."

그리 큰 목소리로 말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귀에 박히는 그 말들에 리더시스는 멍하니 클레아가 나가는 것을 보다가, 문이 닫히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중얼거렸다.

"..부탁하면 되는 거야?"

"응, 부탁하면 돼. 그러니까..."
자신이 나가고 나서야, 속마음을 조금이나마 드러낸 리더시스의 말을 듣던 클레아는 벽에 기대고 있던 몸을 떼어냈다.

0
이번 화 신고 2018-01-15 23:08 | 조회 : 1,334 목록
작가의 말
조그마한 시계

다시는... 연참한다는 말 안할 겁니다...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