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화 - 그래서 생각하지 못했다. 실책이었다

"안녕! 친구들?"

클레아는 사탕을 우물거리면서 루드와 자신의 앞에 불쑥 나타난 디오를 보고는 말했다.

"무슨 일이야?"

"이 몸께서 학교 안내라는 중대한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지! 헤일 교수님을 들들 볶은 훌륭한 결과라고."

"클레아."

"응?"

"너랑 잘 맞을 것 같은데. 기분 탓이야?"

"기분 탓은 아닐걸?"

솔직히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 걸.

"자, 그럼! 함께 가보자구! 친구들."

"친구? 언제부터?"

"신경쓰지 말고 그냥 따라가자~"

먼저 몸을 돌려 어디론가 걸어가는 디오의 뒷모습을 어이없다는 듯이 보던 루드가 중얼거렸고, 그런 루드의 등을 툭 치면서 클레아는 자신을 향해 눈을 맞춰온 루드에게 웃어보였다.

"자아~ 여기가 바로 우리가 가장 많이 드나들어야 하는 헬리오스 도서관이야!"

"꽤 크네?"
"과연 마법학교. 서적들이 다 마법관련이야."

클레아의 취미 중에는 독서도 있어서인지 읽을 책이, 그것도 희귀 서적도 보관하고 있다는 디오의 말에 들떴다.

"자료 양도 엄청나다구? 저거 보여?"

"마력구?"
"마력구잖아."

"응? 알고 있네? 맞아. 저 마력구로 소리차단 마법이 유지되고 있어. 범위는 저 둥그런 책상까지. 일단 저기 앉으면 외부소리가 차단되서 책 읽기에 집중할 수 있지. 덕분에 내가 편하게 떠들고 있는거고."

"너무 돈지-읍."

텁-
"......"

'아직 말 안 끝났는데?'

디오의 말에 클레아는 콧잔등을 한번 찌푸리고는 말하다가 루드에 의해 입이 막혔다. 입이 막히자, 클레아는 디오를 향해 태연하게 웃고
있는 루드를 쳐다봤다.

"그렇네. 아카데미 내 도서관에 마력구라니. 스케일이 큰 걸?"

"아니지. 그건 기본적인 예의의 문제-..."

"하하."

입이 두번째로 막히자, 클레아는 그저 자신의 입을 막고 있는 루드를 눈을 가늘게 뜨고 볼 뿐이었다.

클레아와 루드의 말없는 대화가 계속되는 동안, 루드의 말에 반응한 디오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그렇지? 끝내주지? 아, 도서관은 총 3층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우리가 열람할 수 있는 건 1층까지야."

"...왜!"

"잠깐, 그렇게 크게 소리지르면..."

"떠들어도 된다며."
클레아의 뚱한 대답이 돌아오자, 디오는 그냥 머리를 긁적이며 딱히 문제는 없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그렇지만. 뭐, 하급반의 비애랄까."

그렇게 디오의 설명이 끝나고, 루드에게서 해방된 클레아가 도서관을 한 바퀴총총총 돌아다니고 난 소감은 특별하지 않았다.

"뭐가 특별한 건지 모르겠어."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들인걸.

루드는 클레아의 말이 끝나고 작게 들려오는 말에 어색하게 웃었고, 그것을 듣지 못한 디오는 크게 소리쳤다.

"에에? 아무리 그래도 아카데미의 도서관인걸? 희귀서적이 분명 있었을 텐데?"

'그럼 뭐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인데.'
디오의 말에도 침묵하는 클레아의 생각을 아는 것인지, 루드는 뚱한 표정의 클레아를 보면서, 이든이 여기 있는 내용을 다 알리가 없지 않냐고 옆에 디오만 없다면 알려주고 싶었다.

한참을 도서관에서 떠들고 있을 무렵에, 윗층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거기 칙칙한 파란머리, 안녕? 너... 헤일 교수님 반 맞지?"

"...네, 네엡! 마, 맞습니다!"
잔뜩 긴장해서 대답하는 디오를 보면서 클레아는 굳이 꼭 저렇게까지 대답해야하는 것일까 생각했다.

"디오, 진짜 어색해."

"클레아. 일단 지켜보자."

그럴려고 했는걸? 누가 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렇게까지 디오가 긴장해서 대답할 만한 사람은 헤레이스인가. 아까부터 디오와 대화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왠지 모르게 익숙하다고 생각하던 클레아는 고개를 들어 난간에 팔을 걸치고는 얼굴에 안 어울리는 미소를 짓고 있는 체블을 발견했다.

"너네 반에 그, [괴물]놈은 잘 있냐?"

"...괴물?"

대화의 흐름만으로만 보면, 체블이 리더시스를 그렇게 한 것만 같았다. 그럴리가 없었다.

"그... 자, 잘 있...지요. 네...!"

"그래? 그거 유감이네."

"...뭐가 유감인데."

클레아의 목소리가 체블에게 닿은 것인지. 자신을 향해 눈을 마주쳐오는 체블과 눈이 마주치자, 머리에서 이명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이 내가 모르는 게 있다고? 그럴리가 없잖, 없잖아..?'

휙-
"그럼 계속 볼일 보도록 해."

