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과거의 이야기

"하아-"

진욱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래? 그렇게 한숨 많이 쉬면 빨리 늙는다, 너? 원래 인간은 몇 년 못 사는데 더 빨리 가고 싶은 건 아니지?"

눈 앞에 있는는 소년은 그런 심란한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생글생글 웃고있었다.

오렌지 빛이 나는 약간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을 한 소년은 어딘지 모르게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안그래도 복잡한데 저 녀석까지 오다니...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왜 갑자기 온거야?"

"갑자기라니? 내가 가겠다고 했잖아. 그것도 곧. 힘 조절하는 연습을 하는 게 힘들긴 했는데 나름 참을만했어. 너랑 다시 만나고 싶기도하고 그 여자애도 만나고 싶기도하고. 그 생각을 하면서 했더니 나름 할만 하더라고."

"그 여자애?"

소년의 말에 진욱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 여자애라니?

"그 네 지갑안 사진에 있던 그 여자애 말이야."

자신의 지갑에 있는 사진은 부모님과 연지와 찍은 사진 한 장 뿐이다.

어머니가 10년은 젊어보이는 동안이시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자애'라고 불릴 정도로 시간을 거스르시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그 '여자애'가 가리키는 것은 분명...

"연지?"

"응? 그러고보니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네."

"근데 니가 왜 걔를 보고 만나고싶어."

진욱의 말에 날이 서 있었다.

"저번에 나랑 투닥거리다가 다쳤을 때 제일먼저 걱정하던 애가 걔 아니야?"

명백한 경계가 담긴 날카로워진 진욱의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순진하게 소년이 물어왔다.

소년의 말에 머릿속에서 자신의 다리가 부러져버린 일이 생각이났다.

힘이 제대로 조절되는 않는 소년과 싸우다가 다리가 부러졌을 때 가장먼저 떠오른 사람은 연지였다.

부모님께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그 순간에 자신의 머릿속은 온통 연지였다.

자신을 걱정할까봐 걱정이 많이 되기도했고....

"그 애. 네가 되게 좋아하는 것 같아서 나도 궁금하기도하고. 우린 친구잖아. 친구가 좋아하는 여자는 내 친구기도하지. 그러니까 만나서 친해지고 싶어. 학교도 다녀보고싶고. 아, 산에서 움직일 거니까 걱정 안해도 돼. 막 너한테 피해가되게 하지는 않을거야."

"하아...."

지금 이리 온 것 자체가 자신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은 듯 했다.

"한숨쉬지 말라니까."

생글생긋 웃는 얼굴을 딱 한대만 온힘을 다해 때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별것도 아닌 일에 연지에 대한 감정을 알아차린 것을 보면 눈치가 빠른 것도 같은데 이렇게 막무가내로 드리대는 걸 보면 눈치가 없는 것도 같았다.

아니면 다 아는데 일부러 약올리려고 철판을 까는건가....

'그럼.. 나랑 친구 해 줄래?'

'뭐?'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인데 친구하자. 나 인간 되게 좋아해. 내가 잘 해줄게. 나 나쁜 거 아냐.'

'하.. 니 마음대로 해라.'

'그럼 우리 친구인 거다?'

'아, 마음대로 해.'

진욱은 그때 절대 안된다고 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했다.

다시 그 때로 간다면 차라리 이가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답을 못하게 하는거였다.

"나 생각보다 쓸모가 많아. 나름 도움이 될꺼야."

싱긋 웃어보이고는 자신의 옆에서 하고싶은 일들에 대해서 쫑알쫑알 실컷 늘어놓는 소년을 복잡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확실히 상황이 바뀌긴 했지만 집에서만큼은 딱히 다를 것도 없었다.

연지에게 푹 파묻힐 정도로 이불을 덮어준 한울은 더워서 자신을 살짝 원망의 눈빛으로 흘겨보는 눈빛을 무시한채 방 안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잘 자. 좋은 꿈 꾸고. 아, 내 꿈이면 완전 길몽인데. 그러면 복권하나 사자. 대학교를 가지 말고 그냥 아예 하나 사버려."

"됐어요! 그게 무슨 길몽이에요. 악몽이지. 그리고 돈이 그렇게 많으면 왜 대학교를 사요. 안들어가고 말지!"

연지가 평소보다 언성을 높이며 대답했다.

"에에? 이거 봐라. 돈 생기면 안되겠네. 사용의도가 불순해. 그럼 그냥 나 나오면 행복해하는 걸로 끝내자."

"악몽을 꿨는데 어떻게 행복해해요."

"왜? 이렇게 잘생긴 남자가 나오는 악몽 꿔봤어? 괜히 튕기다가 잠꼬대로 내 이름 부르지 말고."

한울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연지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절대 그럴 일 없거든요!"

