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화 - 엄하기도 했지만 언제나 따뜻했던 목소리

“......”
구석에서 끌어낸 것은 좋았는데. 도와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클레아는 아까부터 곱슬기가 있는 머리를 만지는 척하며, 연보랏빛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을 관찰하고 있는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그만 보세요."

"이런 들켰나."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모르면 이상한 거죠."

"그것도 그렇네?"

분명 처음 봤을 때는 무표정이었던 것 같은데. 구경하면서 무표정이 무너지나 싶더니, 이제는 장난기만 많아져서 도와달라는데 도움은 안 주고, 장난만 치고 있는 이 인간을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던 클레아는 루드와 체블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까는 그냥 서로 으르렁거렸다고 하면, 지금은 으르렁거리는 단계를 넘어서 당장이라도 한 판 붙을 기세였다. 심지어 체블은 주문을 외고 있는 상태였다. 말리려고 왔으면서 싸움을 걸고 있는 루드에 역시 루드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레스와 눈이 마주친 클레아는 체블을 눈짓했다.

그래도 눈치가 빠른 사람이어서 다행인걸까.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레스를 보며 클레아는 피식 웃고, 입을 열었다.

“리더시스가 걸릴 바에는 내가 맞는 게 나으니까. 리더시스나 빼줘요.”

“괜찮겠어?”

“안 괜찮을 리가 없잖아요?”

레스의 말에 씩 웃으며 대답한 클레아는 어느새 체블의 입에서 주문이 끝나려는 기미가 보이자, 몸을 움직였다.

“[칸타멘][엘][유디키움][코르][펠][센텐티아][크리테리움]!”

체블의 주문이 끝났다.

“무슨 이든한테 정신계열 환상마법까지 걸고 있냐!”
체블이 읊고 있는 것을 듣고 있던 레스는 체블이 시전하려는 마법을 대충 깨닫고 어이가 없었는지 소리쳤다.

저 마석을 다시 잠금장치를 걸어놓기에는, 여기서 자신은 마력활용조차 배우지 않은 이든이어서 쓸 수 없었다, 그렇다고 2년 선배인 레스에게 부탁한다고 해도, 레스가 마법사의 문장조차 없는 학생인 이상 할 수 없는 것은 똑같았다.

지금으로서는 최선이었다.

팟-
“클레아! 너...”
“클레아?!!!”

루드와 리더시스를 향하던 마법을 향해 부딪혔다. 일부러 부딪히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영향력이 커서 주저앉아버렸다. 클레아의 초점이 사라졌다.

“후배님, 괜찮아?”
레스의 물음에 클레아는 답하지 않았다.

{‘끼에에에!- 크르릉-’}
마법을 맞자마자 들려온 익숙한, 몇 번이고 들어서 익숙해진 소리.

"하델리오! 너, 어떤 마법을 쓴 거지?"

"주제를 모르는 것 같으니 벌을 준 것 뿐이야."

"하아? 아무리 네가 환상계열을 다룬다고 해도, 이제 이든에 들어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학생들을 상대로 이랬다는 걸 알면 교수님들이 가만있지 않을 거다. 징계감이라고. 그리고 벌이라기에는 정도가 너무 심한 것 같은데."

주변에서 레스와 체블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점점 작게 들렸다. 결국 아무것도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눈을 감았고 예민해진 귓가에 들려왔다.


{일리아는 네가 죽인거야?}
‘내가 한 게 아니야.’

이런 소리가 들려올 걸 알았다. 체블이 시전한 마법은 정신을 갉아먹는 마법이었으니까. 자신은 몇 번이고 들었으니까 이 정도 악몽은 괜찮았다. 몇 번이고 들어왔으니까 버틸 수 있었다. 리더시스가 이런 마법을 맞으면 안 되었다. 그 애는 여리니까.

정신계열 환상마법은 그 자체로 위험했다.

시전자에 따라 똑같은 주문을 읊어도 전혀 다르게 발현되기 마련이라서 환상마법을 주로 다루는 마법사조차도 정신계열은 잘 쓰지 않았다. 마법사의 정식 문양조차도 없는 학생이 오래 다룰 수 있는 마법이 아니었다.

어떤 주문인지는 모르지만, 시전자의 역량, 마법이 발현되는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그 시간은 연장되기도 하고 짧아지기도 하고, 심지어 끊어지지 않는 굴레에 들어가기도 하였지만, 자신은 이 마법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마법이 풀리기를 기다리며 버티기만 하면 좋게 끝날 거라고 생각하던 클레아의 귀에.


{클레아, 왜 날 죽인거니.}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죽이지 않았-.’

엄하기도 했지만 언제나 따뜻했던 목소리가 낯선 공허한 목소리로 변해 클레아의 귀에 꽂혀왔다. 그래서 고개를 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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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1-02 23:23 | 조회 : 1,218 목록
작가의 말
조그마한 시계

새해니까. 뭔가 1월달은 매일매일 꾸준히 올라가있는 걸 보고 싶은 나머지...(그냥 매일매일 올릴테니까... 가끔씩 놀러와주세요.하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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