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화 - 어린 날의 그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졸려."

매일같이 늦잠을 자는 클레아를 위해 마스터가 직접 공수한 알람시계를 끄고 난 후에 클레아는 주변을 둘러봤다.

"아카데미... "

첫날이니까 지각해도 봐줄거라고 타협하며, 의식의 흐름대로 이불을 다시 덮고 자기 시작한 클레아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피..."

어젯밤 클레아가 미처 풀지 않은 짐에서 나온 팔뚝만한 여우같이 생긴 동물이었다.

꼬리와 귀, 그리고 다리 털의 끝부분의 색이 마젠타 색인것을 빼면 전체적으로 하얀 여우는 클레아가 덮고 있는 이불 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클레아의 이불 위에서 계속 뛰었고,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몇 분 동안이나 반응이 없던 클레아는 결국 여우가 머리를 입에 물고 살짝 당겼을 무렵에야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피이-"

"카시오."

"피이-."

"알았어. 일어났으니까."

마스터가 옆에 없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남은 복병이 있었다고, 그대로 데려온 것이 문제라고 일어나면서 중얼거리는 클레아에 카시오는 기껏 깨워줬더니 왜 불만이냐는 듯이 울어댔다.

그렇게 얼마 있지 않아 준비를 모두 마친 클레아는 카시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서, 카시오 넌 어떻게 할래? 같이 갈래?"

"피이?"

"모르는 척 하지 말고."

"피이피이-."

클레아의 말을 다 알아듣는 것인지, 클레아의 권유에 자신도 같이 가도 되냐는 듯이 고개를 기울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오늘은 외부수업밖에 없다고 들었어. 너 데려가도 돼."

"피잇-."

방 문고리를 잡으면서 카시오를 향해 한번 웃어보인 클레아는 알아서 따라오라고 말했고, 그에 눈치빠른 카시오는 클레아의 가방에 들어갔다.

벌컥- 탁-
사람 하나와 여우 하나가 나간 방 안에는 깨끗한 방 안의 풍경만이 보였다.

"따뜻하네~"
클레아가 있는 곳은 헬리오스의 어딘가, 햇살이 따스하게 드는 벤치 위에 앉아있었다. 앉아서는 나른한 미소를 짓는 클레아의 모습은 반짝거려서 지나가는 남학생들의 발걸음은 더 이상 옮겨지지 않았고, 그 자리에 못 박힌 것마냥 고정되어 있었다.

그런 남학생들 중에서 용기 있는 남학생이 클레아의 앞으로 걸어왔다.

"......"
분명 누군가의 기척을 느꼈지만 눈을 뜨는 것조차 나른한 햇살 때문인지 귀찮아져서 한가롭게 눈을 감고 있었던 클레아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자신의 앞에 있는 이가 갈 생각을 안 하자, 눈을 떠야만 했다.

자신의 앞에는 얼굴이 붉어질 대로 붉어진 남학생이 있었다. 용건이 있어서 자신에게 온 것이라고 생각했던 클레아였으나, 한참이 지나도 용건을 꺼내지 않는 남학생에 답답해진 클레아는 말했다.

"무슨-"

"저. 저기...!"

"...무슨 일이세요?"

"그, 그게, 그게 말이야아..."
클레아의 물음에 남학생은 말을 하려고 입을 연 것 같았지만, 남학생의 입에서는 제대로 된 언어는 구사되지 않았다. 그에 엄청난 인내심을 가지고 남학생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려던 클레아는 결국 이걸 내가 왜 듣고 있어야 하는 건지로 생각이 튀자, 바로 계획을 세웠다.

"아... 제가 너무 여기 오래 앉아있었나 보네요~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랬다. 아무리 이 자리가 따뜻하고 졸립고, 살짝 졸았다가 일어난 자리라지만, 이런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자유를 방해받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피해주겠다며 클레아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날이 좋으니까. 여기 말고도 어디든 좋은 자리는 있겠지.'라는 무사태평한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루드?"

그렇게 어딘가로 정체없이 걸어가던 도중에 루드의 뒷덜미를 잡고 어디론가 빨리 달려가는 디오를 발견했다.

쫓아가볼까.

쾅-
문이 닫혔다.

"루드! 너 그 괴-, 아, 아니. 아르티안 공자와 같은 방이라는게. 정말이야?!"