이불을 끝까지 덮게 하는 게 마음에 안들어 툴툴거리는 연지가 몸을 훽 돌려 한울에게 등을보인채 잠을 청했다.

왜 그러는지 무슨생각으로 그러는지 빤히 보이는 귀여운 모습에 한울이 조용히 눈을 휘었다.

이럴 때 보면 영락없이 철 없는 그 나이 또래의 고등학생으로 보였다.

아무리 부모님이 남겨주신 재산이 많고, 좋은 친구가 있고, 가족처럼 돌봐주는 친한 분들이 있어도 어린 나이에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은 상당한 충격일 것이다.

그것도 자신만이 살아남아버린 사고라면 더욱 더.

그렇기 때문에 원래의 성격을 누르려는 게 많이 보이고, 남에게 의지하기보다는 자신이 혼자 끌어안고 끙끙거리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그런 점 때문에 친구들도 몇 마디라도 더 하면서 챙겨주려는 게 눈에 보였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그런 모습이 조금 덜 보인다는 점이 만족스러웠다.

'그날 그 사고가 나지 않고 그분들 밑에서 자랐더라면 조금 더 말괄량이었겠지?'

10년 전 그날.

연지의 부모님을 만났던 그날.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한 그날.

그 날을 떠올리며 한울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선배님. 아무래도 힘들어보이는데 같이가서 도와주시는 게 어떻습니까?"

단정하게 갓까지 차려입은 여울이 한울에게 물었다.

새파란 하늘 위에 새카만 정장을 차려입은 채 이질적으로 둥둥 떠 있던 한울이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 여울을 쳐다봤다.

"괜찮아 괜찮아."

한울의 말에 밑을 바라본 여울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

추석연휴를 맞아 어딘가에 가던 사람들의 차들이 한데 뒤엉켜 유래없을 정도의 10중 추돌의 대형사고가 난 현장이었다.

고향을 갈 생각에 잔뜩 들떠서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버스에, 차에 올랐던 사람들은 갑자기 벌어진 사고에 자신들이 죽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도, 또 그럴 생각도 없어보였다.

여기저기서 절대 못간다며 자신을 살려내라면서 애꿎은 저승사자의 머리끄댕이를 잡고 난리를 치는 사람도 있었고 소중한 부위를 차고 달아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죽었으면서도 정신을 못 차린 것인지 반반한 얼굴에 넘어가 작업을 거는 사람들도 있었고 아직 못해본 게 많다며 바짓가랑이를 잡고 펑펑 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여기저기 치이면서 울먹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저승사자들을보다 여울은 결국 장부를 접고 내려가기위해 몸을 움직였다.

"아, 승진을해서 제대로 편히 쉬실 생각은 없으신 겁니까?"

"나는 이미 영감한테 찍혀서 이미 안돼."

"그래도 총책임자로써의 의무를 제대로 하시다보면 괜찮지 않을까요?"

"총책임자니까 이렇게 누워서 구경만하는거지. 나도 처음에는 엄청 맞았어. 저건 아무 것도 아니다~ 너도 이리와서 그냥 기다려."

한울의 말에 잠깐 인상을 구긴 여울이 자신이 접었던 장부를 한울에게 던졌다.

퍽!하는 소리가 나고 책이 떨어지자 인상을구긴 한울의 얼굴이 나타났다.

"야!"

도대체 항상 다른 사람한테는 꼬박꼬박 존댓말에 예의를 깍듯이 지키면서 자신은 제 집 개마냥 훈련시켜 갱생시키려고하는지 이해가안됐다.

자신보다 90년 정도 늦게 들어온 녀석이니 얼굴이 어려보여도 여기에서 자신을 제외하고는 제일 높은 녀석인데 굳이 승진을 거절하고 자신의 옆에 붙어 이러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저는 가서 도와드려야겠습니다. 선배님은 여기에서 뒹굴거리시던 노래를 부르시던 알아서 하십시오. 하지만 그 대신 저는 있는 그대로 단율 선배님께 보고드릴겁니다."

말 한 번 더듬지 않고 반 협박에 가까운 말을 내뱉은 여울은 순식간에 현장으로 뛰어들어갔다.

"아, 진짜!"

여울의 말에 한울도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흐트리고는 현장으로내려갔다.

사람들은 저승사자가 뭐라도 되는 줄 알지만 그저 죽은 사람을 데려오라는 일을 맡은 공무원들일 뿐인데 어떻게 애원이라도하면 다시 살아날 수 있을 줄 아는지 주먹과 욕설이 오가고 곡소리가 들렸다.

"뭐 한 번 효도할 적도 없는 데 이렇게 갈 수는 없어요."

"태어나서 공부밖에 해 본 게 없는데요."

"내가 누군지 알고 이렇게 데려가려고해! 내가 없어지는 건 대한민국에도 큰 손실이여! 알어!"

