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화 - 오늘은 기분이 좋았나 보다

"힘들어."

"하하."
학교 구경을 3시간이나 하게될 줄은 몰랐던 루드였다. 클레아의 사탕을 구하려고 돌아다닌 것에 비하면 낫지만. 이건 넓어도 너무 넓었다.

"무슨 학교가 이렇게 넓냐고.!"

"학교가 좀 넓지? 이름이 뭐니?"

"클레아 아르웬이예요."

"루드 크리시입니다."

"아... 음. 너희 짐은 딱 맞게 도착했는데 말이지. 방이 문제여서 말이야. 룸메이트가 정해질 때까지 이곳 손님방을 사용하면 돼."

"아직 안 정해진건가요?"

"그래. 이곳은 상급반 외에는 모두 2인 1실이 원칙인데. 지금 너희 반에는 마땅한 자리가 없어서 다른 반 아이들과 조금 조율이 필요해. 아마 이삼일 내로 정해질 테니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어."

"...남는 자리. 하나 있지 않아요? 리더시스 디엔 아르티안이라던가? 그 친구가 방을 혼자 쓰고 있다고 하던데."

"누가 그런 소리를..."

"아닌가요?"

"아니, 맞긴한데..."

"방이 있긴 있다는 소리네요~ 잘됐다. 그래도 너는 같은 반 친구랑 반 쓰겠네~"

사감 선생님이 잠깐 주저하는 기색이 보이자, 지원사격을 하는 클레아에 사감 선생님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언제든 바꿔줄 테니까. 바꾸고 싶으면 찾아오라고 말했다.

그 모습에 루드와 클레아는 원래 그렇게 맘대로 바꿔도 되는 거냐고 묻고 싶었다. 그렇게 열쇠를 받아가는 루드의 뒷모습을 보던 클레아는 사감 선생님을 향해 말했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 하죠?"

"손님방에서 지내라고는 했지만, 너도 혼자 지내도 상관 없다면 남는 방으로 하나 줄 수도 있어. 한마디로 전학생이 오지 않는 한은 너 혼자 계속 써야 할 것 같은데. 괜찮겠니?"

"상관 없어요."

"501호란다."

방 번호키를 손가락에 걸어 한가롭게 돌리며 걸어가던 클레아는 방문을 열자마자, 짐 가방에서 간식을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음. 이건 여기다 두고. 이건 저기다. 이거는 녹으면 안되는데? 어... 괜찮겠지?"

그렇게 간식정리를 모두 마치고 자려던 클레아는 제일 기본적인 생활용품을 정리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미간을 찡그렸다. 그렇게 한밤중에 궁시렁궁시렁거리면서 짐 정리를 하던 도중에 몸이 너무 뻐근한 나머지 창문으로 탈출했다.

어차피 돌아와서 정리해야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하기 싫은걸~?"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방을 탈출한 클레아는 방이 있는 곳이 건물 꼭대기인 5층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지. 아무런 조심성 없이 지붕을 한가롭게 걸어다니다가 이제는 지붕 위에서 굴러다니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뒹구는 일조차도 귀찮아졌는지. 이제는 아직 해가 지지 않은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해는 안 졌는데. 달이 떴네~"

하늘에는.

해가 지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태양의 반태편에서 희미하게나마 자신의 존재감을 피력하고 있는 반짝거리는 푸른 달이 떠있었다. 한참을 하늘을 바라보던 클레아는 어느 순간 잠들었고, 눈을 떴을 때는 푸른 달은 사라지고 까만 하늘에 환하게 빛을 발하는 하얀 달과 함께 밤하늘을 수놓는 별들이 있었다.

"......밤?"
얼마나 잔 것인지 가늠해보려고 했지만, 시계를 들고오지 않아서 그것도 괜한 짓이었음을 깨닫고 클레아는 다시 하늘을 보는 일에 집중했다. 어렸을 적부터 이상하게 하늘을 볼 때면 마음이 편해지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울적해지기도 했었는데. 오늘은 기분이 좋았나 보다.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이었다.

하늘 하나 본다고 이런 느낌이 든다는 것 자체가 남들이 보면 이상하겠지만, 이상하게도 자신은 항상 그랬다. 하늘과 자신이 과거에 무슨 연관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만큼, 하늘을 볼 때면 항상 기분이 묘했다.

오늘의 하늘은 꽤 볼만하다고 생각하며 시선을 계속 위에 주고 있는데. 아래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클레아는 갈색 로브를 입은 사람이 공원 구석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고 수상해보여서 뭔가 재미있는 사건을 제공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더 주의깊게 보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갈색 로브의 주위로 까만 물체가 생겼다.

"징그러워. 어떻게 저따구로 생기는 건데..?"

조금만 엿들을 생각이었는데. 저렇게 생긴 것의 대화를 굳이 들어야 하는 것일까. 클레아는 고민했다. 이 기회를 그냥 놓칠 것이냐. 조금 참고 더 볼 것이냐.

아무리 생각해도 저 마력 덩어리는 너무 못생겼다. 보기만 해도 시각테러를 당하는 듯한 느낌. 굳이 이런 느낌을 받으면서까지 이 상황을 봐야하는지. 클레아는 한참을 고민했다.

저 징그러운 마력 덩어리를 계속 봐야만 하는 것인가...

"-합니다! 저도 제 사정이라는게..."

그러던 중에 들려오는 소리에, 조금만 더 들어보기로 결정했다.

"시끄럽다. 준비는."

무슨 준비를 말하는거지?

"아, 아시잖습니까. 탑과 협회의 눈을 피하기 위해선 시간이 좀...!"

"헤에? 탑과 협회의 눈을 피한다라. 탑은 몰라도 협회를 피한다는 건... 알고도 넘어가주는 게 아니라면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고작 날파리는 말이야~"

즐거운 기색으로 말하지만, 눈은 싸늘하게 아래를 쳐다보는 클레아는 섬뜩했다. 갈색로브의 주위에 갑자기 푸른불꽃이 타올랐고, 그런 불꽃에 당황한 갈색로브가 땅에 주저앉았고 그런 로브에게 천천히 다가가 '계약을 이행하라.'라고 말하고는 사라진 자리를 보면서 클레아는 혀를 찼다.

"무, 물론입니다. 조,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면..."

"......"
바보네.

생각해 보니, 뜨겁지도 않은 마력을 휘날리게 한 것 뿐이고 저게 진짜라고 믿는 사람만 뜨겁게 느껴지는 그런 종류의 마법인데. 믿나보네?

첫날부터 이상한 거에 걸렸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흥미로운 상황을 미리 알게된 것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것과는 별개로 비밀스럽고 의심할 부분이 많았었던 것 같은 그런 상황을 구경하려고 했던 것뿐이었는데. 기대와는 달리 너무 허무하게 끝나버려서 클레아는 뾰루퉁해졌다.

빨리 자러가야겠다고 생각한 클레아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클레아를 기다린 것은.

"......"
아직 미처 다 정리하지 못한 짐덩이였다.

짐덩이의 산을 잠깐 바라보는 듯 하던 클레아는 짐덩이를 발로 차버리고는 포근한 침대로 가서 그토록 사랑하는 잠에 빠졌다.

잠을 못자게 하는 장애물은 (없애)버리면 되는데. 저건 필요한 거라서 버릴 수도 없어 발로 차버리는 걸로 대신한 클레아의 화풀이였다. 어차피 일어나서 해야하는 거였지만, 저건 아니었다.

그렇게 다음날 클레아의 외침이 들려오는 듯 했다.

"귀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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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10-24 02:12 | 조회 : 1,306 목록
작가의 말
조그마한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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