당황한 듯이 루드에게 다급하게 묻는 디오에게 들려온 루드의 대답은 안타깝게도 '응'이었다. 당연하게도 루드와 클레아가 여기 있는 이유가 리더시스였으니, 루드와 그가 같은 방을 쓰는 것은 정말로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그들의 사정을 모르는 디오만 애가 탔다.

"만약에라도 체블에게 걸린다면... 오... 맙소사. 어제 내가 제대로 설명을 했어야 하는 건데. 이, 일단은 방부터 바로 바꿔!"

애가 타는 것으로만 못해서 절망했다. 머리를 두 손으로 쥐고 고개를 푹 숙이고 현실을 부정하는 디오의 모습을 보던 루드는 어색하게 웃었다.

'미안하지만, 바꾸지는 못하겠는걸.'

그들이 그러고 있는 사이, 그들이 있는 방의 상자가 쌓여있는 곳의 뒤편에는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클레아와 리더시스가 있었다.

"그래서 리더시스. 이렇다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자신의 눈을 마주보는 리더시스의 자주빛 눈동자는 예뻤다. 어린시절의 그 리더시스가 맞았다. 착하고 여리던 소중한 친구.

그래서 이렇게 흔들리는 눈동자가 너무 안타까웠다.

.
.
.

'아까 엿들을려고 숨었는데. 아침부터 여기 있으면 안 답답하나. '

클레아가 루드와 디오 몰래 숨은 상자의 뒷편에는 리더시스가 먼저 자리하고 있었다.

리더시스는 클레아가 옆에 앉아도 가만히 앉아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클레아는 그런 리더시스를 빤히 바라보다가 루드와 디오가 하는 대화를 듣다가 문득 이 대화를 다 듣고 있는 리더시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는 리더시스를 바라보던 클레아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리더시스의 앞에 가서 무릎을 수그려 앉았다. 그리고 리더시스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아서 얼굴을 마주보게 들고는 물었다.

리더시스는 클레아가 옆에 앉아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조용히 자신의 무릎을 감싸안을 뿐이었다. 그런 리더시스를 빤히 바라보던 클레아는 루드와 디오가 하는 대화를 듣다가 문득, 이 대화를 듣고 있는 리더시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상처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돌렸는데. 겉으로는 아무런 동요를 보이지 않는 리더시스를 보고 생각했다.

얘는 계속 이런 말을 들어왔을 거 아니냐고. 그러면 상처입어도 겉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게 아닐까.

"......"

툭툭-
그렇게 생각한 클레아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리더시스의 앞에 가,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 리더시스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아서 얼굴을 마주보게 하고는 물었다.

"리더시스."

당황했는지, 자신의 얼굴을 잡고 있는 클레아의 손을 치우려, 손을 올리는 리더시스의 손에 손을 치워준 클레아는 리더시스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안녕? 알려나? 나는 이번에 헤일교수님 반으로 들어온 클레아 아르웬이라고 해~"

어린 날의 그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리더시스가 설령 기억을 못한다고 해도, 자신이 기억하고 있으니까. 처음부터 다시 쌓으면 된다고 클레아는 리더시스의 손을 꼭 잡으면서 애써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
.
.

"그래서 리더시스. 이렇다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이 말이 끝나자, 대답 대신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리더시스를 따라 일어나니, 상자 때문에 보이지 않던 디오는 놀란 표정 그대로 굳어버린 듯 했고, 그 옆에 서 있던 루드는 눈치채고 있었지만, 갑자기 일어설 줄은 몰랐는지 놀란 얼굴이 보였다.

그렇게 루드 쪽으로 걸어가려 제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려고 했다.

털썩-
"......"

"클레아?"

"어?"

"......"

네 명의 침묵이 이어졌다.

"......"
'아, 이건 아닌데. 진짜... 다리에 쥐 났어...'

발이 찌르르 울려오지만 쪽팔려서라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려던 클레아는 일어나면서 저려오는 발을 최대한 땅에 붙이지 않으려고 하다가 삐끗해서 넘어지고 나서야 이제는 정말 할 말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조용히 입을 닫았다.

와르르-쾅-
"......"

"...클레아? 괜찮아...?"

"못 일어나겠어..."

루드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클레아는 생각했다.

하나도 안 괜찮아. 그냥 나가줬으면...

진심으로, 상자 속에 파뭍힌 클레아는 자기는 내버려 두고 나가줬으면 했다. 정말 이렇게 간절해지기는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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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10-24 02:13 | 조회 : 1,219 목록
작가의 말
조그마한 시계

#17.12.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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