한울은 난장판 속에서 요령있게 몸을 피하며 상황 파악을 못하고 멍하니 서 있는 사람들을 검은 문 안에 밀어 넣으며 사고현장의 맨 뒤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처음에는 조용해서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한울의 눈에 무릎을 꿇고 앉아 차를 보고 있는 한 부부가 보였다.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차를 바라보고 있는 부부에게 한울은 뭐에 홀린양 다가갔다.

"어?"

한울의 인기척을 먼저 느낀 여자의 목소리에 남자역시 자신을 향해서 고개를 돌렸다.

둘다 이성을 꽤나 울렸을 법한 외모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보다 좋은 사람들이었다는 기운이 훨씬 더 강했다.

"..왜 그러세요?"

둘의 시선에 정신을 차린 한울이 물었다.

"아... 저희 아이가 아직 차 안에 있어서요."

여자의 말에 한울이 마구 찌그러진 차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이를 보자마자 한울의 눈이 커졌다.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목이 메여왔다.

뒷 자석에 앉아있는 초등학생 즈음 되어보이는 여자아이의 얼굴이 온통 피로 물들어있었다.

숨도 점점 미약해지는 게 곧 죽을 것 같았다.

"너무 아파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되서..."

여자의 눈에서 맑은 물방울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살았으면 좋겠지만 혹시 죽게 된다면 같이 가려구요."

남자가 여자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한울에게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저 아이 이름이 뭔데요?"

이보다 더 잔인하고 가슴아픈 상황을 봐도 아무 감정이 없었다.

어차피 저승에 가게될 거고 자신의 업보대로 거기서 살면 되는 거지 인간세상에서의 삶이 다 끝났다고해서 저승에서의 삶도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눈에서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순식간에 닦아낸 한울이 아이의 이름을 물었다.

"연지에요... 정연지..."

여자의 말에 재빨리 장부를 열자 맨 뒷장에 그 이름이 보였다.

아이는 이 상태로 고통스러워하다가 구조대가 오기 얼마 전에 눈을 감아야했다.

"이름이 없네요. 죽을 운명이 아니에요."

하지만 한울의 입에선 정 반대의 말이 튀어나왔다.

"예? 정말요?"

"진짜에요?"

"네. 구조대에게 구조되서 살 운명이에요. 아마 이 아이는 나중에 다시 만나셔야겠네요."

한울은 몇 번이고 자신에게 감사하다며 눈물을 흘리는 부부를 혼잡하다, 아이 근처에 죽은 영혼이 있으면 안 좋을 수 있다 같이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며 부부를 검은문으로 들어가게했다.

그리고 미친 듯이 다시 그 장소로 달려가 아이에게 가까이 갔다.

아직 미세하게 호흡이 남아있는 것이 숨이 붙어있는 듯 했다.

"하아... 정말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피로 잔뜩 물들어 한 숨 한 숨 내쉬는 것도 힘들어하는 아이를보니 한울의 눈에선 다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나왔다.

"나도 진짜 주책이지."

"하아-"

연지의 옅은 숨소리에 한울은 눈물을 닦을 생각도하지 못하고 급히 연지의 목 뒷부분에 입술을 꾸욱 눌렀다.

검은색 빛이 살짝 나타났다 사라지니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작은 원형의 검은 문양이 생겨났다.

절대 해서는 안되는 금기와 같이 일이었다.

물론 왠만한 저승사자들은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는 일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알아도 해서는 안되는 일.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은 저승사자들의 권한 밖의 일이었다.

이 것 때문에 평범하게 사는 것은 10년 정도.

그 후에는 특이한 향 때문에 귀신들을 끌어모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그냥 죽게 놔 둘 수 없었다.

한울이 들고 있던 책에 연지의 이름이 빛나더니 이내 사라져버렸다.







색색-

옅지만 가쁘지 않은 숨을 내쉬는 연지의 옆에서 한울이 미소를지었다.

살짝 머리카락을 치우니 그 때 자신이 새긴 그 문양이 눈에 들어왔다.

검지 손가락으로 살살 매만지자 '으음-'하는 소리와 함께 연지가 몸을 뒤척였다.

당황한 한울이 깜짝 놀라 연지의 등을 토닥거리기 시작했다.

커다란 손이 규칙적으로 박자를 맞춰주자 미간의 주름이 없어지고는 다시 평온한 숨을 내뱉기 시작했다.

등을 토닥이느라 가까이 붙은 탓에 가슴팍에 옅은 숨결이 닿아왔다.

자신의 한쪽 팔을 밴 채 연지를 보며 토닥이던 한울의 손이 점점 느려졌다.

기분 좋은 따스함과 편안함, 그리고 달님도 살짝 몸을 숨겨버린 어둠 속에서 한울의 눈도 점점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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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9-11 09:06 | 조회 : 1,393 목록
작가의 말
브리사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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