자신과 눈을 마주치고도 제가 들은 것이 제대로 들은 것이 확신은 서지 않았는지, 얼마 안 있어서 체블의 시선이 사라지자, 클레아는 이명소리가 사라진 것을 느끼고, 미세하게 떨리는 손을 바라보다가 안도섞인 디오의 한숨소리가 들려오자, 주저앉은 디오를 향해 눈을 돌렸다.

"...으아아. 심장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네."

"뭘 그렇게 긴장해? 상급반이라서?"

"...오. 루드여. 진정한 계급 사회를 맛보지 못한 어린 영혼이여...!"

이상한 자세를 취하면서 루드의 이름을 부르짖는 디오를 바라보는 루드의 시선은 차갑기만 했다.

"뭐라는 거야."
차갑기보다는 무정했다.

루드의 시선은 하나도 신경쓰지 않는지, 디오는 말을 이어갔다.

"루드! 클레아! 이 험난한 헬리오스를 헤쳐 나갈 수 있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를 지금부터 해 줄테니 잘 들어둬."

'너무 비장해서 듣기 싫다고도 못 하겠네.'

"첫째, 상급반 헤레이스에게는 절대로 맞서지 말것. 학교에서도 인정하는 우수한 재능과 실력을 겸비한 선택 받은 인재들이 바로 그들이야. 전체 인원은 스무 명이 채 안되는 소수지만 우리같은 이든은 일당백도 가능할 만큼 엄청난 실력과 특권들을 누리고 있다고 정말 잘못 걸렸다간 평온한 학교생활은 그날로 끝나는 거지."

"그래봤자. 각성도 못했잖아?"

"클레아, 네가 아직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서 그런가 본데. 우리 같은 이든들은 마법석이 있어도 쓰지를 못해. 마력을 못 느끼니까. 하지만 헤레이스는 가능하다는 거지!"

"네에- 네에. 알겠습니다~"

"제대로 안 듣지? 어쨌든! 애초에 전체 학생 수가 사백 명이 넘는데 헤레이스의 숫자는 그것뿐이니! 나한테는 하늘 위 별과 같은 존재지. 헤레이스에게 우리 이든은 이제 솜털이 보송보송한 병아리 정도로 밖에 안 보일거야!"

"그래서. 두번째는 뭔데?"

두 손을 맞잡은 채, 기도라도 하는 모양새에 기다리다 지친 클레아가 디오를 향해 물었다. 클레아의 물음에 갑자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디오는 조금 전에 설명할 때와는 다르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둘째는, 헤레이스 중에 '체블 폰 하델리오'는 반드시 조심할 것."

"체블?"
걔가? 왜?

클레아는 그 날 이후로 대공 관련 소식을 어느정도 끊었던 만큼 그 시절의 인연들에 대한 소식을 일부러 받지 않았다. 그래서 리더시스가 이러고 있다는 것도, 체블이 리더시스를 괴롭히고 있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체블의 상태에 대해서 언제 한번 리마가 지나가 듯이 말해준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럴 줄은 몰랐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찾아갔지.

이브릴이 죽은 건 알고 있었는데. 체블이 이러고 있는지는 몰랐어.

머리가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어린 아이가 동생이 죽었을 때 누구를 탓할 수도 있는 것을, 체블이 어른스러워서 당연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하지 못했다. 실책이었다.

"그게 누군데? 너는 왜 그래?"
클레아가 말이 없자, 루드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면서 말했다.

"어?"

"왜 그렇게 멍하니 있어? 아무튼 내 얘기 좀 제대로 들어봐. 보통 헤레이스와 마주치는 일은 없는데. 일단 마주치면 최대한 몸을 사리는게 좋아. 하나 같이 실력들은 훌륭하지만 성격이 뭐랄까.."

"더럽다고?"
"썩었다고?"

"히익! 누, 누가 듣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한번 찍히면 정말 지옥 같은 생활이 시작 된다니까?!"
기겁을 하면서도 착실히 루드와 클레아의 입을 막는 디오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곧 안심한 듯 입을 막은 손을 치웠다.

"그래서. 리더시스도 그런 경우야?"
디오의 행동을 보며, '왜 저렇게 피곤하게 사는거지?'라고 생각하던 클레아는 디오의 손이 치워지자.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어떻게 알았어?"

"딱 보면. 알지 않나?"

"알지."

"그렇지?"

우리는 의뢰를 받고 들어와서 미리 알게된 것뿐이지만. 그냥 봐도 알겠더만.

"설명하자면, 특히나 체블은 가장 유명해. 하나 걸리면 아주 끝장을 볼 때까지 괴롭힌 데나? 게다가 집안도 굉장해서 교수들도 함부로 터치 못 한데."

"뭐야, 그게."

"...적용 안한다더니. 역시 이럴 줄 알았다니까. 있잖아. 디오. 아까 체블이 괴물 어쩌고 했는데. 무슨 소리야?"

"뭐, 너희도 곧 알게될 것 같지만, 아까 말했듯이 체블에게 찍히면 어떤 꼴이 나는지 알 수 있는 전형적인 예랄까."

"...클레아?"

"아냐, 다른 건? 뭐 아는 거 없어? 왜 체블에게 찍혔는지라던가."

"그건 잘 모르겠어. 솔직히 우리가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이렇게까지 된 게 나도 의문스럽긴 한데. 힘 없는 이든이 어떻게 하겠어."

이든이 문제인게 아니라, 개인 역량의 문제가 아닐까.

클레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막는다면 달라지지 않을까. 믿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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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10-24 02:12 | 조회 : 1,306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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